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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15화 (15/633)

15. 전야 (1)

“어····. 클링 스파이더 웹이라 할까요?”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곤, 거미줄에 묶인 습격자에게 다가갔다.

검은빛 거미줄에 묶인 습격자는 스크롤을 펼치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는데, 말조차도 하지 못해 꼭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단, 하나. 눈만 빼고.

“·····. 어···· 우.”

습격자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올리버는 관심 없다는 듯 한 번 상태를 확인하곤 신경을 껐지만 말이다.

“이제····. 이거 어떡하죠?”

올리버가 피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두려움과 경외, 혼란 등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는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데, 데려가야지. 주인님에게. 뭐, 기절시킬 만한 게·····.”

피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올리버는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 벽돌을 하나 집어 들어 그대로 습격자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습격자를 속박하던 거미줄은 외부의 충격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졌는데, 다행히 습격자도 기절해 딱히 문제는 없었다.

쓰러진 습격자를 내려다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기절시켰어요.”

“아····. 그렇네.”

“····. 근데, 이거 어떻게 데려가죠?”

어이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이상한 질문도 아니었다.

습격자는 성인 남자로 제법 체격이 좋은 데 반해, 올리버는 삐쩍 말랐으니.

“글쎄, 같이 옮겨볼까?”

피터가 비틀비틀 일어나 말했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좋은 피터가 상체를 들고, 올리버가 하체를 들었지만 모두 힘에 부쳐 얼마 가지 못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힘든데?”

“····. 저기,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응? 뭐?”

“아까 전 질문. 혹시 제가 위험한가요?”

“·····.”

피터는 다시 한번 침묵했다. 방금 죽을 뻔했는데도 앤드루와 그 밑 파벌의 눈치를 살피는 거였다. 우습게도 말이다.

한 5초 정도 지나자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대답해 주기 싫으면 대답 안 해주셔도 됩니다. 괜한, 질문해서 죄송해요.”

“····. 왜 아까 전에 날 도와준 거야. 습격자들 공격할 때.”

이번에 침묵한 것은 올리버였다.

피터가 다시 물었다. 왜 자신을 도와준 거냐고.

흑마법사란 약육강식. 자기보다 약하거나 도움이 안 되는 자는 쉽게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저번 습격에서 하급제자들만 죽어 나간 거고.

올리버가 대답했다.

“어····. 처음 저한테 하급제자 생활을 알려주시고, 이후, 이것저것 제 질문에 대답해 주셔서요? 그래서 도와줬어요. 받은 게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물음표를 붙인 대답. 허나, 그 탓에 더욱 진심처럼 느껴졌다.

역시나 속을 알 수 없었는데, 그 태도가 피터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 네가 위험하냐고 물었지?”

“예.”

“어, 맞아. 위험해.”

피터가 뒷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너도 알 테지만, 흑마법사는 힘이 곧 서열이며, 정의야. 즉, 갑자기 강자가 나타나면 그게 누구든 상급자로 모셔야 한다는 거지. 그런 탓에 이미 위쪽에 있는 사람들은 실력 있는 자를 극도로 견제해. 언젠가 자기 자리를 위협할 존재니까.”

올리버는 말없이 가만히 들었다. 표정이나 눈은 그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넌 누구보다 경계의 대상이야. 들어온 지 열흘도 안 돼 곧 하급제자가 될 녀석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심지어 그 녀석은 앤드루 님 라인이었는데.”

“라인요?”

“파벌. 앤드루 님과 친하다는 이야기지.”

올리버는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댔다. 피터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면 이익이 있거든. 앤드루 님은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뒷배가 생겨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지. 이미 이런지 시간이 상당히 됐어.”

“····. 그럼, 다른 실력 있는 흑마법사들이 못 생기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말했잖아? 같은 흑마법사에게 뛰어난 흑마법사가 마냥 반가운 존재가 아니라고.”

“하지만 주인님께선····.”

“주인님께선? 뭐?”

올리버는 대답하려다 말고 고개를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상했다. 분명, 그는 강한 흑마법사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 현실과 기이한 괴리가 있었다.

피터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 조심해···. 애당초 네 자리 만들어 준 하급제자가 정말 식중독으로 죽은 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야.”

피터는 도와준 은혜를 갚았다는 듯 말을 끊었다. 그와 함께 힘이 쭉 빠지는 듯한 탈력감(脫力感 과 함께 스스로 뭔가를 했다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난 할 만큼 했다. 그리 생각하는데, 올리버가 다시 말을 걸었다.

“고마워요.”

“응?”

“질문에 대답해줘서 고마워요···. 도움이 됐어요.”

“어어····. 응, 그럼 다행이고.”

