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재료 수급 (1)
조셉의 소시지 공장 뒤편. 여러 아이가 모여 있었다.
나이는 대략 16살에서 19살. 복장은 다양했는데, 그렇다고 잘 입은 것은 아니었다.
유행이 한참 지나거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어 헌 옷을 대충 주워 입힌 것 같았는데, 실제로 비슷하기도 했다.
허나, 아이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개의치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재료 수급은 오랜만이네.”
“스승님 여행가시고 오고 이래저래 일정이 밀렸으니까.”
“한동안 좀 걸어 다녀야겠네?”
“뭐, 괜찮지 않아? 합법적으로 밖을 돌아다닐 수 있잖아?”
“뭐, 그야 그렇지.”
“운 좋으면 돈 좀 남겨서, 뭐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겠지. 난 아이스크림이라는 거 먹고 싶어. 지금, 란다에서 유행이라던데.”
“이 동네 그런 거 파는 데가 있나?”
웅성웅성 시끄러웠는데, 인원수를 확인하던 두 명의 방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씨···! 뭐야? 한 명이 비잖아? 어느 놈이야!”
방장A가 짜증스레 말했다. 재료 수급 일은 잡일이긴 해도 엄연히 패밀리 사업의 기본. 그런데, 하급 제자가 늦게 오다니.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행여, 중급제자에게 들키면 혼나는 건 자신들인데 말이다.
방장A가 더욱 짜증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새끼가 늦은 거야? 전부 제대로 서봐! 확인 좀 하게!”
그때, 방장B가 끼어들었다.
“진정해 누가 늦은 건지 아니까.”
“누군데? 그 개념 말아먹은 새끼가.”
“걔···.”
“뭐?”
“걔라고.”
그러자 열을 내던 방장A가 급격하게 식었다.
근래, 걔라고 불리는 건 단 한 명뿐이었으니. 들어온 지 단 열흘도 안 돼 정식제자가 되고, 그 과정에 한 명을 말 그대로 폭사(爆死 시킨 녀석.
그도 양반은 못 되는지 제 이야기를 하니까 등장했다. 그리고 일동 침묵했다.
“안녕하세요. 왔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와 인사를 하는 올리버. 먼저 와 있던 하급제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원래라면 막내가 가장 늦게 왔다고 화를 내는 게 옳았겠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저번 결투에서의 인상이 너무 깊었기에....
그래도 용기 있는 자는 있는 법. 담당인 방장B가 간신히 용기 내 입을 열었다.
“왜, 왜 이렇게 늦었어?”
올리버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이며 말했다.
“짧은 바늘이 1, 긴 바늘이···· 6이 되기 전까지 모이는 거 아니었나요?”
방장이 시계를 확인하곤 말했다.
“그건 맞지만, 막내는 더 일찍 나와야 해. 막내니까.”
“아····.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바로 머리를 숙여 용서를 빌었다.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아원과 광산에서는 이게 일상이었으니. 하지만 방장은 자신의 위엄을 지켰다고 생각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뭐, 다음부터는 조심해····.”
이렇게 무난하게 잘 마무리되려는 찰나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다음부터 조심하긴 뭘 조심해.”
모두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중급제자들이 있었다.
“아···.”
철썩.
“아는 무슨 아야. 말해봐 다음부터 뭘 조심해.”
중급제자가 방장의 뺨을 다시 때리며 물었다.
“그게····.”
“언제부터 우리 패밀리의 기강이 이리 해이해진 거야? 나 때였으면 조금만 늦었어도 매타작이었는데. 이렇게!”
중급제자는 그 말과 함께 올리버의 가슴을 걷어찼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원래 이렇게 물렁물렁해진 거야? 아니면 이 녀석에게만 물렁한거야? 설마 겁먹은 건 아니지?”
올리버를 걷어찬 중급제자가 취조하듯 물었다. 방장은 거의 울상이 됐는데, 그때, 다른 중급제자가 끼어들어 중재해줬다.
“자자, 그만, 그만. 오늘 일도 있으니 그쯤 해둬.”
그제야 올리버를 걷어찬 중급제자는 행동을 멈췄다.
중재한 중급제자는 분위기를 전환할 겸 오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후 쓰러진 올리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냐?”
올리버는 그를 봤다. 다갈색 머리에 호감을 주는 인상을 한 남자를.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예,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
재료 수급이란, 패밀리 사업에 필요한 감정 및 재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중급제자와 하급제자가 같이 하는 작업이었다.
