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폭풍 (2)
올리버는 앤드루 일행과 함께 뒷골목을 따라 공장 뒤편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정문 쪽에서는 파지직―! 거리는 푸른 섬광이 번뜩였는데, 그에 따라 비명소리와 함께 총성이 더욱 늘어났다.
누군가 말했다.
“마법사가 있다 하더니만, 아무래도 진짜인가 보네요. 함정 마법이라니····. 대비가 철저해요.”
“상관없어. 차라리 저렇게 시선을 끌어다 주면 우리로서는 편해. 그만큼 뒤쪽은 신경을 못 쓸 테니.”
“뒤편에도 함정을 설치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앤드루가 잠시 발을 멈췄다.
가만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방비가 허술한 쪽에도 분명 함정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잠시 고민에 빠진 앤드루는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 네가 선두에 서라.”
“예?”
“넌 감이 날카로우니까 함정도 피할 갈 수가 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네가 선두에 서라.”
말도 안 되는 억지. 허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명령을 거부하면 본능적으로 큰일이 일어날 것을 눈치챘기에.
처음 앤드루가 올리버를 지명했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지금 주변을 둘러보니 적의를 가진 자들밖에 없었다.
건수만 생기면 언제든 위해를 가할 그런 사람들 말이다.
올리버는 자신도 모르는 새 잘 짜인 함정에 빠진 것이다.
“다시 출발하자.”
올리버가 어쩔 수 없이 선두에 서자 그 뒤에 있던 앤드루가 말했다.
당연히 올리버는 그 명에 따라 다시 움직였는데, 보이지 않음에도 등 뒤에서 앤드루의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적만큼이나 올리버를 적대하고 있었다.
올리버로서는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했기에?
허나, 이러한 궁금증 역시 올리버 특유의 생존본능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앤드루가 이러는 이유가 아닌,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것.
아마, 올리버의 감이 맞는다면 이대로 있다간 매우 높은 확률로 위험에 처할 터였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며 앞으로 뛰어갔다. 만약, 자신이 눈치챈 걸 들키면 더 위험할 테니.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주변에 드문드문 켜져 있던, 가로등이 팍하고 꺼졌다.
“응?”
“뭐야?”
순식간에 주변이 어둠에 삼켜졌는데, 그와 함께 공장 건물 위층에서 여러 개의 빛 덩어리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매직 미사일]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마력 덩어리.
가뜩이나 좁은 골목으로 이동하고 있던 앤드루 일행은 독에 갇힌 쥐처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멍청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앤드루가 소리쳤다.
“모두 방어해! 블랙 쉴더!”
그 외침에 다들 정신을 차리곤 매직 미사일이 날아오는 위 방향을 향해 검은 장막을 펼쳤다.
파팡―! 파바팡―!! 팡! 팡―!!
빠른 속도로 날아온 매직 미사일은 검은 장막에 가로막혀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져갔다.
알록달록한 빛깔로 주변이 한순간 밝아졌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 담벼락 뒤에 숨어있던 적 갱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총을 난사했다.
“갈겨! 갈겨! 전부 다 죽여버려!”
“으아아아아! 다 뒤져라!”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총구 화염.
하늘에서 쏟아지는 매직 미사일을 막기 위해 전개한 블랙 쉴더는 정작 정면에서 쏘는 총알을 막기 힘들었는데, 어둠 속이라 대응은 더욱 늦어지고 말았다.
아마 정상적인 경우였다면 번쩍거리는 총구 화염에 맞춰 선두에 선 아군 흑마법사들이 와르르 쓰러졌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을 먼저 포착한 올리버가 정면을 향해 거대한 블랙 쉴더를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팅-! 탁! 타디디당――! 탁-―! 타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모두 검은 장벽에 막혔다.
하지만 올리버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재빠르게 감정을 축출해 튀어나온 갱들에게 표적지를 부과했다.
[타겟팅]
축출된 감정이 연기처럼 날아가 적들의 몸에 표적지로 변했다.
표적지를 확인하자마자 올리버는 바로 해잇 블릿을 쐈다.
