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5화 (45/633)

45. 거지패 (2)

사제의 말에 맞춰 울타리가 열렸다.

검은색 문은 끼이이익- 쇳소리를 냈는데, 그와 함께 밖에서 죽치고 있던 거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다.

흡사 하수도에 물이 빠지듯 말이다.

올리버도 그러한 인파에 휩쓸려 구빈원으로 들어갔고, 몇 번의 부대낌 끝에 줄을 설 수 있었다.

“다행이다. 대강 보니 우리는 받을 수 있겠어···.”

“오랜만에 빵 먹겠네.”

“그러게 말이야.”

줄을 선 거지들은 가득 쌓인 빵을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속삭이는 정도지 결코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지 않았다.

가만 보니 모두 빵을 나눠주는 구빈원 직원과 총괄하고 있는 사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구빈원 직원을 비롯해 사제 모두 거지들을 향해 혐오감과 불쾌함 그리고 묘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척 봐도 심기를 거슬리게 하면 쫓아낼 기세.

“에헤이···. 그리 빤히 쳐다보지 마.”

늙은 거지가 올리버의 고개를 억지로 숙이며 말했다.

“고개 숙여. 땅만 봐. 땅만···. 눈 마주치거나, 훔쳐보는 거 싫어하니. 애당초 책잡힐만한 걸 주면 안 돼.”

올리버는 일단 시키는 대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다고 궁금증은 해소된 게 아니었지만.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짧게 해.”

나이 많은 거지가 사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까 전에 빵을 나눠주는 세속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뭐죠?”

“······그걸 지금 알고 싶다고?”

“예, 부탁드립니다.”

정중하면서도 진실한 부탁에 거지는 마음이 동했는지 끙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줄이 줄어들며 점점 가까워지는 사제의 안색을 살폈다.

“끙···. 나중에 설명해줄게. 나중에.”

“감사합니다. 보티 씨.”

“이 새끼···. 이상하게 사람 거절하기 힘들게 하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줄은 줄어들어 올리버 일행의 차례가 되었다.

올리버는 보티를 따라 허리와 고개를 비굴하게 숙인 채 땅만 바라봤다.

그래도 중간중간 눈을 흘겨 빵을 나누는 직원과 사제를 볼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진 탓일까? 그들의 내려보는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

“다섯 분? 여기 있수다.”

구빈원 직원인 사람 수에 맞춰 빵 열 개를 줬다.

보티는 미리 준비한 자루에 빵을 담고 감사 인사를 했다.

“마할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분명 복 받으실 겁니다.”

“······.”

대답 없는 사제.

허나, 익숙한 듯 보티는 일행을 데리고 구빈원 밖으로 나갔다.

“휘휴···. 다행이구만. 빵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잘못했으면 허탕 칠 뻔했어.”

“허탕? 만약, 빵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긴, 뭐 어떻게 돼. 못 받고 그냥 돌아가는 거지···. 참 궁금한 것도 많구나.”

“아······. 그런데 진짜 그냥 돌아가나요?”

“그렇지. 빵이 없는데 뭐 어쩌겠어? 손가락이나 빨아야지. 내가 괜히 해 뜨기 전에 가자 한 줄 알아? 거지라도 게으르면 안 돼. 그러다간 배곯다 객사하기 딱이지.”

“아아···. 그렇군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캔트의 거지패는 게으름과 거리가 멀긴 했다.

동냥아치인 하모니카, 빨간코, 노인과 손자 등은 늘 정해진 시간에 구걸하러 갔고,

그 외의 다른 일반 거지들은 뒷골목을 통해 여기저기 쓰레기를 수거하거나, 먹을 만한 음식물 쓰레기를 챙겼다.

기껏해야 여유로운 것은 거지패를 지키는 몽둥이 정도?

조셉의 서재에서 봤던 일지의 내용과 달리 캔트의 거지패는 매우 부지런하고 건전했다.

책에서는 푼돈에 동료를 파는 등 온갖 끔찍한 범죄를 마다하지 않는 어리석고 욕심 많은 생물로 묘사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흑마법사가 이용하기 좋고.

허나, 올리버가 접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책과 현실의 괴리라는 거.

“아, 모두 멈춰.”

보티가 갑자기 멈춰서며 말했다.

