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20화 (20/633)

20. 휴식? (1)

[내 이름은 로스번. 내 인생을 돌아보고자 이 일기를 쓴다. 난 란다의 V구역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곳의 삶에서 벗어났지만, 난 아직도 그 지옥 같은 곳을 기억한다····.]

팔랑.

[·····. 그렇게 난 마법사에게 거둬져 끔찍한 빈민가를 떠날 수 있었다. 아마,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일 터였다·····.]

팔랑

[··· 그러한 차별 탓에 마탑에서의 생활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난 이겨내기로 마음먹었다. 내겐 재능이 있으니까. 날 믿는 가족도 있으니까·····.]

팔랑.

[·····. 그렇게 난 버려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결국 버려진 것이다. 집, 아니 과거 집이었던 곳을 떠난 후 수십 번을 생각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그거였다. 난 버려졌다.]

팔랑.

[·····. 난 맹세하겠다.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 날 업신여기고 우습게 본 자들에게 복수할 것을·····.]

팔랑.

[····· 드디어 좋은 소식이 들렸다. 란다의 옆에 있는 와인햄이란 도시에 관한 이야기다. 란다에 먹힌 흔한 도시인 이곳은 실상 흑마법사의 소굴이며, 이들은 대량의 마법 마약을 만들어 란다에 공급한다고 했다. 난 이곳을 내 첫 번째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팔랑.

팔랑.

팔랑.

팔랑.

“···. 무엇을 읽고 계시죠?”

어느새 다가온 마리가 물었다. 그녀는 양손을 공손히 포개고 있었다.

“일기요.”

“일기요?”

“예····. 마법사에게서 얻은 겁니다.”

“아····.”

마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 잠시 침묵하다 다시 물었다.

“재미···. 있으신가요?”

“뭐····. 딱히요.”

“그럼, 왜 읽으시는 건지?”

올리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마리를 올려다봤다.

“궁금해서요.”

“예?”

“이 일기 주인이던 마법사···. 죽기 전 아름다운 빛을 뿜었어요. 여태껏 보지 못한···. 그래서 이 일기 보면 알 수 있을까 해 보고 있었어요.”

“아···. 그러시군요. 이유는 찾으셨나요?”

“아뇨. 못 찾았어요. 딱히 특별한 건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죠?”

올리버의 물음에 마리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전해 드리고픈 말씀이 있어서요.”

“?”

“제가 드디어 하급제자로 승격했어요.”

올리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리는 그것이 섭섭한지 쓴 표정을 지었다.

“저번 전투에서 많은 중급제자가 죽어서 하급제자님들이 대거 승급하고, 덕분에 그 빈자리를 제가 들어가게 됐어요.”

“어···. 축하드려요?”

“아뇨····. 전 그저 올리버 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 찾아온 거예요.”

“저한테요?”

“예! 올리버 님 덕분에 확실하게 하급제자가 실력을 쌓았거든요. 주인님께서 감탄하셨어요.”

“주인님이요?”

“예, 아까 전 임시제자들의 실력을 확인하던 중 제 실력이 유독 높아지자 어찌 된 건지 물어봤고 올리버 님께서 도와준 거라 말씀드렸어요. 아주 감탄하셨어요.”

조셉이 알았다라····. 얼핏 듣기에는 딱히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올리버는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뭐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찝찝했다.

강력한 흑마법사를 키우는 게 목표라 해놓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 모순과

제자들끼리 서로 싸우고 견제하게 하는 것과 연결되는 찝찝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구체적으로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중 마리가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더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전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뭐죠?”

“곧 올리버 님께서 수제자가 되실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이야기. 하급제자인 올리버가 패밀리의 2인자인 수제자라니.

하지만 앞뒤 사정을 살펴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며칠 전 마법사와의 싸움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치열한 전투였으며, 이 전투에 참여한 약사, 조셉, 앤서니, 도미니크 패밀리는 모두 적잖은 피해를 보았다.

마법사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는데, 특히, 전기 마법을 쓰는 마법사는 앞뒤를 오가며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줬다.

당장 조셉 패밀리만 해도 2인자인 앤드루나 공들여 키운 상급제자, 중급제자를 대거 잃었으니.