“억-!”
“뭐ㅇㅑ-!”
“켁!”
표적지에 정확히 꽂힌 증오의 탄환. 한 번에 적 갱들을 다수 쓰러지며 지휘자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젠장! 반격이다. 반격. 일단 뒤로 빼.”
회심의 기습이 먹히긴커녕 오히려 역습을 당해 갱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는데, 바로 그 순간 앤드루가 소리쳤다.
“좋아, 적들이 도망친다. 이대로 쫓아가! 너희는 돌격하고, 너희는 마법사를 지원해! 어서 놓치지 마!”
그 지시에 맞춰 아군 흑마법사 중 반이 일제히 뛰어가 도망치는 갱들을 공격했고, 나머지 반은 공장 위층에서 매직 미사일을 쏘는 마법사에게 해잇 블릿을 날려 아군을 엄호했다.
“제, 젠장!”
“이런 씨-!”
“으악-!”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갱들은 해잇 블릿을 맞고 하나둘 쓰러졌다.
다들 갑작스러운 전투 탓인지 모두 흥분했는데, 올리버만은 그러한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어둠에 몸을 맡기며 차분히 주변을 둘러봤다.
비록, 어둠에 시야는 차단당했지만, 감정을 보는 제3의 눈, 즉, 흑마법사의 눈은 작동했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으···. 음?”
올리버는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갱들은 분명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지만, 공장 위편에서 흑마법사들과 공격을 주고받는 마법사는 매우 차분했기 때문이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듯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은 올리버는 블랙 쉴더를 넓게 펴 자신의 몸에 갑옷처럼 둘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말이다.
그때, 정문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발생했다.
아까 전처럼 푸른색 섬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가시가 돋친 듯 땅에서 하늘로 거대한 번개 줄기가 솟구쳐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콰르르르르르르릉――――!!!
“······!!!”
모두가 그 위협적이면서도 이질적인 광경에 놀라 멈칫하며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나, 이는 명백한 실수였다.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닌 대비를 해야 했다.
“이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고?!”
앤드루는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정문조에 물어봤지만,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정문 쪽에서 봤던 눈부시게 푸른 번개.
그것은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정문에서 이쪽으로 날아왔고,
다들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터지듯 퍼져 삽시간에 주변을 쓸어버렸다.
흑마법사와 갱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빠지지지지지지지직―――――!!!
“그극····!”
“······!!!”
“끄아악·····!”
당연히 올리버 역시 그 전격에 휩쓸렸는데, 생전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엄청난 격통이 척추를 타고 뇌로 직격했다.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
그나마 몸에 블랙 쉴더를 둘렀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두르지 않았으면 지금 거리에 널린 수많은 시체와 함께 노릇노릇 구워질 뻔했다.
그렇다 해도 즉사만 피한 수준.
올리버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체들과 함께 누워 죽은 척했다.
마법사들 이야기를 듣고 다들 겁내던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거 같았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몸에 두른 번개를 풀고 난장판이 된 땅 위에 내려왔다.
아무래도 마법사인 듯했다.
“흥! 가짜 마법사들 주제에 기세 좋게 덤벼서 뭐라도 있나 기대했더니만, 별거 아니군.”
“내가 말했잖아? 널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 리가 없다고. 아니 애당초 말이 안 되지. 마탑에서도 천재라고 알아주던 너인데.”
공장 위층에서 흑마법사들을 견제하던 마법사가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오며 말했다.
전격 마법사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난 뭐라도 있는 줄 알았지. 나름 이 동네에서 힘쓰는 녀석이라고 하던데···. 처음 마탑에 나온 싸움치고는 너무 시시해.”
“너한테나 그렇지···. 그보다 어떡하지? 우리 애들도 많이 당했는데.”
마법사가 주변에 노릇노릇 튀겨진 채 널브러진 부하 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격 마법사는 담담할 뿐이었다.
