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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0화 (30/633)

30. 손님 (1)

재료 수급 후, 몇 주가 지났다.

올리버는 그때의 충격을 씻기라도 하듯 식사와 잠도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서재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치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외면하는 아이처럼 말이다.

다들 그러한 올리버의 행동을 걱정하면서도 감히 뭐라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올리버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감정 합성과 수업 등 필요 일정은 모두 소화해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리버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 채 미친 듯이 책을 탐독했다.

그리고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가령, 감성의 소모성에 같은 거 말이다.

영혼에서 파생된 에너지인 감정은 추출 시부터 일종의 유통기한을 가지게 되는데,

특수한 보관법이나 흑마법을 통해 그 유통기한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을지만, 결국 휘발해 사라지거나, 변질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올리버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으며 혹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다.

허나, 서재의 책을 거의 다 읽어도 그에 대한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추출하지 않고 사람의 몸 안에 보관되어 있다 할지언정 감정은 유동적이기에 시간의 지남과 주변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흑마법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했음에도, 위와 같은 사실에 기쁨보다 허무함과 상실감을 느꼈다.

이것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돈과 명예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남자가 이윽고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것과 비슷하달까?

감정이란 게 언젠가 변하는 거라면, 전격 마법사와 조셉에게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빛도 언젠가는 다 사라진다는 말 아닌가?

올리버는 품 안에 고이 모셔둔 조셉의 감정을 말없이 바라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간신히 손에 넣은 이 아름다운 빛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니.

“······.”

올리버는 문득 생각했다.

애당초 자신이 이 감정을 왜 가지고 싶어 하는지.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는 거였다. 이걸로 구체적으로 뭘 할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예쁜 돌을 발견하면 줍는 아이와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한다.

예쁘니 일단 주워 소유하는 것.

그다음에 뭘 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말 그대로 본능이었다.

올리버는 문득 처음부터 해야 했을 고민을 했다.

이 감정으로 무엇을 할지.

이대로 보관한다면 언젠가 사라질 텐데····. 어떻게 하면 가장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계속해 고민하던 중 문에서 똑- 똑- 소리가 들렸다.

“·········. 뭡니까?”

“접니다. 주인님. 마리. 곧 필거렛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희끼리 만들까요? 아니면 참가하시겠습니까?”

“······.”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뭔가··.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올리버는 냅다 책장을 뒤졌다. 분명, 어딘가 여기 있을 터.

아····. 잠시 후, 올리버가 찾던 책을 찾았다.

정식 책이라기보다는 필기한 노트로, 오래됐는지 누렇게 변색 됐는데, 필거렛에 대한 정보가 알기 쉽게 적혀 있었다.

현재 마약으로 쓰이는 필거렛의 실제 용도는 재료가 된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공유 도구로,

붉은 글씨로 감정의 보관 기간을 몇 배로 늘릴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올리버는 그 글씨를 보고 다시 조셉에게서 추출한 얼마 되지 않는 감정을 봤다.

마침내 이 감정을 어찌 쓸지 용도를 발견한 듯이.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마리가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 저기, 주인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신지요?”

“·····. 아뇨. 없습니다. 저도 가죠.”

***

올리버는 마리와 같이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미 작업에 들어갈 준비는 다 마친 상태였는데,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동안 정신이 따른 데 팔려있어 신경을 못 썼는데, 뒤늦게 인지했다고 해야 하나?

“마리?”

“예? 주인님.”

마리가 가슴에 손을 대고 허리 숙여 공손히 대답했다.

“원래 우리 작업량이 이렇게 많았나요?”

올리버가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많은 담배와 물, 감정을 보고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많지 않았죠.”

“근데····?”

“올리버 님께서 만든 합성 감정으로 만든 필거렛이 반응이 좋아 요 몇 주간 주문량이 늘더니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약사 쪽에서 감정을 공급해 줄 정도로···.”

올리버는 머리를 긁적였다.

책을 읽는다고 마리와 피터에게 조직 일을 맡겼는데, 그 짧은 사이 이런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

어쩐지 앤서니와 도미니크 패밀리 외에도 합성하는 감정이 점점 늘고 있었다더니만····. 뭐, 상관없나?

