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4화 (34/633)

34. 염탐 (2)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압박감이 점차 커지는가 싶더니 일반적인 인간의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고, 감정을 보는 흑마법사의 시야는 보다 선명해졌다.

마치, 하늘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듯 주변의 감정이 느껴졌다.

올리버는 멈추지 않고 더욱 신경을 집중해 땅 밑 하수도를 따라 이동하는 도미니크와 그 부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불쾌함, 분노, 아쉬움 등등 여러 격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이는 올리버에게 있어 좋은 이야기였다.

감정은 격할수록 파악하기가 쉬웠으니.

올리버는 그 상태로 도미니크를 몰래 따라갔다.

다행히 하수도와 지상의 길이 어긋나는 곳은 없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자 와본 적이 없는 새로운 거리에 들어섰다.

골목끼리 엉킨 미로 같은 곳으로 왠지 비슷한 곳을 다녀와 본 적이 있는 거 같았다.

아, 떠올랐다. 바로, 조셉과 같이 방문한 란다의 X구역과 비슷했다.

낙후된 빈민가 말이다.

란다 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위험한 곳. 그때, 도미니크가 멈춰 섰다.

아니, 올라오고 있었다.

끼이익――― 쾅!

빈민가 구석에 있는 거대한 맨홀을 열며 도미니크가 나왔다.

올리버는 그대로 골목에 숨은 채 흑마법으로 기척을 죽였다.

[이레이저 엑시트]

부끄러움을 기반으로 한 은신 마법.

조셉의 서재에서 처음 접한 것으로, 기척을 죽인다는 애매한 흑마법이었지만, 의외로 효과가 뛰어나다고 했다.

실제로 책에 적힌 내용이 맞았는지, 도미니크는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뿐 올리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응?”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아니···. 아냐. 아무것도.”

“그보다 많이 아쉽네요. 같이 할 줄 알았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조금 틀어졌지만, 계획대로 간다. 성기사 놈을 정리하면 여세를 몰아 올리버 그 애송이도 친다.”

계획대로?

도미니크의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해도 앤서니 패밀리가 그리 당했는데 우리끼리 쉬울까요?”

“상성 탓이야.”

“예?”

“조작계열···. 특히 사령 흑마법이 특기인 앤서니는 성기사한테 약할 수밖에 없어. 성기사의 성법에 쉽게 정화 당하니까. 하지만, 우리 아니지. 우린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이용할 테니. 성법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어···. 약물은 충분히 준비했겠지?”

“아, 예···. 약물은 물론, 싸울 갱들도 충분히 모아 놨습니다. 수익이 늘기 시작하자마자 꾸준히 갱들을 모집한 덕분에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행이지만, 동시에 아쉽군. 원래는 이런 식으로 쓰려고 모은 게 아닌데, 뭐, 상관없나?”

“조셉 패밀리의 화력이 없어도 정말 괜찮을까요?”

“조셉 놈들이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괜찮을 거야. 부족한 화력은 도핑한 갱들로 메꾸면 되니···. 차라리 잘 됐어. 애당초 올리버 놈을 사로잡을 계획이었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걸 명분 삼으면 나한테 따질 인간도 없겠지.”

“약사 놈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성기사가 와도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지켜본 놈이 무슨 자격으로? 설사 움직이려고 해도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판이 달라져 있을 거야. 생각해봐라. 더 이상 도움을 청할 흑마법사가 우리 말곤 없는데, 어떻게 덤벼?”

“아아, 역시 그렇군요.”

“거기다 필거렛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우리밖에 없지. 성기사 놈을 때려죽인 다음, 올리버만 잡으면 놈도 우리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 계산이 빠른 놈이니.”

“오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주인님. 성기사가 온 이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시다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성기사를 살해해 패밀리의 명성을 높이고, 거기에 올리버 놈까지 사로잡아 노예로 부릴 생각을 하시다니.”

도미니크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흑마법사의 진정한 힘은 여기서 나오지. 올리버 놈이 건방진 놈이긴 하지만 필거렛을 만드는 실력은 진퉁. 부하들은 다 죽이고, 놈은 양다리만 부러뜨려 데려간다. 그럼, 지금 생산되고 있는 고품질의 필거렛은 우리만 생산할 수 있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성기사를 살해하면 혹이 더 생기지 않을까요?”

