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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1화 (31/633)

31. 손님 (2)

밖으로 나가보니 실제로 제임스가 있었다.

마법사와의 결전 때와 란다로 갈 때 같은 트럭에 탔던 약사의 직원A.

그는 공장에서 올리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특유의 각진 턱과 뒤로 넘긴 갈색 머리카락, 다부진 어깨 탓에 몹시도 눈에 띄었다.

그는 올리버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아아, 나와 줬군.”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제임스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가워. 란다에서 헤어진 후 처음이지? 거기서 한동안 일 좀 했는데, 갔다 오니 재밌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진짜야?”

“뭐가 재밌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을 겁니다.”

제임스가 하하 웃었다.

“대단하네····. 이 정도일 줄이야. 진짜 대단해. 흑마법사 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나?”

“아뇨, 별로···.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올리버가 필거렛을 떠올리며 물었다.

“응? 아아···. 별거 아니라, 물건을 제대로 생산하고 있는지 확인차 왔어. 사장님이 걱정이 많으셔서. 하긴, 요새 주문량이 좀 많아야지. 실례인 줄은 알지만 별문제 없어?”

“아, 그거라면 걱정 마시죠. 제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리버가 피터를 바라봤다. 피터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다행이군.”

제임스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긁적였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혹시···. 무슨 다른 볼일이라도?”

난감해하던 제임스의 감정은 더욱 짙어지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널 란다에 데려다줄 때 나눴던 대화 기억나?”

“무슨 대화를 했죠?”

“에이 씨·····.”

“아뇨, 진짜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 겁니다.”

“······. 내가 너한테 마법사에 대해 가르쳐주면, 너는 내게 흑마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제임스의 말에 옆에 있던 피터와 주변에 있던 일부 제자가 놀랐다. 저 멀찍이 올리버를 지켜보는 마리도.

정작 당사자인 올리버는 차분했지만.

“···· 예, 그랬네요. 기억났어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제임스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난 그 약속을 지키러 왔는데····. 넌?”

대답하려는 찰나 피터가 끼어들었다.

“주인님? 저게 무슨····?”

“들은 대로요. 직원분이-”

“- 제임스. 내 이름은 제임스야. 저번에 말해줬잖아? 제임스라고 부르라고. 정 없게 그러지 말고.”

“제임스 씨가 마법사에 대해 제법 아는 게 많다고 하셔서, 아는 걸 가르쳐주면 저도 흑마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어요.”

피터를 포함해 제자들이 모두 경악했다. 고작 그따위 걸로 흑마법을 가르쳐준다니.

“주, 주인님···. 그건 말도 안 되는 거래입니다. 어떻게 흑마법을 고작 그런 거로, 뭣보다 저 사람은 뭘 제대로 아는 진짜 마법사도 아닌데···!”

피터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마법 보다 그 장벽이 낮긴 했지만, 흑마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사실 엄청난 거였다.

과거 조셉의 밑에서 대부분 노예 같은 삶을 살아도 여기 끝까지 붙어 있었던 것은 흑마법사에게 거둬지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노예, 하인으로 보내야만 간신히 배울 수 있는 게 흑마법.

그런데 제임스는 고작 길바닥에서 배운 어쭙잖은 것으로 그 고귀한 지식에 손을 대려는 거였다.

그 사실을 본인도 알기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래 봬도 잔뼈가 굵어서 마법사에 관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아····.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다른 이야깃거리도 있고.”

“아니,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무슨 이야기죠?”

올리버가 피터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글쎄? 해결사 일이라던가, 길거리 생활, 란다의 뒷골목 같은 이야기에 내가 좀 빠삭해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라는 걸 본인도 아는지 제임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올리버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 예, 좋아요.”

“주인님?!”

당황한 피터가 다급히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저 인간이 사기 치는 거라고요.”

“뭐····.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

피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자신과 올리버의 사고체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인지한 듯.

그런 피터를 내버려 둔 채 올리버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그럼, 언제부터 배우실래요?”

“지금 당장도 난 상관없지.”

“음······.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

올리버는 제임스를 데리고 지하실에 있는 교실로 내려갔다.

가는 동안 다들 그 광경을 이상하게 봤지만, 감히, 묻는 자는 없었다.

교실에 도착한 후 올리버는 선반에서 교육용으로 쓰이는 감정을 꺼냈다.

“일단,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아무것도.”

“·····. 예?”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어····. 아냐, 아냐. 하지 마. 손가락 끝에 감정을 모으지 마. 그것도 못 보니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둘 다 무슨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봤다.

