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폭풍 (3)
“싫고 말고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지!”
전격 마법사가 소리치며 올리버를 향해 푸른 전기 덩어리 날렸다.
올리버는 앤드루와의 전투를 떠올리며 블랙 쉴더로 막는 대신 해잇 블릿을 쏴 다가오기도 전에 영격했다.
예상대로 전기 덩어리는 증오의 탄환이 닿자마자 펑! 하고 터지더니 주변에 푸른 전기를 흩뿌렸다.
역시 까다로웠다. 빠른 데다가 간접피해까지 있으니.
자기 공격이 막혔음에도 전격 마법사는 당황하지 않고 예상했다는 듯 다시 한번 번개를 몸에 둘러 빠르게 다가왔다.
역시 처음 공격은 잠시 시선을 빼앗는 거였는데, 아까 전 앤드루와의 싸움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올리버는 감정과 마력을 흐름을 보고 전격 마법사가 다가오기 전 미리 경로를 예상해 견제할 수 있다는 거고.
[라스 붐] [해잇 블릿]×2
마법사의 예상 경로를 향해 미리 라스 붐을 쏴 발을 멈추게 한 후 양옆으로 해잇 블릿을 한발씩 쐈다.
덕분에 마법사는 잠시 당황했는데, 어떻게라는 의문이 엿보였다.
어떠한 원리인지는 올리버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번개가 두른 몸은 이동하기 전 찰나이긴 하지만 이동 방향에 맞춰 작은 번개 줄기가 뻗어 나가는 게 보였고,
또 그에 맞춰 요동치는 감정을 통해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 간접적으로 예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동 방향과 행동을 미리 예측함으로서 올리버는 전격 마법사가 파고들 때마다 그에 맞춰 대응해 밀리는 스펙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맞서 싸울 수 있었다.
[라이트닝]
[해잇 블릿]
주변을 빠르게 맴돌며 전격 마법사가 전기를 쐈고, 올리버는 바로 증오의 탄환을 쏴 영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
번개가 터지며 나오는 섬광으로 시야가 막힐 때 마법사가 옆으로 돌아왔다.
올리버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손만 뻗어 우측을 향해 해잇 블릿을 여러 발 난사했다.
거의 동시에 이뤄졌는데, 마법사는 실드를 급하게 전개해 증오의 탄환을 모두 막았다.
파바방――――!!
성공적으로 공격을 막았지만, 충격 탓에 뒤로 물러난 전격 마법사.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덕분인지 그는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도 그를 말 없이 바라봤다. 정확히는 바라보는 척하며 관찰한 거지만.
“·····.”
“·····.”
증오와 분노로 요동치던 그의 감정은 이내 차분함을 되찾았는데, 이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감정이 격정적일수록 속내를 파악하기 쉬웠는데. 만약, 차분하게 다시 덤벼들면 위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마법사가 말을 걸었다.
“네놈이 진짜였나?”
“예?”
“네놈이 진짜 주력이었냐고? 저놈 말고.”
전격 마법사가 빈사 상태로 쓰러진 앤드루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뇨····. 저분이 주력입니다. 전 하급제자에 불과하고요.”
시간을 끌 요량을 올리버가 말을 길게 했다.
“아닌 거 같은데.”
“저도 뭐 하나 질문드려도 될까요?”
“·····?”
“제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듣기로는 마법사란 분이 이런 곳에 잘 오지 않는 거 같던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죠?”
시간 끌기 반, 진심 반으로 올리버가 물었다. 도저히 궁금한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전격 마법사는 민감한 곳을 찔렸는지, 입꼬리가 꿈틀대며 해잇 블릿에 맞고 쓰러진 동료를 쳐다봤다.
그의 감정이 다시 요동치는 게 보였다.
“아···. 저기 동료분하고 같이 나오셨나 보네요? 소중한 분이셨습니까?”
마법사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올리버를 다시 봤다. 그의 감정은 다시 이글거렸지만, 강력한 이성에 통제받아 차분하기도 했다.
흡사, 차가운 불.
감정을 저리 절제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지라 감탄스러웠는데, 잠시 후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발아래를 시작으로 땅을 따라 푸른색 전류가 순식간에 타고 흐르더니 올리버를 직격 한 것이다.
찌지지지지지―――――!
올리버는 재빠르게 해잇 블릿을 쏴 코앞까지 다가온 전류를 멈춘 다음 마법사를 향해 타겟팅을 걸었다.
증오를 기반으로 상대방을 표적화해 명중률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올리버의 보조 흑마법.
마법사의 몸통에 다트판 같은 것이 떠오르더니, 올리버는 그에 맞춰 증오의 감정으로 만든 작은 칼날을 십여 개 허공에 흩뿌렸다.