중급제자 한 명, 하급제자 두 명. 3인 1조가 원칙이었으며, 각자 할당된 구역을 돌아다녀야 했는데, 실질적 업무는 중급 제자가 하고 하급제자는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며, 잡무를 도맡는다 했다.
“이해했지?”
올리버와 방장을 도와준 중급제자···. 아니, 랏소가 말했다.
그는 다른 중급제자에게 혼나고 있던 방장과 올리버를 도와줄 뿐 아니라, 이번 재료 수급 작업의 보조로 직접 지명했다.
방장은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올리버도 방장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저도 정말 감사합니다.”
랏소는 겸손하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냐. 나도 편하려고 지명한 거니까. 피터 넌 성실하기로 유명하고, 올리버도····. 요즘 유명하니까. 맞은 데는 괜찮아?”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아냐. 정말 괜찮대도. 나중에 출세하면 갚던가? 재능이 상당해 보이던데.”
랏소는 너스레를 떨며 그리 말했다. 허나, 올리버는 계속해 고개를 숙였다. 랏소가 자신을 신경 쓰지 않게끔 말이다.
“음····. 일단, 출발부터 하자. 다들 출발했으니까. 일정이 촉박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준비물은 다 챙겼어?”
방장은 바로 확인해 대답했다.
“어, 예. 시험관이 든 가방과 여기 돈. 가면도 챙겼습니다.”
랏소는 슬링백에 든 돈뭉치를 확인하곤 자기 팔에 단단히 건 다음 말했다.
“그럼 다들 가면 쓰자.”
피터는 가죽 가면을 살피더니 가장 잘생긴 것을 랏소에게 건네고, 다른 하나는 올리버에게 건넸다.
올리버는 가죽 가면을 살폈는데, 이윽고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그냥 가죽 가면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벗겨낸 인피인 거였다.
“이건····?”
“그냥 써.”
올리버는 가면을 바라보다 이내 아무렇지 않게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러자 놀라운 감각이 일었다. 얼굴뿐 아니라 전신에 가죽 가면을 뒤집어쓴 촉감이 느껴진 거였다.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봤다. 창백하고 말라빠진 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검게 탄 팔뚝이 대신 있었다.
올리버는 호기심에 자기 팔을 꾹꾹 눌러봤다.
가면을 덧댄 것과 비슷했는데, 다소 느낌이 이상하긴 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흑마법 아이템인 ‘가짜 얼굴’이야. 뒤집어쓰면 얼굴뿐 아니라 몸까지 변하지. 변한다기보다는 몸 전체에 가면을 뒤집어쓴 거에 가깝지만. ”
랏소의 친절한 설명. 올리버는 호기심이 동했다. 흑마법으로 이런 것까지 하다니. 재밌었다.
“이게 제품인가요?”
“제품? 아아, 어느 정도는? 하지만 주 품목은 아니지. 가짜 얼굴은 비싸서 한탕 할 은행강도나 갱단이 가끔씩 사거든. 주 제품은 따로 있어.”
“그게 뭐죠?”
올리버가 다시 물었다. 피터는 적당히 하라는 듯 올리버를 말렸지만, 랏소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손짓했다.
“아냐, 괜찮아. 흑마법사가 되려면 저 정도 탐구욕은 있어야지. 다만, 모두가 좋게 보는 건 아니니까 자중할 줄은 알아야 해.”
“예, 맞고 말고요. 맞고 말고요.”
피터가 올리버를 대신에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대답을 듣고 싶었는데, 랏소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 일이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긴 뭣하고, 일하면서 알려줄게. 어때?”
올리버는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랏소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따라와.”
올리버는 시험관이 든 서류 가방을 들고 따라갔다.
담당 구역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걸어야 했는데, 그 중간에 피터가 올리버 옆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운 좋은 줄 알아.”
“예?”
피터가 랏소의 뒷모습을 살피곤 작게 다시 말했다.
“운 좋은 줄 알라고. 원래 하급제자는 중급제자님들에게 함부로 말도 못 걸어. 랏소 님이 착하셔서 그냥 넘어간 거지. 앞으로 그러지 마.”
착하다라····. 올리버는 랏소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감정을 말이다. 흠·····. 착하다라?
“근데, 왜 함부로 말을 걸면 안 되죠?”
