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급제자 (2)
올리버는 무난하게 하급 제자 생활에 적응해갔다.
사실 적응이라는 말도 웃긴 거였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교실과 실험실, 작업장, 서재를 청소하는 것뿐이었으니.
그것은 임시제자일 때와 마찬가지였고, 작업량은 솔직히 비교도 되지 않게 적었다.
청소가 끝난 후에는 식사.
상급 제자와 중급 제자 다음으로 먹었기에 마음껏 먹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매일 소시지나 햄, 진한 수프, 막 구운 빵을 배급받았기에 임시제자일 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괴로운 것이라면 갑자기 개선된 생활과 넘치는 개인 시간으로 무료해졌다는 거였다.
올리버는 혹시나 싶어 방장에게 수업을 언제 들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건 스승님께서 정하는 거야. 최근에 한 번 수업했으니까. 한동안은 없다고 생각해.’
올리버는 아쉬워하며 서재는 언제 이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직 글은 완벽하게 깨우치진 못했지만, 제대로 읽게 된다면 책으로 독학을 할 수 있지 않은가? 허나, 이 역시 아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안돼. 서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인님뿐이야. 귀중한 지식을 함부로 개방할 리 없잖아? 기껏해야 앤드루 님이나 좀 이용할 수 있을걸?’
앤드루라면 조셉의 명을 수행하는 수제자.
올리버는 수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쎄한 기분이 들며 이내 관두었다.
고아원과 광산에서 살아남은 촉이랄까? 이 질문은 자신을 위험하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올리버는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나날을 보내며, 틈틈이 마리를 찾아가 글과 숫자 등을 배우는 데 힘썼다. 혹시 필요해질지 모르는 그때를 위해서.
“어, 빠르네요···.”
“뭐가요?”
마리가 말하고 올리버가 대답했다. 그녀는 감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배우는 속도가 말이에요····. 얼마 전에 알파벳을 뗐는데, 이제는 단어는 물론 문장도 얼추 맞게 쓸 줄 알고···. 정말 대단하세요.”
그녀는 진심으로 칭찬했지만, 올리버는 딱히 기뻐하지 않았다.
글자를 배우는 게 목표가 아니니 당연했다. 글자는 흑마법을 배우기 위한 중간 경유지일 뿐. 경유지에 도착했다고 기뻐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다 근래 서재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하게 의욕이 떨어진 상태였다.
분명, 조셉은 뛰어난 흑마법사를 기르는 게 목표라 하였는데, 뭔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올리버의 상태를 포착한 마리가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그게····. 하급 제자가 됐지만, 수업도 못 듣고 서재도 이용 못 하고 있거든요.”
올리버가 별생각 없이 말했다.
하급 제자도 되지 못해 위기에 놓인 마리에게 하긴 너무한 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마리는 이제 익숙해졌다는 듯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당연하죠. 서재는 흑마법의 지혜가 담긴 보물창고 같은 곳인데. 그걸 하급 제자가 함부로 이용하게 할 리 없잖아요?”
“왜요?”
“·····.”
순수한 올리버의 질문에 마리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아!
“그건 차등을 주기 위해서죠.”
“차···· 등요?”
“예, 차등. 차이를 두는 거요. 뛰어난 사람과 덜떨어진 사람을 같게 대우할 수 없잖아요? 가치가 다르니까.”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한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아예 말 자체를 못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마리는 세 살짜리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조곤조곤 설명했다.
“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음····. 아! 요즘 생활은 어떠세요? 잠자리나 식사요?”
올리버는 대답했다. 깨끗한 침대와 작은 책상, 매일 아침 식사마다 나오는 소시지, 햄, 베이컨 따위를.
대답을 다 들은 마리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로 그것과 같은 거예요. 만약, 임시제자도 아침마다 소시지를 받으면 저나 다른 애들이 애를 쓰고 노력할 거 같아요? 더 나아가 아예 흑마법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겠죠.”
올리버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댔다.
“어····. 그러니까 마리는 소시지를 먹으려고 흑마법을 배우는 건가요?”
또다시 날아든 바보 같은 질문에 마리는 탁하고 이마를 짚었다.
임시제자가 정식 제자에게 이런다는 것 차체가 엄청난 무례였지만, 올리버의 얼빠진 태도를 보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뇨····. 설마, 소시지랑 햄 때문에 흑마법을 배우겠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올리버 님은 왜 흑마법을 배우는 거예요.”
“재밌잖아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너무 당당해 따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리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말했다.
“····. 저는 꼭 그래서 배우는 게 아니에요.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요.”
“현실적인 이유요?”
올리버가 관심을 보였다. 원래 마리라면 대답하지 않을 테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저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이게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에요.”
“희망요?”
“예, 저 같은 밑바닥 인생의 유일한 희망요. 흑마법사가 되면 더 이상 눈치 안 보고 살 만큼 강해질 수 있거든요.”
“·····.”
“하····. 공감 못 하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올리버 님 같은 이유보다는 저 같은 이유가 훨씬 많을 거예요.”
올리버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을 살펴보니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물론, 그녀의 말대로 공감은 가지 않았지만 흥미롭기는 했다.
“그럼, 마리는 강해지기 위해 흑마법사가 되는 건가요?”