[블랙 다트]
아까 전 본 앤드루의 블랙 재블린을 흉내 낸 아류 마법으로 위력은 약하지만, 훨씬 많이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 타겟팅이 합쳐지니 허공에 흩뿌려진 블랙 다트 십여 개는 자석에 끌리듯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일방적인 경우라면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당했겠지만, 마법사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 듯 순식간에 몸에 번개를 둘러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블랙 다트는 집착을 가미해 끝까지 타겟팅을 쫓아가게 만들었으니····. 아!
올리버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블랙 다트는 타겟팅을 쫓는 마법. 허나, 속도는 전격 마법사에 비해 느렸다.
이 사실을 파악한 전격 마법사는 멀리 도망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냅다 올리버 쪽으로 달려들었다.
올리버는 공격해 마법사의 이동 방향을 틀려고 했는데, 그때, 전격 마법사가 맹공을 가했다.
[라이트닝] [라이트닝 볼] [매직 미사일]
올리버는 여태껏 해온 대로 해잇 블릿을 쏴 쏟아지는 공격을 영격했는데, 공격이 부딪히자마자 폭발이 일어나 시야가 순간 차단당했다.
올리버는 재빨리 블랙 쉴더를 전개했다.
그때, 연기를 뚫고 전격 마법사가 옆을 지나쳤는데, 그와 함께 검은 장막 위로 검은 칼날이 박혔다.
팍! 팍―! 파바박―――!
블랙 쉴더를 뚫는 블랙 재블린을 모델로 해서 그런지 관통은 아니지만 블랙 쉴더가 어느 정도 뚫렸는데 그 순간 등 뒤에서 다시 한번 머리를 새하얗게 하는 고통이 밀려왔다.
올리버의 신경이 앞에 쏠리 그 짧은 타이밍에 후방을 잡은 전격 마법사가 공격한 것이다.
전기 탓에 저릿저릿 몸을 가누지 못하며 앞으로 쓰러진 올리버.
몸이 날아가거나 화상을 입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됐다.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마법사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개인적 원한과 별개로 네 실력은 인정하지. 자칭 하급제자. 가짜 마법사치곤 조금 재밌었어.”
그는 발로 올리버를 뒤집은 다음 내려다봤다. 아직도 그는 동료의 죽음에 분노해 있었다.
“·····. 사, 살려주실 수 없나요?”
“네가 내 친구를 안 해쳤으면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 역시 소중한 분이셨나 보네요.”
“어, 나와 함께 마탑에 나와 줄 만큼.”
“마탑에 왜 나오셨죠.”
“······.”
마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에 마력을 끌어모아 푸른 빛 전기를 만들었다.
“너 같은 놈에게 딱히 알려주고 싶지 않아.”
“아, 그거 아쉽네요. 그래도 시간은 벌었으니까 전 괜찮아요.”
“?····. 그게 무ㅓㄴ-”
전격 마법사가 되묻는 그 순간, 어디선가 작은 해잇 블릿이 날아와 마법사의 목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위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지만,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마법사는 피거품을 뿜으며 비틀거렸는데, 덕분에 올리버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느커억···! 므, 므스으ㄴ·····!”
목에서 쏟아지는 피와 입안을 가득 메운 피거품 탓에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눈치껏 이해하고 설명했다.
“아, 이거. 덕분이에요.”
허공에서 떠다니는 작은 구체 덩어리를 가리키며 올리버가 말했다.
주먹보다 작은 이것은 고기 경단처럼 생겼는데, 기괴하게도 입술만 덩그러니 있었다.
“미니언이라고, 제 주인님이 만든 ‘이터’를 참고해 만들어 본 겁니다. 미리 저장한 흑마법을 쓸 수 있게 했는데, 위력도 약하고 느리지만, 꽤 괜찮죠?”
조롱이 아닌 진심으로 올리버가 물었다. 과연, 마법사라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하며 말이다.
그러나 마법사는 평가를 내려주긴 커녕 피가 새어 나오는 목을 붙잡고 비틀비틀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었다.
자신감에 차 있던 그의 감정에서 처음으로 당혹과 공포가 엿보였다.
올리버는 시험관을 찾았다. 아까 전에 쓰러질 때 떨어뜨렸는데 안타깝게도 깨져 있었다.
“이런····. 죄송하지만 잠시 기다려주세요. 잠깐이면 돼요.”
도망치는 마법사에게 그리 말하며 죽은 상급, 중급제자들의 품 안을 뒤졌다.
