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휴식? (2)
올리버는 기계적으로 눈을 떴다.
시계를 바라보니 평소와 같은 시간대.
다른 점이라면 상급제자용 개인실이라 주변에 다른 이들이 없었다는 거였다.
쾌적하고, 조용해 패밀리원 모두가 꿈꾸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올리버는 이 방에서 그리 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더 따뜻하고, 생활하기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올리버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저 상급제자가 됐다니 규칙에 맞춰 이곳에 머무는 것뿐.
가끔은 여럿이서 살던 생활관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그곳에서는 일어나자마자 여러 감정을 엿볼 수 있어 심심하진 않았는데·····. 아니, 정정하겠다.
며칠 전까지는 이러한 아쉬움이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니.
눈에 힘을 주자, 벽을 넘어 다른 방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희미하게나마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눈이 더 강해진 것은 마법사와의 전투를 치르고 돌아와 며칠 푹 쉰 뒤부터인데.
처음에는 벽 너머로 누군가 있다는 정도였지만, 조셉이 떠난 후부터 그 정도가 더욱 강해졌다.
희미하게 존재만 하던 감정을 읽을 수 있는가 싶더니, 현재는 여러 벽을 넘어 다른 방의 있는 사람들의 감정도 간략하게나 읽을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 하지만 흥미롭기 그지없었기에 올리버는 매일 아침 일어나 눈에 신경을 집중해 다른 이들의 감정을 살펴봤다.
이 힘을 사용하는 게 즐거운 것도 있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눈이 더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해 말이다.
“음·····.”
눈에 피로가 몰려오자 올리버는 눈 사이를 주물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리버는 눈에 힘을 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에 설치된 세면대에서 씻은 후, 침대 아래 보관한 마법사의 일기를 꺼내봤다.
상급제자가 되면서 청소 같은 잡무에서 제외된 터라 아침에 좀 더 시간이 있었기에 이럴 수 있었는데, 올리버는 최대한 남은 시간을 활용해 마법사의 일기를 읽어갔다.
이미 수차례는 읽었지만, 그때 봤던 희미하지만 아름다웠던 빛을 떠올리며 계속해 일기를 읽어갔다.
혹시 모를 단서를 잡을 수 있을까 해 말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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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올리버가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올리버 님?”
“예?”
“식사 시간입니다····. 식사 후에는 바로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무슨 일 계신지?”
올리버는 시계를 확인해 봤다. 말대로 정말 식사 시간이었다.
일기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 것인데, 재빨리 일기를 침대 아래 넣은 후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곧 가겠습니다.”
“아, 예. 예. 감사합니다.”
문 너머 목소리가 쩔쩔매며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급제자로 올리버에게 불만과 질투 등 적의를 품었지만, 그 이상으로 두려움이 커서인지 올리버를 잘 보좌해줬다.
올리버는 옷을 입은 후, 문밖을 나와 식사한 뒤, 바로, 약사에게 납품할 필거렛 생산에 사람들을 투입시켰다.
하급제자에게는 궐련을 뜯고, 각연(刻煙 을 모으며, 가공이 끝난 각연(刻煙 을 빈 궐련에 넣는 작업을 맡겼으며,
중급제자는 약초 증류액을 만드는 1차 증류와 2차 증류 작업에 투입시켰다.
마지막으로 약초액에 감정을 완전히 스며들게 하는 가공 작업은 상급제자에게 맡겼는데,
올리버는 그중 중급제자들 담당인 2차 증류액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같이 일하는 중급제자 하나가 말했다.
“이런 잡무는 저희만 해도 되는데요?”
“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다. 상급제자가 되긴 했지만, 이 작업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요···. 혹시 방해되나요?”
올리버의 질문에 중급제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와 양손을 저었다.
“아뇨, 아뇨···! 감히, 방해는요. 그저···. 주인님의 대리를 맡으신 올리버 님이 이런 일을 하는 게 송구스러워 그런 것뿐입니다.”
올리버는 해당 중급제자의 감정을 살펴봤다.
두려움과 불편함이 뒤섞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올리버는 밑 작업을 하는 하급제자와 증류액을 뽑는 중급제자 그리고 작업장 끝에서 가공을 마친 증류액에 흑마법을 거는 상급제자를 봤다.
“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올리버가 작업을 계속하며 질문했다.
“저기요.”
“예!?”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싶어 중급제자가 크게 대답했다. 겁을 먹었는데, 올리버는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질문했다.
“뭐, 하나 질문드려도 되나요?”
“예? 질문요?”
“예, 질문.”
“제, 제가 대답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어쩌다 여기 오게 됐죠?”
***
이후, 올리버는 필거렛 생산의 여러 작업을 도와주며, 해당 작업을 맡은 사람들에게 슬며시 질문을 하나씩 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같은 질문을 말이다.
이유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굳이 설명하면 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격 마법사의 일기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감 말이다.
대부분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질문에 경계심을 품었지만, 올리버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만 말해 달라 재차 요청했다.
조셉의 대리 직함을 달고 있는 올리버에게 대부분은 어느 정도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배경은 하나같이 불우하고, 가난했다.
즉, 평범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업에 몰두하자 어느새 작업의 거의 끝나갔다.
“음······.”
올리버가 작업 목표량에 써진 서류를 살폈다. 그리고 눈앞에 완성된 담뱃갑을 바라봤다.
대부분 감정이 잘 스며들어 있었지만 그중 몇몇 개 상태가 별로인 것도 보였다.
