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6화 (36/633)

36. 위기? (2)

찰팍! 찰팍! 찰팍! 찰팍!

올리버는 섬광탄의 여파로 눈을 감은 채 마리의 손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다행히 팔로 눈을 가린 덕분에 얼마 가지 않아 시야는 돌아왔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습기가 가득 찬 돌벽과 고인 물, 찍찍 돌아다니는 쥐, 그리고 올리버를 부축하는 마리뿐이었다.

“······마리?”

“예, 주인님!”

“여긴 어떻게···?”

“도망치라는 명을 어긴 것은 죄송합니다. 벌이라면 여길 무사히 빠져나간 뒤 받을 터이니 지금은 일단 넘어가 주십시오.”

올리버는 그녀의 감정을 살폈고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이 올리버의 명을 듣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죄스러워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올리버의 목숨을 구해줬음에도.

“···여기 어떻게 온 거죠?”

“도저히 주인님만 빼고 도망칠 수가 없어 나중에 따라 왔습니다. 약사에게서 이곳 위치를 알아내고, 하수도 지도랑 약간의 물건을 지원받았습니다.”

아, 그럼 이해됐다. 아까 전 섬광탄도 약사가 지원해 준거겠지.

그는 이 상황을 예견한 것일까?

“그래도 운이 좋았습니다. 때마침 도착했을 때 주인님을 만나다니···. 신이 도우셨습니다”

언제 들어도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흑마법사인데 신이 돕다니···. 아니, 가능한가?

올리버는 조셉의 비밀 제단에서 봤던 정체불명의 존재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시체가 엮여 형상화된 무언가.

“말을 탄 노인···.”

“예?”

“아뇨···. 아무것도. 어쨌건 위험한 짓을 하셨네요.”

“······벌은 빠져나가는 대로 받겠습니다.”

“아뇨, 고마워요. 구해주셔서.”

그 말에 마리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얼굴을 붉게 붉혔다. 귀가 빨개질 정도로 말이다.

“이, 이쪽에서 돌아가야 합니다.”

마리가 잘 가다 말고 한 샛길로 빠지며 말했다.

“여긴···?”

“와인햄 하수도는 몇 번의 난개발로 인해 복잡합니다. 조금만 꼬아서 가면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올리버가 눈에 신경을 집중해 여러 방면으로 쫓아오는 성기사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들은 제법 하수도의 지리를 잘 아는지 포위망을 펼쳐 쫓아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곧 마주칠 거에요. 다른 길 없나요?”

잘 가던 마리를 잡아 세우며 올리버가 말했다.

마리는 급하게 지도를 꺼내 확인했다.

“어어, 그럼······ 이쪽으로!”

올리버는 마리가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다행히 한차례 위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한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할 때면, 번번이 다른 성기사 일행이 포위망을 좁혀 위협을 가했다.

이대로라면 계속 술래잡기를 하다가 종국에 붙잡히고 말 터.

뭔가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마리, 감정을 남은 거 있나요? 제 거는 거의 써서.”

“예, 하나 챙겨왔습니다.”

마리가 시험관을 하나 꺼냈다.

올리버는 시험관을 받자마자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현재 오고 있는 인원은 총 10명.

다섯 개의 조로 나눠서 오는데, 다행히 지원 때문인지 성기사는 가장 뒤쪽에서 동료들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덕분에 가장 뒤인 것은 사실.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해, 과거 보았던 ‘오비디언스’를 흉내 내 주변에 돌아다니는 시궁쥐에게 걸었다.

찍-! 찍-!

다행히 소모가 그리 큰 마법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계속해 도망치며 보이는 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오비디언스를 걸어 하나의 작은 무리를 만들었다.

찍―! 찌직! 찍! 찍! 찌지지! 찍―! 찍―! 찌직――!

“이, 이건···?”

“쥐요.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쥐 떼를 향해 다시 주문을 걸었다.

[파이팅 스피릿]

주문에 걸린 쥐들은 사람을 공격할 만큼 용기가 생겼고, 올리버의 손짓에 따라 다섯 갈래로 나누어져 쫓아오는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앞서 말한 대로, 시간은 벌 수 있을 터, 비록 잠깐이지만 올리버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마리!”

올리버는 마리를 데리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달려 숨이 막혔지만, 그럼에도 그사이 준비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해잇 불릿 여섯 발과 블랙 재블린 세 발.

잠시 후, 코너를 돌자 당황하며 쥐 떼들을 발로 밟는 성기사 일행 셋을 볼 수 있었는데. 올리버는 그대로 해잇 불릿을 여섯 발 쏟아부었다.