다행히 멀쩡한 시험관을 세 개나 찾을 수 있었는데, 마법사는 올리버의 말을 들은 건지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자 그는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얼마 모으지 못하고 목에서 다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지만.
“끄윽····. 끅··· 끅····. 느으 으드로···· 즈그 스 끄으·····. 느으·· 느아···.”
올리버는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해 마법사를 겨눴다.
마법사의 생명력은 점점 흐릿해지며, 그에 맞춰 감정은 죽음의 공포로 혼탁해졌다.
이제 정말 끝인가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었다.
생명력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그 짧은 순간 공포로 혼탁해졌던 마법사의 감정은 여태껏 봐온 그 어떠한 감정보다 아름답게 빛난 것이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올리버는 마법사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그 감정을 추출하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그는 죽고 말았다.
“아아····. 아아아아·········.”
충격과 슬픔에 빠진 올리버가 탄식했다.
그 아름다운 빛이 사라져서, 그 빛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올리버는 미련이라도 남은 듯 마법사의 몸을 뒤져봤다.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입고 있던 조끼 안쪽에 뭔가가 있었는데, 열어 확인하자 가죽으로 겉을 마감한 공책이 있었다.
공책을 펼치자 그 안에는 일기가 적혀있었다. 마법사가 쓴 일기.
올리버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그 일기를 품 안에 챙겨 넣었다.
혹시 조금 전 본 아름다운 감정에 대해 알 수 있을까 해.
칙― 칙―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어갔다.
처음 올리버가 죽인 마법사 품 안에서 소리가 났는데, 안을 뒤지자 작은 금속 기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금속 기계 겉에는 헤르메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칙―! 칙―! 마법사님. 마법사님! 이쪽··· 칙―!! 반항이···· 칙―! 칙―! 지원을 요청····!]
올리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을 차렸다. 아직 전투 중.
아름다운 빛을 잃어 슬프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임무 중이었다.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눈에 정신을 집중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공장 안에 포착되는 감정은 없었다.
싸움이 치열한 탓인지 모두 공장 밖으로 나갔는데, 마법사들이 했던 것처럼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정문에서 펼쳐지는 전투의 현장을 내려다봤다.
곳곳에 파괴된 자재와 그을림이 있었으며, 적잖은 아군의 시체가 보였다.
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남은 아군은 엄폐물을 이용해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갱들 중 하나가 올리버를 보고 착각했는지 반갑게 손을 들었다.
“마법사님! 여깁니다! 여기. 지원을···!”
올리버는 부탁대로 지원을 해줬다. 시험관을 모조리 열어 감정을 추출한 다음 파악한 갱들의 근처 자리에 타겟팅 흑마법을 부여했다.
“어? 마법사님?”
갱들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올리버는 작은 라스 붐을 수십여 개 만들고, 그 위로 블랙 다트를 덧씌워 허공에 흩뿌렸다.
상당한 감정을 소비했지만, 재료가 충분하니 어렵진 않았는데.
빙글빙글 돌던 작은 칼날은 이윽고 자석에 끌리듯 지정된 타켓팅 장소로 날아갔고, 갱들이 있던 자리에는 작은 폭격이 일어났다.
때아닌 폭격에 갱들은 혼비백산하며 공포에 떨었는데, 그 중 유일하게 차분히 사태를 파악하는 감정이 보였다.
마지막 마법사였다.
올리버는 창문으로 뛰어내린 다음 떨어질 위치 아래 클링 스파이더 웹에서 구속 속성을 뺀 보통 스파이더 웹을 쐈다.
주변의 물건과 벽면에 펼쳐진 거미줄은 안전그물처럼 떨어지는 올리버를 받아주었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장전한 해잇 블릿 일곱 발을 동시에 쐈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마법사는 당황하면서도 마법 실드를 전개해 방어하였는데, 안타깝게도 힘이 모자랐다.
일곱 발의 해잇 블릿이 동시에 쏟아지자 충격이 공명해 위력이 몇 배가 되더니 이윽고 실드가 통째로 흔들려 접시처럼 깨지고 만 것이다.
“자, 잠····!”
마법사가 겁을 먹으며 소리쳤다.
한순간 저 마법사도 전격 마법사처럼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아 해잇 블릿을 쐈다.
날아간 증오의 탄환은 마법사의 몸을 관통해 쓰러뜨렸고, 마법사는 피를 뿜으며 벌레처럼 움찔거렸다.
잠시 후, 주변의 연기가 걷히며 적막이 내리깔렸다.
마법사와 갱들과 싸워 간신히 버티고 있던 약사의 부하들과 다른 흑마법사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들은 홀로 갱들을 공격해 해치운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올리버가 말했다.
“다들 괜찮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