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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27화 (27/633)

27. 새로운 주인 (1)

“·······.”

“·······.”

“·······.”

“·······.”

올리버가 소시지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모두가 나와 반겨주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일 뿐. 올리버의 모습을 보자 모두 침묵했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가?

란다에서 와인햄으로 걸어오느라 올리버의 꼴은 말이 아니었으니.

얼굴과 손 등은 먼지와 때로 시커멨고, 옷 역시 땀과 먼지에 절여져 넝마와 다름없는 상태였다.

신발은 튼튼해 약간 해졌을 뿐이지만, 여하튼, 올리버의 모습은 반 거지나 다름없었다.

한참 동안의 침묵 후, 누군가 입을 열었다.

“오, 올리버 님? 도대체 무슨····?”

“란다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와야 할지 몰라서····. 그냥 걸어왔어요. 외길이라 헤매지는 않았고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대답. 그렇기에 아무도 따져 묻지 못했다.

가령, 조셉과 앤드루는 어디에다 두고 혼자 왔는지 같은····.

다들 본능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그때, 마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 일단. 좀 씻으시는 게 어떻겠어요? 올리버 님.”

“아···. 그게 좋겠죠?”

올리버가 자기 손등과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어오느라 상태가 영 아니었다.

이런 쪽으로 둔한 올리버가 보기에도 말이다.

올리버는 마리의 안내를 받아 샤워실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멈춰 서며 다른 상급, 중급, 하급, 임시제자에게 말했다.

“아, 맞다. 죄송한데 다들 바쁘시나요?”

제자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다 누군가 대답했다.

“아, 아뇨···. 딱히.”

“그럼, 빨리 씻고 올 테니, 다들 좀 모여주시겠어요? 한 명도 빼지 말고, 혹시, 다 같이 모이기 좋은 장소 있나요? 조용히?”

“제 생각에는 작업실이 좋을 거 같습니다.”

“아, 그럼, 마리 말대로 작업실에 좀 모여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며 올리버는 떠났다.

그 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

올리버의 부탁대로 작업실에는 정식제자뿐 아니라 임시제자까지 모두 모였다.

조셉이 없는 동안은 그가 패밀리의 주인이었으니. 허나, 그렇다 해도 찜찜함은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조셉을 만나러 간 그가 한참이 지난 후 돌아오다니.

아니, 거기까지는 상관없었다. 진짜, 문제는 홀로 돌아왔다는 것.

그렇기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지만, 상급제자와 중급제자는 저마다 모여 속닥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주인님은 도대체 어디로?”

“몰라, 혹시 또 여행을 떠나신 것 아닐까? 갑자기 떠나는 거 좋아하시잖아?”

“그럼, 앤드루 님은? 뭣보다 여행을 떠난다 해도 올리버만 그냥 걸어가게 보냈을 리가 없잖아?”

“그, 그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둘러 샤워를 마친 올리버가 나오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등에 가방을 짊어지고 나온 올리버.

가만 살펴보니 저 가방은 조셉을 만나러 갔을 때 가져간 돈 가방이었다.

실제로 안을 열어보니 무수한 지폐 다발이 있었다.

올리버는 탁자를 질질 끌고 오더니, 가방에 든 지폐를 우르르 쏟아냈다.

“·····!!!”

생전 처음 보는, 아니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볼 수도 없는 거금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리, 저 대신 이것 좀 정리해 주시겠어요? 차곡차곡 깔끔하게.”

“아···. 예, 알겠습니다.”

올리버의 부탁에 얼어붙은 마리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한데, 몇 분 저 좀 따라와 주시겠어요?”

그 말에 지폐 다발을 보고 얼어있던 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둘 올리버를 따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가방에서 쏟아진 것보다 더 많은 지폐 다발을 가져왔다.

“······!!!!!!”

다들 너무 충격을 받아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는데, 쏟아지는 지폐 다발만큼 마리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러기를 수차례. 이윽고 지폐 다발은 탁자를 메우다 못해 흘러넘치듯 쌓였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모두를 살펴봤다. 조셉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폐가 뭉치면 마력을 뿜는다더니, 다들 엄청난 탐욕과 두려움, 기대감 등등 이글거리는 감정을 품은 채 지폐 다발에서 눈을 못 뗐다.

