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새로운 주인 (2)
딸랑딸랑.
약국의 문이 열리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리가 굽고, 다 떨어진 스카프를 두른 노파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금테 안경을 쓴 중년 사내가 노파를 반겼다.
이 약국의 주인으로, 양복 위에 흰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아, 약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은 매우 반갑게 인사했다.
약사 역시 그런 그녀를 친근히 맞이해줬다.
과연, 이 도시의 명망 높은 유지(有志 라 할 수 있었다.
“네, 저야 늘 안녕하지요. 자, 이리····.”
약사는 관절염 때문에 몸이 불편한 노파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거동을 도와줬다.
몸에 밴 친절. 노파는 고마워하며 인사했다.
“고, 고마워요. 선생님. 그····. 아! 얼마 전에 보내주신 닭요리 정말 맛이 있게 잘 먹었다오. 내 평생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오히려 기쁘군요.”
약사는 능숙하게 말했다.
하긴, 도시에서 수많은 적선을 하고 있어 이런 인사라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었으니 익숙할 수밖에.
감사 인사가 끝나자 노파가 품 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꺼냈다.
“정말····. 정말 면목 없는 말이긴 하지만, 혹시 이 돈으로 진통제 하나 살 수 없을까요? 선생님?”
약사는 슬며시 돈을 봤다. 턱도 없었다.
노파도 아는 눈치인지 다시 부탁했다.
“점점 거동하기가 힘들어서. 모자란 건 나중에···.”
약사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최근 들어온 진통제를 하나 꺼내왔다.
존 스노 사에서 만든 진통제 탄탄이었다.
“자기 전 물과 함께 복용하세요. 최근에 나온 진통제인데, 효과가 좋다더군요.”
“꽤 비싸 보이는데···.”
노파가 쩔쩔매며 말했다. 약사 역시 지지 않고 친절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생일 선물이라고 해두죠.”
“제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
“작년에 안 챙겨드렸지 않습니까? 그냥 받아주세요. 그 돈은 손자분 용돈으로 제가 드린 거라 해두죠.”
노파는 미안해하면서도 결국 약사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파는 너무나도 고마운 나머지 계속해 감사 인사를 했고, 약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거듭 괜찮다고 했다.
“손자분 나이가 어떻게 되죠?”
“이, 이제 열다섯 살 정도 될 거예요.”
“원하신다면 제가 일자리를 주선해 줄 수 있으니 생각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창고 쪽에도 일손이 필요하고, 란다에도 식당이나 공장에 연줄이 있으니.”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분명, 복 받을 겁니다.”
노파는 그렇게 인사하며 떠나려고 했는데, 그때,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막 들어온 사람들과 부딪힐 뻔했다.
“에고···.”
“이런, 괜찮으세요?”
시커먼 머리에 창백한 피부. 꼭 살아 움직이는 시체 같은 소년이 넘어질 뻔한 노파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의 행동은 친절했지만, 생기 없는 피부와 동태눈 탓에 친근함보다는 거부감을 자아냈다.
노파도 다르지 않았는지, 서둘러 인사를 받아주곤 약국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
“·····.”
방금 들어온 손님과 약사가 말없이 서로 바라봤다.
잠시 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약사는 터벅터벅 걸어가 찰칵 문을 잠그고, 옆에 걸어놓은 라 표지판을 문 앞에 걸어놨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나한테 볼일 있어서 찾아온 거 맞지? 약 사러 온 게 아니라.”
손님, 아니.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약사는 올리버와 그 수행원 마리와 피터를 약국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미안하지만, 의자가 두 개밖에 없군. 마실 것도 물뿐이고. 애당초 손님을 맞이할 용도로 만든 게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약사님.”
약사는 컵에 물을 따른 뒤 하나는 자기가 마시며 물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무리 급해도 20분 이상은 문을 닫지 말자는 주의거든. 무슨 일로 찾아왔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예.”
“조셉의 부탁이라면 본인이 와야 하는데, 왜 그대가 왔지?”
“왜냐면 제 부탁이라서요?”
“·····.”
약사는 말없이 올리버를 봤다. 지금 뭐 하는 수작인지 헤아려보려 했는데, 아쉽게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생명력을 추출하러 왔을 때도, 습격자를 잡아 왔을 때도, 지금도 참으로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적의도, 호의도, 속셈도 없었다.
“····. 원래대로면 듣지도 않고 쫓아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저번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내 직원들을 도와줬으니 한번 들어나 보지····. 아, 잠깐만. 그전에 조셉에게 허락은 구한 거겠지? 자기 허락도 없이 이러는 것은 엄청 싫어할 텐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돌아가셨거든요.”
“·····. 뭐?”
“돌아가셨어요. 란다에서.”
“····. 직접 봤나?”
