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13화 (13/633)

13. 역할 분담 (1)

”영양제요?“

서류 가방을 들고 낑낑 걸어가고 있던 올리버가 물었다.

랏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생명력은 전부 영양제로 가공될 거야. 꼭 영양제로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영양제로 만드는 게 효율적이거든.“

사업에 관해 문외한인 올리버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랏소가 더욱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줬다.

”영양제의 주 고객이 누군지 알아?“

”아뇨.“

”바로, 란다의 부유층이야. 란다가 어딘지는 알지?“

올리버는 기억을 더듬었다. 음·····. 아, 한번 들은 적 있었다.

조셉과 함께 이곳 와인햄에 도착했을 때 그가 란다에 대해 한번 이야기했다. 와인햄의 공장이 전부 란다로 이주한다고 말했다.

”한 번 들어봤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란다가 여기를 비롯해 주변 도시를 먹어 치우며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도 알고 있겠네?“

올리버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도시에는 부자도 어마어마하게 생기지. 가난뱅이는 더 생기지만. 여하튼, 란다의 부유층은 상당수 나이 많은 뚱뚱이로, 그들은 돈은 많은 데 비해 건강은 별로거든. 그래서 생명력으로 만든 영양제를 큰돈을 주고 사가. 돈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올리버가 대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생명력은 필거렛과 마찬가지로 우리 패밀리의 주요 상품 중 하나지. 수요는 계속해 늘고 있으니, 이쪽 시장도 전망이 밝지.“

사업가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랏소. 그러던 중 피터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어 아부했다.

”하하, 그거참 대단하네요. 시장 전망이 밝다는 건 수요도 늘어난다는 거니. 패밀리는 더욱 번창하겠네요.“

그저 잘 보이려고 맞장구친 거지만, 랏소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하지만, 수요만 늘면 안 되지.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려야지.“

”공급요?“

”그래, 영양제 한 병에 무지막지한 거금을 받지만, 그것도 제품이 확실할 때 이야기거든. 양을 늘리기 위해 질을 떨어뜨리면 칼같이 거래를 끊어. 그래서 조심해야.“

”아아, 그건 큰일이네요.“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니야.“

”예?“

”요점은 재료를 제대로 수급할 수 있냐는 건데, 이 도시의 상황을 봤을 때 꽤나 희망적이거든.“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오면서 봐온 도시의 거리라곤 문을 닫은 가게와 공장, 가난함을 풍기는 집뿐이었는데, 희망적이라니.

랏소가 그 생각을 꿰뚫어 보듯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아. 이런 가난한 도시에 희망적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겠지. 하지만, 그건 너희가 그만큼 미숙하다는 거야. 가난은 의외로 흑마법사에게 호재거든. 말해봐. 이 도시에 모든 공장이 란다로 이주하면 어떻게 되겠어?“

피터는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나름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 가난해지겠죠?“

”그렇지. 그럼, 사람들이 전부 일자리를 찾아 란다로 떠날까? 그건 아니야. 상당수는 떠나겠지만, 그 못지않게 이곳에 남은 이들 역시 많을 거야.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그럼 우린 믿을 만한 브로커를 통해 그런 사람들에게서 돈을 좀 주고 생명력을 뽑으면 돼. 곧 이 도시 전체가 우리의 재료가 되겠지.“

그러자 피터의 눈이 빛났다.

”정말 대단한 이야기네요. 역시 중급제자님은 저희 같은 하급과 다르십니다.“

”사실, 나도 앤드루 님한테 들은 거에 불과해. 그냥 자랑 좀 해보고 싶어서 떠든 거야. 말하고 나니 좀 쑥스럽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찌 됐건, 이건 너희에게만 특별히 알려 준 거니 너희만 알고 있어.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괜히 많이 알아봤자 좋은 거는 없으니까.“

‘너희에게만 특별히’

그 단어에 피터가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년 방장 노릇을 하는 그에게 중급제자 중에서도 발군인 랏소의 말은 그만큼 기쁜 것이었다. 실제로는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도 말이다.

”자, 이제 거의 도착했네. 다행이다. 저녁 식사 전에는 도착해서. 그런데, 저기 무슨 일이지?“

랏소가 저 멀리 공장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를 살펴보며 말했다. 어딘가 어수선했는데, 다들 겁먹고 당황한 눈치였다.

”이봐, 무슨 일이야.“

랏소가 다가가 바쁘고 움직이고 있는 임시 제자 하나를 붙잡아 물었다.

가만 살펴보니 임시 제자의 작업복에는 피가 약간 묻어 있었다.

”그, 그 습격이에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정식 제자님들을 습격했대요.“

***

소시지 공장 지하에 마련된 회의실.

그곳에 패밀리의 보스인 조셉과 그 상급 제자 다섯이 모여 있었다.

다들 분위기가 심각했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조셉이었다.

”보고.“

상급제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앤드루가 대답했다.