한 상급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 이이, 이건 도대체····?”

“어····. 주인님 방에 있던 비밀 금고에서 가져온 겁니다.”

그러자 모두 헉-! 숨을 삼키며 경악했다.

패밀리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히 조셉의 소유물을 건드리지 않는 거였다.

특히, 서재의 책과 작업 도구, 돈 같은 것은 더 말이다.

실제로 이를 어긴 자들은 실수든 고의든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아, 아니!! 제정신입니까?! 주인님····! 금고의 돈을 가져온다니!! 미쳤어!”

그는 마치 저도 모르게 범죄에 말려든 사람처럼 몸을 털고 뒤로 물러났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 반응이 비슷했는데,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마리밖에 없었다.

올리버는 차분히 손을 들었다.

“다들 진정을 좀····.”

“진정?! 진정하라고! 주인님이 오면 우릴 다 죽일 수도 있어?! 알아!!”

“아뇨,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이미 돌아가셨거든요.”

“도대체 네가 어떻·····. 응?”

두려워하며 놀라던 이들은 갑자기 차가운 물에 맞은 것처럼 일제히 멈춰 섰다.

그리고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올리버는 사람들이 완전히 진정할 때까지 여유를 줄 요량으로 침묵하였는데,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상급제자 하나가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주인님이 죽다니. 누구 손에?”

“제 손에요···. 제가 죽였거든요.”

차분한 올리버의 대답. 모두가 주춤하며 뒤로 몰러 섰다.

반응은 제각기.

질 나쁜 농담을 들은 듯 인상을 찌푸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겁먹은 자도 있었고, 믿지 않는···. 아니, 부정하는 자도 있었다.

유일하게 마리의 눈만이 빛났다.

상급제자가 말했다.

“···. 거짓말.”

“거짓말 아닙니다. 진짭니다.”

“그럼, 증거를 보여줘. 네가 주인님을 죽였다는.”

“····. 증거가 필요하나요?”

“다, 당연하지! 이런 무지막지한 소릴 하는데, 증거를 안 챙겨왔다는 게 말이 돼?!”

“아아···. 아···! 맞네요.”

올리버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은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감정선이 한계에 다다른 건지 호흡이 가빠지며 식은땀을 흘렸다.

올리버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더니 대뜸 입을 열었다.

“···. 그래도 도와주신 분인데, 머리를 잘라와서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을까요? 잘린 머리 들고 다녀도 왠지 안 될 거 같고.”

“그럼, 왜 주인님을 살해한 건데!!”

결국, 감정이 한계에 다다른 상급제자가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당장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오직, 올리버. 그만이 차분하게 그를 대할 뿐이었다.

“그 점은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주인님을 죽이긴 싫었거든요. 도움도 받았고···. 가르침 받을 것도 많았는데.”

차분함 속에 약간 묻어난 아쉬움은 인간미보다는 이질적인 무언가 같아 듣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했다.

“하지만 믿어주세요. 어쩔 수 없었거든요.”

“왜 어쩔 수 없었던 거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마리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올리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절 죽이려고 했거든요. 정확히는 제물로 바치려고 한 거지만.”

“제···. 물요?”

“예, 악마에게 바친다던데. 이미, 앤드루 님도 바친 상태고, 제가 모르는 다른 사람도 많이 바친 것 같더라고요. 아, 주인님 스승님도 있을 거예요. 주인님이 자기가 바쳤다고 했거든요.”

몰아치는 끔찍한 진실은 더할 나위 없이 차분히 전해졌는데, 그러한 괴리감으로 인해 제자들은 충격을 넘어선 공포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기가 사람인 줄 알던 가축이 거울을 본 경우랄까?

그러던 중 누군가 힘없이 부정했다.

“····. 거, 거짓말이야. 주인님께서 왜?”

