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2화 (42/633)

42. 첫발자국 (1)

“음···.”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공간.

그곳에 올리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한쪽 팔이 날아간 시체가 제단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역시, 이게 맞는 거 같습니다···.”

“······.”

“마리 말대로 패밀리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역시 그냥 떠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

“그 아름다운 빛은 시킨다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뭣보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쓰고 싶지 않거든요.”

“······.”

“마리나 피터요. 그들도 나름대로 예쁘거든요. 뭔가 하려는 의지 같은 게···. 예뻐요. 그래서 떠나기 전 나름대로 신경 좀 썼는데, 갈수록 이상해지더라고요.”

“······.”

“분명,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그러한 의지는 점점 사라지고 제 명만 기다리더라고요. 예쁘던 빛은 사라져가고···.”

“······.”

“그래서 떠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없는 게 그들에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물론, 저 혼자서 아름다운 빛을 더 찾기 수월한 것도 있고요. 조직에 속하니 의외로 일이 많아 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

“그것 말고도 성기사님 말씀도 꽤 관심이 가고요. 저번에 어쩌다 보니 만났거든요. 이름이 요안나였나?”

“······.”

“그분이 말씀하시길 제가 망가졌다더군요.”

“······.”

“조금 놀랐습니다. 절 보고 그런 말 한 사람은 몇몇 있었지만, 진심으로 동정하며 도와주려는 사람은 또 처음이라···. 주인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 망가진 건가요?”

“······.”

“그래서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제가 진짜 망가진 건지. 그래서 그것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분 말대로 사람을 사귀고, 세상을 살아 보려고···. 그럼 알 수 있겠죠?”

“······.”

“제가 그녀 말대로 불쌍한 존재인지 말입니다···. 참, 친절한 사람이죠?”

“······.”

“역시 이게 맞는 거 같습니다. 아름다운 빛, 흑마법, 저···. 알고 싶은 게 많은 데 계속 조직에 있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계속 일이 생겨서.”

“······.”

“제임스가 말하길 약사님께서 사업을 더 확장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참 신기해요. 이미 충분히 돈이 많은데 더 돈을 벌려는 거요. 돈 벌려는 이유가 있을 텐데, 정작 돈을 벌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쓴다는 게.”

“······.”

“뭐, 제가 사라져서 다들 난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 역시 감정을 합성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는 없겠죠? 쪽지도 남겼으니···. 역시 나오는 게 정답인 거 같습니다.”

“······.”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하고 나니 마음이 정리되네요.”

올리버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시체···. 아니, 죽은 조셉에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됐다.

올리버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는 왔던 길로 돌아갔다.

“······.”

방 밖으로 나가기 전 올리버는 멈춰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셉이 기댄 제단을 바라봤다.

세 개의 직사각형과 아홉 개의 동그라미가 새겨진 제단을 말이다.

말을 탄 노인······.

올리버가 조셉을 쓰러뜨렸을 때, 등장한 정체불명의 존재.

아니, 정체불명의 존재는 아니었다. 악마라고 했으니.

허나, 딱 그뿐이었다.

말을 탄 노인이란 이름의 악마는 조셉의 서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찾은 거라고는 악마가 인간계를 위협한다는 판에 박힌 정보와 흑마법사들이 그들과 거래해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정보를 원하는 올리버에게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올리버는 처음 그것을 마주했을 때 그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감각을 잊을 수 없었다.

허나,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인사했다는 사실이었다.

예의를 갖춰 친근하게···. 올리버 역시 그게 그리 어색하지가 않았고···.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악마란 무엇이기에 흑마법사에게 힘을 주고, 인간계를 위협하는 걸까?

이에 관해 조셉과 약사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그저 악마란 원래 그런 존재라 대답할 뿐이었다.

혹시 관련 서적을 구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봐도, 그들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웬만해선 거의 다 도와주는 분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악마와 관련된 정보, 서적은 너무 위험해. 파테르교에서 직접 관리하고 감시하지. 개인이 멋대로 찾는 것만으로 죄고, 찾는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엄청난 자본은 기본이고 정보력, 위험관리 능력도 있어야 해. 거대한 사교도나 블랙마켓에서나 볼 수 있지.’

‘사교도···. 블랙마켓이라······.’

올리버는 약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악마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어찌 됐건 궁금한 것도 사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번 접근해 보는 것도 나쁜 거 같지 않았다.

인간은 필적할 수 없는 힘과 지식을 보유했다고 하니 어쩌면 올리버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아, 물론, 그건 개인적인 탐구를 어느 정도 한 뒤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음······.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야 하지?”

지상으로 나와 폐병원에서 멀어져 담장 밖으로 나온 올리버가 말했다.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왜? 이제 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올리버가 자기의 의지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리버가 자란 곳은 고아원과 광산.

그곳에서 자유로운 외출 따윈 없었다.

애당초 고아원을 떠난 것은 광산으로 팔려 갈 때였고, 광산을 떠난 때 역시 조셉에게 팔렸을 때였다.

올리버는 자기 의지로 어딜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었다.

그렇기에 올리버는 지금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말이다.

떠나는 게 맞을 것 같아 떠나긴 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고자 하는 목표는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주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주제 나오다니···.

올리버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음······. 일단, 거기로 가볼까?”

조셉을 만났던 공원을 떠올리며 올리버를 중얼거렸다.

올리버가 대다수 봐온 광경과 달리 친절, 여유, 행복 등 긍정적인 감정이 넘치던 그곳을.