“······.”

“······.”

“······.”

“······.”

“······.”

“후···. 솔직히 말해도 될까?”

“예, 부디.”

“난 흑마법에 재능이 없어.”

“예?”

“내가 말 안 한 게 있는데, 사실 흑마법을 배울 기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야. 옛날에 한 번 있었어, 그저 재능이 없었을 뿐.”

“아····. 그럼 왜?”

“글쎄? 그래도 어떻게든 배우고 싶달까?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심장은 뜨거워서 ····.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넌 조셉도 이긴 흑마법잖아?”

아아. 이제야 제임스의 말뜻이 이해됐다.

그는 혹시나 올리버라면 자신을 가르쳐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 그 미약한 가능성을 품고 온 거였다.

솔직히 말해 난감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주기 위해 조셉의 서재에서 교육과 관련된 서적을 찾아봤지만, 제대로 된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것은 남들의 문제를 지적해 주며, 때때로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게 전부.

뭐,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다들 개안(開眼 정도는 할 수 있었고, 어설프게나마 추출을 할 수 있었으니.

허나,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제임스가 실망하듯 물었다.

“왜 방법이 없나?”

올리버는 그런 그를 말 없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제임스의 양 눈을 덮었다.

“아하? 지금 뭐 하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올리버가 미약하게 저항하는 제임스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양 눈을 다시 덮었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점점 그의 감정이 선명하게 보이는가 싶었는데, 올리버는 시험관에서 감정을 일부 추출한 다음 다시 똑같이 제임스의 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도대체 무슨····?”

“잠시만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다시 눈에 힘을 줬다.

점점 일반적인 시야는 약화하고, 흑마법사로서의 시야가 강해졌는데, 그 경계가 넘어가는 찰나 올리버는 손안에 머금고 있던 감정을 억지로 제임스의 눈에 쑤셔 넣었다.

“크아아아아악-!”

제임스가 안구 쪽에 엄청난 격통을 느끼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그럼에도 손에 놓지 않았다.

“아파! 빌어먹을 아프다고!!”

“예, 예. 괜찮습니다. 잠시만요.”

제임스는 고통이 임계점에 넘겼는지 계속해 발버둥을 치고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올리버가 마침내 손을 놓았다.

“크악·····!”

눈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진 제임스.

그는 고통 탓에 끙끙대면서 바닥을 기었는데, 마치 섬광탄을 본 듯 눈을 못 떴다.

“눈···! 내 눈····!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화끈거리는 눈을 부여잡으며 제임스가 소리쳤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점차 통증이 가시며 시야가 회복됐다.

“이게 뭐로 보이죠?”

간신히 눈을 뜬 제임스 앞에 올리버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제임스가 멍하니 있다 대답했다.

“······. 동그라미?”

***

“·····. 그럼, 란다는 마법사들이 지은 도시라는 건가요?”

“그렇지····. 정확히는 자본가와 마법사. 허나, 세간에는 마법사들이 지은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뭐, 아주 거짓말은 아니야. 자본가들은 돈만 댔을 뿐. 란다를 재건한 건 마법사의 기술이니. 세 살짜리도 아는 거지.”

“아····. 저는 몰랐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비유법 직유법 몰라?”

“·····.”

“하아, 모르는구나····. 어쨌건 핵심은 그만큼 란다에서 마법사들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거야. 다른 곳에서도 대단하지만, 란다에서는 더욱 대단하지.”

“그렇군요. 그런데 제임스 씨는 어떻게 마법사에 대해 잘 아시는 거죠?”

“아? 아아···. 일단, 마법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술집이나 길바닥에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마법사에게 고용된 적도 몇 번 있거든. 해결사 노릇 할 때.”

“오, 그래요? 무슨?”

“경쟁 마법사 사업체에 불 지를 때나, 직원들 폭행할 때.”

“····. 마법사들끼리 많이 싸우나요?”

“어. 똑똑이들은 똑똑이를 싫어하거든. 동족 혐오지. 그보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 좀 하자.”

“예.”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데?”

제임스가 손끝에 감정을 모아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만들며 물었다.

말이 좋아 동그라미지, 사실 동그라미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무엇이었다.

“완벽한 동그라미를 만들 때까지요.”

“하아····. 그냥 바로 흑마법을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엄청 강한 거로. 팡팡 터지는. 응?”

“동그라미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면 저도 못 도와줘요.”

그 말에 제임스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를 냈다.

