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6화 (16/633)

16. 전야 (2)

조셉의 소시지 공장 지하실.

그중 작업실이라 불리는 곳은 참으로 불균형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고급차량이 세워진 빈민가와 같았다.

왜? 작업실 자체는 허름한 데 반해 작업 도구인 플라스크와 깔데, 호스, 건조기, 증류기, 기타 철제도구는 잘 관리돼 빛이 번쩍번쩍 났기 때문이다.

하긴, 당연했다. 올리버를 비롯한 하급제자들이 작업이 있든 없든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깨끗하게 손질했으니 말이다.

“좋아 끓기 시작한다!”

중급제자 중 하나가 대형 증류기 앞에서 외쳤다.

증류기 아래에는 당연히 물이 끓고 있었는데, 물 바로 위에는 망에 받힌 약초가 한가득 있었다.

감정을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밑 작업이라나?

증류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길쭉한 관을 따라 소량의 물이 쪼르르륵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더웠는데, 올리버는 그럼에도 눈의 떼지 않고, 밑 작업을 하며 제품 생산을 관찰했다.

한 중급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흘리지 말고 제대로 모아라. 주인님께서 특별히 작업 참가에 허락했으니까. 제대로 해.”

밑 잡업이란 다름 아닌 시중에서 사 온 궐련을 찢어 하나의 통에 담는 것이었는데, 귀찮다뿐이지 그다지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얀 궐련을 하나 짚어 칼로 종이를 슥- 그은 다음 안에 든 각연(刻煙/잘게 썬 담뱃잎 을 하나의 통에 담으면 됐다.

올리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 작업에 임했는데, 오히려 보지도 않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올리버가 다시 중급제자들의 작업을 관찰했다.

관에서 나온 증류액이 어느 정도 모이자, 그 통을 가지고 사람 머리보다 큰 둥그런 플라스크 앞으로 가 호스를 통해 증류액을 넣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뚜껑으로 추출한 감정을 넣어 증류액과 감정을 뒤섞은 뒤, 열을 가해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 딱- 소리와 함께 올리버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올리버가 고개를 돌리자 아까부터 작업을 감독하던 중급제자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쳤다.

“네 작업에만 집중해! 도둑놈 새끼처럼 힐끔힐끔 보지 말고!!”

사실, 약간 억울한 경우였다. 왜냐면 올리버가 작업을 훔쳐봤을지언정, 자기 일에 소홀하진 않았기에.

그러나 중급제자는 상관없다는 듯 올리버를 노려보며 다시 소릴 질렀고, 올리버는 이내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작업에 몰두했다.

이것이 광산과 고아원에서 살아남은 비결.

허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피터를 포함한 몇몇 하급제자가 중급제자를 불만스럽게 바라본 것이다.

마치, 올리버보다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알량한 계급만 믿고 어찌 거드름을 피우냐고 따지듯이 말이다.

솔직히 말은 아니었으나, 그와 별개로 중급제자는 엄청난 분노를 느끼며 인상을 팍 일그러뜨렸다. 어찌 하급 따위가 중급에게·····!

“씨발 뭐야?! 씨발 그 눈깔은 뭐냐고! 앙!”

피터와 다른 하급제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담배를 찢어 통 안에 담았다.

모르쇠로 일괄하자 중급제자는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피터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과거라면 감히 눈도 못 마주쳤을 것들이······!

중급제자가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주먹을 들었다. 그때 탁하고 누군가 팔을 잡았다.

“이런 씨····! 도대체 누구····· 어? 주인님? ”

중급제자가 사자라도 본 듯 커진 눈으로 말했다. 조셉이 물었다.

“뭐 하는 짓이냐?”

“아, 이 녀석들이 감히 질서를 무시하고 덤벼서····.”

“설마·····. 감히, 하급제자가 중급제자에게 덤볐겠느냐?”

조셉의 질문에 피터를 비롯한 다른 하급제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주인님. 그저 중급제자께서 올리버를 한 대 때리기에 한 번 눈이 갔을 뿐입니다.”

