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대화 (1)
어두운 밤 뒷골목.
올리버는 그곳에서 주저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밤 동안 펼쳐진 전투 탓에 이 근방에 사람들이 오지 않았는데, 그것도 잠시.
우우웅 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헤드라이트가 골목 사이사이를 비췄다.
“여기야?”
“예.”
차가 멈추더니 두 사람이 내리며 대화를 나눴다.
둘 다 익숙한 목소리. 마리와 약사의 부하 제임스였다.
“여기 있습니다.”
“아···. 제기랄, 진짜였구만. 난 씨발 개소리인 줄 알았는데.”
얼굴에 복면을 쓴 제임스가 올리버를 보며 질린 듯 말했다.
정확히는 올리버 뒤에 쌓인 성기사 일행을 본 거지만.
“안녕하세요. 제임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제임스는 긴장한 채 인사를 받고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널브러진 요안나와 그 부하들을 봤다.
“어······. 다들 죽은 거야?”
“아뇨, 잠들었습니다.”
“잠들어? 아냐, 됐어. 설명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흑마법사가 성기사를···. 근데, 왜 죽이지 않은 거야?”
“죽이기 싫었거든요.”
“아? 죽이기 싫어? 저것들은 널 죽이려고 할 텐데?”
“그래도 죽이기 싫더군요. 거기다···.”
“거기다?”
“성기사 죽으면 난감한 거 아닙니까?”
올리버는 도미니크 패밀리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용감한 사람들도 성기사를 죽인 뒤 여차하면 도시를 떠야 할 걸 상정했다. 어떤 식으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유증이 있다는 것.
틀린 말이 아니었는지, 제임스가 부정하지 못했다.
“뭐, 좋아. 틀린 말은 아니야. 성기사가 죽으며 훨씬 귀찮아지지···. 하지만 이대로 놓아주면 그것도 난감한데 뭐 어쩌자는 거야?”
올리버는 딥 슬립으로 잠든 요안나를 바라봤다.
“글쎄요? 일단 대화를 나눠볼까 합니다.”
“대화? 왜 널 쫓지 말라고 설득이라도 하게?”
“뭐, 그것도 하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있거든요.”
“진지하게 묻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제정신이야? 잰 성기사야, 넌 흑마법사고. 고양이랑 쥐 같은 사이란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대화를 해?!”
“처음 만났을 때, 몇 마디 주고 받았으니···. 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 신이시여.”
제임스가 신을 찾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어느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난감한 순간에 신을 찾았다. 참으로 평등한 분 같았다.
“어떻게 설득할 생각인가? 궁금하군.”
갑자기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허나, 이 역시 익숙한 목소리. 다름 아닌 약사의 목소리였다.
“사장님···.”
“괜찮네. 저기 세상 모르게 자고 있지 않나?”
여유롭게 복면을 벗는 약사. 그는 제임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가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묻네. 어떻게 저 아가씨를 설득할 생각인가? 말이 통할 것 같은 성격이 아니던데.”
“음···. 글쎄요?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잘 생각을 안 했습니다.”
뻔뻔한 대답. 허나, 약사는 화를 내긴커녕 재밌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자네답긴 하군. 뭐, 좋아. 잔머리 굴리는 건 내 특기니···. 우선, 한가지 확실히 하지. 자넨 성기사와 접촉하면 안 됐어. 내가 시키는 대로 도망만 쳤으면 훨씬 평화적으로 끝날 수 있었을 거야. 한마디로 어리석었네.”
그러자 마리가 화를 냈다.
“약사님. 말이 과하십니다. 올리버 님은 약사님 부하가 아닙니다. 시키는 대로라니요?! 거기다 이것들이 보통 끈질긴 게 아닌데 도망만 친다고 해결됐겠습니까?!”
마리는 자신이 모욕당한 것보다 더 화를 냈다.
이에 제임스가 뭐라 말하려 하자 약사가 손을 들어 말렸다.
“이런, 이런. 내가 실수했군. 사과하지. 확실히 내가 거래처에 너무 함부로 말했어···.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네. 그냥 도망치라고 한 게 아니야. 시간을 벌라는 거였지. 설마, 내 소중한 거래처가 망할 때까지 가만히 두 손 놓고 기다릴 줄 알았나?”