어쩌면 그곳에 가면 다음으로 갈 길이 보일지도.

그렇게 결정 아닌 결정을 내린 올리버는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터벅.

가는 동안 올리버는 란다의 X구역을 관찰했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조셉과 같이 왔을 때와 많이 달라진 거 같았다.

거리의 벽에는 낙서가 더욱 늘어났으며, 핏자국 역시 늘었고, 샛길에 세워져 있던 토템은 처참히 부서져 있었다.

역시 겉보기에는 조용해도 속은 수많은 감정이 요동치는 동네다웠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먹이를 노리듯 어둠 속에 숨은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혼자서 이곳을 방문한 올리버를 아까 전부터 관찰하고 있었다.

악의, 교활함, 가학심, 분노 수많은 악의적인 감정을 품은 채.

멈칫.

올리버가 가던 길을 멈췄다.

이유는 다름 아닌 골목 모퉁이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그들은 올리버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초조함과 기대감, 긴장을 품은 채 올리버가 들어오기 기다리고 있었다.

‘음······.’

올리버는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와인햄에서 상대한 갱단···. 아니, 그 이하였다.

살기를 지우지도 못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말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품 안의 시험관을 확인해봤다.

와인햄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하나둘씩 챙긴 시험관을.

아마, 흑마법을 쓰면 쉬이 쫓아낼 수 있을 터···. 그러나 왠지 꺼려졌다.

기껏 챙긴 감정을 이런 식으로 쓰기도 그랬고, 나오자마자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도 좀 그랬다.

현재 올리버는 바깥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한정적이었으니. 가급적 마찰은 피하고 싶었다. 최소한 지금은 말이다.

그래서 올리버는 제3의 선택을 했다. 돌아가기.

방향을 틀어 올리버는 다른 길목으로 빠졌다.

이를 확인한 뒷골목 인사들은 놀라더니 우왕좌왕했는데, 이윽고 서둘러 올리버를 쫓기 시작했다.

“음······.”

올리버는 고민했다. 어떻게 할지.

세상 밖으로 혼자 나온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지 감이 안 잡혔는데, 그 사이 뒷골목 인사들이 올리버를 둘러쌌다.

“하···. 개새끼 감도 좋네? 도망을 쳐?”

“형님 이 새끼 겁먹은 거 같은데요?”

“닥쳐봐 새끼야. 형이 말하는 중이잖아? 야···. 너 여기 출신 아니지?”

올리버가 대답했다.

“저요?”

“그래 너 이 새끼야···. 너 도대체 뭐야? 여기 출신도 아닌데 왜 기웃거려?”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만날 사람? 누구?”

“······신세 진 분이요?”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새끼야!!”

“······.”

“형님 이 새끼 수상합니다. 아무래도 두더지가 보낸 거 같은데요?”

두더지? 수상?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단순히 금품을 노리는 이들은 아닌 거 같았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손에 든 몽둥이를 쭉 내밀며 다그쳤다.

“야! 너! 빨리 대답 안 해?! 좀 맞아봐야 입을 열래?! 앙?”

“그···. 신세 진 분은 누군지 대답하기가 어려운데···. 그보다 두더지가 누굽니까?”

“어디서 시치미를 떼! 딱 봐도 두더지가 여기 뭐 먹을 거 없나 염탐하러 보낸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다 불면 적당히 넘어가 줄 테니, 어서 불어!”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은 그 순간 한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다들 뭐하나?”

딱. 딱. 딱.

고개를 돌리자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중년 사내로 허름한 롱코트와 비니를 쓰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한쪽 다리를 절고, 길쭉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올리버를 쫓아온 이들이 아는 사람인 듯했다.

“쿼, 쿼터스태프 캔트 씨?”

“그래, 나일세. 쿼터스태프 캔트. 친절한 설명 고마워···. 그보다 무슨 일인지 물었네.”

올리버를 둘러싼 이들은 눈에 띄게 기가 죽었다.

아무래도 캔트라 불리는 이 남자는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가진 거 같았다.

“수상한 놈이 있어 붙잡았습니다···. 그보다 캔트 씨는 여기 어인 일로···?”

“아아······ 쓰레기 배달 좀 했지.”

캔트는 그 말과 함께 품 안에서 돈다발을 꺼내 흔들었다.

꼭 술 취한 손님이 돈 자랑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올리버는 그것이 연출된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그렇군요. 그럼 가던 길···.”

“아앙? 늙은이 섭섭하게 왜 이리 쫓아내려고 하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아뇨, 그게 아니라 일이 있어서···.”

“일? 아아···. 이 어리바리해 보이는 꼬마 심문하는 거? 어디 보자···.”

캔트는 경계심이 없다 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수염투성이 턱에 손가락을 대며 올리버를 살펴봤다.

“······이 친구가 두더지 부하라고?”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

“음···. 글쎄? 내가 볼 땐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로 보이는데? 그것도 길 잃은 꼬맹이. 너 나이가 몇 살이니?”

“······.”

“봤나? 제 나이도 대답 못 하는군. 하하핫!”

“그래도 수상쩍은 건 맞지 않습니까? 더욱이 더 위험합니다. 아시잖아요? 두더지 새끼 교활한 거. 그 밑에 있는 애들일 수도 있다고요.”

“그렇긴 하지만···.”

올리버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올리버는 가만히 관망하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별다른 행동이 아님에도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어느새 올리버를 주목했는데.

시선이 모이자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두더지가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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