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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43화 (43/633)

43. 첫발자국 (2)

“두더지가 누구죠?”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질문에 모두가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

“······.”

“······.”

“······.”

한참의 침묵 후 누군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핫학······! 끅끄끄극크크큭···. 두더지가 누군지 몰라?”

“어, 예. 누구죠? 사람인 거 같기는 한데?”

“사람인 거 같기는 한데···? 하핫-! 당연히 사람이지. 이 근방에서 요즘 유명한···. 이봐, 정말 이런 놈이 두더지 부하인 거 같아? 두더지가 누군지 모르는데?”

“아니,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 거짓말한 걸 수도 있지. 진짜 모르는 걸 수도 있고. 이 친구 얼굴 좀 봐봐. 거짓말할 만큼 똑똑해 보이나?”

캔트라는 남자는 거리감이란 게 없는지 굳은살이 박힌 양손으로 올리버의 얼굴을 붙잡으며 말했다.

겉모습과 달리 매우 힘이 셌다.

올리버의 멍한 얼굴을 보자 쫓아온 이들은 설득당한 건지 약간 기가 죽었다.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걸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 그래. 혹시 모르지. 그래도-”

“-캔트 씨···. 저희가 캔트 씨에게 신세 진 게 많긴 하지만, 이렇게 보내기는 조금···.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불안불안한 거.”

올리버는 이들의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다들 불안과 초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캔트라는 남자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음···. 자네들 말 이해해. 이해하니까···. 이러면 어떻겠나?”

“예? 어떻게요?”

“이 친구 내가 데려가지.”

“예? 그게 무슨···.”

“이 친구 내가 데려간다고, 수상한 게 있으면 내가 대신 혼내주지. 이걸로!”

캔트가 자신의 나무 지팡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쫓아온 이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된다니? 내 나름대로 절충안인데, 설마 나를 못 믿나?”

“아, 아니, 우리가 캔트 씨를 왜 못 믿겠습니까?”

“그럼, 뭐가 문제인가? 내가 이 친구를 감시할 테니. 그럼, 자네들도 안심할 수 있지 않나? 다시 묻네. 날 못 믿나? 젠장, 슬퍼지려고 하는군.”

거듭되는 압박.

결국, 올리버를 쫓아온 이들은 머뭇거리다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캔트 씨에게 신세 진 것도 있으니.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다만, 만약 저놈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땐 저희도 그냥은 못 넘어갑니다.”

“고맙네! 고마워···! 역시 자네들이라면 날 믿어줄 줄 알았지. 감동의 눈물이 흐를 것 같구만. 자자, 이건 내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인사. 받아. 받아.”

캔트는 품 안에 있던 지폐를 몇 장 꺼내 그들의 품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들은 됐다고 말했으나, 캔트의 거듭된 제안에 결국 못 이기는 척 받아주었다.

“아···. 정말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들 가게.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오고. 반가웠네.”

밝다 못해 유쾌하기까지 한 태도로 캔트는 그들을 배웅했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자 거리에는 캔트와 올리버만 남게 되었다.

올리버는 느꼈다. 캔트란 남자가 곁에 있자 하나둘 떠나는 감정을.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봐, 이봐? 이봐! 내 말 안 들리나?”

정신을 차린 올리버. 앞을 바라보니 캔트라는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원래 그렇게 자주 멍때리나?”

“아······. 죄송합니다. 겁을 먹어서.”

“겁을 먹어? 음···. 딱히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제가 좀···. 어쨌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오, 그래도 그건 아는가 보군. 정말 두더지가 보낸 거면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을 테고, 설사 아니라 하더라도 팬티까지 빼앗겼을 거야. 당연히 고마운 줄 알아야지.”

“예,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바로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광산과 고아원에서 배운 처세술이었다.

다행히 통했는지 캔트라는 남자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묻는데, 어디서 왔지?”

“···와인햄에서 올라왔습니다.”