“그게 규칙이니까. 우리 패밀리는 서열과 질서를 중시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도 광산도 그랬으니. 다만,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물어보고 싶은 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뭘 그리 속닥이는 거야?”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랏소가 말했다. 피터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급히 대답했는데, 랏소는 괜찮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하하,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적당히 산책한다고 생각해.”
“아, 예예.”
“그보다 올리버. 아까전에 내가 제품이 뭔지 알려주겠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바로, 설명해주긴 힘들고. 일단, 작업하나 하지.”
랏소는 그리 말하고는 품 안에서 수첩을 하나 꺼내 살폈다.
“여기서부터 시작할까? 어디 보자····. 폴 거리 112A 번지라.”
랏소는 중얼거리며 어지럽게 지어진 여인숙을 살피며 한곳으로 들어갔다. 작고 지저분한 곳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정체 모를 지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뉘시우.”
여관 주인으로 추정되는 노파가 나와 말했다. 그녀의 눈 주변에는 검버섯이 잔뜩 생겨 꽤나 혐오스러웠다.
랏소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열매는 잘 익었습니까?”
노파의 눈이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세 개 익혀놨수다.”
“안내해주시겠어요? 맛 좀 보고 싶은데?”
“따라오시구려.”
노파를 따라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와 계산을 타고 2층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작은 3개의 방과 아이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노파가 문을 두들겼다.
“애 엄마 있는가?”
잠시 후, 끼이익하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누군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주, 주인아주머니. 어쩐 일로····?”
“으잉? 아, 별거 아니고, 전에 말했잖아. 그거. 왔어. 문 좀 열어봐.”
올리버는 보았다. 문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감정이.
그 감정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허나, 이내 각오를 다진 듯 문을 열었고, 소녀에서 여자로 넘어가기 직전의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품에는 웬 아기가 있었고, 아까 전까지 젖을 먹인 듯 옷을 추슬렀다.
“이분들이···.”
그녀가 겁먹은 듯 말했다. 노파는 그런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입 아프게 말했잖아? 위험한 거 아니라고. 아기한테도. 그냥 헌혈하는 거라 생각해.”
여인은 두려워 보였지만, 이내 선택지가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헤. 어때? 괜찮지?”
노파의 질문에 랏소가 노파에게만 보이게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노파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랏소는 올리버에게 명령했다.
“시험관 하나 줄래?”
올리버는 서류 가방을 열어 빈 시험관을 하나 내밀었다. 시험관을 건네받은 랏소는 여자를 진정시키며 손을 뻗었다.
“아프지도 않고, 부작용도 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 말과 함께 랏소는 그녀의 감정을 추출했다. 다름 아닌 아기에 대한 사랑 즉, 모성애였다.
그 빛은 몹시도 아름다웠으며, 따뜻했다. 올리버는 한순간 감탄했는데, 시험관이 1/3쯤 찼을 때 랏소가 추출을 멈췄다.
“후·····.”
여자가 숨을 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소한 감각에 다소 얼이 빠진 눈치. 그러나 랏소가 내민 돈다발을 보자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건···?”
“말했잖아, 돈도 준다고. 꽤 많지?”
돈다발에 정신이 팔린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랏소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곤 추출한 모성애를 올리버에게 넘겼다.
“그럼,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자는 돈다발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후 방 밖으로 나와 다른 방에 가서 그곳에 있는 미혼모 둘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모성애를 추출했다.
일을 마치고 다시 내려왔을 때 현관 앞에서 랏소가 세 명의 미혼모에게 줬던 돈보다 더 큰 돈을 노파에게 건넸다.
“고마ㅂ···, 으잉? 돈이 전보다 줄었네?”
노파가 질문에 랏소가 대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제값을 지불하는 만큼 품질에 까다로운 거. 마지막 방 아주머니는 이제 좀 아니네요.”
“그렇기 그렇제····. 알았네, 조만간 그 여자는 방 빼고, 다른 엄마 찾아볼게. 됐지?”
“예, 만약 제대로 된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그만큼 더 얹어 드릴게요.”
노파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랏소는 친근하게 인사하곤 밖으로 나왔는데, 나온 뒤 올리버에게 말했다.
“추출한 감정은 잘 챙겼지?”
“예.”
“그게, 재료야. 제품을 만들기 위한. 무슨 제품인지 알아?”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랏소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바로, 필거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