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조셉 (2)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조셉을 따라 아침 식사를 한 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아, 물론 돈이 든 가방도 챙겼다.
란다는 아침에도 사람들이 많았으며, 사람 못지않게 자동차도 많았다.
“여긴 사람이 진짜 많군요.”
“그렇지.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지. 자, 따라와라.”
조셉은 올리버를 데리고 도로로 다가갔다.
손을 들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딱정벌레처럼 생긴 노란색 차가 멈췄다.
차 위에는 삼각형 표식이 있었고, 거기에 돕스 택시 조합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타라.”
조셉이 문을 열며 말했다.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차에 탔고, 조셉이 뒤이어 타 차 문을 닫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깔끔한 유니폼 차림의 운전사가 모자를 살짝 들며 물었다.
“X 구역···. 입구까지만 가주게.”
“X 구역 말씀입니까·····? 예,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의 얼굴에는 한순간 어둠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묻지 않고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우웅거리며 차가 움직이자 바깥 풍경이 빠르게 변했는데, 올리버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조셉에게 질문했다.
“주인님. 죄송하지만, 어디 가는 것인지?”
“어디긴 어디야 앤드루를 만나러 가지·····. 꽤 흥미로운 곳일 거다.”
***
조셉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갔는데, 크고 길쭉하던 건물은 어느새 땅딸막한 건물로 바뀌더니, 올리버가 보기에도 낙후된 거리로 변해 있었다.
처음 차를 탔던 데 보다 훨씬 멀리 이동한 것인데,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사람의 수가 줄기는커녕 더욱 늘었다는 거였다.
흡사, 바퀴벌레처럼 말이다.
차가 멈췄다. 그와 함께 유니폼을 입은 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정중히 말했다.
“손님, X 구역 입구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이상은 갈 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이건 택시비고 이건 개인적인 수고비일세.”
조셉은 택시비와 별도로 적잖은 돈뭉치를 줬다.
택시 운전사는 모자를 들어 한 번 감사를 표하고는 올리버와 조셉이 내리자마자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다.
올리버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거리는 한적해 보이지만 곳곳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하나 같이 먹이를 노리듯 교활하면서도 악의에 찬 감정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덮칠 기세로 말이다.
“주인님?”
“왜 그러냐?”
“혹시 이곳도 란다에 포함됩니까?”
“뭐, 그렇지. 란다의 높으신 분들은 신경도 안 쓰는 곳이지만, 이곳도 란다이긴 하지····. 왜 그러냐?”
“아, 다름이 아니라 신기해서 여쭤봤습니다.”
조셉이 야릇하게 웃었다.
“뭐가 신기하지?”
“같은 도시인데, 감정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서.”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여긴 X 구역이니.”
“X····. 구역요?”
“가면서 이야기해주마. 일단, 움직이자.”
조셉이 그 말을 하곤 걷기 시작했고, 올리버도 그를 따라 걸었다.
어설픈 시멘트 건물과 판잣집이 얼기설기 섞여 있는 이 거리는 미로처럼 복잡하였는데, 곳곳에 욕설과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허나,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더욱 깊숙이 들어가니 단순 낙서를 넘어 피로 그린 불경한 낙서도 보였고, 동물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토템도 보였다.
“저건····. 뭐죠?”
올리버가 한 샛길에 세워진 토템을 보며 말했다.
새와 쥐의 두개골을 엮어 만든 것으로 어떠한 영역을 표시한 거 같았다.
“글쎄···. 나도 못 보던 건데, 아마, 별 볼 일 없는 주술사 또는 흑마법사가 만든 걸 거다. 아니면 거지들이 위협용으로 만든 거거나.”
“····. 혹시 여길 잘 아십니까?”
“당연하지. 사업차 견문차 몇 번 방문했으니. 뭣보다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거든.”
“아····.”
처음 듣는 이야기에 올리버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에는 크게 26개 구역이 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A, B, C로 구역을 나누지. 자, 여기서 질문. 어느 구역일수록 중요할까?”
“····. 글쎄요?”
“아, 아쉽군. 조금만 눈치가 있어도 바로 알아맞힐 수 있는 문제인데. 당연히 앞의 순서인 A 구역일수록 중요하고, 치안도 좋은 편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래.”