“예?”
“어쩌다 죽었나?”
“라스 붐에 맞아서 한쪽 팔이 날아가 과다 출혈로····.”
“다른 흑마법사에게 습격이라도 받은 건가? 그런데 어째서 자네는 무사···. 아아. 자네가 죽인 건가?”
알겠다는 듯 말한 약사. 올리버는 차분히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약사는 놀라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상하게 놀라지 않았다. 왠지 눈앞의 소년을 보고 있노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기에.
“····. 왜 죽였나?”
“저를 죽이려고 했거든요. 정확히는 악마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약사는 놀라지 않았다. 흑마법사와 거래한 게 수십 년. 그들의 기행이라면 알 만큼 알았다.
특히, 조셉처럼 강한 흑마법사면 악마와 거래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이 소년은 좀 달랐다.
악마에게 제물을 바친 흑마법사라면 필시 위협적인 괴물.
그런데 눈앞에 열다섯, 열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은 자신이 그런 괴물을 이겼다고 지껄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그 사실에 기뻐하거나 우쭐거리지 않았다.
악의, 오만, 잔혹 그런 것과 다른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좋아 이해했네. 조셉이 자넬 죽이려고 했고, 자넨 살기 위해 조셉을 죽였다. 맞지?”
“예···. 이해해주시니 다행이네요.”
“····.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날 찾아왔냐는 건데, 무슨 볼일인가?”
올리버가 피터와 몇 마디 속삭이더니 대답했다.
“아아,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주인님의 뒤를 이어 패밀리를 맡게 됐는데, 다른 분들이 말하길 주인님이 돌아간 걸 알게 되면 저희를 공격할 수도 있다 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혹시, 내게 중재를 요청하러 왔나?”
“예. 맞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순진하기까지 한 질문. 약사는 단순한 악의나 교활함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니.”
“아····. 어째선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유야 어찌 됐건, 난 조셉과 오랫동안 거래한 사람이야. 그런데 대뜸 그 밑의 직원이 하극상해놓고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 있을 거 같나? 막말로 자네가 한 말이 전부 거짓일 수도 있잖나?”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올리버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듯이 말했다.
피터가 다시 한번 올리버에게 말했다.
“····. 그래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흑마법사들끼리 싸우면 약사님의 사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날 협박하는 건가?”
“아뇨. 절대 아닙니다.”
양손을 저으며 말하는 올리버. 약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자네 말이 어느 정도 맞지만, 이런 종류의 중재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손해야. 괜히 자네들을 도왔다 괜한 오해 사면 더 손해 볼 수 있지.”
“하지만 과거 도와주신 적이 있잖습니까?”
“그때는 모두 싸움을 멈추고 싶어 했고, 내게 이익이 있었거든.”
“그럼, 만약 제가 이익을 안겨 드릴 수 있으면 도와주실 수 있나요?”
헛소리라고 말하려던 찰나, 약사는 올리버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을 사업가의 본능이 알아차렸다.
“····. 다는 못 도와줘도, 최소한 한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줄 수는 있지. 그다음부터는 자네 몫이지만.”
“아, 그거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해준다고 말하지 않았어. 자네가 나한테 뭘 줄 수 있나?”
“아, 그건····.”
올리버가 필거렛을 꺼내며 말을 시작했다.
***
약사와의 만남 이틀 뒤.
약속대로 약사는 자신이 소유한 주점에 앤서니와 도미니크 두 흑마법사 패밀리의 수장을 불러 주웠다.
앤서니는 창백한 피부에 앙상한 남자로 갈색빛 머리를 오른쪽으로 넘겼고,
도미니크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각진 턱과 다부진 몸을 자랑했다.
둘 다 조셉과 비슷한 나잇대였는데, 그래서인지 많아봤자 열다섯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은 올리버를 영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약사의 초대라 일단 침묵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
“······.”
“······.”
어색한 침묵이 공기를 누르는 와중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이리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허나, 반응이 없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들의 감정은 제각기 의문과 짜증, 혼란, 추측, 관찰, 교활 등등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앤서니가 손을 들었다.
“아, 예. 무슨 하실 말씀이···?”
“····. 묻고 싶은 게 너무 많기는 하지만, 일단 가장 기본적인 거부터 묻지. 넌 누구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올리버라고 합니다.”
“올리버?”
기름을 발라 뒤로 머리를 넘긴 도미니크가 꺼끌꺼끌한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아아···! 네가 올리버라고? 이름 한번 들었다. 마법사 새끼들 뒤치기해 활약했다는!”
“예.”
“하하! 들은 대로 생긴 건 진짜 약골처럼 생겼군! 정말 네가 마법사를 해치웠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재밌는 놈이네····. 그런데 나는 조셉이 부른 거라고 해서 나온 건데 왜 네가 나온 거지?”
