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4화 (24/633)

24. 조셉 (1)

트럭에서 내린 올리버는 편지에 적혀져 있던 대로, 노란 외벽을 따라 쭉 걸었다.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었는데, 잠시 후, 거대한 광장과 그 가운데 세워진 분수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분수 가운데는 아기 천사상이 오줌을 싸고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벤치와 핫도그 부스, 아이스크림 부스가 있었다.

방문객은 노인과 여성, 아이들로 위협한 인물은 없어 보였다.

주변을 다 살핀 후 올리버는 편지에 적혀있던 대로 3번 출구 근처로 갔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는데, 확실히 다시 봐도 와인햄과 많이 달라 보였다.

단순히 사람이 많거나, 복색이 화려한 게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감정 상태도 달랐다.

와인햄에서는 대부분 초조, 우울, 분노, 슬픔,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주를 이뤘는데,

최소한 이곳 광장에서만큼은 사람들이 마음에 여유와 평온, 친절과 자비 등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이 있었다.

때때로 그것이 심해 우월감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훨씬 밝았다.

올리버는 궁금했다.

이곳과 와인햄의 차이가 무엇인지.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다른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반대편이었다.

그곳은 와인햄보다 더욱 부정적인 감정을 뿜고 있었다.

현재 올리버의 눈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와인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살기등등한 감정이 저 멀리서 뿜어지고 있었다.

비록 거리가 있다곤 하나 분명 같은 도시인데, 이토록 명암차이가 심하다니····. 신기하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오셨습니까?”

올리버가 도시를 관찰하다 말고 한쪽으로 몸을 돌려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앞에는 번쩍 빛이 나는 실크햇과 망토를 두른 조셉이 서 있었다.

란다 사람들과 아주 똑같았는데, 아마 올리버가 사람을 감정이 아닌 외모로 구분했다면 쉬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였다.

조셉이 감탄했다.

“눈썰미가 제법이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돈은?”

올리버가 등 뒤에 단단히 맨 가방을 탁탁 때렸다.

조셉은 후후 웃더니 올리버를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원래는 이런 돈 심부름을 안 시키는 주의인데, 이번은 상황이 특별해서.”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하나 드려도 될지요?”

“뭐냐?”

“앤드루 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아···. 지금 치료받고 있다. 합법은 아니고, 돈도 많이 요구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흑마법사에게서.”

“아아···. 그렇군요.”

올리버는 대답하며 조셉의 감정을 살펴봤다. 거짓말을 하듯 비틀거리면서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처음 보는 그 희귀한 광경에 올리버는 미간을 찌푸렸는데, 조셉은 이에 맞춰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호텔로 간다.”

“호텔···. 말씀입니까?”

“그래, 호텔. 아주 멋진 곳이지.”

***

조셉의 말은 비유나 은유가 아니었다.

그는 광장 근처에 마련된 거대한 호텔로 갔다.

호텔은 크고 화려했으며, 부유해 보이는 이들이 많았는데, 정문 위에 블루 문(Blue moon 이라는 글귀가 고풍스럽게 적혀있었다.

조셉은 이곳이 익숙해 보였는데, 실제로 호텔 문지기, 벨보이 등이 안면이 있는지 조셉을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존 씨.”

“안녕하십니까. 존 씨.”

“그래, 그래. 반갑네. 반가워.”

올리버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는데, 조셉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놀랐느냐?”

“예?”

“내가 이런 값비싼 호텔에 익숙한 게 놀랐냐고 물었다.”

“아뇨····. 딱히.”

“하, 그러냐? 보통을 놀라던데. 내가 여기 익숙한 이유는 제자를 찾을 때 보통 란다를 먼저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묵지. 왜 여기 묵는지 아느냐?”

“어····. 멋져서요?”

“하하하,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완전히 정답은 아니야. 내 어릴 적 추억이 있어서 그렇다.”

“···· 추억 말씀입니까?”

“그래, 추억····. 음, 잠깐만 멈춰라.”

조셉이 한 철제문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철제문 위에는 커다란 바늘과 숫자가 박혀 있었는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이 6에서 5가 되더니 이윽고 4, 3, 2, 1로 맞춰졌다.