“젠장!”

코트의 실드를 전개해 방어한 그들.

예상대로 증오의 탄환은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는데,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블랙 재블린을 각각 한발씩 던졌다.

관통 효과가 있는 블랙 재블린은 적의 실드를 꿰뚫어 피해를 줬고, 그사이 올리버는 마리와 함께 그들을 지나쳐 도망쳤다.

모든 게 물 흐르듯. 마리가 존경심을 뿜으며 말했다.

“대, 대단하십니다!”

“아뇨, 눈치챘는지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어요. 이쪽 통로만 지나면 빠져나갈 수 있나요?”

“예, 주인님! 지상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서 숨어들면 안전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올리버는 적들의 추격을 늦출 요량으로 감정을 추출해 미니언을 여러 개 만들기 시작했다.

각각 해잇 불릿, 라스 붐, 크리피 스크림을 부여해 지뢰처럼 바닥에 흩뿌렸다.

“아마, 시간을 좀 벌 수 있을 겁니다.”

“아아···.”

마리가 기뻐하며 소리 냈다.

“자, 여기서 돌면 밖으로 나가는···. 어?”

한참 동안 달리고 마지막 코너로 돌았는데, 마리의 눈이 동전처럼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 바로 앞이 단단한 쇠문에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마리는 규격 외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쇠문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올리버는 혹시나 해 쇠문을 두들겨 봤는데, 소리로 봤을 때 아주 두꺼운 문 같았다.

“음······.”

난감했다.

현재 보유 중인 감정으로는 이런 무식한 쇳덩어리를 부술 수 없었고, 설사 마리의 감정을 뽑는다 해도 이런 폐쇄된 공간에선 그 정도 위력의 흑마법을 쓰긴 위험했다. 같이 휩쓸릴 게 뻔했으니.

한마디로 독 안에 갇힌 생쥐 꼴이 된 거였다.

이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사람의 의지를 꺾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작은 폭발 소리가 들렸다.

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쾅――!

콰광―――!

쾅―――!

올리버가 뿌린 미니언이 작동한 것.

성기사 쪽에 적잖은 피해를 준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주, 주인님!”

“예?”

“제, 제 감정을 뽑아 쓰시죠.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올리버는 마리를 봤다. 그녀는 진심이었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허나, 올리버의 머리에는 모든 흑마법을 무(無로 돌리던 성기사가 떠올랐다.

찬란한 빛으로 올리버의 모든 흑마법을 한순간 무력화시킨 그녀를···.

“음···. 아뇨, 어차피 소용없을 겁니다. 성기사라는 거 흑마법을 그냥 무효화해 버리더라고요. 마리 감정을 추출해 봤자, 낭비일 뿐이에요.”

“하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허나, 방법이 안 보이는 것도 현실.

성기사···. 강한 것도 강한 거였지만, 흑마법사와 정말 상성이 최악이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곧 죽을 상황인데, 두렵기보다는 아쉬웠다.

아직 알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는데······. 그러던 중 머릿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마리···.”

“예?! 무슨 방법이라도···.”

“혹시 라이터나 성냥 있나요?”

“예?”

“라이터 혹은 성냥이요.”

“···아, 예. 그런데 그건 왜?”

올리버는 품 안에 고이 모셔둔 필거렛을 꺼냈다.

조셉이 죽기 전 보였던 찬란한 빛으로 만든 필거렛 말이다.

“라이터 좀 빌려주시겠나요?”

마리는 이 다급한 상황에서 필거렛을 피우려는 올리버는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각오를 다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괜찮으시면, 제가 붙여드리고 싶은데.”

“아, 뭐···. 그러세요.”

올리버가 대답하며 필거렛을 입에 물자 마리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필거렛에 정중히 불을 붙였다.

처음 맛보는 필거렛.

숨을 크게 들이쉬자 담배 연기와 함께 조셉이 감정이 올리버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뭐랄까·········.

“······.”

깊은 침묵이 도래했는데, 마리는 눈치를 보다 조심히 입을 열었다.

“비록, 여기까지긴 하지만···. 주인님을 만나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마치,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듯.

잠시 후, 발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더니,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성기사 요안나를 포함한 그녀의 동료들.

다들 올리버가 뿌린 미니언에 애를 먹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몇몇이 당한 듯 수도 줄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안나를 제외하면 모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상태였다.

“잡았다, 이 쥐새끼···. 이럴 줄 알고, 미리 하수도의 쥐구멍을 몇 개 막았지.”