“····.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죠.”

그 말과 함께 작업이 시작됐다.

임시제자들까지 작업에 투입하기에 밑 작업은 임시제자들이 맡았으며, 그 외 기타 노동은 하급제자가 맡았다.

상급제자와 중급제자는 2차 추출한 증류액에 감정이 완전히 뒤섞게 하는 화학 가공에 투입하였는데,

올리버는 직접 작업에 참여하는 대신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의 작업을 관찰하며, 그때그때 수정을 지시했다.

“불 온도를 조절하세요.”

“다 받은 증류액은 바로바로 옮겨주시고요.”

“그렇게 주문을 거는 게 아닌 이렇게 해야 감정이 보다 잘 융합됩니다.”

각 작업을 맡은 부하 직원들은 그때마다 큰 소리로 대답하며 올리버의 명을 수행했다.

물론, 한번 지적했다고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게 보였다.

덕분에 작업 속도 역시 조셉 때와 비교해 훨씬 빨라졌고.

하나의 기계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했는데, 어느 정도 작업이 안정에 오르자 올리버는 고개를 돌려 완성된 필거렛을 살펴봤다.

조셉이 만든 것에 비해 질이 높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는데,

여기 소속뿐 아니라 약사까지 인정하니 아마 사실일 터였다.

처음 한 모금을 마시면 분노로 인한 각성 효과가 나지만, 이내 모성애를 맛보며 그 간극만큼 평온을 느끼는 올리버의 필거렛.

정작 당사자인 올리버는 이것을 맛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전에는 한번 피워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지금 품 안에 있는 조셉의 감정을 이용한 필거렛을 처음으로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고민했다. 어떻게 만들어야 조셉의 감정을 최대한 맛볼 수 있을지.

작업하는 모습을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 방식은 아니었다.

최대한 감정의 손실을 막는 섬세한 작업이었지만, 어찌 됐건 감정을 물과 섞어 양을 늘리는 작업.

올리버는 양이 부족할지언정 제대로 이 감정을 맛보고 싶었다.

저런 방식으로 제조하는 것은 조셉의 감정에 대한 일종의 모욕인 셈이었다.

그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궐련에 직접 감정을 부과해야 하나? 아니, 그것은 조금 어려웠다.

감정의 휘발성을 막고, 묶어줘야 할 매개가 있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올리버의 머릿속에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앤서니와 도미니크 패밀리와 회담을 가진 그때를.

그때, 올리버를 떠보기 위해 한 덩치가 약물을 마셨다.

생명력을 액화시킨 물에 머슬업 주문을 부과한 약물을.

바로, 그거였다.

잠시 후, 시간이 흐르자 작업이 끝났다.

다들 기운이 빠진 듯했는데, 올리버는 그런 그들에게 형식적인 수고의 말을 전한 뒤, 뒷정리한 후 쉴 것을 명했다.

모두 기뻐하며 뒷정리를 했는데, 그때, 올리버가 마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마리.”

“예? 주인님?”

“혹시, 보관 중인 생명력 좀 가져다줄 수 있나요? 될 수 있으면 신선한 거로.”

“아, 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마리는 어째서인지 기뻐하며 가더니 이윽고 활발한 생명력이 든 시험관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 괜찮으시다면 어디다 쓸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뇨, 마리가 알 건 없어요.”

차가운···. 아니 객관적으로 차갑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이 형식적인 어조일 뿐.

적당한 거리감과 예의가 뒤섞인 어조.

허나, 어째서인지 마리는 그 대답에 크나큰 실망과 함께 슬픔을 느꼈다.

감정뿐 아니라 표정에도 드러날 만큼.

올리버는 그녀가 이러는 이유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그때, 피터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주인님···. 뒷정리 전부 끝냈습니다.”

“빨리하셨네요?”

“아, 예. 전부 다 같이하니 빨리 끝냈습니다. 혹시 더 명하실 일이?”

올리버는 주변을 살피곤 대답했다.

“없습니다. 이만들 들어가서 개인 시간 가지세요.”

“예, 알겠습니다.”

피터는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제자들에게 이만 쉬라고 말하며 제조실 밖으로 사람들을 내보냈다.

