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정리 (3)
똑- 똑-
문 두들기는 소리.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올리버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마리.”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마리가 문을 끼익 열며 들어왔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샌드위치가 담긴 쟁반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예···. 무슨 일이죠?”
“식사를 안 하시는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살짝 돌려 마리 쪽을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마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쟁반을 놓았다.
그와 함께 올리버가 읽는 책을 살펴봤다.
앤서니 패밀리의 서적으로 그 외에도 다양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왜 그러시죠?”
“아, 무슨 책을 읽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앤서니 패밀리의 흑마법 책을 읽고 있습니다. 조작 계열 흑마법에 대해 잘 적혀 있더라고요. 동물 조작, 인간 조작, 시체 조작 같은 거요.”
“주인님께선 이미 하실 줄 알지 않습니까?”
“아뇨···. 흉내만 내는 거지 어떻게 하는지는 제대로 몰라요. 가령, 죽은 것보다는 살아 있는 걸 통제하는 게 힘들고, 동물보다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건 책을 보고 처음 알았어요.”
올리버가 그와 함께 도미니크의 서적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질병 계열 흑마법도 해석과 응용에 따라 다양한 응용법이 있다는 걸 배웠고요.”
“역시 대단하세요.”
“별로요. 주인님의 서적을 보니 더 많은 지식이 있는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책에는 흔적만 있을 뿐 제대로 적힌 게 없더라고요.”
올리버가 주변 책장에 가득 꽂힌 책을 보며 말했다.
“그, 그렇군요···. 책을 거의 다 읽으신 겁니까?”
“다는 아니고, 거의 다요? 조금 있으면 다 읽겠지만.”
“아···.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지요?”
“예? 뭐가요?”
“근래 식사도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무리하시는데, 걱정돼서요.”
“···? 혹시, 제가 제 일을 제대로 못 했나요?”
“아뇨,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모두 주인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마리가 열변을 토했다.
“모두 힘들어하지만, 주인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주인님께선 제대로 된 교육과 돈, 식사 등 저희가 꿈꾸던 모든 걸 줬는데요···. 지금 식당에만 가도 알 수 있습니다. 주인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올리버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 당연한 반응이었다. 올리버 기준에서는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 그러한 게 아니니.
그저 자기 일을 했다는 의무감밖에 없었다.
귀찮은 잡일에서 해방되고,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주인이 됐으니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
그렇기에 올리버는 이를 통해 얻게 된 존경심과 충성에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 올리버의 시큰둥한 반응에 마리는 답답함을 느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이해 못 하는 올리버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지만,
자신이 올리버에게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정받지 못한 답답함도 있었다.
그런 답답함은 점점 심해지더니, 이윽고 부정적인 형태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초조, 집착, 갈망, 자기혐오 그리고··· 탁―!
“마리.”
갑자기 책을 덮은 올리버.
마리는 놀라며 대답했다.
“예? 주인님···.”
“그러고 보니 약속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약속? 마리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기억했다.
“아···. 예, 그 서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마리의 창백한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당시 성기사에게 관심을 보이는 올리버에게 저도 모르게 투정을 부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럼에도 마리는 어떠한 기대감을 품었다.
올리버와 특별한 무언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속은 지켜야죠···. 하지만, 이야기에 앞서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예···. 주인님.”
“마리는 저에 대해 왜 알고 싶어해요?”
순수한 궁금증. 허나, 그만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마리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저 순수한 질문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본인도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침묵이 길어지자 올리버는 달리 해석했는지 입을 열었다.
“뭐, 말하기 싫으시면-”
“-아닙니다!”
마리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결코, 말하기 싫은 게 아니라··· 잠시만 대답을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뭐. 편하실 대로.”
올리버는 약속대로 기다려줬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마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전··· 주인님의 측근이 되고 싶습니다.”
“측근요?
“예, 주인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어요.
“······수제자 같은 건가요?
맞는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었다.
마리는 분명 그 직위를 원하는 건 맞았지만, 그 이상이 되고 싶었다. 그저 입 밖에 내지 못할 뿐.
“주인님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절 이토록 도와준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요?”
“예···. 제게 흑마법을 가르쳐주시고, 이토록 훈련해주신 분은 주인님이 유일합니다.”
“···? 그건 제가 글을 배우는 조건으로 가르쳐드린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 둘은 사실 비교할 수 없는 겁니다.”
“가치란 상대적인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제겐 너무 감사한 도움이었어요. 사실 거의 포기했거든요. 흑마법사. 그런데, 주인님 덕분에 흐릿한 희망이 아닌 선명한 희망이 됐어요. 정말 감사해요.”
“······뭐, 저도 마리 덕분에 저도 한 번 살아났으니까. 그리 안 고마워하셔도 돼요. 뭣보다 마리가 흑마법사가 된 첫발자국은 주인님 덕분이잖아요?”
“주인님···? 혹시, 조셉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조셉 주인님.”
조셉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리의 감정은 혼란스러운 빛을 띠더니 이윽고 분노란 감정이 표출됐다.
“분명, 그는 절 도와주고 거둬줬지만···. 주인님과 비교할 수 없어요.”
“저요?”
“예, 제 재능이 부족하다고 임시제자로 계속 처박아뒀으니까요! 아마, 주인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전 평생 부엌에서 식사 준비만 했을 거예요!”
숨을 몰아쉬는 마리. 흥분한 겉모습처럼 그녀의 감정은 배신감, 분노로 요동쳤다.