그는 밖을 살펴봤다. 밖에는 사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꽤 됐나 보군. 돌아서 가자.”

“예? 돌아서요?”

“그래, 괜히 큰 도보로 다니다 잘못 찍히면 우리만 피곤해져. 멀리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그게 나아.”

보티의 말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지만 부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쓰레기를 챙기거나 할 때 거지패 사람들은 사람이 많은 곳은 기피하고, 주로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이동했다.

괜히 사람 눈에 띄면 단속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라나?

“자자, 불평할 시간에 어서 움직이자고, 어쨌건 오늘 허탕은 안 치고 빵 얻었으니 행운이잖아? 어서 가자고···. 아, 맞다. 올리버.”

“예?”

“아까 전에 질문했지만, 세속적 이유?”

“아, 예.”

“한 번만 이야기해 줄 거니까 새겨들어라. 너도 우리 패거리니 특별히 이야기해 주는 거니까.”

“예.”

“그건 자기들이 신을 대리인이자 구원자라고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그런 거야···.”

“구원자···요?”

“그래, 배곯는 사람에게 빵은 소중한 법. 빵 나눠주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거기다 자기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선량한 이미지도 만들 수 있고.”

“아···. 하지만 사제님이란 분은 저희를 좋게 보는 거 같지 않던데요?”

“야, 말했지. 이 녀석 눈썰미 은근히 좋다고.”

“조직의 전체 흐름에 따라 개인은 원치 않아도 따라야 하지. 그런 사람이라면 의외로 많아···. 더 심한 놈은 빈민 구호품을 빼돌려 자기 잇속 챙기는 인간도 있고.”

“호···.”

올리버는 당연하면서도 새로운 사실에 감탄하며 소리 냈다.

성기사는 신기할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편이었는데, 사제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겉과 속이 달랐다.

물론, 올리버가 모든 성기사와 사제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당장 본 것은 그랬다···. 꽤 재밌었다.

점점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라고 할까?

이 재미에 가장 좋은 점은 또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는 거였다.

“그런데, 모두 그걸 아시는 겁니까?”

“응···. 별거 아니야. 잘난 척 지껄였지만, 나도 들은 거거든.”

“누구한테서요?”

“전 대가리인 사제님······.”

“사제님요?”

“진짜 사제인지는 몰라도 우린 그렇게 불렀어···.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우리를 한데 묶어주고 이것저것 가르쳐주셨지. 좋은 사람이었어.”

올리버는 보티의 감정에서 존경심을 보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보기 드문 수준이었다.

죽은 자가 존경받는다니. 죽으면 끝인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누군가 말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여하튼 대단한 분이지. 다른 거지패랑 싸움 없이 대화로 중재하고, 캔트 씨까지 데려오셨으니까.”

“캔트 씨요?”

“어, 사실. 캔트 씨를 데려온 게 사제님이었거든. 지금이야 많이 유들유들해지셨지만, 처음에는 성격이 장난 아니셨지.”

“그렇습니까?”

“어. 마치 산 시체 같았는데, 조금만 건드려도 발작하듯 화를 내곤 했지. 지금이랑 딴판이야.”

지금이라 딴판이라. 올리버는 급격히 호기심이 동했다.

유쾌한 지금과 너무 달랐다.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그에 관해 더 질문하려던 찰나 보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자자, 그 이야기는 그만. 뒤에서 남 이야기하지 말자고. 특히 우리 같은 거지들끼리. 이 바닥에 굴러들어온 인간치고 사연 없는 어딨어. 다들 그만 말해.”

보티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올리버도 입을 다물었다.

척 봐도 예민한 문제 같았는데. 그럼에도 올리버는 어떻게든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가려운 곳은 긁어야만 하지 않은가.

“어···. 저기 뭐가 있는데요?”

일행 중 하나가 저 멀리 있는 좁다란 길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몇몇 거지들이 모여 있었다.

“저건···?”

“두더지 패거리다······.”

보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두더지.

몇 번 듣기만 할 뿐 누군지는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는 자들.

올리버는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을 빠르게 살펴봤다.

왕주먹처럼 주먹이 매서워 보이는 이들이 많았는데, 개중에 커다란 개를 키우는 노인도 있었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위세라 할까, 살기라 할까.

