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2화 (22/633)

22. 호출 (1)

약사는 지상에 부하들을 남겨두고 홀로 지하로 내려왔다.

아, 정정···. 혼자는 아니었다. 조셉의 대리인인 올리버가 안내를 맡아주었으니.

때마침 포장을 마친 필거렛 상자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음, 말대로 생산이 순조로운 거 같군. 생각보다 잘 관리하고 있구만.”

“다른 분들이 열심히 해주셔서 그렇습니다.”

“다른 분? 아, 다른 제자들 말인가?”

“예.”

약사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신기하군. 흑마법사 중에 자기 부하들을 다른 분이라 칭하는 친구는 못 봤는데. 예의가 바르군.”

올리버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예의라기보다는 일종의 버릇에 가까운 것이니. 그리고 본인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약사는 필거렛이 든 담뱃갑 하나 꺼내 안을 열어보았다.

시중에 파는 일반 담배와 똑같이 생긴 필거렛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 킁.”

실룩이는 약사의 코와 차갑게 빛나는 눈.

올리버는 그 광경을 말없이 관찰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냄새로 필거렛의 품질을 확인하다니. 약간 흥미로웠다.

“음, 음. 이번에도 꽤 괜찮은 물건이군····. 란다에서도 그럭저럭 먹히겠어. 혹시, 이 담배가 어디 팔리는지 아나?”

“····. 약사님과 거래하는 다른 약국이나 병원에 판다고 들었습니다.”

“잘 아는군. 맞아, 란다의 큰 병원이나 약국에 다른 약들과 함께 섞어 납품하지. 자네들 물건은 거기서도 통할 정도로 질이 괜찮은 편이거든. 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고소득 화이트칼라, 자본가, 예술가들이 사지. 웃기지 않나? 그쪽 사람들은 자네들을 사회의 암으로 보는데, 자네들 상품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네.”

“그런가요?”

올리버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진짜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 올리버의 반응을 보고 약사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반응이 건조하군. 혹시 궁금한 거 없나? 이 약을 내가 어떻게 유통하는지?”

“····. 다른 걸 여쭤보고 싶은데,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다른 거? 말해 보게.”

“냄새를 맡고 품질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렇네. 난 자네들처럼 눈이 좋지 못하거든.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얼추 품질은 알 수 있네. 약을 취급하는 게 생업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호오····. 올리버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흥미로웠다.

냄새로 필거렛의 품질을 구분한 다라. 당장은 필요 없어도 가지고 싶은 기술이었다.

어쩌면 감정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생각을 눈치챘는지 약사가 물었다.

“흥미 있나?”

“···. 예.”

“가르쳐 줄까? 우리 직원들 몇몇도 할 줄 알거든.”

‘그럼 가르쳐 주세요.’란 말이 턱밑에서 멈췄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조셉을 허락을 먼저 구하는 게 순서인 듯했다.

약사가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만약, 조셉에게 허락을 구하면 내 가르쳐주지. 진짜로.”

“감사합니다.”

“대신,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나?”

“예?”

“나만 호의를 베풀면 불공평하잖나? 주고받는 게 세상사 규칙인데.”

“아····. 그럼 제가 뭘 대답하면 될지?”

약사가 필거렛을 들어 보였다.

“이 제품이 훌륭한 거 같나? 자네가 볼 때 솔직히?”

약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의뭉스럽게 비틀거리던 감정은 작게 요동쳤다.

“····. 예, 주인님의 작품이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약사님께서도 괜찮은 물건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잖습니까?”

“아, 그러긴 했지····. 하지만, 사업가로서 더 좋은 제품을 취급하고 싶기도 하거든. 특히, 근래에 이쪽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서.”

“아····. 제가 스승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안 그래도 되네.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어쨌건 자네가 보기에는 훌륭한 물건이라고?”

“뭐···. 예.”

“알았네···.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제품 생산도 얼추 확인했으니 더이상 여기 있을 필요는 없지. 만나서 반가웠네.”

약사는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 악수를 청한 것은 이번의 처음이었는데, 올리버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 맞잡았다.

약사는 중년 남성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네. 다음에 또 보지.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하게. 내 능력이 되는 데면 도와줄 테니.”

올리버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기억하겠습니다.”

***

약사가 떠난 후, 다시 평소와 같은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하고, 하급 중급 상급제자가 합심해 필거렛을 만들었다.

필거렛 생산은 예상대로 차질없이 끝마칠 수 있었는데, 미리 만들어놓은 생명 영양제와 함께 포장한 후 약사 쪽에 납품했다.

이것으로 조셉이 맡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사히 끝난 셈.

이후로는 평소와 같이 지내며 조셉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임시 제자들은 고기를 갈아 소시지를 만들고, 하급 중급 상급 제자들은 각자 독학으로 흑마법을 공부했다.

올리버가 보기에는 매우 방만하고 비효율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슨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개의치는 않았다.

무엇보다 올리버도 자기 할 일이 있었고 말이다.

“음·······!”

올리버가 일기를 살피다 뭔가를 발견한 듯 신음소리를 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올리버 님?”

“드디어 찾은 것 같아서요.”

“예?”