허나, 그것도 잠시. 올리버를 보자 곧장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니 절 진정으로 도와주신 건 올리버 님이세요.”
간절하기까지 한 대사. 그러나 올리버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음··· 그래도 역시 거둬준 건 조셉 주인님 아닌가요?”
“올리버 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저희를 악마의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고! 저희를 이용하려던 것뿐입니다!”
“그런가요? 뭐, 그래도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라···. 아, 마리가 양아치들에게 겁탈당할 뻔했을 때도 조셉 주인님이 도와줬잖아요?”
충격을 받은 마리. 그녀의 눈은 커지며, 감정 역시 요동쳤다.
“······.”
“아···. 제가 실수한 건가요?”
“······그건 어떻게 아신 거죠?”
“조셉 주인님이랑 란다에서 만난 날 지나가면서 말씀해주셨어요.”
마리가 작게 신음했다. 마치 결코 들키기 싫었던 치부를 들킨 듯.
그녀의 감정에는 불쾌감, 수치심, 분노, 억울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였고, 올리버는 침묵한 채 그녀의 감정을 관찰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거 같기는 한데, 뭘 잘못했는지는 몰랐다.
“제가 잘못한 거라면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주인님이시고,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과거 이야기해드린 적 있죠?”
“예···. 강해지려고 흑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예···. 맞아요. 저와 제 부모님은 모두 약해 빠졌거든요.”
마리는 그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염색 공장 아래 불법 판자촌에서 살던 자신의 이야기를.
더러운 오수를 집 바로 옆에 버려도 아무 말 못 하고,
어머니가 불법 노동으로 쓰러져도 아무 말 못 하고,
아버지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맞아 죽어도 아무 말 못 하던 그때 이야기를.
그러다 결국 양아치들에게 복수하러 갔다가 되려 몹쓸 짓을 당할 뻔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담담했으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마리의 감정은 고조됐는데, 이윽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저는 조셉에게 거둬져 현재 여기 있는 거죠.”
“······그렇군요.”
“예, 그래서 한때 조셉을 제 구원자라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주인님의 말을 들은 후 그게 착각인 걸 깨달았어요.”
“······안타깝네요?”
“아뇨, 안 그러셔도 돼요. 덕분에 주인님을 만났으니까요.”
“······.”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주인님께서 제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셨으니, 주인님의 가까운 사람이 돼서 모시고 싶다는 거예요. 그저···. 그거뿐이에요.”
“···그렇군요.”
“···그럼, 이제 주인님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예?”
“저도 제 이야기를 해 드렸으니까. 주인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안 되나요?”
올리버가 잠시 침묵했다.
“······아뇨. 딱히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원하신다면 해 드릴게요.”
“그럼, 이야기해주세요. 듣고 싶어요.”
“뭐, 그럼···.”
그렇게 올리버는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곳은 고아원 시절.
그곳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있었는지, 원장이 얼마나 엄한 사람이었는지 감정을 빼고 서술했다.
기계적인 설명은 한 사람의 생이라기보다는 생활 규칙을 읊는 것에 더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마리는 온 신경을 집중해 귀 기울이며, 올리버가 괴롭힘을 받거나, 부당하게 벌을 받을 때 누구보다 슬퍼하고 화를 내줬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감정도 못 느꼈지만.
그렇다 할 알맹이는 없었지만, 올리버는 마리가 원하는 대로 자세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하루에 다 말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는데, 그렇기에 마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서재에 들려 올리버의 이야기를 들었다.
빛을 쫓는 불나방처럼.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올리버의 조셉 패밀리 역시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어느새 피터를 비롯한 몇몇 상급제자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합성해 올리버 없이도 필거렛을 생산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아, 그럼 처음부터 감정을 볼 수 있었던 건가요?”
“예, 남들도 다 보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그래서 주인님을 봤을 때 반가웠어요.”
“아···.”
마리를 비롯한 몇몇 상급제자들은 어느새 합을 맞춰 올리버를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 증거로 더 이상 올리버가 없어도 웬만한 갱과 중소 흑마법사들은 능히 제압할 수 있었다.
“아···. 그때 피운 필거렛이 조셉의 감정이었다고요?”
“예, 아주 아름다운 빛을 가진 감정이었어요.”
“아직도 그 빛에 관심이 있으신 거군요.”
“예, 뭔지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거든요···. 또 보고 싶어요.”
“······원하신다면 명하시지요. 저희가 목숨을 걸고 찾아 올리버 님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래요. 저희한테 명하시면 돼요. 이건 올리버 님의 패밀리니까요.”
“음, 그건 별로···.”
“아닙니다. 저희는 올리버 님의 제자. 원하신다면 무엇이든 명해도 됩니다. 목숨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
어느새 시간은 흘러 가을이 되었다.
올리버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직의 결속력은 더욱 강화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중소 흑마법사 조직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약사를 통해 올리버에게 무릎 꿇었다.
명실상부 조셉 패밀리가 와인햄의 유일한 흑마법사 패밀리가 된 것.
이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며 마리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씻고, 몸단장하고 마리는 평소와 같이 올리버를 깨우러 갔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권.
똑- 똑-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알았어요. 마리.’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터인데······.
마리는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며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마리의 눈에 텅 빈 침대와 그 위에 놓인 쪽지가 보였다.
[더 이상 전 필요 없으니 떠나겠습니다.]
[추신, 각자 하고 싶었던 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