“와인햄? 오···. 아직도 거기 사람이 사는군. 그런데, 와인햄에서 살던 친구가 란다에 왜 왔을까? 그것도 X구역에?”

“사정이 있어서···.”

“사정? 사정이라···.”

캔트는 그리 중얼거리며 올리버를 훑어봤다.

오랫동안 입어 해지고 반들반들해진 재킷과 먼지가 묻은 신발.

그는 뭔지 지레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어딨지?”

“없습니다.”

“그래? 부모님이 없다라······. 그럼, 여긴 왜 왔지? 나도 몹시도 궁금한데? X··· 아니, 사실 V구역만 하더라도 외부인들이 잘 안 오는데, 아주 궁금해.”

올리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캔트의 눈을 바라봤다.

수염도 제대로 안 깎은 추레한 남자였지만, 눈만큼은 약사, 제임스와 같은 날카로운 통찰력이 엿보였다.

올리버는 대충 대답하면 안 될 걸 직감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이야기해도 안 됐지만.

“······옛날에 신세를 진 분이 여기 사신다고 하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 왔습니다.”

“신세 진 사람이 누구지?”

“······옛날에 도와주신 분이요.”

“······그런가? 만났나?”

“음···. 아뇨.”

“······왜 만나려고 왔지?”

“뭔가 상담하고 싶었거든요.”

“무슨 상담?”

“음······. 홀로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이것저것 묻고 싶었거든요.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요.”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이번이 처음? 어리바리해 보이는데도, 표현은 참 고상하구나?”

“고맙습니다?”

“하···! 부모님도 없고, 홀로 란다로 왔다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뭐···. 이것저것요.”

“이것저것···? 하하, 이상하고 수상한 꼬마로구나.”

“그런가요?”

“응, 그래···. 다시 한번 묻는다. 아주 아주 진지하게 묻는 거니 진지하게 대답해라. 널 위해서도.”

올리버가 캔트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두더지가 누군지 진짜 모르나?”

예리하게 빛나는 두 눈. 약사와 제임스와 같은 통찰력이 빛났다.

“예, 모릅니다···. 그게 누구죠?”

“있어. 아주 못된 놈···. 어디 갈 데는 있나?”

올리버가 X구역 반대편을 봤다. 조셉과 만났던 공원을 말이다.

핫도그 부스와 아이스크림 부스, 분수와 아기 천사상,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머금은 사람들.

분명, 그곳으로 가기로 정했는데, 눈앞의 정체 모를 남자를 보자 급격히 흥미가 떨어졌다.

“음······. 아뇨, 딱히.”

“갈 데도 없다라···. 오늘 밤 지낼 곳도 당연히 없겠지?”

“어···. 예.”

“그렇단 말이지? 하···.”

캔트란 남자는 난감한 듯 꺼끌꺼끌 수염이 난 턱을 문댔다. 그와 함께 그는 작은 갈등을 느꼈다.

“음······. 하, 내가 정말 미쳤나 보군. 그다지 닮지도 않았는데···. 꼬마야. 정 갈 데가 없으면 날 따라와라. 곧 날도 추워지거든.”

“······.”

“뭐, 싫으면 안 따라와도 되고.”

“···괜찮으시다면 질문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을 허락? 예의가 참 바르구나. 예의 바른 아이 싫지 않아. 물어봐라. 왜? 혹시 납치해 어디 농장에 팔려는 게 아닌지 궁금하나?”

“아뇨···. 악의가 없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절 순수하게 도와주시려는 것도 알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전 그런 분을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순수하게 도와주시는 분요···. 왜 도와주시려는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글쎄···. 왤까? 나도 모르겠다. 오늘 큰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다는 거로 해두자. 그보다 어쩔 거냐? 따라올 거냐 말 거야? 그거만 말해라.”

올리버는 다시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의 감정은 아무런 속셈이 없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따라가고 싶습니다.”

“말 진짜 예쁘게 하는군. 그럼, 따라와라.”