“바보 같은 놈들···. 우리가 너희 같은 놈들 한두 번 상대했을 것 같더냐?!”

그런 것 치고는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어찌 됐건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마리는 올리버의 앞에 서며 조잡한 총을 꺼냈다.

갱들과 흑마법사를 쓸어버린 이들에게 무의미할 뿐 총을.

“후욱···. 후욱···. 후욱···.”

긴장한 탓에 호흡이 거칠어진 마리.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성기사 일행 중 하나가 십자가 형태의 총을 재빠르게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수도에서 울려 퍼진 총성, 흩날리는 피, 쓰러진 사람.

마리는 오물이 고인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그래야 마땅했다. 허나, 놀랍게도 그러지 않았다.

하수도 밑바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촉수가 튀어나와 마리를 지켜준 것이다.

“·········어?”

마리, 성기사 모두가 정체불명의 촉수를 보고 그리 소리 냈다.

그림자 계열 흑마법···? 은 아닌 거 같았다. 비슷했지만 달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한 그림자가 아닌 좀 더 검고 어두운 무언가였다.

흡사, 밤바다와 같은 심연.

“······!!!!”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모두가 이질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아, 정정. 모두는 아니었다. 올리버는 가만히 서 있었으니.

“······아아아. 이게···. 이게 뭐죠?”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 무표정한 얼굴은 묘하게 떨렸는데, 그는 계속해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워, 원래···. 이런 건가요? 필거렛?! 느껴져요. 느껴져···! 그분이 느꼈던 슬픔이, 분노가, 희망이··· 갈망이! 기쁨!! 후회!!! 모든 게···! 다 느껴져!!!”

올리버는 약에 취한 눈이 커지며 성기사 일행을 봤다.

그들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이야기지만, 광기 어린 올리버의 모습에 모두 한순간 두려움을 느끼고 말았다.

심지어 성기사 요안나조차도.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본능적으로 올리버가 다른 흑마법사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 불길한 존재를 죽여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했는데, 누구 하나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보면 행동이 멈추는 것처럼.

그렇게 무겁고 두려운 침묵이 지속하는 와중 십자가 형태의 총을 든 이가 소리치며 총구를 들었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이 악마야!”

[헬 서먼]

올리버가 자신의 감정을 순식간에 추출해 하수도 바닥에 흩뿌렸다.

검은빛 감정은 마치 증식하듯 하수도 전체를 뒤덮었는데, 하수도뿐 아니라 성기사 일행마저 뒤덮었다.

마치, 물감을 찍어 바르는 것처럼 이질적. 거기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총구를 당길 틈도, 저항할 틈도 없었다.

그저 어둠에 잡아 먹힐 뿐.

[디바인 프로텍션]

유일하게 성기사 요안나만이 성법을 발동해 저항했다.

도미니크 패밀리와 싸울 때 사용했던 성스러운 보호막.

자신뿐 아니라 아군까지 지키는 강력한 기술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올리버의 앞에서 무의미했다.

한순간 어둠에 잡아 먹힌 이들을 구하기 위해 잠깐 빛나긴 했지만, 딱 그뿐.

이내 빛은 그 힘을 잃고 무력하게 사려졌다.

다시 어둠에 삼켜질 뿐.

그 모습을 지켜본 요안나가 다시 외쳤다.

[퓨리파이]

[임프리전]

모든 걸 불태우는 성스러운 불길이 어둠을 태우려던 찰나 올리버의 가벼운 손짓에 맞춰 어둠이 그 폭발을 감쌌다.

그리고는 요안나마저 삼켰는데,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의 입과 한쪽 눈밖에 밖에 없었다.

“······.”

올리버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말이다.

어둠에 삼켜진 요안나의 감정은 한순간 공포에 물들었으나, 이윽고 각오를 다진 듯 입을 열었다.

“······오, 나의 거룩하신 아버지. 이 땅에 그대의 자녀를 보내주시고, 의무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영광스러운 임무를 다하지 못하나, 아버지를 믿으며 자비를 구합니다. 그러니 부디 이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대의 품에 안아 주시옵기 바라오며, 남겨질 아이들 역시 굽어살피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죽이세요. 목숨 구걸 따위 하지 않을 테니.”

하나만 남은 눈으로 올리버를 노려보며 요안나 당당히 말했다.

그녀에게선 전격 마법사, 조셉에게서 보았던 것과 그 결이 다른 아름다운 빛이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올리버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딥 슬립]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