올리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Z, Y, X, W 같은 뒷자리 구역은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 네 생각에는 어떠냐?”
올리버는 주변을 둘러봤다.
깊숙이 갈수록 거리는 낙후되고,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점점 위험해지는 감정이었다.
“좀····. 그런 거 같습니다.”
“하하! 좀 그런 거 같아? 하긴, 뭐든지 주관적인 법이니. 그럴 수도 있지.”
“·····, 그럼 여기서 주인님의 스승님을 만나신 겁니까?”
“응?”
조셉의 감정이 움찔거렸다. 예상치 못한 질문인 듯.
“음, 뭐, 그렇지. 그분도 여기서 흑마법사로 지내셨거든.”
“란다에도 흑마법사가 있습니까?”
“란다에도 흑마법사가 있냐고? 멍청한 질문이구나. 오히려 와인햄보다 이쪽이 더 많다. 와인햄에는 작은 흑마법사 조직까지 합쳐봤자 한 자릿수지만, 여기는 굵직한 조직만 두 자리, 자잘한 거까지 합치면 세 자릿수가 된다. 사실, 흑마법사 조직이 몇 개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든.”
호오····. 새로운 사실에 올리버가 흥미를 느꼈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이곳 란다는 도시의 규모나 발전, 사람의 수 등 모든 면에서 와인햄을 뛰어넘었으니.
오히려 흑마법사가 적으면 그게 이상한 일일 거다.
올리버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달으며 새삼 세상이 넓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이 당연한 사실은 올리버에게 큰 기쁨을 줬다.
그만큼 배울 것도 많고, 탐구할 것도 많다는 거였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올리버는 더 많은 정보를 알기 위해 질문했다.
“그런데 주인님께서 어째서 와인햄으로 내려오신 거지요?”
“글쎄····? 이런 말 하긴 솔직히 창피하지만, 이곳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 내려갔다.”
“예?”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란다에는 수많은 흑마법사가 있고, 그 탓에 매일매일 저들끼리 싸운다. 하루에도 수많은 흑마법사 조직이 생기고, 또 사라지지. 나 역시 필사적인 노력 끝에 흑마법사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너무 치열했어. 그래서 난 고민했다. 계속 이곳에 버틸지, 아니면 힘을 기르기 위해 일단 떠날지.”
“그렇군요.”
“겁쟁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뇨, 똑똑하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렇구나····. 고맙다. 이제 멈춰라.”
조셉이 갑자기 멈추며 말했다.
조셉이 멈춘 곳은 담장이 쳐진 한 건물 앞으로, 가만 살펴보니 병원이었던 건물 같았다.
“여기 앤드루가 있다.”
“아····. 폐쇄된 병원처럼 보이는데, 운영되고 있는 겁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폐쇄된 건물은 맞지만, 다른 사람이 운용하고 있지. 자, 따라오너라.”
***
올리버는 조셉을 따라 담장 뒤쪽에 마련된 쪽문으로 들어갔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병원 쪽으로 가던 올리버를 조셉이 불러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병원은 저쪽이····?”
“병원은 문 닫았다. 실제로 운용하는 곳은 저쪽 창고 지하지.”
조셉은 병원 뒤쪽에 있는 커다란 창고를 가리켰다.
올리버는 조셉을 따라 그쪽으로 갔는데, 창고 옆에는 지하로 통하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여기 앤드루 님이 치료받고 있다고요?”
“그래, 재밌지? 흑마법사가 폐병원에서 사람을 치료한다는 게.”
“예, 조금 재밌습니다.”
끼이익――――
조셉이 묵직한 지하실 문을 열자 사방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리버가 먼저 들어가고, 조셉이 뒤따라 들어갔는데, 빛이 들어오지 않아 사방이 어두웠다.
허나, 그것도 잠시. 조셉이 손을 튕기자 벽에 걸어둔 횃불이 밝혀졌다.
“····. 그런데 신기하네요.”
“···. 무엇이?”
“흑마법으로 앤드루 님을 치료하는 게요. 전 주인님이 힘들다고 해서 흡마법으로 치료하는 게 불가능할 줄 알았거든요.”