마리는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었고, 올리버는 그냥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약사가 마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왜 그러나 아가씨? 의외인가? 내 나름대로 사람을 써 파테르교와 협상 중이었네. 성기사를 물려달라고.”
“그게 가능한가요?”
올리버가 놀란 듯 물었다. 잘 모르지만, 요안나라는 아가씨를 볼 때 그런 협상이 될 것 같지가 않던데.
“어느 조직이든 약한 부분은 있기 마련. 특히, 이천 년 이상 된 조직이면 말할 것도 없지. 애당초 이번 파견부터가 말이 안 돼. 필거렛 좀 팔렸다고 이런 낙후된 곳에 귀하디귀한 성기사를 파견한다? 그것도 천재 소릴 듣던 아가씨를? 음, 아니지. 아니야.”
“천재요?”
“그래 천재. 본교에서 키워진 아가씨로 천재 소릴 들었다더군. 신앙심과 의지가 남달라. 도미니크와 앤서니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게 그 증거지. 그 친구들도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거든.”
“아, 그렇군요.”
“그래, 그런 천재 아가씨가 우리에게 온 건 다름 아닌, 우리의 성장이 달갑지 않은 다른 경쟁업체가 뇌물을 쓰고, 실적이 필요한 몇몇 정치적 세력이 우리에게 보낸 거야. 일종의 희생물인 셈이지.”
“그렇군요.”
올리버는 별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해둬서 천만다행이야. 죽였다면 돌이킬 수 없겠지만, 사로잡았으니 협상의 여지···. 아니, 우위가 생겼어. 저 아가씨가 실패하면 피 볼 사람이 몇몇 있으니 말이야.”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요점이 뭐죠?”
“저 아가씨 데리고 셀랜드 지부 책임자와 협상할 거란 걸세. 이쯤에서 흑마법사 소탕한 거로 하고 물러나 달라고. 적잖은 돈을 쥐여주면 충분히 가능하지···. 요컨대, 저 아가씨 며칠만 데리고 있겠나? 단, 이 이상 다치면 안 되네.”
“예, 가능합니다.”
시원한 대답에 약사가 웃었다.
“대답 빨라서 좋군···. 한마디 더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자넬 도와주는 셈인데, 이걸 일종의 호의 표시라고 해둬도 되겠나?”
“호의 표시요?”
“친구라는 말이지.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는···.”
올리버는 말없이 약사와 요안나를 번갈아 봤다.
한참 후 대답했다.
“······예, 그러죠.”
***
약사가 소유한 안전 가옥.
그곳에 올리버가 있었다. 올리버 외에도 마리, 상급 중급 제자 그리고 제임스를 비롯한 약사의 부하들이 있었다.
그들은 올리버와 함께 약사가 파테르교와 협상하는 동안 성기사와 그 부하들을 감시했다.
처음에는 다들 긴장했지만, 지금은 다소 여유가 생겼다.
아아, 오해하지는 마라. 시간이 지나며 방심한 게 아니니.
보다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씨발, 진짜 여러 방이 동시에 다 보인다고?”
제임스가 감정 추출 연습을 하며 말했다. 힘든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예,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다 확인할 수 있네요.”
한쪽 눈을 감은 올리버가 대답했다.
현재 올리버는 미니언에 자신의 눈을 동기화시켜 독방에 묶인 성기사와 서번트(성기사의 부하를 감시 중이었다.
시각을 공유한 미니언 외에도 라스 붐과 해잇 불릿을 머금은 미니언을 각각 3개씩 배치했는데, 그 덕분인지 그들은 비교적 얌전히 있었다.
감정 추출에 성공한 제임스가 말했다.
“대단하구만, 혼자서 몇인 분 몫을 하는 건지···. 그런데 난 아직도 발걸음이나 떼고 있네?”
제임스의 손에서 안정화되는 감정. 허나, 집중력이 무너지며 형체가 흐트러졌다.
그 순간 올리버가 제임스의 손에 손가락을 대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느껴집니까?”
“어, 느껴져. 고마워.”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출 못 하셨는데, 지금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계속하다 보면 저같이 할 수 있을 겁니다.”
“거참, 고맙군. 내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만큼 멍청했으면 좋았을 텐데···. 끄으으응!”
제임스는 다시 손안의 감정에 집중했다.