”예, 주인님. 오늘 재료 수급 중 정체불명의 괴한이 우리 패밀리를 습격했습니다. 열 개 팀 중 세 개 팀이 공격당했고, 그중 두 개 팀은 당했습니다. 다 합쳐 하급제자 1명이 다치고 둘이 죽었는데, 다행히 중급제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앤드루의 목소리는 비교적 밝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급제자는 딱 흑마법만 쓸 수 있는 수준이라 크게 쓸모가 없는데 반해, 중급제자는 실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실질적 병력이었으니까.

더욱이 하급제자는 임시 제자에서 적당히 뽑아 당장 그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다.

조셉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습격당했다고?“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목으로 지날 때, 갑자기 나타나 총을 쏘고 도망쳤습니다.“

”하나도 못 잡았나?“

”예, 뒤쫓아가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했습니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놈 같은데, 혹시, 다른 패밀리에서 다시 시비를 거는 게 아닐까요?“

다른 패밀리라 함은 이곳 와인햄에 있는 다른 두 개의 흑마법사 조직이었다.

조작 계열의 앤서니 패밀리, 질병 계열의 도미니크 패밀리.

과거, 조셉은 이들 두 패밀리와 분쟁을 했지만, 약사의 개입으로 화해한 후 현재 각자의 구역에서 조용히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패밀리가 계속해 성장하니 공격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조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런 식의 영양가 없는 습격은 그놈들 방식이 아니야. 짜증은 나지만 별 피해는 못 줬잖아? 그 녀석들이라면 좀 더 제대로 된 공격을 했을 거다.“

”그럼····?“

”그건 나도 아직 모르겠다. 란다가 떠들썩하다 보니 온갖 벌레가 날뛰고 있다고 하던데····. 고민이군. 이 귀찮은 벌레를 잡을지 아니면 넘길지.“

한가한 때였다면 패밀리의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이 겁 없는 녀석들을 잡아야 마땅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곧 제품 납품일. 사업을 생각하면 일단 넘기고 생산에 집중해야 했다.

”일단, 생산에 집중하도록 하자. 벌레는 나중에도 잡을 수 있지만, 사업은 아니니.“

한 상급 제자가 손을 들었다.

”습격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과연 생산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아직 재료도 덜 수급했는데, 행여 중급제자가 당하기라도 하면 일손이 부족해질 텐데.“

”그건 그렇긴 한데····.“

조셉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앤드루가 손을 들었다. 그의 눈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빛이 번뜩였다.

”그럼, 재료 수급 일을 하급들에게 맡기고, 중급제자들은 일단 저희와 같이 생산에 투입하면 어떻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앤드루에게 몰렸다.

지난 몇 년간 재료 수급은 중급제자 주도와 하급제자의 보조하에서 진행되어왔는데, 앤드루의 제안은 그러한 전통을 깨는 것이었다.

”어째서지?“

”중급제자들을 당장 재료 수급이 아니라, 제품 생산에 투입하면 납기일을 더 빨리 맞출 수 있을 테고, 그럼 그만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셉이 아무 말 않자 앤드루가 계속해 설득했다.

”몇몇 중급제자들 말 들어보니, 재료 추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이참에, 역할을 늘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뭣보다····. 하급제자들이 좀 죽어도 그리 큰 피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한 말이지만, 부정하는 이들도 없었다.

하급제자는 그저 임시제자들보다 약간 더 나은 것에 불과했으니. 언제든 그 자리는 메울 수 있었다.

그때, 한 상급 제자가 손을 들었다.

”전 솔직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좀 한가지가 좀 걸리네요.“

”무엇이냐?“

”감정 정도야 하급제자도 추출은 할 수 있겠지만, 생명력은 아직 걔네들이 추출할 수 없잖습니까?“

그 순간 앤드루는 밝게 미소지었다. 기다리던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랏소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

저녁 식사 후 모두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다.

보통 이때 저마다 쉬거나, 친한 이들과 어울려 약간 떠들썩했는데,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인지 분위기는 다소 어두웠다.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패밀리를 노리고 있었으니.

혹여 재수 없으면 자기가 다음날의 피해가 될지도 몰랐으니 지극히 인간다운 걱정이었다.

단 한 명, 올리버만 빼고.

”아····. 그래서 많이 다쳤다고요.“

”예, 사람이 총 맞은 건 고향에서 몇 번 봤지만, 여기서는 오랜만이네요.“

”아, 그래요? 근데, 모양이 흐트러지고 있어요.“

올리버가 마리가 만든 거미줄을 보며 말했다. 마리는 아차하며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요. 처음보다 나아졌어요.“

묘하게 어긋나는 대화는 이 둘의 관심사가 다름을 뜻했다.

마리는 오늘 있었던 습격에 대해 초점을 맞췄지만, 올리버는 한결같이 흑마법에 관해서만 초점을 맞췄다. 마치, 빛에만 반응하는 불나방처럼.

