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대화 (2)
“안녕하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올리버가 말했다.
침대 위에 구속된 성기사 요안나는 올리버를 보고도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의 감정에서 분노, 분함, 의문 등을 엿볼 수 있었으니.
올리버는 그녀의 옆으로 스툴 의자를 가져와 곁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해 보이나요?”
절그럭. 그녀가 쇠사슬에 구속된 한쪽 팔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좀 과한 거 같은데, 그래도 다른 분들이 이래야 마음이 놓인다고 해서요···. 많이 불편하신가요?”
“아뇨, 별로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거든요.”
“뭐, 기사님이라면 그럴 수 있겠죠. 다만, 그럼 여기 미리 준비한 흑마법이 발동할 거고, 다칠 수 있을 겁니다. 기사님 말고도 다른 동료분들도요.”
요안나도 이 사실을 인지하는지 미니언을 한번 보곤 쓴 표정을 지었다.
당장 움직이고 싶지만, 동료들이 걱정돼 그러지 못하는.
몇 번의 투항권고도 그렇고, 꽤나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런 사람이 어찌해 싸우는 건지, 어찌해 죽음을 앞두고도 용감할 수 있는 건지, 어찌해 그토록 아름다운 빛을 뿜었던 건지···.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정식으로 인사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올리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올리버는 연습한 대로 최대한 친절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뻗었다. 허나, 돌아온 것은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요?”
“······그냥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겁니다만?”
“대화···? 무슨 속셈인지 모르지만, 저를 통해 무슨 정보를 빼려거나, 수작질 부릴 생각이라면 소용없어요. 전 속지 않을 거고, 어떠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을 거예요.”
가시 돋친 말투.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올리버를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전 딱히 정보를 빼려는 게 아닙니다만.”
“제가 어떻게 믿죠?”
“음······ 혹시, 제가 흑마법사라 이토록 경계하시는 건가요?”
“예, 다른 이유가 뭔가 있나요?”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흑마법사인 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올리버의 시선을 외면하던 요안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맞췄다. 어째 매우 불쾌해 보였다.
“지금 절 바보 취급하는 건가요? 조롱하는 건가요?”
“아뇨. 전 바보 취급도 조롱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대화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
요안나는 말없이 올리버를 노려봤다. 진의를 파악하듯.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해로운 마약을 제조해 사람들을 병마의 구렁텅이에 빠트리는 걸 모르나요?”
“아···. 필거렛 말씀입니까?”
“그래요. 당신이 제조한 마약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지 정녕 모른다는 말입니까?”
“잘 모릅니다···. 제가 흑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닙니다. 안 믿으셔도 상관없지만···. 어쨌건 제가 알기론 필거렛은 그렇게 해롭지 않다고 하던데요. 기껏해야 담배 수준···. 의약품으로도 쓰인다고 하던데.”
“설사 그렇다 해도 마약은 마약이고, 당신들은 그 마약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강탈하지 않습니까?”
“강탈은 아니고, 원하는 사람에게서만 돈을 주고 사 오는 겁니다만.”
“가난한 자들을 돈으로 유혹해 감정을 빼 오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그 순간 올리버는 떠올렸다. 모성애를 모두 추출해 자신은 물론, 아이까지 잃은 여자를.
“음······. 아뇨. 그렇지는 않은 거 같네요. 너무 많이 뺐더니 망가지더군요. 슬픈 일입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감정을 추출할 때 적정선을 만들어 놓으려고요. 일정량까지는 괜찮다고 하더군요. 헌혈처럼.”
요안나의 표정에는 분노와 혐오감이 자리 잡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 대화 할 수 있어 기쁩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만약 흑마법사가 마약을 안 만들면 더 이상 싫어하지 않을 겁니까?”
“진심으로 묻는 건가요?”
“아, 예···. 왜 흑마법사를 싫어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제가 흑마법사를 싫어하는 건,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리낌 없이 사람을 해치고, 사악한 악마를 숭배해서입니다. 존재 자체가 악이죠.”