“그래? 왜 올리버를 때렸느냐?”

“아니, 그게···. 계속 저쪽을 봐서, 일에 집중하라고 그런 겁니다.”

“음·····.”

조셉이 입술을 한쪽으로 모으며 생각에 빠졌다.

“혹시, 올리버가 게으름을 피운 거냐?”

“아, 그건····.”

“그게 아니면 적당히 내버려 둬라. 이번에 일 있었을 때 패밀리를 위해 기꺼이 일해준 녀석들이니. 게으름을 부리는 게 아니면 어깨너머로 보는 것 정도야.”

조셉은 마치 호인처럼 인심 좋게 말했다.

실제로 하급제자 중 이런 친절에 감동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서열 문화를 만든 게 조셉이라는 것은 잊은 모양인 듯했다.

“어디 보자. 좀 피곤한 듯한 모양이니, 잠시 밖에 가서 쉬어라.”

중급제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주인님.”

“아냐, 내가 볼 땐 피곤해 보여. 어서.”

중급제자는 다시 부정하려 하나 조셉의 노기 섞인 눈동자를 보고 낑낑대는 강아지처럼 축 늘어진 채 나갔다.

작업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뭐 하나? 다시 일하지 않고.”

부스럭. 부스럭. 조셉의 말에 하급제자들이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괜찮아졌다고 판단한 올리버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필거렛 생산 과정을 훔쳐봤다. 물론, 손을 멈추는 일 따윈 없었다.

“궁금하나?”

조셉이 물었다.

“예?”

“왜 증류액을 한번 뽑아 저기 플라스크에서 감정과 섞는 건지?”

“아, 예···. 궁금합니다.”

“감정을 물에 더 잘 섞기 위해서다. 저 증류액은 ‘솔루’라는 약재를 기본으로 몇몇 개 약초와 함께 끓여 추출한 것인데, 그냥 물보다 감정이 더욱 잘 스며드는 용해액 작용을 하거든. 증류액을 다 뽑은 다음 저 둥그런 플라스크에서 감정과 섞는다.”

실제로 증류액과 감정은 플라스크 안에서 섞여갔는데, 올리버가 보기에도 꽤 잘 섞이는 것 같았다.

“섞이면 열을 가해 다시 한번 더 추출하지. 양은 줄어들지만, 질은 한층 더 높아져.”

올리버는 조셉의 손가락 끝을 따라. 빙글빙글 도는 플라스크 관과 그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2차 증류액을 봤다.

거대한 증류기에 있던 물은 한 양동이로 변하더니, 이내 한 컵이 됐다.

“담배 다 채웠으면 가져와라.”

올리버가 각연을 채운 통을 들고 조셉을 따라갔다.

안쪽으로 가니 2차 정제까지 마친 증류액에 흑마법을 쓰고 있는 상급제자들이 보였다.

“이게 실질적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다. 집착을 기반으로 흑마법을 써 감정과 증류액을 완전히 하나로 만드는 화학적 단계지. 이때, 실질적인 품질이 결정되는데, 약사의 기준으로 우리 제품은 1~2단계 정도 된다더구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눈으로 보니 이해하기 쉬웠다.

아직까지 증류액 속에서 따로 놀던 감정은 흑마법 가공 단계를 거치자 엷게 퍼지더니, 증류액과 완전히 섞여 하나의 옅은 감정 덩어리로 변했다.

고기가 가공육이 된 경우랄까?

물론, 그 탓에 밀도는 약해졌지만, 약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셈이었는데, 조셉은 올리버가 가져온 담배통을 오븐 틀 같은 곳에 넓게 뿌리더니, 완성한 증류액을 비워버렸다.

“이렇게 잘박잘박하게 담배에 적셔준 다음 몇 시간 동안 숙성시키고, 저기 저 건조기 안에 넣으면 되지. 그럼, 필거렛이 완성되는 거다.”