***

올리버는 캔트를 따라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지팡이가 땅에 부딪히며 딱- 딱- 소리가 났는데,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거지나 몇몇 건달들은 반갑게 인사하거나,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쇼! 캔트 씨.”

“어, 반갑네.”

“일하다 오시는 겁니까?”

“일은 무슨 돈만 받아오는 거지.”

그렇게 여러 사람을 지나치며 가는 와중 캔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안 궁금하냐?”

“예? 아···. 궁금합니다.”

“안 궁금하구만······. 원래 그렇게 겁이 없나?”

캔트의 질문은 실로 합당한 거였다.

X구역을 벗어나 상대적으로 나은 W구역으로 왔다 해도 치안이 낮은 빈민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는데, 거기에 캔트는 점점 더 인적이 드물고 으스스한 곳으로 갔다.

아이는 물론 어른조차 의심이 들며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

분명, 그럴진대 올리버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캔트의 입장에선 참으로 이상한 아이라 할 수 있었다.

“···전 겁이 많습니다.”

“오, 그래? 참고로 난 거짓말을 싫어한다.”

“거짓말 아닙니다. 아픈 것도 싫고, 죽는 것도 무섭고, 그 외에도 무서운 게 많습니다.”

“보통 아프거나 죽는 건 다들 무서워한다. 일부 성적 취향이 특이한 자들도 있지만, 그건 예외로 하고.”

“그렇습니까?”

“그래, 맙소사···. 넌 원래 그런 식으로 대화하냐?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군.”

“···누가 절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습니다. 망가졌다고.”

“그러냐? 그거 제대로 봤군. 그게 누구냐?”

“아, 그게-”

“-이런 왔나?!”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와 어린 소년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중년의 사내로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며, 코는 벌겠고, 정수리는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소년은 밝은 금발에 몸에 맞지 않은 큰 코트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캔트! 캔트! 캔트! 우리 거지패 대가리 캔트!”

남자는 곁에 데리고 있던 소년을 버리다시피 내팽개치며 캔트에게 다가왔다.

실없이 헤헤 웃는 모습이나, 붉은 코를 봤을 때 알코올 중독자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흥얼거리며 계속 말했다.

“드디어 오셨군. 드디어 오셨어···.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반가워!”

“그래, 반갑네. 반가워···. 일하다 오는 길인가?”

“일? 내가? 하핫! 20년 전 이후로 난 일해본 적이 없는데! 일은 쟤가 했지. 쟤가! 안 그러냐?!”

빨간 코 남자가 금발 꼬마는 가리키며 말했다.

금발 꼬마는 순박하게 헤실헤실 웃으며 캔트에게 고개를 숙였고, 캔트는 이를 받아주었다.

“무사히 돌아왔다면, 우리 대가리 님께서 돈을 받아 왔다는 이야기겠지? 자자, 얼마나 받았는지 이 빨간 코에게 보여주소서. 어서어서.”

“주정 부리는 거 보니, 슬슬 술이 다 떨어져 가는 모양인가 보군.”

“난 늘 술이 부족하지! 그래서 얼마나 벌었나?”

“나중에. 나중. 이건 다 같이 있을 때 확인해야 뒷말이 안 나와.”

“아······! 좋아, 인정! 그렇게 하지. 그럼 대신 다른 질문 해도 되나?”

“늘 말이 많다고 느끼지만, 지금은 더 말이 많네. 뭐야?”

“이 애송이는 누군가?!”

빨간코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올리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캔트는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 애송이? 어···. 오는 길에 어쩌다 보니 주운 꼬맹이야.”

“무슨 강아지 줍는 것도 아니고···. 꼬마야. 너 이름이 뭐냐?”

빨간코 남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

실없는 표정과 달리 그의 눈은 캔트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올리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꿰뚫어 보듯.

올리버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차분히.

“올리버라고 합니다. 이제 막 와인햄에서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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