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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12화 (12/633)

12. 재료 수급 (2)

필거렛. 그게 조셉 패밀리,  아니, 대다수 흑마법사 패밀리의 주요 상품이라 했다.

“필거렛이 뭐죠?”

“혹시 담배 알아? 그거랑 비슷해. 하지만 생긴 것만 비슷하지 내용물은 천지 차이야. 이야기할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음·····.”

랏소는 세일즈맨처럼 청산유수 말하더니 고민하는 척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필거렛은 일종의 건강 마약이라고 할 수 있어. 만드는 사람에 따라 품질이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대단한 물건이지. 쾌감은 웬만한 마약보다 크고, 부작용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아니지, 요즘은 우울증 환자한테 특효약이니 오히려 건강에 좋은 건가?”

올리버가 못 알아듣자 그는 서류 가방을 가리키며 다시 설명했다.

“그 안에든 감정 어때? 혼자지만, 그럼에도 자식을 버리지 않는 아름다운 어머니들의 모성애 말이야.”

“어···. 예뻤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가공해 흡입하면 더 끝내줘. 포션을 끓여 정제한 각성제나, 약초보다 더···. 거기다 들킬 염려도 적고 부작용도 없지.”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호기심은 생겼다. 감정으로 흑마법을 다룰 뿐 아니라 담배로 만들어 피울 수 있다니. 그 제작 과정과 실제 효과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럼, 이것만 계속 추출하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필거렛도 종류가 다양하거든. 그리고 꼭 필거렛만 우리 수입원은 아니야. 그건 가면서 더 이야기해줄게.”

랏소는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올리버는 그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는 한 구석진 뒷골목에 있는 지하실로 갔다.

지하실에는 퀴퀴한 단내가 풍겼는데, 어느 정도 들어가자 단단히 막힌 쇠창살 문과 그 앞을 지키는 대머리 경비원이 보였다.

벌거벗은 여자가 그려진 책을 보고 있던 그는 이방인의 등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댔다.

“누구야? 저리 썩 저리 꺼져.”

대머리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는 듯 허리에 찬 블랙잭을 집어 들었다. 굵직한 팔에 블랙잭이라니. 바보가 아닌 이상 한 대만 맞아도 대가리가 터질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랏소가 말했다.

“마른 잎은 충분히 모았습니까?”

그 말에 대머리는 인상을 풀고는 블랙잭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벽면에 달린 버저를 눌렀다.

지하실 안쪽에서 미세하게 삐―! 소리가 들리더니, 덜커덩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쇠창살 문이 찰칵 열렸다.

경비원은 턱짓해 안으로 들어가라 했고, 랏소는 정중히 인사하며 내려갔다.

더 깊이 내려가자 지하실이 보였다.

딱히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없었지만, 어딘가 퀴퀴하면서도 단 냄새가 풍겼다.

“이런 오셨나?”

반쯤 벗겨진 회색 머리, 금테 안경을 쓴 50대 남자가 나와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약사 선생님.”

“그래, 그래. 어서 오게. 슬슬 올 때가 됐다 생각했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랏소는 약사라는 남자와 대화를 나눴고, 이윽고 어딘가로 랏소를 안내했다.

당연히 올리버와 피터도 따라갔는데, 가는 동안 작게 속삭이며 대화를 나눴다.

“누구시죠?”

“누구? 약사님? 나도 잘 몰라. 그냥 우리 패밀리 큰 거래처야. 들은 이야기긴 하지만 다른 패밀리와도 거래하고 있대.”

“다른 패밀리도 있나요?”

“당연히 있지. 어떻게 우리만 있겠어? 우릴 포함해 두 개-”

“-자, 여기일세.”

약사라는 남자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열며 말했다.

문을 열자 창고 같은 방이 보였다.

방에는 희끄무레한 전구 하나만 달랑 켜져 있었고, 그 아래에 추레한 사람들이 무릎 꿇은 채 앉아 있었다.

“모두 여기저기서 구해온 마른 잎들일세. 장부는 여기 있으니 확인해 보고.”

“예, 알겠습니다.”

대답한 랏소는 물건을 살피듯 사람과 장부를 번갈아 봤다.

꽤나 익숙해 보였는데, 그사이 올리버는 피터에게 마른 잎이 뭔지 물어봤다. 피터가 친절히 대답해줬다.

“돈 한 푼 없는 빚쟁이들이야.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그래서 개중에 상태가 괜찮은 놈을 골라 우리가 대신 빚을 갚아 주고 대신 생명력을 조금 추출해가지.”

뭘 추출하냐고 다시 물으려는 찰나, 랏소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이 사람 그리고····. 이 사람 빼고 전부 우리가 살게요.”

“뭐, 뭐야?”

랏소의 지정을 받은 사람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억센 손길만이 돌아왔다.

그들은 어딘가로 끌려 떠났는데, 매우 겁먹은 눈치였다.

물론, 선택받은 사람들이 안심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두려운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는데, 그럼에도 분위기에 위압돼 아무런 행동을 취하진 못했다.

랏소가 그들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탓에 제가 누군지는 밝힐 수 없지만, 여러분께 괜찮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들 이곳에 적잖은 빚을 지고 있는데 맞습니까?”

몇몇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빛 모두 저희가 대신 갚아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대신, 여러분들께선 저희에게 약간의 생명력을 제공해 주십시오.”

생명력. 그 묵직한 단어에 빚쟁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때, 약사가 끼어들었다. 능숙하고 익숙해 보였다.

“생명력이라고 너무 무섭게 듣지 마시게. 그냥 기운 좀 빠지는 것뿐이니. 잘 먹고 잘 쉬면 복구할 수 있을 거야.”