“약사를 통해 윗대가리 놈에게 뇌물을 먹이면 돼. 정 안되면 이 동네를 뜨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고, 성기사를 죽였다는 이름값과 필거렛 생산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우린 어디든 자리 잡을 수 있어. 그런 다음 충분히 힘을 비축한 다음 란다로 세력을 확장하는 거지.”

“오오···!”

도미니크의 말에 부하들이 모두 감탄하며 소리쳤다.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올리버는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도미니크의 말이 연기처럼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할까?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할까?

허나, 도미니크의 부하들은 그 말에 설득됐는지 순식간에 용기를 얻었다.

“자, 움직이자, 우리의 위대한 첫발자국을 위해!”

“예, 주인님!”

골목으로 들어가는 도미니크와 그 부하들.

올리버 역시 그 말에 맞춰 움직였다.

다만, 그냥 뒤따라가는 건 위험할 것 같아 다른 방향으로 쫓아가기로 했다.

올리버는 조심히 감정을 추출했다.

현재 몸을 숨긴 건물 꼭대기를 향해 집착을 기반으로 한 타켓팅 마법을 걸었고, 뒤이어 자신의 몸에 똑같이 집착을 기반으로 한 타겟팅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두 개의 타겟팅 마법이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올리버를 건물 위 꼭대기로 천천히 올려다 줬다.

그렇게 건물 위로 도착한 올리버는 다시 눈에 신경을 집중해 도미니크를 감시했다.

건물 사이를 오가며 따라갔는데, 이윽고 도미니크가 한 공동주택에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로 빨랫줄이 빼곡히 걸렸는데, 척 봐도 버려진 곳이었지만, 건물 내부에는 2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뿐 아니라 건물 주변으로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단순히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기에는 상태가 영 이상했다.

그들은 전투를 앞둔 긴장감 혹은 고양감을 품고 있었다.

아무래도 성기사라는 존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게 그냥 한 소리가 아닌 듯했다.

“음······.”

올리버는 고민했다.

처음에는 적당히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 정도 준비를 한 것을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올리버는 건물 꼭대기에 반쯤 누워 몸을 낮춘 다음 감정을 추출해 미니언을 만들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게 기존 미니언 보다 작게 만들고, 거기에 ‘이레이저 엑시트’와 ‘엿듣는 귀’를 부과했다.

그러자 미니언은 그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한 쌍의 귀가 돋아났다.

“주변을 돌며 이야기를 엿들으세요.”

올리버가 그 말과 함께 그늘진 벽면을 따라 미니언을 내려보냈다.

잠시 후, 건물 주변의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말, 별거 아닌 거 맞겠지?”

“그럼 들었잖아? 별거 아닌 양아치들 상대하는 거라고.”

“그럼, 왜 이렇게 돈을 챙겨준대?”

“돈 많은 게 왜? 돈 많이 주면 좋지?”

“그래도 찝찝한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들리는 말로는 여기 흑마법사들 최근에 돈 좀 번 거 같던데 그거 때문에 조직을 키운다는 소문이 있어. 일종의 입단 테스트인 셈이지.”

“입단 테스트?”

“그래, 시키는 대로 하는지 또 싸울 깡은 있는지 확인하는 거···. 돈도 주고, 무기랑 물약도 주는 데 뭐가 문제야? 이런 동네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 온다고? 정 겁나면 지금이라도 빠져. 난 이제 인생 좀 고쳐보려니까.”

“그런 건 아니고···. 이게 무슨 약이라고?”

“이건 힘을 강하게 해주는 약이고, 이건 두려움을 없애주는 약. 남용만 안 하면 부작용도 거의 없대.”

“믿을 만한 거야?”

“이 새끼가 진짜로···. 이 근방 인간들 전부 이곳에서 도핑 약물 사는 거 까먹었어? 계속 재수 없는 소리 할 거면 썩 꺼져!”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그 외에도 다른 곳에서의 대화 역시 비슷한 흐름이었다.

아무래도 건물 밖에 있는 건달들은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이곳에 있는 거 같았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상한 걸 눈치챌 수 있을 텐데. 허나, 적잖은 돈과 안정된 조직에 입단할 수 있다는 사실에 판단력이 흐려진 거 같았다.