딩동―

철제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작은 공간이 나왔고, 그곳엔 한 벨보이가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몇 층으로 모실까요?”

“3층으로 부탁하지. 잭슨. 장갑이 멋있군. 새로 받은 건가?”

“예, 그렇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조셉이 올리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벨보이가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공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엘리베이터라는 거다.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지. 잭슨?”

“예, 물론이고 말고요.”

얼마 가지 않아 공간이 멈춰 서더니, 문이 열렸다.

조셉은 품 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벨보이에게 준 후 올리버를 데리고 나와 한 객실로 들어섰다.

정신이 없었는데,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조셉이 말했다.

“일단, 심부름을 잘했는지 확인부터 봐야지? 가방을 여기 올려다 놓아라.”

탁자 위를 탁탁 두들기는 조셉.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가방을 벗어 근처 탁자 위에 올렸다.

조셉은 가방을 열어 돈다발을 하나씩 꺼내 탁자 위에 쌓기 시작했다.

“···.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10만란다권 30다발. 딱 정확하게 가져왔구나.”

“예, 주인님.”

“수고했다. 이런 심부름을 맡길 수 있는 애들이 얼마 없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지폐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잔뜩 쌓이면 모두 바보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거든. 불행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올리버는 이해가 안 돼 고개를 갸웃거렸다.

“······. 무슨 흑마법 같은 건가요?”

“흑마법? 하····. 뭐, 비슷하긴 하지.”

올리버는 다시 고개를 갸웃댔다. 대화의 초점이 미묘하게 어긋났는데, 그렇다고 굳이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올리버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그럼, 제 일은 끝난 건가요?”

가방에 돈을 도로 넣는 조셉이 물었다.

“일단은? 왜?”

“그럼, 이만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왜? 왜 벌써 돌아가려고 하느냐?”

“어····. 할 일이 없으면 이만 물러나는 게 주인님께서 편하실 것 같아서. 혹시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그래. 당연히 있지. 내일 앤드루를 데리러 갈 건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아, 그러시다면 남도록 하겠습니다.”

“착하구나····. 하지만 그 전에 도와줘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말씀하시지요.”

“오늘 나랑 같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

***

그 말 역시 비유나 은유가 아니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조셉은 올리버에게 괜찮은 양복을 하나 사주더니 호텔에 마련된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바깥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같이 앉았다.

“그렇게 차려입으니 너도 꽤 봐줄 만하구나. 불편하진 않으냐?”

“예.”

처음 입은 양복을 살짝 만져보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실제로 그리 불편하지 않았는데, 옷에 맞춰 자세가 교정되는 기분이었다.

“그거 다행이군···. 아, 늘 먹던 거로 부탁하네. 조이.”

웨이트에게 주문한 뒤 조셉은 다시 올리버를 쳐다봤다.

그 둘은 말없이 바라봤는데,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결국 조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맙소사····.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느냐?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조잘조잘 많이 묻더니.”

“아····. 죄송합니다. 그때는 제가 너무 흥분해서.”

“아니, 아니. 그때를 혼내는 게 아니라, 할 말이 없냐고 물어보는 거다. 보통 나와 단둘이 되면 무슨 말이든 하거든. 궁금한 걸 묻거나, 아니면 아부라도····.”

올리버는 과거 광산 시절 감독관에게 아부하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오늘 참····. 멋지십니다?”

“돌겠군. 정말 아부하라는 말은 아니야. 거기다 끝에 왜 물음표를 붙이느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하···. 정말,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나? 가령, 널 데려왔을 때 왜 그냥 임시제자로 버려뒀는지?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뒤통수 맞은 격이지 않으냐?”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 그래, 아부는 그렇게 하는 거야.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너한테 제대로 수업을 해준 적이 별로 없군. 일이 오죽 많았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거고. 대답해 봐라. 흑마법사의 최대 소양이 뭐라고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올리버는 생각에 빠졌다.

최대 소양이라····. 상대적으로 흑마법이 쉬운 올리버에게 어려운 질문이었다.

딱-!