생존자의 말을 들어보면 애당초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허나, 단 한 명. 올리버로 인해 기적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올리버의 존재감은 패밀리를 넘어 모두에게 큰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었다.

그런 올리버가 다친 앤드루를 대신한다?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마리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기쁘지 않으신가요? 수제자가 되시면 스승님에게 언제든 교육을 받고, 서재도 이용할 수 있는데?”

“···. 아뇨. 기뻐요. 다만, 다른 중급제자와 상급제자 분들이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하하, 전 또 뭐라고···. 물론,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긴 하지만, 올리버 님은 예외에요. 실력이 너무 압도적인 데다, 지금 앤드루 님 파벌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해서요.”

그랬다. 마법사와의 전투 과정 죽은 흑마법사는 대부분 앤드루의 지지자들이었다.

올리버를 해치우기 위해 자신의 지지자들을 거의 다 끌고 왔는데, 우습게도 그것이 오히려 독이 돼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은 거였다.

하긴, 설사 지지자들이 남아 있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파벌의 핵심인 앤드루는 이미 한쪽 팔을 잃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는데.

그 사실을 상기하며 마리가 말했다.

“사실상 패밀리 내에서 이제 올리버 님을 견제할 사람이 남지 않았어요. 실력으로 보나, 공으로 보나 빈 수제자 자리는 바로 당신이에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마리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녀의 그런 태도가 올리버로서는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감정에서 어떠한 음모도 계략도 없었기에.

그렇기에 올리버는 다른 질문을 했다.

“마리. 뭐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예···? 아, 예! 말씀해주세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거면 뭐든지.”

“마리가 6년 전 이곳에 왔다고 했죠?”

“예, 그렇죠.”

“그럼 그때 수제자는 누구셨죠?”

“앤드루 님이요. 왜 그러시죠?”

“뭐, 그냥 궁금해서요. 그럼, 앤드루 님이 처음부터 수제자였나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딱히 궁금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럼, 다른 제자 중 갑자기 사라지신 분들은 없나요?”

“어어···. 아마 찾아보면 몇몇 있을 거예요. 가끔식 필요한 지식을 얻거나, 돈을 훔쳐서 도망치는 이들이 있긴 했거든요.”

“직접 봤나요?”

“직접 보다니요?”

“도망치는 거요.”

“아뇨, 도망치는데 직접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뭐 그거야 그렇겠군요.”

마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런 걸 물어보시는 거죠?”

“그냥···. 궁금해서요.”

***

이후,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마리의 말처럼 마법사와의 전투 후 빈자리는 곧장 채워졌다.

마리는 여유롭게 하급제자가 되었고, 피터 역시 방장 자리에서 벗어나 중급제자로 올라섰다. 모두 기뻐하였다.

다만, 올리버는 마리의 말처럼 수제자는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중급제자를 건너뛰고 바로 상급제자로 올라갔다.

이것 역시 파격적인 대우였지만, 그 누구도 반대하거나 불만을 품은 이는 없었다.

올리버가 그간 보여준 재능과 세운 공을 보면 수제자로 삼아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적대하거나 질투하는 자들은 사라지고, 올리버에게 잘 보이려 하는 자들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다지 이상한 것도 아니지. 아직 앤드루가 살아있긴 하지만, 한쪽 팔을 잃은 데다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니.

불법 치료사조차 목숨만 건지고 남은 평생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제자들 사이에서는 자존심이 약간 상함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권력에게 붙기 위해 아양을 떨며 올리버에게 접근했다.

“이런 건 제가 하겠습니다.”

한 남자가 헤헤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올리버에게 말했다.

현재 올리버는 약초를 증기 축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해진 비율에 따라 약초를 섞고, 물을 뜨며, 온도를 체크하는 기본적인 작업이었지만, 올리버는 스스로 이것부터 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중급제자들의 영역이긴 했지만, 기초부터 배워야지 나중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육체노동으로 오랜만에 땀을 흘리는 올리버가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하하, 그래도····.”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올리버가 거절하자 오지랖을 떨던 남자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겉은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감정은 불쾌한 듯 꾸물거렸다.

“헤헤, 그럼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예, 고맙습니다.”

올리버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방해꾼이 사라지자 다시 작업했다.

약초를 다 축출한 뒤에는 새로운 약조를 망 위에 올리고, 물은 일정 수위로 낮아지면 따로 데우고 있던 물을 추가로 비웠다.