마치, 올리버가 여기서 할 일이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에 반해 마리는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마리····.”

“예, 주인님. 혹시 따로 시키실 일이라도?”

“아뇨, 없어요. 이만 나가셔도 돼요.”

마리는 다시 한번 실망의 빛을 내뿜었다. 그와 함께 극심한 외로움과 제법 심각한 집착을 내비쳤다.

“혹시, 도와 드릴 일은····.”

“없어요. 전혀. 나가 보세요.”

재차 되는 올리버의 말. 결국, 그녀는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뭐라고 할까? 옛날에 개인적으로 흑마법을 가르쳐줄 때부터 저러한 기미가 보였지만, 어째 점점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관심 밖으로 밀려 마리에 대한 생각은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올리버의 최대 관심은 손실이 전혀 없이 조셉의 감정을 필거렛으로 만드는 것.

올리버는 미리 챙겨둔 궐련 한 갑과 마리가 가져다준 생명력 그리고 조셉의 감정을 꺼냈다.

“음····. 아니지. 아니지.”

흥분한 올리버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무 흥분해 연습도 없이 바로 필거렛을 만들려고 하다니····.

지금 올리버가 만들려는 방식은 사실 이제까지 없던 방식.

실제로 해볼 때 어떠한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방식으로 얼마 있지도 않은 조셉의 감정을 바로 사용한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올리버는 작업실 보관함에서 아무 감정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해당 감정과 생명력이 든 시험관을 열어 즉석에서 연습해 보았다.

구체적인 이론도 없이 바로 감이 시키는 대로 말이다.

처음 추출한 것은 생명력.

아름다운 생명력이 올리버의 손안에 모였는데, 올리버가 주먹을 꽉 쥐자 생명력이 응축해 점점 액체로 변했다.

그다음 올리버는 감정을 추출해 그대로 생명력과 뒤섞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생명력은 가공한 증류액보다 훨씬 감정과 잘 섞였는데, 애당초 원래 하나였던 것 같았다.

아니지. 둘 다 영혼에서 파생된 에너지.

오히려 하나로 섞이는 것이 더 말이 됐다.

올리버는 이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며 하나가 된 감정과 생명력을 더욱 응축시켰다.

마치, 끓이듯이 부글부글 끓으며 진액이 되었는데, 올리버는 그대로 궐련 하나에 그 진액을 넣었다.

“후― 후―”

뜨겁게 달아오른 궐련을 입으로 불며 궐련을 살펴봤다.

감정이 거의 소모 없이 그대로 궐련에 저장되었는데, 오히려 생명력과 합쳐진 덕분에 더욱 진해진 기분이었다.

마치, 사람의 몸에 깃든 감정처럼.

올리버는 이 방법이 통한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연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탐욕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연습한 결과 생명력도 궐련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리버는 이제 실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전부 추출해 활기를 잡고 조셉의 감정을 투입했다.

놀랍게도 조셉이 감정이 생명력과 섞이자 처음 봤던 그 아름다운 빛이 다시 떠올랐는데,

올리버는 홀린 듯 그 감정을 응축시켰다.

조금도 잃을 수 없다는 듯이.

올리버의 손끝에 따라 생명력은 조셉의 감정을 전부 흡수했고,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응축했다.

부글부글 허공에서 끓으면 걸쭉한 형태의 진액이 되었는데

올리버는 그대로 마지막 궐련에 진액을 넣었다.

“하아····. 하아····.”

따끈따끈 완성된 필거렛.

올리버는 홀린 듯이 말없이 바라봤다.

두근···. 두근···. 심장이 천천히 움직였는데, 미세하게 손을 떨며 필거렛을 들었다.

올리버는 필거렛을 입을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찾았다.

“아····.”

뒤늦게 올리버는 자신에게 라이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다 피터가 문을 두들기며 안으로 들어왔고.

“주인님.”

“뭡니까?”

감정이 격앙된 올리버가 평소보다 큰 소리로 물었다.

피터가 놀라면서도 진정하며 말했다.

“그····. 손님이 왔습니다.”

“····. 손님요?”

“예, 약사 쪽 사람인 제임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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