“좋습니다. 이제 그 상태를 유지하세요.”
“얼마나!”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만큼요,”
“힘든데?”
“괜찮아요.”
“뭐가 괜찮은데!”
제임스와 올리버가 그렇게 대화를 나눌 때,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마리세요?”
“예, 접니다. 주인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허락이 떨어지자 마리는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기사가 깨어나셨나요?”
미니언을 통해 다 보고 있던 올리버가 물었다.
마리는 살짝 놀라고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음···. 대화가 가능한 상태인가요?”
“대화할 의지는 없어 보이지만, 상태는 되어 보입니다.”
올리버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만 해도 나쁘지 않지.
“죄송하지만, 제임스 씨. 잠시 볼일이 있어 그러는데, 혼자서 연습할 수 있겠습니까?”
“어, 물론···. 근데 엄청 궁금한 건데, 성기사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려는 거야?”
“저도 잘 모릅니다.”
“설마, 손대려는 건 아니지?”
“손을 댄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 네가···. 아니 됐다. 내가 잘못했다.”
제임스는 잊으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올리버는 떠나려고 했다. 그때 제임스가 다시 올리버를 불러 세웠다.
“귀찮게 해서 정말 미안한데, 대답해줘. 너무 궁금하거든. 성기사를 죽이지 않은 이유랑 대화하려는 이유가 정말 뭔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올리버는 제자리에 멈춰서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름다웠거든요···.”
“아름답다고···?”
“예.”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얼굴 보는 성격이었어? 아니, 됐다. 물어본 내가 나쁘네. 너랑 대화하면 이상해지는 기분이야.”
“그런가요?”
“어, 그래요! 문제만 일으키지 마.”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세요.”
그렇게 제임스를 방에 남겨두고 올리버는 마리와 함께 성기사가 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현재 2층에 있었기에 복도와 1층을 지나야 했는데, 지나가는 동안 마주친 제자와 약사의 부하들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올리버에게 경의를 표했다.
개중에는 겉치레가 아닌 진심을 띤 이들도 있었는데,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마리에게 물었다.
“다들 왜 이러는 거죠?”
“무엇을 말씀입니까? 주인님.”
“저한테···. 친절한 것 같아서요.”
“주인님께선 혼자서 성기사를 무찌른 위대한 흑마법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예···. 맹세컨대 이는 엄청난 겁니다. 진심으로요.”
마리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도미니크 패밀리도 성기사를 죽여 명성을 얻겠다고 했으니 대단한 걸지도.
“뭐, 강한 분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올리버가 말의 무게를 모르고 내뱉었다.
혼자서 성기사 무리를 무찌른 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모르고 말이다.
하긴,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성기사를 쓰러뜨린 당사자인데.
“주인님.”
“예, 마리?”
“질문을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는 멈춰 섰다. 그녀가 얼마나 진지한지 느낄 수 있었기에.
“말씀하세요.”
“하수도에서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나요?”
그것이란 한 번에 성기사 일행을 제압한 정체불명의 흑마법이었다.
공간을 지배하고, 적대하는 자들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절대적 어둠.
그때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던 올리버는 같은 흑마법을 쓰려고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아마, 올리버 자신의 감정을 재료로 써야 쓸 수 있는 거 같았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이신가요?”
“예.”
“······.”
침묵하는 마리.
올리버는 그런 마리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런 걸 질문하는 거죠?”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예?”
“주인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 저도 마리에 대해 잘 몰라요.”
“······예, 그렇죠.”
올리버는 마리의 감정을 살펴봤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녀에게는 올리버에 대한 아쉬움, 섭섭함, 슬픔 등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무시했을 테지만, 올리버는 절체절명의 위기 때 자신을 구하러 온 게 마리라는 걸 잊지 않았다.
“음···. 나중에 대화하죠.”
“예?”
“제가 누군지 마리가 누군지 서로 이야기하자고요. 마리한테 고마운 게 있으니.”
마리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어째 기뻐하였는데, 올리버는 뭐가 기쁜 건지 몰랐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죄송한데, 이제 볼일 좀 보러 가도 될까요?”
“예, 옙! 괜히 시간 빼앗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살았는데요. 좀 쉬고 있으세요.”
마리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고, 올리버는 지하실 가장 끝에 있는 성기사의 방에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