중간중간 물 온도도 측정했는데, 올리버는 30분 단위로 상태를 체크했다. 단순하지만, 섬세함을 요구했다.

“일은 하실만하신?”

피터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올리버는 약초 축출액 농도를 살피며 대답했다.

“예.”

“······.”

“······. 무슨 하실 말씀 있나요?”

“아, 예. 그····. 주인님께서 부르십니다.”

“지금요?”

“예.”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마법사 놈들 때문에 일정이 많이 촉박해 한동안 일만 시키신 분이 부른다니.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올리버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스승님의 방으로 향했다.

“아, 잠시만요.”

“왜 그러시죠?”

“그 주인님 방이 아닌, 앤드루 님이 계신 방에 가셔야 합니다. 그곳에 계십니다. 가시는 동안은 제가 여길 대신 맡겠습니다”

“····. 예, 알았어요.”

올리버는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는 앤드루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앤드루의 개인실로, 지금은 사실상 병실이었는데, 문을 열자 환자가 내뿜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왔느냐?”

올리버가 들어오자마자 앤드루를 간호하는 조셉이 말했다.

“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일은 할 만하더냐?”

“예, 즐겁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필거렛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배우는 것은 기쁨이었다.

“진심인 거 같으니 다행이구나. 하긴, 그게 좋은 태도지. 하지만 너와 달리 몇몇 아이들은 겁을 먹은 눈치더구나. 하긴, 마법사를 직접 봤으면 그럴 만하지.”

“····.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봐라.”

“전에 말씀하시길. 흑마법은 마법보다도 더 강하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럼, 겁먹을 게 없는 거 아닙니까?”

조셉은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넌 멍해 보이면서도 이상한 부분에서 날카롭구나. 그래, 처음 널 데려왔을 때 그리 말한 적 있지. 실제로, 그런 흑마법사는 존재하지. 피리 부는 사나이나 요리사 같은····. 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어째서인지 아느냐?”

“아뇨.”

“마법사들은 양지에서 엄청난 자원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데 반해, 흑마법사는 음지에서 스스로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적인 수준은 마법사보다 낮은 편이지.”

“예, 기억납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저희를 거둬들인 거고요.”

“잘 기억하는구나. 정확히는 재능있는 너희를 거둬들인 거지만. 다른 아이들에게서 들었다. 혼자서 마법사를 다 쓰러뜨렸다고?”

“예···. 운이 좋았습니다.”

“앤드루를 이 꼴로 만든 마법사를 운으로 쓰러뜨렸다면 그 운도 실력이라고 봐야지.”

순간 화상을 입고 끙끙대는 앤드루를 봤다.

“····. 치료할 수 없나요?”

“응?”

“혹시 생명력으로 앤드루를 치료할 수 없나요?”

“통상적인 경우 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도 기력을 회복하고 가벼운 외상을 치료하는 수준. 이렇게 심각한 부상을 치료하긴 힘들다. 아예, 그쪽 전문 분야로 가야지. 그리고 그래서 널 불렀다.”

“예?”

“앤드루를 데리고 란다로 갈 예정이다. 그곳에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흑마법사들이 있는데, 그들 중 앤드루를 완쾌시킬 자를 알고 있지.”

“아····.”

앤드루가 소리 냈다. 치료 전문 흑마법사라. 그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했다.

“내가 앤드루를 데리고 그곳으로 떠나면, 한동안 자릴 비울 거다. 그동안 네가 나 대신 패밀리를 관리해라.”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올리버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느냐? 수제자의 역할 중 하나다. 내가 없는 동안 패밀리를 관리하는 것.”

“하지만 수제자는-”

“-앤드루를 아끼긴 하지만, 네가 있으니 더 이상 수제자는 아니지. 실력 면에서나, 활약 면에서나 이제 네가 수제자다.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건 아직 어수선하기 때문이고.”

물어볼 게 많았지만, 올리버는 굳이 묻지 않았다. 본능이 그게 안전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네가 마리를 가르친 것도 들었다. 그 정도면 아이들도 잘 통제할 수 있겠지. 네가 없는 동안 패밀리를 한번 관리해 보겠느냐?”

올리버가 대답했다.

“뭐, 명령이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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