“음···. 아닌 흑마법사도 있지 않을까요?”
“날개 달린 돼지가 있다면 그럴지도 모르죠.”
“······없을 거라는 비유인가요? 제가 잘 이해를 못 해서.”
“예, 맞아요. 이 세상에 절대 없죠. 왜? 당신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올리버는 잠시 고민했다.
“아뇨, 악마는 숭배하지 않지만, 저도 필요할 때 사람은 죽여서요.”
“하···!”
요안나는 역시나라고 조소했다.
“하지만 사람은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예?”
“자신이 필요하면 사람 죽이지 않나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에요?”
“아, 화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고아원 원장님이나 광산 감독관님, 여관주인, 흑마법사, 마법사, 주인님···. 모두 필요하면 절 죽이려고 해서요.”
“······.”
“전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필요하면 사람을 죽여도···. 그래서 여관종업원도, 톰도, 갱도, 마법사도, 주인님도 죽였습니다. 안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안 되죠!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기사님도 갱들은 죽였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요안나의 심장이 짧게 요동쳤다. 아픈 곳을 찔린 것처럼.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흑마법사와 협력한 죄인이며, 신의 자비를 명한 마지막 투항권고도 듣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조치였어요.”
“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하며 말이다.
“죄송한데, 어쩔 수 없다고 한 건 누가 그렇게 판단한 거지요?”
“······?”
“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요?”
“지금 신을 모독하는 건가요?!”
“아뇨, 제가 정말 아는 게 없어서···. 다만, 잘 모르긴 하지만 신이란 분은 흑마법사도 갱도 찾는 평등한 분인데, 그분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요.”
“당신이 감히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하는 겁니까?! 흑마법사와 악마로부터 인간계를 지키는 우리 파테르교의 의지를 비웃는 겁니까? 모든 나라도 동의한 거라고요!”
“······한마디로 신이란 분이 딱히 허락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최소한 보지는 못하신 거고요?”
요안나의 아름다운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는데, 그렇다고 무슨 말은 하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 품고 있던 의문을 누군가 들춘 듯 매우 동요하고 있었다.
“······그 요사스러운 혀로 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게 목표입니까?”
“아뇨. 아뇨···. 전혀요. 전 지금의 당신이 좋습니다.”
요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올리버를 다시 봤다.
올리버는 말을 정리 못 해 중구난방 하게 설명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전 기사님이 좋습니다. 아름다우시거든요.”
“감히, 그런 더러운 말을···.”
“예? 아, 뭐가 기분 나쁘신진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그저 감정이 아름답고, 신기해···.”
“···?”
“기사님은 왜 성기사가 되셨지요?”
“···묻고자 하는 말인 뭔가요?”
“아시겠지만, 성기사님께서 갱들과 싸울 때부터 전 멀리서 훔쳐봤습니다. 싸우는 걸 좋아하시지도 않는데, 어찌해 그토록 싸우는 거지요?”
“······.”
“전투에 임할 때 모두 승리의 쾌감, 자신이 강하다는 우월감, 파괴 욕구에 물들고 마는데, 기사님에겐 도화지 같은 신념만이 있었습니다. 갱들을 물리칠 때도 슬퍼하셨고요.”
“······.”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왜 싸우시는 거죠?”
“······제가 싸우는 건 즐거워서가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누군가를 해치우는 게 즐거워서가 아니라, 누군가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가요? 그래서 죽음을 앞에 둘 때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건가요?”
그러자 요안나는 보기 드물게 동요했다.
올리버가 추출한 감정으로 한쪽 눈과 입만 빼고 모조리 어둠에 삼켜졌을 때를.
“······도대체 그건 뭐죠?”
“예?”
“하수도를 뒤덮은 어둠요. 비록, 이번이 첫 번째 정식임무이긴 하지만,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요.”
“아, 저도 잘 모릅니다.”
“······.”
“정말입니다. 저도 제 감정을 처음 추출해 봐서 저도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마음 푸세요.”