도미니크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며 인상을 썼다.
정말 화가 났다기보다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실제로, 수행원으로 따라온 마리와 피터가 움찔했다.
아무래도 도미니크란 남자는 이런 종류의 위협에 능숙한 거 같았다.
“약사 선생. 그대가 말해보시오. 분명, 조셉이 나올 거라 했잖소? 난 놀림 당하는 거 싫은데 말이야.”
거만하고 위협적인 도미니크의 태도는 약사의 직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충분했고, 그러자 도미니크의 부하들이 으르릉거렸다.
순식간에 험악해지는 분위기.
약사가 자기 직원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난 정확하게 조셉 패밀리의 주인이 보자고 말했네.”
“그러니까. 조셉이잖소? 뭐, 그럼···. 응?”
도미니크가 말하다 말고 뭔가를 눈치챘는지 올리버를 봤다.
상황을 지켜보던 앤서니 역시 날카로운 눈으로 올리버를 봤는데, 그때, 올리버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조셉 패밀리의 새로운 주인을 맡게 된 올리버라고 합니다.”
올리버는 정중히 인사했지만,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미처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 듯 그들은 얼어붙었는데, 그러다 도미니크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지껄였다.
“지금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제가 조셉 패밀리의-”
“-아니, 아니. 씨발···. 그게 아니라 씨발롬아. 조셉이 있는데, 왜 너 같은 애새끼가 주인이랍시고 구는 거냐고?”
“아···.”
올리버가 약사를 봤다. 약사가 고개를 젓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설명했다.
“주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 그 인간이?”
앤서니가 적잖게 놀랐다.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예.”
“누가 죽였는데? 그 양반은 란다에서도 먹히는 실력을 갖췄는데?”
“제가 죽였습니다. 절 죽이려고 하셔서요.”
“그래서 네가 조셉을 죽였다?”
“예.”
올리버가 대답했지만, 상황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도미니크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고, 앤서니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낮게 웃더니 대뜸 질문했다.
“나이가 몇이지?”
“나이요?”
“그래, 자네 나이.”
“잘···. 모르겠습니다. 고아원에서 광산에서 일해서 제 나이는 딱히.”
“하···. 그래. 고아원에서 광산에서 일한 친구. 다시 묻지. 자네가 조셉을 죽였다고?”
“예.”
“증거는 있나?”
“아뇨···. 아무리 그래도 주인님 목을 자르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이거 완전 미친놈인데?”
도미니크가 말했다. 뭐가 미쳤다는 건진 이해가 안 갔지만.
“약사 선생. 지금 이 미친놈 말 믿고 우릴 부른 거요?”
“거짓말 같지 않아서. 거기다 재밌는 제안도 했고. 믿기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안이지.”
“씨발, 진짜 지금-”
“- 일단, 들어나 보지.”
화를 내려던 도미니크를 진정시키며 앤서니가 말했다.
“다 듣고 난 뒤. 화내도 늦지 않잖아? 이봐, 올리버라고? 들어 줄 테니 어디 한번 말해봐.”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 나온 이유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부탁?”
“예, 비록 주인님이 돌아가셨지만, 지금처럼 평화롭게 지내고 싶거든요. 전 싸움을 싫어합니다.”
도미니크, 앤서니의 부하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약소하게나마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보답?”
올리버가 품 안에서 필거렛을 하나 꺼냈다.
“좀 더 좋은 품질의 필거렛을 만들 레시피를 공유하겠습니다.”
도미니크와 앤서니는 반사적으로 올리버가 꺼낸 필거렛을 봤다. 확실히 빛이 조금 남달랐다.
“뭐지?”
“제가 만든 필거렛인데, 전보다 질이 좋은 물건입니다. 약사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약사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그 필거렛이 뭐냐고 좀 이상한데?”
“아, 모성애와 분노를 합성해 만든 겁니다. 8대2 정도.”
그 말에 모두 소리 없이 놀라며 올리버를 올려다봤다.
“물론, 한가지 감정만 있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상극인 감정을 섞으며 순간적으로 그 효과가 더 좋아지거든요. 또, 감정을 뒤섞는 과정에 서로 반발작용을 해 양도 조금 더 늘어나고요. 이러면 더 좋은 품질의 감정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으니 분명 여러분께 이익이 될 겁니다.”
올리버의 열변이 무색하게 다들 침묵했다. 반응이 심상치 않았는데, 앤서니가 손을 들어 말했다.
“괜찮은 생각인 거 같기는 한데. 왜 우리는 그런 생각을 안 했을 거 같아?”
“·····, 글쎄요? 왜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지. 감정은 몹시도 섬세한 에너지야. 비슷한 건 몰라도 다른 성향의 감정을 섞는 건 말처ㄹᅟᅥᆷ·····.”