조셉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바로, 열망이다. 이유는 상관없어. 돈이든, 힘이든 흑마법을 원하는 열망이지. 뭐든지 바칠 수 있는 열망. 그것이 흑마법의 최대 소양이다.”

“···. 그래서 마리와 피터를 거둬들인 겁니까?”

“왜? 무슨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나?”

“예·····. 뭐, 우연히 듣게 된 거지만요.”

조셉은 생각에 빠진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기억나는군. 마리는 염색공장 오물이 쏟아지는 곳에서 살았지. 처음 만났을 때 겁탈당할 뻔했던가?”

“겁탈요?”

“그래, 동네 양아치들에게. 때마침 지나가던 중이라 내가 구해줬지. 그 와중에도 눈에 독기를 품는 게 인상적이었거든. 재능은 별로였지만, 힘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 커서 거둬들였지.”

“아····. 그렇군요.”

올리버는 무감각하게 말했다.

조셉은 추억에 빠진 듯 이어 말했다.

“피터는 단칸방에 자기 가족 말고도 세 가족과 같아 살았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 덕분에 성공에 대한 갈망이 컸고, 재능도 좀 있어서 거둬들였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다 질문했다.

“그럼····. 다른 제자분들도 비슷하나요?”

“그렇지. 간절할수록 흑마법을 배우는 데 열성적이니, 그것에만 몰두할 수 있지···. 하지만 넌 그게 부족했다.”

“예?”

“흑마법에 대한 열망 말이다. 재미있고, 배우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열망은 없었어. 뭐라고 할까···. 이게 아니면 길이 없다 뭐 그런 간절한 맛이 부족했어. 그래서 임시제자로 널 넣었다.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그런 간절함이 생길까 해. 뭐, 딱히 생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열심히 배울 겁니다.”

“그럼, 앤드루가 돌아가 다시 수제자 자리를 내놓으라면 내놓을 생각이냐?”

“뭐, 전 흑마법만 배우면 되니·····.”

“그게 안 된다는 거다. 흑마법사는 곧 힘. 힘은 권력. 쉽사리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자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이내 먹히고 만다.”

“····. 주인님께선 그런 식으로 흑마법사가 되셨습니까?”

“응?”

“아,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질문해서····. 다만, 궁금해.”

“내가 어쩌다 흑마법사가 됐는지 물었느냐?”

“예. 혹시 실수한 거라면 용서해주십시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실, 나도 원래는 주인님에게 거둬지며 흑마법사가 됐지.”

“아, 그러십니까?”

“그래. 지금 제자를 구하는 방식은 주인님에게서 배운 거지. 하지만 처음 거둬졌을 때만 하더라도 난 그리 열성적인 제자는 아니었다. 거리에서 구걸이나 도둑질 안 하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했지.”

“아, 그럼, 어떻게····.”

“보다 넓은 세상을 보게 됐거든. 바로, 이 호텔 말이다.”

조셉이 과장되게 양손을 펼쳐 호텔을 가리켰다.

“주인님 일을 돕는 와중에 이 호텔에 방문했고, 난 세상에 이리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지. 하지만 슬픈 사실도 한가지 알게 됐다.”

“그게 무엇인지?”

“이대로 살면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세상을 맛보지 못할 거란 걸····. 그래서 주인님처럼 유능한 흑마법사가 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노력했고. 짜잔, 이렇게 흑마법사가 됐지.”

“그럼, 그때, 주인님은 흑마법에 대한 열망이 생기신 거군요.”

“그렇지! 정답이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뛰어난 흑마법사가 되기로 했지. 실제로, 신이 도와주셨고.”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신이 도와줘 흑마법사가 됐다니. 그런데 어떻게?

“····. 괜찮으시다면 주인님의 주인님은 어떻게 주인님을 가르쳐줬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조셉의 감정이 움찔거리며 빛났다. 마치, 아픈 곳을 찔린 듯 말이다.

“그건·····.”

“손님 기다리셨습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때마침 나타난 웨이터. 그는 능숙하게 접시를 내려놓았다.

새하얀 접시 위에는 물감 같은 소스를 끼얹은 하얀 생선살 요리가 담겨 있었는데, 냄새가 몹시도 좋았다.

조셉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하자, 배고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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