그들은 거지보다는 갱에 가까워 보였고, 실제로 붙잡힌 몇몇 거지들은 구빈원에서 받은 빵 일부를 그들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올리버는 말없이 그들을 관찰했다.

“······.”

“···어쩌면 좋죠? 보티? 돌아갈까요?”

“음······. 아니 너무 깊이 들어왔고, 눈도 마주쳤어. 괜히 여기서 겁먹은 티 내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어. 당당히 앞으로 나간다.”

그 말과 함께 보티는 앞으로 걸어갔다.

애써 강한 척하는 게 뻔히 보였는데, 그만큼 위험한 놈들인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캔트를 만났을 때 올리버를 쫓아온 이들도 두더지를 많이 경계했던 게 떠올랐다.

“거기 멈춰.”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덩치가 올리버 일행을 멈춰 세웠다.

그는 챙이 뜯긴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여기는 통행세를 내야 해. 다들 구빈원 갔다 오는 길이지? 반씩 내놔.”

어이없을 정도로 당당한 태도. 보티가 이에 반발했다.

“내가 이 거리에서 지낸 게 30년은 넘는데, 통행료를 내라니. 그게 뭔 소리인가?”

“허···! 거지 생활 참 오래도 하셨군. 그게 뭔 자랑이라는 듯이 지껄이고.”

“너도 거지 아니야?”

“그냥 거지는 아니지. 기분 나쁘니까 동렬에 놓지 마···. 어찌 됐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골목에 주인은 없었지만, 이제부터 아니거든.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야 해.”

“골목에 어찌 주인이 있나?”

“이제부터 있다니까. 바로, 우리 두더지패. 어때? 줘 터지고 다 뺏길래? 아니면, 안 맞고 반만 내놓을지? 난 개인적으로 전자가 좋은데. 손이 근질근질하거든.”

중절모 거지는 위협하듯 손을 두둑 풀었다.

행동하는 방식이 도미니크 패밀리를 연상케 했는데, 보티는 속으로 두려움을 떨면서도 용기 냈다.

“이봐, 감히 그따위-”

“-잠깐만.”

중절모 거지와 같은 편인 한 노인이 끼어들었다.

그는 커다란 개 여러 마리를 곁에 둔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개들은 쓰다듬을 때 다 헥- 헥- 소리를 냈다.

노인이 말했다.

“······자네들 사제··· 아니, 캔트 패거리 아닌가?”

보티가 서둘러 대답했다.

“그렇소···. 당신 개 늙은이 아니오?”

“그래···. 에잉, 헨리 그냥 보내줘. 캔트 패거리야.”

“캔트? 아··· 쿼터스태프인가 해결사 출신인가 하는 캔트 말이요?”

“그래, 보내줘.”

헨리라 불린 중절모 거지는 미간을 좁히더니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쿼터스태프 캔트···. 어째 들은 거에 비해 부하들은 영 아닌데, 다들 약골처럼 보여. 특히, 저놈.”

중절모 거지가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겉모습만 보면 얼추 맞는 말이긴 했지만.

“밑에 놈들만 그렇지···. 그냥 보내줘. 두더지는 아직은 부딪힐 생각이 없으니까.”

상황이 잘 풀리는 듯했는데, 중절모 거지가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이 늙은이 눈깔이 마음에 안 드는데요?”

그가 보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랑 자기랑 같은 거지 취급했단 말이오. 영감.”

“거지 맞잖나?”

“그냥 거지는 아니지···. 고소득 직업 거지랄까? 그냥 기분도 더러우데, 한번 건드리면 어떻소. 영감?”

그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거지들이 몽둥이와 주먹을 쥐고 둘러싸기 시작했다.

“······몰라. 두더지는 하지 말라고 했어. 난 반대야.”

“그럼 내가 독단으로 하는 거면 어떻소?”

“하···. 마음대로 해. 난 모르는 일이니까. 그보다 이 녀석 왜 이리 낑낑대?”

낑낑대는 개를 쓰다듬으며 딴청을 피우는 개 노인.

중절모 거지는 모자를 앞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봐 들었나? 마음대로 하라신다.”

어느새 주변을 둘러싼 거지들. 다들 긴장감이 팽배해졌는데, 그때, 딱. 딱. 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봐. 궁금한데?”

캔트가 저편에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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