앤서니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올리버가 시험관을 두 개 꺼내 즉석에서 감정을 합성시켰기 때문이었다.
성격이 다른 두 감정은 파치치― 반발작용을 보였지만, 올리버의 손에서 이내 안정을 되찾더니 아름답게 하나로 섞여 빛을 뿜었다.
“····. 전 되는데요?”
아무도 말을 못 했다.
올리버가 주변의 반응을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감정을 제공해 주시면 제가 합성해서 정기적으로 납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더 좋은 필거렛을 만들어 여기 계신 분 모두 큰 이익을-”
“-이런 씨발!”
누군가 올리버의 말을 잘랐다.
도미니크의 부하인 근육질 사내로, 그는 사나운 개처럼 지껄였다.
“잔재주 좀 있다고 감히 주인님과 맞먹으려 들어? 뭐, 전 되는데요?! 이 건방진 애새끼가 예의라는 걸 도통 모르는군.”
올리버는 갑자기 화를 낸 사내를 봤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화가 난 듯했지만, 그 속은 교활함이 빛나고 있었다.
위협을 가해 어디까지 쥐어짤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
근육질 사내가 물약이 든 시험관을 꺼내 마셨다.
생명력에 머슬업 주문을 더 한 것이었는데, 마시자마자 온몸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아, 생명력을 먹어 머슬업을 걸면 부작용이 상쇄되겠구나.’
올리버가 머릿속으로 그리 생각할 때 근육질 사내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내가 친히 예의라는 것을 가르쳐주마. 애송아!”
사태를 관망하는 앤서니와 도미니크. 그리고 약사.
근육질 덩치가 다가오자 움직이는 것은 오직 마리뿐이었다.
“지금 각 주인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디서 감히- 끄윽!”
근육질 사내는 마리의 목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손이 하도 커 한 손으로도 충분했는데, 그가 조롱하듯 말했다.
“꼬맹아 하나만 묻자. 네가 정말 조셉 패밀리의 주인이면 어째서 부하를 꼴랑 둘만 데려왔지? 응? 다들 겁이라도 먹은 거야?”
“예, 다들 무서워해서 그냥 있으라고 했어요.”
“크하하핫!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그런가요? 그런데 그 손 좀 놓아주실 수 있나요? 많이 괴로워 보여서.”
목이 붙잡혀 안색이 파래진 마리를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근육질 사내는 마리를 흔들며 조롱했다.
“왜 부탁해? 조셉을 쓰러뜨렸다며? 그럼, 그냥 네 힘으로 놓게 해보지? 크하하하핫!!”
“····. 예. 알았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 올리버.
그와 함께 바닥에 있던 그림자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근육질 사내를 제압했다.
팔, 다리, 허리, 어깨, 목 등 빈틈없이 휘감았는데, 근육질 사내는 몹시도 당황했다.
“어? 어어어?”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마리에게 괜찮은지 물어봤다.
“괜찮아요?”
“켁! 케엑-! 예···. 그런데 이건?”
“주인님이랑 싸울 때 배운 거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앤서니와 도미니크 역시 사실인 걸 알고 있었다.
이들 모두 조셉과 싸워봤으니.
조셉이 처음 싸울 때 무조건 이 바인 쉐도우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누, 누가 이따위 허접한 거에···!”
근육질 사내가 힘으로 그림자 촉수를 끊으려 했지만, 촉수는 더욱 강한 힘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근육을 으깨고,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 커! 걱!”
비명도 못 지를 정도였는데,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올리버가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런데 너무 힘주지 말아 주시겠어요? 그럼, 힘 조절이 어려워서·····.”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한 각 패밀리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시험관과 약을 꺼내 싸울 자세를 취했다.
올리버도 그에 맞춰 시험관을 꺼내며 물었다.
“아, 결국, 싸우는 건가요?”
“·····.”
“·····.”
놀랍게도 앤서니와 도미니크는 아까 전과 달리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앤서니가 물었다.
“····. 왜? 우리가 싸울 거라고 하면 싸울 건가?”
“싫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하···. 싫긴 하지만?”
“예.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뭣 보다 싸우면 공부하는 시간도 낭비되고····. 죄송하지만, 평화로운 방법은 없을까요?”
생과 사가 오가기 직전의 상황.
그럼에도 올리버의 발언은 그와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마치, 목숨을 건 싸움이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였는데.
더욱 소름이 끼치는 건 이것이 알량한 자존심이나 잘못된 오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거였다.
모두 긴장을 가득 머금은 채 올리버를 바라봤다.
폭탄에 심지가 타들어 가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며,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때 누군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필거렛···! 이야기 좀 다시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