흑마법의 첫발을 내디디고 그는 과하게 기분이 서둘렀는데, 올리버는 그때마다 차분히 조언해주었다.

“···. 그리고 흑마법에 진정한 위력은 강력한 위력에 있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

“서재에 있던 주인님의 노트를 살펴보면 흑마법의 진정한 위력은 상대방의 속을 꿰뚫는 눈과 그 눈을 이용해 의표를 찌르는 치밀한 기술이라고 합니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이고요. 그저 강한 흑마법만 생각하면 딱히 소용없을 겁니다.”

열다섯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의 말치고는 상당한 위엄이 느껴졌는데, 제임스는 평소처럼 농담도 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럼·····.”

“- 제임스 씨! 물건 다 옮겼습니다!”

소시지 공장에서 나와 필거렛이 든 박스를 트럭에 실은 일꾼들이 저 멀리서 외쳤다.

“알았어! 잠시만 대기해!”

제임스는 어느새 약사의 부하 직원A로 돌아가 담배를 하나 물며 입을 열었다.

“후우····.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헛소리 그만하고 계속 동그라미 만들기 연습이나 할게.”

“좋아요. 동그라미로 만들면 그대로 네모 만드는 연습하세요.”

“알았어···. 네모···. 그건 그렇고, 혹시 생산량 더 늘릴 수 있어? 감정은 우리가 마련해볼 테니까.”

“?····. 이미 많이 생산하고 있지 않나요?”

“맞아, 많이 생산하고 있지. 근데 더 많이 필요해서.”

더 많이? 올리버는 고민했다.

처음에 조금씩 늘어나던 필거렛 생산량을 어느새 두 배, 세 배로 늘더니 현재에 이르러선 네 배가 되었다.

그 말은 즉 올리버의 작업량이 늘어나는 걸 의미했고.

흑마법을 공부하고 싶은 올리버에게는 마냥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뭐, 어차피 서재의 책도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라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 좀만 생각해봐도 될까요? 지금 작업장으로 충분히 한계라.”

“알았어. 사장님에겐 내가 그렇게 전할게. 하지만 이왕이면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해. 네 물건이 지금 인기가 많은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딱히 돈에 큰 관심이 없는 올리버에게는 공허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흥미를 끄는 부분이 없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인기가 많다고요?”

“그래. 몰랐어?”

“예.”

“생산량이 왜 늘었다고 생각해? 당연히 수요가 높아 서지. 공급과 수요. 시장 원리. 지금 네 물건은 인기가 엄청 많아. 오죽하면 다른 거래처에서도 물건을 살려고 할까? 과장을 조금만 더 보태면 블랙 스모크를 위협할 기세야.”

“····. 블랙 스모크가 뭐죠?”

“····. 블랙 스모크가 뭔지 몰라? 농담이지?”

올리버가 말없이 고개를 젓자 제임스가 어이없어했다.

“필거렛을 파는 흑마법사인데, 블랙 스모크가 뭔지 몰라?”

“배운 적이 없어서.”

“블랙 스모크는 가장 인기 많은 필거렛 브랜드야···. 품질이 정말 뛰어난 필거렛은 브랜드를 만들어 차별을 두거든. 어쨌건 네 물건이 그만큼 끝내준다는 거야.”

“····. 그렇군요.”

“반응 참 한결같아서 좋다. 얼마나 칭찬해줘야 만족하는 건데···. 어쨌건 사장님께는 내가 잘 말해놓을게. 다음에 또 보자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임스를 배웅했는데, 제임스는 갑자기 가다 말고 멈추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말씀하세요.”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한테 왜 이리 쉽게 가르쳐주는 거야? 흑마법. 솔직히 무시해도 되는데.”

올리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굳이 안 가르쳐줄 이유는 뭐죠?”

제임스는 멍하니 있다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 정말 이상한 녀석이야.”

“그런가요?”

“어, 그래요. 다음에 또 보지.”

***

낙후된 도시 와인햄에 여러 차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대량 보급용 차량 F-시리즈로, 어디에 봐도 이상하지 않은 모델이었다.

덕분에 돈이 궁한 중산층이나,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겐 아주 인기가 많았다.

끼익―

도시가 보이는 한 언덕 위에서 차량이 일제히 멈춰 섰다.

잠시 후, 선두에 있던 차량에서 한 여성이 내렸다.

도자기처럼 깨끗한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찬란한 금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지. 성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성스러웠나?

“여기가 그 물건의 온상지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기사님.”

기사님이라 불린 여성이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서둘러 가죠. 사악한 약을 뿌리는 악을 멸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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