흥미로웠다. 이렇게 허술한 방법으로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올리버는 주변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건물 위에서 한참을 대기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갔다.

·

·

·

“······.”

“······.”

“···으, 추워.”

“······.”

“···넌 안 추워?”

“···조용히 해 흑마법사가 쥐 죽은 듯이 있으라고 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

해가 지고 밤이 되자 고용된 갱들은 간헐적인 대화만 나누며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몹시도 지루해하고 있었는데, 아예 몇몇은 코를 골기까지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으니.

아무래도 성기사는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올리버는 반쯤 풀고 있던 눈에 다시 신경을 집중했다.

저 멀리 심상치 않은 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는 열두 명.

그냥 방문한 이방인이 아니었다.

모두 전투를 앞둔 사람처럼 긴장과 고양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승리할 거란 확신과 여유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 결이 다른 감정도 있었다.

처음 보는 형태의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할 정도로 맑은 신념과 자기 확신에 찬 감정이었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와 같은.

처음 보는 깨끗한 감정에 올리버는 곧장 흥미를 느꼈고, 무뎌진 정신과 육체는 바로 활력을 되찾았다.

도대체 저건 뭘까?

[셰이드 클록]

올리버가 소량의 감정을 추출해 엷고 어두운 망토를 만들어 이불처럼 뒤집어썼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기척을 숨기는 은신 흑마법으로, 밤이나 그늘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조건만 맞으면 최소 감정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괜찮은 마법이었다.

올리버는 얼굴만 빼꼼 내밀어 아래를 바라봤다.

이방인의 등장을 올리버만 알아차린 것이 아닌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갱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왔다. 뭐지? 저놈들?”

“쫄지마, 쫄지마. 여기 사람이 몇인데?”

“그래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근데, 여자도 끼어 있네?“

대장으로 보이는 갱이 홀로 거리로 나와 이방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멈춰. 너희들 누구야?”

이방인들은 멈췄다. 갱이 다시 말했다.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야. 길을 잘못 들어온 거면 얼른 돌아가. 볼 일이 있으면 내일 오고.”

이방인들은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봐, 귓구멍 막혔어?”

그때, 남들과 다른 순수한 빛을 가진 여성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여기 흑마법사가 있나요?”

“····씨발, 뭐야? 너희 누구야?”

“다 알고 왔습니다. 여기 흑마법사가 있다는 걸. 만약, 그저 고용된 사람이라면 신의 자비로 회개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모두 무장을 풀고 여기 무릎 꿇으세요.”

여성의 제안에 갱들의 감정은 긴장에서 서서히 분노로 변했다.

“······이런 씨발 얼굴만 예쁘지 완전 미친년이잖아? 너희 정체가 뭐냐고?”

“전 파테르교 셀랜드 지부에서 나온 성기사 요안나. 다시 한번 신의 자비로 말합니다. 당신을 포함해 지금 주변에 있는 죄인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세요. 그렇다면 신의 자비를 베풀겠습니다.”

“아나 진짜···. 씨발 신이고 나발이고 갑자기 와서 뭔 개―”

탕――――!

갑자기 울려 퍼진 총소리와 함께 대화하던 갱이 바닥에 쓰러졌다.

가만 보니 요안나 옆 대머리 남자가 총을 쏜 것이었다.

“감히, 신을 모독하다니···.”

시체가 생기자 주변은 차가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외쳤다.

“습격이다!”

그 외침에 따라 상황을 지켜보던 갱들은 살기를 뿜으며 튀어나왔다.

이방인들을 찢어 죽일 기세였는데, 그럼에도 이방인들은 겁먹긴커녕 침착할 뿐이었다.

이방인 중 하나가 소리쳤다.

“기사님!”

그 외침에 요안나라는 여자는 놀랍게도 슬픔이란 감정을 내비치더니, 이내 각오라는 감정을 그 위에 덧씌웠다.

[레디 폴 배틀]

여자의 주문과 함께 찬란한 빛이 주변을 뒤덮었다.

모두 눈 부신 빛에 주춤했는데, 빛이 사그라들자 어느새 철 코트와 각종 무기로 중무장을 마친 이방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방패와 메이스를 든 요한나가 말했다.

“신의 이름으로 저들의 죄를 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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