콘트리스 믹서기처럼 생긴 건조기를 가리키며 조셉이 말했다.

때마침 완성된 필거렛이 나왔는데, 중급제자 하나가 그것은 조심조심 옮겨 한 작업대 위에 올려놨다.

작업대 앞에는 다른 중급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울을 이용해 각연의 무게를 세밀하게 잰 뒤, 조심스럽게 틀 안에 넣고는 레버를 당겨 필터만 든 빈 궐련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궐련은 한쪽에 산처럼 쌓였는데, 나머지 인원이 빈 담뱃갑에 스무 개비씩 필거렛을 채워 넣었다.

조셉이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게 바로 필거렛이지. 겉보기에는 담배와 전혀 다르지 않아. 정밀 분석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지. 보통 한 개비가 10만 란다에 팔리니. 한 갑에 200만 란다. 보통 이걸 한주에 50갑에서 100갑 사이 팔고 있지. 어떻냐?”

올리버는 조셉이 든 필거랫을 건네받아 손에 들었다.

담배를 감싼 종이 너머로 이슬처럼 머금어진 모성애가 보였는데, 본능적으로 이것을 흡입하면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을 눈치챘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이것을 가지고 싶었다. 이유 따윈 없었다. 그저 원초적인 욕구만이 있을 뿐.

올리버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릴 때 조셉이 필거렛을 쏙 빼갔다.

“아····.”

어찌나 아쉬운지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소리 냈다.

“필거렛은 총 3가지 종류가 있다. 모성애나 사랑을 재료로 한 진정제, 성적 쾌락이나, 마약을 했을 시 느끼는 쾌감을 재료로 한 간접 쾌락, 분노나 증오를 기반으로 한 각성제····. 어때, 재밌느냐?”

올리버가 바로 비위를 맞추며 대답했다.

“예, 재밌습니다.”

“좋다. 그럼 당장 잡업에 참가하라면 할 수 있겠나?”

조셉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중급제자와 상급제자가 모두 이쪽을 바라봤다. 올리버는 평소처럼 대답했다.

“예.”

그 순간 올리버는 보았다. 자신을 경계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그러한 감정은 공명하듯 주변을 뒤덮어 무거운 침묵을 만들었는데, 쾅- 쾅- 문 두들기는 소리가 그 적막을 깨뜨렸다.

조셉이 웃으며 문 쪽에 대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

“예, 주인님. 약사 쪽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우릴 습격한 놈들에 대해 드디어 알아냈다고 합니다.”

***

“아니 도대체 기강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게 말이야. 다들 봤어? 주인님이 놈에게 직접 작업을 설명해 주는 거? 씨발.”

“그러게 운 좋게 공 좀 세웠다고····.”

“거기가 직접 해보겠냐고 묻기까지 했잖아요? 전 작업실에 발 디디는 데만 7년은 걸렸는데요.”

“그래, 이건 불공평해.”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은 지하실 한구석. 상급제자들과 중급제자 일부가 모여 서로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조셉 패밀리에서 누구보다 많은 혜택을 보는 이들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공평과 형평성에 대해 논했다.

····. 음,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공을 세우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올라왔다곤 하나, 올리버의 성장 속도는 확실히 위협적이었으니.

들어온 지 열흘도 안 되어 하급제자가 되고, 중급제자까지 논했으니.

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불만은 사실 형평성이 아니었다. 진짜 불만은 자신들의 자리가 위협받는다는 거지.

힘을 추구하며, 그를 바탕으로 서열을 세우는 흑마법사의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재능있는 하급자를 하루라도 빨리 죽여 자기 자리를 보존하는 형태로 바뀌었는데, 현재 올리버는 그런 자신들을 직접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들 인정하진 않지만, 다들 알고는 있었다. 재능만큼은 올리버가 독보적인걸.

지금은 계급 차이로 간신히 억누르고 있지만, 이대로 방치한다면 더 이상 계급만으로 견제할 수 없을 때가 올 테고, 그럼 밀려나는 건 건 기정사실이었다.