“이제 그럼 다시 일할까요?”

피터와 올리버는 다시 습격자를 들어 옮겼다.

역시나 무거웠는데, 그럼에도 피터는 방금 올리버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고마워요 라니····.

***

“이거 오랜만이오. 그냥 오지 않았을 테고, 무슨 일이오?”

“할 말이 있어 이리 찾아오게 됐소.”

조셉 소시지 공장 아래 지하실.

그곳엔 개미굴처럼 여러 공간이 있었고, 그중 가장 화려한 접객실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눴다.

한 명은 이곳의 왕인 조셉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거래처인 약사였다.

아, 정정하겠다. 그냥 거래처가 아니라, 가장 큰 거래처였다.

조셉이 생산한 물건을 전부 소화하며, 동시에 원료까지 공급해주는.

그래서 이 동네에서 손꼽히는 흑마법사인 조셉조차 그에게는 조심스러웠다.

“뭐, 마시겠소?”

“아뇨. 괜찮소. 서로 바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소.”

“마음에 드는군. 용건이 뭐요?”

약사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금테 안경 너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혹시 근래 습격당한 적 있소? 재료 수급 중에 말이요.”

“·····. 어떻게 아신 거요?”

사실을 확인한 약사가 상체를 당기며 대답했다.

“알았다기보다는 짐작한 거요. 앤서니 패밀리, 도미니크 패밀리 모두 습격을 받았거든. 아, 참고로 나도 포함되오. 란다에 배달 중이던 트럭이 습격당해 털렸지.”

조셉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약사가 겉보기에는 샌님처럼 생긴 사람이었으나, 실상은 조셉을 비롯한 다른 흑마법사에게 뒤지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약국을 운영하는 척 건실한 사업가 흉내를 냈지만, 뒤로는 흑마법사와의 모든 거래를 장악한 이 도시의 거물.

최소한 이 도시에서 그와 대립할 자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트럭이 털렸다? 그럼, 결론은 단 하나였다.

“타지에서 벌레들이 기어들어 온 것이오?”

“아마도 그런 것 같소. 란다가 급격하게 발전하며 거기 생존경쟁에서 패한 떨거지들이 주변으로 퍼지고 있다 하니, 그런 거 아니겠소?”

“하!”

조셉이 웃었다. 빼 먹어 가는 것도 모자라 똥까지 싸지른다니.

“정체가 뭐요? 일반 갱들? 아니면 흑마법사?”

“그건 저도 잘 모르오. 그저 사태를 파악하고, 여러분들끼리 서로 오해하지 않게 상황을 설명하러 온 것뿐이오.”

조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이 작은 도시를 먹겠다고 흑마법사들끼리 싸워 공멸 직전에 몰렸던 걸 중재한 게 다름 아닌 그였으니. 다만, 그때 이후로 묘하게 이자에게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어쨌건, 말씀해주셔서 고맙소. 최대한 빨리 수색해 범인이 누군지 알아보도록 하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부탁드려도 되겠소?”

“예, 물론····. 어차피 우리 적이기도 하니. 만약, 우리도 흔적을 찾게 된다면 연락 드리겠소.”

그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뭐냐? 지금 손님과 대화 중인데, 급한 일이 아니라면 나중에 이야기하라니까.”

문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런데 꼭 보고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약사가 괜찮다는 듯 눈짓을 하자 조셉이 말했다.

“뭐냐?”

“그···. 올리버가 잡아 왔습니다.”

“···. 뭐?”

“올리버가 저희를 습격한 놈을 잡아 왔습니다.”

“·····.”

“·····.”

조셉과 약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

올리버는 피터와 힘을 합쳐 기절한 습격자를 끌고 왔다.

도저히 드는 게 안 돼 양다리를 하나씩을 붙잡고 끌고 왔는데, 덕분에 습격자는 등이 다 갈린 상태였다.

“후욱―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는 올리버와 피터.

잠시 정문 근처에서 쉬는데, 어느새 주변에는 임시 제자와 하급제자, 심지어 중급, 상급제자도 몰려와 있었다.

“와, 씨·····. 말이 돼?”

“정말 쟤네가 잡은 거야?”

“그렇다는데?”

허나, 그것도 잠시, 약사와 함께 나온 조셉이 등장하자 올리버와 피터, 습격자 주위에 파리 떼처럼 붙어있던 아이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우릴 습격한 놈을 잡았다고?”

“아····. 예, 주인님.”

옮기느라 지친 피터가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때, 뒤따라 나온 약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진짜 잡았군. 난 또 뭘 착각한 건 줄 알았는데, 정말 잡았어·····. 참으로 대단한 제자들이군. 누가 잡은 건가?”