“하····. 그것이 신기하더냐?”
“예. 흑마법사 조직이라면 다 저희랑 비슷한 줄 알았거든요.”
“뭐, 우리가 보편적인 형태인 건 맞다. 하지만, 흑마법의 영역은 넓고도 깊고, 술사에 성향과 재능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습니까?”
“그래.”
올리버와 조셉을 외길 복도를 걸으며 계속해 대화를 나눴다.
“사실, 경제적 효율성으로 보면 필거렛이나 생명력을 이용한 영양제를 만드는 게 가장 좋긴 하다. 수익도 높고, 의외로 위험도 적지.”
“위험요?”
“그래, 위험. 뭐가 됐던 사람을 재료로 하는데, 정부 입장에서 그냥 내버려 둘리 없지 않으냐? 일단, 모두 불법이다. 우린 단속 대상이고···. 그렇다고 죽자 살자 우릴 쫓지는 않지.”
“이유가 뭐죠?”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만 뽑으라면 그들도 수요자거든. 필거렛은 후유증이나 중독이 담배 수준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생명력을 이용한 영양제는 없어서 못 먹지····. 형식적인 감시만 할 뿐, 근절시킬 생각은 없다.”
호오····. 예상치 못한 말에 올리버는 흥미를 보였다.
애당초 필거렛이나 영양제가 불법일 거란 생각을 못 했지만, 거기에 그런 이유로 형식적인 감시만 이루어지다니.
세상사도 흑마법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그러던 중 복도 한쪽에 널브러진 해골이 보였다. 부패한 건지 겉에는 검붉은 살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어딜 가도 남다른 성격을 가진 이들도 있는 법. 효율성이나, 안전, 합리와 거리가 있는 자들도 있지. 그들은 단순히 약이나 영양제를 만들지 않고 다른 업종에 종사하기도 한다.”
“그렇군요. 혹시, 어떤 게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올리버가 점점 늘어나는 해골을 보며 말했다.
“글쎄, 일단, 여기 있는 흑마법사처럼 사람을 치료하는 이들이 있지. 생명력과 뒤틀린 조작, 질병 계열 흑마법을 사용해 말이다. 의외로 고위층 고객이 많은 편이지. 그 덕분에 수익도 높고, 경우에 따라 우리보다 안전하기도 하다.”
“그렇군요. 또 다른 건 있나요?”
이제 해골을 넘어 반쯤 부패한 시체 무더기가 나왔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것 같았는데,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전투를 좋아해 용병이나, 해결사로 사는 이들도 있지. 실력만 있다면 수입도 안전도 괜찮은 편이고, 거기다 실력도 빠르게 기를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실전이 가장 좋은 수업이니.”
“그렇군요.”
“자, 여기서 우측으로 돌아라.”
조셉의 말에 따라 올리버가 우측 복도로 빠졌다. 좀 더 가보니 커다란 방이 나왔다.
방 주변에는 적잖은 시체가 쌓여 있었고, 모두 이곳에서 살해당했다는 걸 증명하듯 벽과 바닥, 천장에 갈색으로 마른 피가 널려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 맞은편에 보이는 제단.
붉은 피로 물든 재단에는 세 개의 직사각형과 아홉 개의 동그라미가 새겨져 있었다.
“그 외에는 더 없나요?”
“무엇이 말이냐?”
“의술, 용병 말고도 다르게 활동하는 흑마법사요.”
“····. 종교를 만드는 이들도 있지.”
“종교요?”
“그래.”
올리버가 제단에 다가가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악마를 위한 종교를 만드는 거지, 해당 악마를 숭배하고, 공물을 바치는····. 앞의 설명한 예시와 다르게 매우 어려우면서도, 몹시도 위험하지.”
“딱히 좋아 보이지 않은데, 왜 그런 걸 하는 거죠?”
올리버가 재단 위에 누운 시체를 확인하며 물었다.
시체는 끔찍하게도 허리가 잘려있었다.
“위험한 만큼 그 열매는 달콤하거든. 악마는 사악한 존재긴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축복도 내려주지.”
올리버가 제단 위에 누운 시체····. 아니, 앤드루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혹시 그래서 죽이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