“됐어. 어차피 머릿수 채우는 놈들인데. 우리가 이겼다는 소식만 퍼지면 여기저기서 또 몰려올 거야. 차라리 이참에 물갈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올리버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사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생각이 일반인과 그 궤가 달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 자의식이 비대하다고 할까?
“어쨌건 좋아. 여긴 얼추 정리했으니, 정문 쪽으로 마저 가 뒷정이를-”
쉬이이이이이―――――! 파바팍!
갑자기 날아든 검은색 탄환에 마법사는 하던 말을 멈추고 마력을 전개해 방어막을 펼쳤다.
공격이 날아온 끝을 바라보니 사방에 검은 장막을 두른 앤드루가 서 있었다.
괜히 패밀리의 2인자가 아닌지 모두가 번개에 나가떨어질 때, 그만은 유일하게 방어막을 펼쳐 자신을 보호했다. 거기에 공격까지 하다니····.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마법사들을 긴장시키지 못한 듯 전격 마법사가 말했다.
“헤에·····. 그래도 방어한 녀석은 있네? 꼴에 마법사라고?”
“내가 도와줄까?”
“아냐, 됐어. 흑마법사라는 놈 실력을 좀 보고 싶으니. 어차피 정문도 내가 얼추 정리했으니, 내가 안 가도 딱히 상관없겠지.”
그 말과 함께 전격 마법사가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모았다.
청명한 푸른빛 마력이 점점 모이는 게 보였는데, 앤드루도 바보가 아닌지 바로 공격을 가했다.
“해잇 블릿! 라스 붐! 블랙 재블린!”
증오의 탄환과 분노의 폭탄 그리고 검은 투창이 빠르게 날아가 전격 마법사를 덮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법사는 방어막을 펼치는 대신 다시 한번 자신의 몸에 번개를 둘러 재빠르게 피할 뿐이었다.
무의미한 소모전을 막는 효율적 전략.
회피한 후 전기를 날려 보냈다.
“라이트닝!”
“블랙 쉴더!”
빠지지직――――!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푸른 전류가 날아갔으나, 검은 장막에 막혔다.
그러나 완벽히는 막지 못했는데, 전기 특유의 활력과 독립성 탓에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으로 뻗어가 간접적인 피해를 줬다.
앤드루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는데, 결국 블랙 쉴더를 넓게 펼쳐 다시 한번 둥그런 전신 방어막을 만들었다.
“블랙 마블!”
그때였다. 마법사는 노리기라도 한 듯 빠르게 거리를 좁혀 마력을 머금은 손으로 방어막을 때렸다.
“일렉트로닉 익스플러전!!”
다시 한번 거대한 번개가 터져 나와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섬광이 잦아들자 눈에 보인 것은 전신 화상과 함께 한쪽 팔이 날아간 앤드루였다.
“하····. 가짜 마법사 수준은 이게 한계인가?”
앤드루를 내려다보며 전격 마법사가 말했다.
그는 실망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엄청난 우월감에 젖어 있었는데, 자신의 승리에 몹시도 만족한 눈치였다.
그리고 다른 동료 마법사 역시 방심하며 긴장을 끈을 놓은 상태였다.
바로 그 순간 죽은 척 쓰러져있던 올리버가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해잇 블릿을 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간 공격이라 그런지 근처에 있던 마법사는 반응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몸이 꿰뚫렸다.
“콜린······?”
안타깝게도 가장 까다로운 전격 마법사는 재빠르게 피했지만.
공격을 피한 전격 마법사가 쓰러진 마법사 곁으로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그의 감정은 충격과 슬픔으로 요동치고 있었는데, 올리버는 그사이 ‘미니언’이란 작은 구체를 만들며 천천히 또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현재 저 마법사를 혼자 상대하긴 영 버거웠는데, 그 찰나 마법사가 올리버를 불러세웠다.
“멈춰.”
올리버가 멈추며 뒤를 돌아봤다.
마력과 감정이 요동치는 마법사가 번쩍이는 눈으로 올리버를 노려봤다.
“너····. 죽여주마.”
“음···. 그건 싫은데요.”
미니언을 눈치채지 못하게 허공에 흩뿌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