약사의 질문에 피터가 곁눈질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말뜻을 이해한 약사가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크흐흐흐····. 크하하하핫! 또 이 친구인가? 최근에 본 것 같은데, 근래 데려온 제자요?”

“그렇소.”

“정말 대단한 아이를 데려오셨군. 생명력을 뽑아낼 때부터 보통이 아님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지금 몇 살이오? 13살? 14살? 그런데도 이 정도라, 여기뿐 아니라 다른 패밀리의 아이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군. 다들 부러워하겠소.”

“칭찬 고맙소.”

대답과 달리 조셉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허나, 약사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이게 습격자라고?”

“예. 스크롤이란 거로 도망치려고 하는 걸 때려잡았습니다.”

“뭐?!”

조셉을 포함한 모두가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스크롤이란 것은 마법사들이 만드는 값비싼 물건.

특히나 순간이동 스크롤처럼 까다로운 마법은 아주 비쌌다.

제대로 된 물건은 기본이 수백에 안전성과 거리에 따라 수천, 수억을 호가했으며,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만든 물건 역시 수십, 수백은 됐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약사가 끼어들었다.

“음, 스크롤이라, 스크롤····. 조셉. 괜찮으시다면 이 습격자를 내가 데려갈 수 있겠소?”

“어째서요?”

“비싼 스크롤로 도망치는 양아치라니 척 봐도 수상하지 않소? 이 동네의 유지로서 누가 행패를 부리는 것인지 직접 알아내고 싶어 그러오. 부디 허락해주시오. 일주일 안에 모든 걸 불게 해 전부 알려 드리겠소, 따로 섭섭지 않게 보답도 하겠소.”

조셉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약사가 이런 식으로 거짓말은 한 적이 없었으니. 거기다 습격자와 실랑이하기에도 일도 밀릴 상태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약사는 반갑게 웃으며, 데려온 경호원에게 기절한 습격자를 차 안에 넣어두라 명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는 공장을 떠났는데, 떠나기 전 올리버에게만 따로 가볍게 인사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네. 어린 친구 같은 데 대단해.”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공장은 조용해졌는데, 조셉이 입을 열어 적막을 깨뜨렸다.

“올리버.”

“예, 주인님.”

“어떻게 습격자를 잡은 거냐? 네 선배들은 꼬리도 잡지 못했는데····. 뭐, 스크롤로 도망치는 놈이면 얼추 이해되지마는.”

“피터 님이 도와줘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조셉의 미간이 좁혀졌다.

피터가 도와줘 잡아? 뭔가 심히 이상했지만,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았다. 공을 세웠으니까.

“뭐, 좋다····. 뭐가 됐건 큰 공을 세웠으니까.”

부정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중급제자들은 다 놓친 놈을 잡아 왔으니.

“공을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상을 줘야지. 덕분에 내가 목에 힘 줄 일이 생겼으니. 음, 어디 보자····. 이례적이긴 하지만, 중급제자로 만들어 줄까?”

그 말에 중급제자는 물론, 상급제자들도 모두 놀랐다.

제자들은 수는 늘 정해진 티오가 있었는데, 갑자기 단 한 명을 위해 그것을 깨다니.

그러나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애당초 그 규정조차 패밀리의 주인인 조셉이 정한 거니. 괜히, 반대했다간 되려 찍힐 수 있었다.

그렇게 올리버가 단숨에 중급제자로 진급 하나 싶었는데, 당사자인 올리버가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아뇨, 괜찮습니다. 주인님.”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어째서?”

올리버가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저는 그냥 흑마법을 배울 수 있으면 족해서요. 지금 자리도 감지덕지합니다. 괜히 안 그러셔도 됩니다. 그냥 좀 더 자주 수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

“왜 그러냐?”

“정말 부탁드리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혹시,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싶은데, 잡일이라도 시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가 귀찮은 일은 전부 도맡겠습니다.”

“····. 하급제자들은 제품 생산에 투입 시켜 달라는 거냐?”

“아···. 물론 저 혼자 해도 됩니다.”

그 대답에 조셉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별 웃기는 놈 다 있다는 듯이.

잠시 고민에 빠지는데,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어차피 일정이 다급하니 일손이 늘어난다고 나쁠 건 없겠지.”

“““예??!!”””

조셉 뒤에 서있더 중급제자와 상급제자들이 놀라며 말했다.

조셉이 뒤돌아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조셉이 다시 올리버를 내려다봤다.

“네 부탁대로 하급제자들의 수업을 늘려주고, 제품 생산에도 투입해 주마. 그럼, 이만 쉬도록 해라.”

조셉은 말을 마치며 돌아갔는데, 그 모습을 보며 올리버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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