“저거랑 저거. 그리고 저거랑 저거는 비교적 품질이 떨어지는데 괜찮나요?”
올리버의 질문에 보조 역할을 해주는 상급제자가 대답했다.
“어느 것 말씀이죠?”
“저거, 저거, 저거 또 저거요.”
“잠시만요.”
상급제자가 대답하며 올리버가 지목한 담뱃갑을 들어 자세히 살펴봤다.
다들 올리버처럼 쉽게 볼 수가 없는 듯했는데, 확인을 마친 상급제자가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별생각 없는 올리버의 질문에, 상급제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예, 작업 과정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주인님도 이 정도 수준은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조셉이 나오자 올리버는 바로 따지는 것을 그만뒀다.
조셉이 괜찮다고 한 거라면 더 이상 따질 문제가 아니었으니.
물론, 개인적으로는 약간 불만이긴 했다. 감정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은 저런 물건을 제품으로 팔자니 뭐라고 할까? 약간 찝찝했다.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그런 찜찜함 말이다.
아니, 더 나아가 지금 생산한 제품도 약간 불만이었다.
처음에는 신기한 물건이긴 했지만, 만드는 과정과 제조 원리를 이해하고 나서는 조금씩 눈에 차지 않았다.
제조 방식에 몇 가지 변화를 주면 훨씬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듯한데 말이다.
가령, 감정을 섞는다면 어떨까? 성향이 다른 감정을 섞음으로 더욱 감정을 극대화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만 한다며 좀 더 등급이 떨어지는 감정을 써도 썩 괜찮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터인데.
그런 식으로 공상에 빠져 있던 중 상급제자가 말했다.
“저기····. 올리버 님?”
“예?”
“이대로 포장해도 될지?”
“아, 예예.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상급제자는 상자 안에 담뱃갑을 담으라고 명했고, 하급제자들을 명에 따라 담뱃갑을 대여섯 개씩 집어 차곡차곡 상자에 넣었다.
“이 정도면 납품기일까지 무난하게 맞출 수 있겠죠?”
“예, 아주 일찍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완성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 말에 올리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원해서 조셉의 대리를 맡은 것은 아니지만, 이왕 맡은 거 별문제 없이 수행하고 싶었다.
조셉과의 관계와 흑마법 교육 문제도 있었지만, 어찌 됐건 약속이었으니.
“이제 올리버 님은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되나요?”
“예,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주인님 대리는 이 정도만 하시면 됩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았습니다. 그럼 뒷정리 좀 부탁드립니다.”
올리버가 그러곤 떠나려 할 때 갑자기 상급제자가 질문했다.
“저, 저기 괜찮으시면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뭐죠?”
올리버가 빤히 바라보며 묻자 상급제자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 어쩌다 이곳에 왔는지 물으셨는데,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음····. 그게 왜 궁금하시죠?”
“아,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없어서··· 그래서 궁금해서요.”
그의 감정이 비틀거리듯 요동쳤다. 거짓말이었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 것 같았다. 아마, 조셉에게 보고하기 위해 묻는 것이리라.
그는 모두를 믿는 듯하면서도 믿지 않는 모순된 존재이니.
올리버는 대답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
“마리랑 피터가 여기 어떻게 오게 됐는지 옛날에 한 번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왔는지 그냥 궁금해져서 물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상급제자는 대충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물었다.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습니까?”
“아뇨, 아뇨. 없습니다. 괜히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올리버는 그리 말하곤 자기 개인실로 향했다.
전격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유사점이 있었다.
불후한 과거 우연히 얻게 된 기회. 올리버로서는 딱히 큰 감흥을 얻을 수 없었지만, 비슷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의문이었다.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흑마법사들은 죽을 때는 왜 전격 마법사와 같은 빛을 뿜지 못했는지.
다른 이들에게 들은 과거 이야기를 상기하며, 올리버는 다시 마법사의 일기를 읽어보려 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고, 그 차이점에서 아름다운 빛의 원인을 찾을지 몰랐기에.
올리버의 내면은 점점 고양감이 차올랐다.
그 빛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리버 님! 올리버 님!”
어디선가 나온 마리가 올리버를 다급하게 불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지금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죠?”
“약사·····. 약사가 방문하셨습니다.”
***
올리버가 마리와 함께 공장으로 올라가자 부하들과 함께 방문한 약사를 볼 수 있었다.
반쯤 벗겨진 회색 머리와 금테 안경은 트레이드 마크처럼 그의 존재를 드러냈는데, 그는 올리버를 보자마자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런 반갑네.”
올리버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약사님.”
“그래, 자네도 안녕한가? 마법사 쫄따구 잡은 이후 처음 보는 거 같은데. 몸은 괜찮나?”
“예에····. 그런데 어쩐 일로?”
“별건 아니고, 납품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 확인차 들렸네. 조셉은 어디 있나?”
“주인님께선 잠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대신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가? 놀랍군. 나이로 보나, 짬으로 보나 자넨 막내인데, 어느새 조셉의 대리 자리까지 맡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요즘은 운도 실력이지.”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사가 여기 온 이유가 파악이 안 되었다.
분명, 입으로는 제품 납품일과 조셉을 만나러 온 거라 하였지만, 뱀처럼 비비 꼬인 감정은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올리버가 먹이를 던져봤다.
“····. 제품은 순조롭게 제조 중이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래도 내가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데 잠시 보여줄 수 있겠나?”
그 순간 약사의 감정이 차갑게 빛났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듯.
“····.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