어느새 하나둘 앤드루를 봤다.

조셉의 수제자이자, 패밀리의 2인자, 자신들의 실질적 수장을.

앤드루와 동료인 한 상급제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속 방치할 거야? 이대로 가면 우리가 그동안 노력한 게 모두 허사가 될 텐데.”

앤드루가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 서두르면 안 돼.”

“하지만-”

“-지금 주인님이 그 녀석을 주시하고 있어. 어설프게 움직였다가 자칫 걸리기라도 하면 죽는 건 오히려 우리야. 아직 우린 주인님보다 약하잖아.”

“그럼?”

“때를 기다리자. 지금은 이래저래 바쁜 시기이니, 기다리다 보면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타이밍이 올 거야. 알잖아? 나 운이 좋은 거.”

아무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앤드루는 운이 좋았다.

흑마법사로서 재능도 있었고, 실력 있는 상급자가 줄줄이 패밀리에서 도망친 덕분에 손쉽게 수제자 자리에 올랐으니. 거기다 그는 특유의 치밀함과 교활함도 있었다.

앤드루가 확신하듯 말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와.”

그에 대한 신호였을까? 갑자기 한 중급제자가 와 앤드루에게 주인님이 호출했다고 알렸다.

앤드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추스른 다음 조셉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같은 파벌을 다시 한번 안심시켰다.

“기다려 분명 기회는 오니까.”

그런 다음 앤드루는 개미굴 같은 복도를 지나 조셉의 방으로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들기자 들어오란 소리가 들렸고, 들어가니 약사가 보낸 사람과 막 대화를 마친 조셉이 앤드루를 맞이해 주었다.

“왔느냐?”

“예, 주인님····. 부르셨다고. 무슨 일이신지?”

“약사가 우릴 습격한 놈의 정체를 밝혔다고 한다. 뭐, 정확히는 이 구역 자체를 먹으려는 녀석이지만.”

“예? 그 겁 없는 녀석이 누구랍니까?”

“마법사라더군.”

“····. 예?”

앤드루가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마법사. 그것도 마탑 출신 마법사. 몇몇이 란다의 양아치들과 뭉쳐 이곳으로 왔다더구나?”

“마법사가 이곳에····? 그게 가능합니까? 란다에서 이미 잘나가고 있는 족속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마탑이라니.”

“뭐, 나도 아직 믿기진 않지만, 값비싼 스크롤을 사용하는 점과 약사가 가져온 정보인 점을 고려하면 일단 믿어야겠지? 요즘 마법사들도 경쟁이 치열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럼····?”

“정말 상대가 마법사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해진다. 제대로 된 마법사들은 살아 움직이는 중화기니. 아마, 약사 쪽 인원만으로 처리하기 힘들겠지.”

“그럼, 약사를 돕는 거니까?”

“그래, 어차피 우리 적이기도 하니, 적당히 협력해 뿌리 뽑는 게 좋겠지. 다른 파리까지 꼬이기 전에···. 앤서니와 도미니크 패밀리 역시 돕기로 했다.”

앤드루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지원으로 나가야겠군요?”

“그래야겠지. 혹여, 불만 있느냐?”

“아뇨, 없습니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앤드루는 거짓을 진실처럼 말했다.

“네가 흔쾌히 받아주니 고맙구나.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인원은 넉넉히 붙여주도록 하마. 비워진 노동력은 내가 메꾸면 되니. 동료 상급제자 둘, 중급제자 넷, 하급제자 여섯 명을 붙여주마. 그 정도면 안전할 거다.”

그 순간 앤드루의 머리에 번개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벌써 기회가 온 거였다.

“그럼, 주인님. 제가 작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냐?”

“지원으로 데려갈 인원을 제가 뽑아도 되겠습니까?”

앤드루가 올리버를 떠올리며 그리 말했다. 역시 자신은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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