”참····. 한결같으시네요.“

”뭐가요?“

”아니에요····. 자 이 정도면 어떨까요?“

마리는 완성한 거미줄을 보여주며 말했다.

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그냥 형태만 흉내 낸 것이 아닌 진짜 거미줄처럼 보였다.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괜찮네요.“

올리버의 대답에 마리가 미소지었다. 자신의 노력이 이제 빛을 받은 거니····. 뭐, 순전히 자신의 노력만은 아니지만.

마리도 바보가 아니기에 자신의 노력 못지않게 올리버의 도움이 크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가 계속해 감각을 느끼게 도와주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 개선해 줬기에 이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거였다.

실로, 놀라웠다. 그가 도와준 지난 며칠이 마리가 지난 6년간 혼자 노력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룩해줬다. 정말 대단했다.

”근데, 이 부분은 이러는 게 낫겠네요.“

올리버가 거미줄을 만든 마리의 한쪽 손을 손가락으로 콕 집었다.

거미줄의 중심축을 이루는 부분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더 복잡하고 튼튼한 형태로 변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아요. 알겠나요?“

”아, 예···. 감사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괜찮으면, 저도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가 마리의 감정을 도로 가져갔다. 간신히 만든 마리의 거미줄 모형은 올리버의 손으로 들어가자 단숨에 안정을 되찾았다.

과거에는 분명 부럽고 질투가 났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이제 그런 마음도 들지 않았다.

질투라는 것도 어느 정도 수준 차이가 나야지 가능한 것이기에.

거미줄을 만드는 올리버를 보며 마리가 다시 말했다.

”저····. 진짜 감사해요.“

”아뇨, 괜찮아요. 저도 이것저것 도움받으니까요.“

”이미, 글자랑 숫자도 다 떼셨잖아요?“

그랬다. 올리버는 놀라운 학습 속도로 쓰기, 읽기, 숫자 계산 등 마리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다 배운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 마리를 가르쳐줬다.

”아···. 그것 말고 이것도 도움을 받아서요.“

올리버가 감정을 보이며 말했다.

”마리가 감정을 추출하게 도와줘서 저도 조금씩 연습할 수 있거든요.“

올리버가 거미줄 모형을 없애고, 구 형태를 만들며 대답했다.

”그건 정말 별거 아니에요. 소량 정도는 별문제도 없어요.“

”아, 저는 그 소량도 추출 못 하거든요.“

”····. 예?“

”손끝에 모아 모형 정도는 만들 수 있는데, 추출은 안 돼요. 여기 올 때 스승님께서 제 감정이 남들보다 약하다고 했는데, 그거 때문인 거 같아요.“

”아····.“

마리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임시 제자인 자신이 뭘 알겠는가?

”그래서 남의 감정을 추출해야 하는데, 마리가 도와줘서 살았어요. 안 그랬으면 답답했을 텐데.“

”····. 말 편히 하세요. 이제 저보다 높잖아요.“

”아뇨, 존댓말이 편해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누구든 존댓말을 하면 일단 맞는 것은 피할 수 있었으니.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리는 뭔가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 그럼, 원하실 때 제게 편히 말씀해주세요.“

”예····.“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짤막한 대답. 이내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안에 쥔 감정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

”·····.“

마리 역시 그런 올리버를 따라 감정을 바라봤는데, 딱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살짝살짝 구가 움찔거리는 것만 빼면.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마리가 말했다.

”오늘 어떠셨어요? 재료 수급에 나가셨잖아요.“

올리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랏소를 따라갔고, 그곳에서 미혼모들의 모성애를 추출하며, 약사라는 사람에게서 가 빚쟁이의 생명력을 뽑았다고.

”···. 잠깐만요. 생명력을 뽑았다고요? 올리버 님께서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요? 생명력을 추출하는 건 중급제자나 돼서야 배우는 건데?“

”····. 하는 걸 봤으니까요?“

올리버가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다. 마치 숨을 어떻게 쉬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너무 당연해 설명을 못 하는 눈치였는데, 마리는 감탄과 함께 걱정이 들었다.

”저기, 올리버 님?“

”예.“

”조금은 자중하세요.“

”뭘요?“

”지금 같은 행동이요···. 올리버가 천재인 건 알지만, 너무 일찍 재능을 드러내면 위험해요.“

올리버가 그제야 마리와 눈을 마주쳤다.

”위험요?“

”예····.“

마리가 말을 하다 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원래 올리버 자리에 있던 하급제자가 정말 식중독 때문에 죽은 건지는 아무도 몰라요.“

올리버가 이해하지 못하자 마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쩌면-“

――――――삐익!!!!!

갑자기 공장에서 방송 신호가 울렸다.

[아! 아! 올리버. 올리버. 당장 사장실에 올 것. 다시 방송한다. 당장 사장실에 올 것.]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 가볼게요.“

”···. 아, 예,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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