“전격 마법사와 우리 차이점이요. 둘 다 불우한 과거와 더 나은 삶을 바란 건 맞지만. 마법사는 다른 목표가 하나 더 있네요.”

“그게 뭐죠?”

“마법사가 양자로 거둬진 가문에 쫓겨난 이후, 성공을 목표로 했지만, 그 이유는 자기 혼자 성공해 가문에 이를 증명하려는 거였어요. 자기가 더 나았다는. 그리고 이름이····. 레이첼? 레이첼이란 여자한테 다시 고백하기 위해서라네요.”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일기장의 한 문단을 가리켰다.

레이첼이란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숨기려고 했지만, 그녀에 대한 강한 애정···. 애정을 넘은 집착이 엿보였다.

올리버는 단순한 성공을 뛰어넘는 특별한 목적이 전격 마법사가 보여준 빛의 근원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봤다.

단순한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이유,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덕분에 그토록 아름다운 빛을 뿜은 게 아닌가라고.

올리버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며 수많은 자문자답을 했다. 그때, 마리가 질문했다.

“꽤····. 인상이 깊으셨나 보네요?”

“예?”

“전격 마법사가 보여준 빛이라는 거요···. 계속 찾으시는 거 보니.”

올리버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예,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마리의 표정이 미세하게 실룩댔다.

그녀의 감정에서 질투라는 감정이 살짝 피어올랐는데, 올리버로서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솔직히 관심도 없었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 그래도 이리 느긋하게 있을 수 있을 때가 흔치 않은데, 가끔은 서재에 들어가 흑마법도 공부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서재는 수제자만 이용할 수 있는데, 저는 수제자가 아니잖아요? 더욱이 여행 중일 때는 수제자도 못 들어가고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앤드루를 비롯한 일부 상급제자들은 종종 몰래 들어가기도 했어요. 어차피 주인님도 안 계시니 괜찮지 않겠어요?”

마리의 말은 썩 틀리지 않았다. 애당초 제대로 교육해주지 않는 패밀리의 특성상 차라리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든 지식을 축적하는 게 이익이었다.

그러나 올리버의 반응은 영 아니었다.

“음····. 별로요. 규칙은 규칙이니까. 뭣보다 지금은 그 빛이 더 관심이 가고.”

단호한 말투와 눈동자. 마리는 죄를 지은 듯 눈을 깔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아뇨···. 뭐. 그런데 질문하나 해도 돼요?”

“아, 예. 뭐든지.”

“쉬는 시간인데, 여기 왜 있어요?”

올리버가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말이다.

개인정비 시간에는 혼자 쉬거나, 공부하는 게 보통인데, 마리는 근래 연습 때 말고도 달라붙더니, 이제는 거의 매일 올리버의 곁을 지켰다.

“호, 혹시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돕기 위해서····. 올리버 님 덕분에 이렇게 정식 제자가 됐는데, 뭐라도 힘이 돼 드리고 싶어서····. 혹시 방해되나요?”

마리는 어미를 바라보는 아이처럼 갈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올리버는 그녀가 자신을 보는 애절한 감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왜 이러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 마리의 마음이 불안으로 흔들릴 때 올리버가 대답했다.

“별로요. 원하시면 계속 계세요.”

그러자 마리가 기쁘게 미소지었다. 마치, 버려질 뻔하다가, 버려지지 않은 아이처럼.

올리버는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려 다시 일기를 읽고,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전격 마법사가 죽을 때 보여준 아름다운 빛의 근원을 찾아서 말이다.

올리버의 그러한 관심과 탐구욕을 보면 흡사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을 연상케 했는데.

마리는 혹시나 해 입을 열었다.

“저기, 올리버 님?”

“예?”

“혹시 제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마리 이야기요?”

“예, 제 이야기···. 저번에 약간 말씀드린 적 있는데···.”

마리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올리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확실히 예쁘긴 했지···. 허나, 그것도 옛말.

마법사에게서 본 빛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떨어졌다.

“말씀하기 싫은 거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혹시 도움이 되실지 모르니···.”

“아뇨, 괜찮습니다.”

올리버는 거절했다. 당장 관심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마리는 다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러던 중 똑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올리버 님?”

“뭡니까?”

일기를 읽고, 이론을 세우던 올리버가 물었다.

“주인님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올리버 님에게 말이죠.”

“·····. 예?”

올리버가 하던 일을 멈추고 되물었다. 편지라니?

***

올리버는 방금 도착한 편지 봉투를 받아 살펴보았다.

테두리에 파란색 줄이 그어진 편지 봉투는 우측 상단에 왕관을 쓴 여자가 새겨진 우표가 붙여져 있었고.

그 밑에 <위대한 왕국 우체국>이라는 로고가 박혀있었다.

편지라는 걸 생전 받아 본 적이 없는 올리버는 잠시 편지 봉투를 관찰하다가 부스럭부스럭 뜯어 내용물을 꺼내 읽어보았다.

“·····.”

“····. 저기 무슨 일이신지?”

편지를 가져다준 상급제자가 물어보았다.

“잠시만요.”

올리버는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말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올리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라는 데요?”

“예?”

“앤드루 님 치료비가 부족하다고 저더러 돈을 챙겨서 란다로 오라는 데요? 주인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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