빚쟁이들은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듯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던 중 한 소심해 보이는 뚱보가 조용히 손을 들며 물었다.

“생명력이라니····. 위험한 거 아닙니까?”

“과하지 않으면 괜찮아. 오히려 계속 이자가 쌓이는 빚을 갚는 게 더 위험하지. 몸은 몸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축나니. 그건 내가 장담해·····. 뭐, 그래도 싫다면 당장 돈을 갚으면 되는 거고.”

약사의 말에 빚쟁이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빚을 못 갚아 이곳에 팔려 온 인생들이었으니.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랏소가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분명, 한동안 기력이 빠져 불편할 테지만 죽진 않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혹시 정 싫은 분들은 이야기하세요. 붙잡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장담컨대 지금 갚아버리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이득일 겁니다.”

그다지 대단한 말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빚을 진 자들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결국, 마지 못해서지만, 모두 동의했는데, 랏소는 손을 뻗어 한 명씩 생명력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감정과 달리 생명력이라는 것은 몸 안이 아닌 몸 주변을 두르고 있었고,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좋습니다. 끝났습니다.”

“헤엑-! 헥···. 헥···.”

생명력을 빨린 사내가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랏소가 생명력을 추출한 시험관을 꽉 닫으며 말했다.

“한동안 푹 쉬고, 식사와 잠을 충분히 취하세요. 그럼. 곧 회복될 겁니다.”

정작 당사자는 너무 힘들어 듣지는 못 들었지만. 랏소는 개의치 않고 두 번째 사람에게 다가갔다. 겁에 질린 빚쟁이가 다급히 말했다.

“자, 잠깐-”

“-예, 잠깐이면 됩니다.”

랏소가 말을 끊으며 다시 생명력을 추출했다.

살이 실시간으로 빠지는 게 보였는데, 그 기괴한 광경에 빚쟁이들은 덜덜 떨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서운 것도 있지만,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으니.

두 번째 추출도 마친 랏소가 시험관을 넘기며 말했다.

“생명력 뽑는 건 처음 보지?”

“예····.”

“이게 흑마법의 신비지.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하나가 나오거든.”

“하하, 역시 그렇네요.”

피터가 아부하며 대답했다. 올리버는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는데, 랏소가 갑자기 변덕이 생긴 듯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혹시, 너희가 한번 해볼래?”

“저희가요?”

피터가 화들짝 놀랐다.

“하하. 랏소 님도 참 농담도 잘하십니다. 저희는 배우지도 못했는데····. 안 그래?”

안 그런 거 같다. 올리버가 눈에서 빛을 뿜으며 물었다.

“정말 해봐도 되나요?”

“응?”

누군가 말했다. 피터 같았지만, 랏소 같기도 했다.

“····. 왜 할 수 있어? 혹시 배운 거야?”

“아뇨. 하지만 방금 한 거 봐서···. 할 수 있습니다.”

평소 멍한 태도와 달리 자신감, 아니, 그 이상의 확신이 느껴지는 목소리. 너무나도 단호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랏소가 진지하게 물었다.

“진짜 할 수 있어? 이건 사업이라, 실수했습니다 하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닌데?”

“실수 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런데···. 좋아, 그렇게 자신 있다니. 한번 해봐. 대신, 절대 실수해선 안 돼····. 약사님. 이 아이를 시켜봐도 되겠습니까?”

약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피해 발생 시 보상만 해준다면야.”

랏소는 진짜 시킬 생각인지 장부와 시험관의 눈금을 보여주며, 빚 얼마나 생명력을 얼마씩 뽑아야 하는지 알려줬다.

올리버는 정말 이해했는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좋아, 그럼 해봐.”

위험한 상황인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빚쟁이들이 겁이 난 표정으로 올리버를 봤다.

허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지 올리버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잠깐, 너무 멀지 않····.”

랏소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허공에 펼쳐진 손위로 남아있던 빚쟁이들의 생명력이 한꺼번에 끌려왔기에.

슈화하하아아아악―――!

“·········!!!”

그것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생명의 빛이었다.

인원수만큼 생명력 역시 크고 거대하며 빛났는데, 중급제자는 물론 상급제자도 쉽사리 통제 못 할 크기였다.

분명 그럴진대 어찌 된 영문인지 올리버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생명력을 추출해 자신의 손안에서 안정시켰다.

“····.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평소와 같은 올리버의 표정. 랏소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지도 않은 생명력을 성공적으로 뽑아낸 것도 모자라, 한꺼번에 뽑고, 그걸 다루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방장님. 죄송하지만, 시험관 뚜껑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넋이 빠져있던 피터는 화들짝 놀라며, 시험관 뚜껑을 열어댔다.

올리버는 눈금에 맞춰 정확히 생명력을 채워 넣었는데, 그사이 랏소는 생명력을 빼앗겨 끙끙대는 빚쟁이들을 살펴봤다.

모두 정확히 지시한 양만큼 빼앗겼다.

무식하게 한꺼번에 뽑았음에도 정밀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니, 한 명씩 해도 이 정도 정밀도는 힘들었다.

재능···. 아니, 이걸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나? 랏소는 아무렇지 않게 생명력을 시험관으로 옮기는 올리버를 보며 마치 괴물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기존에 쌓아놨던 패밀리의 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릴 괴물 말이다.

괴물이 말했다.

“랏소 님?”

“····. 왜 무슨 할 말 있어?”

“예, 이 생명력을 어디에 쓰이나요?”

순수한 괴물의 질문. 랏소가 웃으며 대답했다.

“가면서 이야기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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