“왜 이렇게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지 모르겠군요.”
“전 아름다운 빛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빛요?”
“예, 정확히는 아름다운 감정인데, 사람이 죽기 전 찬란하게 빛나더군요. 벌써 세 번 봤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기사님이 유일하고요···. 그래서 여쭙는 건데,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하셨죠?”
올리버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귀 기울였다. 그 모습은 마치 아이와 같은 구석까지 있었다.
요안나는 그런 올리버는 한참을 바라보다 반대로 질문했다.
“대답 전에 저 먼저 질문하죠. 그걸 왜 궁금해하는 거죠?”
“어······. 예쁘니까요?”
자신도 모르겠다는 목소리.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흑마법을 배우고, 아름다운 감정을 찾는 것에 구체적인 이유 따위 없었다.
그 자체가 목표였지.
“고작 예뻐서 이런 수고를 들인다고요?”
“예···. 그럼, 안 되나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요안나는 올리버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바로, 동정이었다.
“당신은··· 망가졌어요.”
“망가졌다고요?”
“그래요. 대답해 보세요. 당신 슬펐던 적이나, 화가 났던 적이 몇 번이죠?”
올리버는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슬프거나, 화가 났던 적이라.
고아원 시절 누명을 쓰고 원장님에게 맞았을 때? 아니.
속아서 광산에 팔렸을 때? 아니.
광산에서 같이 일하는 아이들이 몰매를 맞았을 때? 아니.
감독관이 얼굴에 침을 뱉고 어미 아비 없는 놈이라 욕했을 때? 아니.
여관에서 죽을 뻔했을 때? 아니.
중급 제자에게 뺨을 얻어맞았을 때? 아니.
앤드루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을 때? 아니.
주인님이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 했을 때? 아니.
“음···. 별로 없네요. 아! 아름다운 빛을 추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을 때 약간 슬펐어요. 모성애를 잃은 여자도 보고 슬펐고요.”
“그건 슬픈 게 아니라 아쉬웠던 걸 거예요.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못 가진 아이처럼.”
“아······. 그런가요?”
그 말에 팔짱을 끼며 올리버가 고민해봤다. 진짜, 그런 거려나?
그때, 요안나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망가졌어요. 제대로 된 감정을 못 느끼는. 그래서 흑마법이나 아름다운 감정을 추구하는 거지요.”
“그렇습니까?”
“최소한 제가 보기에는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오···. 어떻게요.”
“지금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용서를 빌고, 죗값을 치르세요.”
“······치른 다음에는요?”
“이런 어둠에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오세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으로 사는 법을 배우세요.”
“사람으로 사는 법이 뭐죠?”
“일찍 일어나, 성실히 일하고, 친구와 이웃을 사귀며,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는 거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올리버는 요안나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올리버를 불쌍히 여기고, 돕고 싶어 했다.
역시 친절한 여자였다. 이토록 아름답고 포근한 감정을 가진 이는 처음 보는 거 같았다.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긴 하네요. 진심으로요. 하지만 곤란하겠어요.”
“어째서요?”
“평소였다면 한번 따라봤을 거 같은데, 약속한 것도 있고, 빚진 것도 있어서요. 일단, 그거부터 지키는 게 순서인 거 같네요.”
“······이대로 우릴 붙잡아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 같나요?”
“아뇨. 하지만 곧 협상이 될 거 같다니, 괜찮을 거 같긴 합니다.”
“협상이라뇨?”
“아, 죄송···. 이 말은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잊어주시죠.”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안나는 흥분하며 일어나려 했는데, 손에 묶인 쇠사슬이 절그럭거리며 그녀를 방해했다.
“이런···!”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올리버는 뒤를 돌아 요안나를 바라봤다.
“요안나 기사님···. 오늘 말씀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한 게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거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봐요···!”
요안나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올리버는 듣지 않고 나갔다.
대충 원하는 것은 다 얻었으니 말이다.
이후로,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고, 요안나는 풀려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