“강해지기 위해서 그런 거 같아요. 강한 제물을 바칠수록 더 강한 힘을 받아서····. 그래서 우릴 거둔-”

“-그럼, 더 말이 안 되잖아?! 스승님은 혼자서 와인햄으로 내려와 하나의 패밀리를 끝장내고, 홀로 이곳에 터를 세우신 분이야. 네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런 분을 네가 어떻게 이겨?”

“말씀대로 주인님은 강하고 저도 죽을 뻔했는데···. 운이 좀 좋았어요.”

잠시 고민한 올리버가 가장 적당한 대답이라는 듯 지껄였다.

참으로 한결같은 태도. 그러나 놀랍게도 그러한 태도였기에 마땅한 증거를 보여주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서서히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조셉은 죽은 거였다. 올리버 손에.

해일처럼 몰아치는 상황에 모두가 압도되며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할 때 올리버가 손뼉을 쳤다.

“그럼, 제가 다시 말 좀 해도 되겠습니까?”

침묵이 대답으로 돌아오자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일단 여길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은요. 공부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올리버가 서재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여기서 머물며 공부할 생각인데, 여러분이 좀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절 싫어하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몇몇이 움찔거렸다.

평범한 배려와 사려조차 올리버가 하니 이질적이고,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두렵고 소름 끼쳤다.

“이 돈은····. 주인님의 재산이지만, 더 이상 주인님께 필요한 게 아니니. 혹시, 저랑 같이 있기 싫으신 분들은 자기 몫을 챙겨서 떠나시면 어떨까요?”

“······. 예?!”

모두가 충격받은 듯 되물었다. 올리버가 놀라며 대답했다.

“제가 떠나긴 좀 난감해서····. 서재에 책이 너무 많거든요. 무리한 요구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돈을 그냥 준다는 거···. 진심입니까?”

“어····. 예. 어차피 주인님이 없으니. 우리가 나눠 가지면 되지 않나요? 아닌가?”

묘하게 어긋난 대화의 초점.

제자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한때 조셉과 같은 강력한 흑마법사가 돼 자신만의 패밀리를 꾸려 떵떵거리는 게 꿈이었다.

힘, 돈, 권력···. 형태만 달랐다 뿐 그 근본은 비슷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것을 늘릴 생각만 할 뿐 나눌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조셉을 쓰러뜨린 올리버의 제안은 충격이었다. 어쩌면 불순분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작일지도.

그러던 중 마리가 손을 들었다.

“아, 마리는 가고 싶나요? 어디 보자 사람이 하나, 둘, 셋····.”

“아뇨, 올리버 님. 질문할 게 있어서 손을 든 겁니다.”

“아, 그래요? 뭐죠?”

“만약, 남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 글쎄요?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주인님이···. 아니, 조셉이 죽었으니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거에요. 애당초, 이 평화는 조셉의 힘으로 유지되는 면이 있었거든요.”

“그런가요?”

“예, 분명 스승님이 사라진 걸 알게 되면 누구든 찔러 볼 거예요. 잘못하면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요.”

“그건···. 난감하겠네요.”

“예, 난감하죠. 그런 난감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셉을 쓰러뜨린 올리버 님께서 패밀리의 새 주인이 되셔야 해요.”

“제가요?”

“예.”

놀란 올리버와 단호한 마리.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올리버는 난감한 듯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하지만···. 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요?”

“조직을 이끌고,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돼요. 조셉처럼요. 만약, 서재에서 책을 마음껏 편히 읽고 싶으시다면 저희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해요.”

올리버는 마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렇다 할 위협은 아니었지만, 당사자나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위압적이었다.

잠시 후, 올리버가 대답했다.

“····. 뭐, 꼭 그래야 하는 거라면. 뭐····.”

하아····. 마리가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올리버로서는 그녀가 왜 이토록 기뻐하는지 몰랐다.

피터가 끼어들었다.

“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될지 알 거 같습니다.”

“잠시만요.”

올리버가 손을 들어 피터의 말을 멈춘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어쩌시겠어요? 여기 남으실래요? 아니면, 떠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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