“물론요. 여자라고 무시 안 받을 테고, 시비 거는 양아치들도 혼자 쓸어버릴 수 있죠. 돈도 훨씬 잘 벌 수 있고요····. 흑마법사가 비록 경계의 대상이지만, 최소한 무시 받는 존재는 아니거든요.”
올리버는 그녀의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감정이 실로 생동감 있게 요동쳤는데, 여러 감정이 뒤엉킨 그 빛이란 꽤나 예뻤다.
“직접 본 적 있으세요?”
“뭘요?”
“흑마법사가 강하다는 거···. 싸우는 걸 보기라도 했나요?”
마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주 조심히 입을 열었다. 선물 포장지를 열 듯 말이다.
“·····. 주인님에게 거둬질 때 한 번요. 겁 없는 동네 양아치들이 시비를 걸었는데, 주인님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모조리 해치웠죠. 제자리에서···. 놀라웠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그 양아치들이 온갖 행패를 부려도 아무도 뭐라 못했는데, 완전 충격이었죠. 그래서 제가 흑마법사가 되려는 거에요. 주인님처럼 강한 존재가 되기 위해.”
올리버가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가 뒤늦게 쑥스러운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 이상은 이야기 안 할래요. 좀 부끄럽네요.”
“예, 알았어요.”
이미 원하는 건 다 들었기에 올리버는 시원하게 수락했다. 마리는 그런 올리버는 못마땅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 혹시 문제 있나요?”
“하아···. 아뇨. 됐어요. 그보다 글공부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제 공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 예.”
올리버는 바로 대답하며, 누리끼리한 공책과 몽당연필을 옆으로 밀어 버리곤 양반다리로 바닥에 앉았다.
꽤나 자세가 안정적이었는데, 마리도 올리버와 똑같이 양반다리로 앉았다.
“그럼, 잠시 실례 좀 할게요.”
“예.”
올리버는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마리의 몸에 손을 뻗어 감정을추출했다. 묘한 기대감과 초조함을 말이다.
올리버의 손끝에 자그마한 빛이 모였고, 빛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숨 쉬는 것처럼 능숙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미 중급제자도 뛰어넘는 것 같았다.
그 귀신같은 솜씨에 감탄하면서 마리는 양손을 모았다. 그 손위에 올리버가 감정을 올렸다.
“안정화해 보세요.”
올리버가 말하기 무섭게 안정화 됐던 감정은 요동치며 형태가 풀리려고 했다. 마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끝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플라스크에서추출한 감정을 다루는 것보다 더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천천히 감정은 안정을 되찾아갔다.
마리는 얕게 숨을 몰아쉬었고, 이마에 땀이 훔쳤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모양을 만들어보세요. 어····. 원뿔 모양요?”
마리를 군말하지 않고 바로 감정을 조작했다.
허공에 떠 있는 감정은 제자리에서 잠시 요동치더니 천천히 원뿔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에는 마름모로 만들어보세요.”
다시 이어지는 요구. 마리가 다시 힘을 줘 감정을 변화시켰다. 처음보다 힘들었는데,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 명령했다.
“이제 네모요.”
“다시 동그라미.”
“이번에는 별 모양.”
“도넛 모양으로.”
“그럼, 이번에는···”
“잠깐만요!”
식은땀을 흘리며 마리가 다급히 말했다. 그녀는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감정을 안정화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자, 잠깐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힘이 들어서···.”
“그럼, 이번에는 거미집 모양으로 만들어보죠.”
올리버는 마리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다시 한번 말하려고 했지만, 올리버가 단호하게 말했다.
“거미집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압박. 기가 죽은 마리는 정신을 집중해 조잡하게나마 거미집 모양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형태가 무너지려고 했는데, 그때, 마리를 손 주변에 올리버가 자신의 손을 포개듯 가져다 댔다.
“지금 무ㅅㅡㄴ···.”
“집중하세요.”
올리버의 말에 마리는 다시 집중했다.
불안정하던 감정은 다시 안정을 되찾으며 거미집 모양으로 변했는데, 그와 함께 놀라운 감각이 느껴졌다.
올리버와 포개진 손을 통해 올리버가 어떻게 도와주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였는데,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뭘까? 그래, 자전거를 배울 때 누군가 뒤를 잡아주는 것과 비슷했다.
“거미집 완성했어요.”
마리가 말했다. 비록, 줄은 굵고, 줄 사이 간격도 넓은 그저 그런 어설픈 거미집에 불과했지만, 어찌 됐건 완성했다.
마리는 그녀답지 않게 조심히 올리버의 눈치를 봤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된 것인데, 다행히 그는 어느 정도 만족한 거 같았다.
“음····. 잘하셨어요.”
그 칭찬은 놀랍게도 마리를 기쁘게 했다.
“고, 고마워요.”
“잠시 손에 힘 좀 빼보시겠어요?”
“예?”
대답과 동시에 손이 움찔거렸다.
살펴보니 올리버가 마리의 손 너머를 통해 감정을 조작하고 있는 거였는데, 그는 거미집을 만들고 있었다.
마리가 만든 어설픈 거미집이 아닌 수백 개의 가느다란 실이 엉킨 매우 정교한 거미집을 말이다.
“이건···.”
“집중하세요.”
마리는 입을 다물고 올리버가 시키는 대로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탐닉하듯 거미집이 만들어지는 감각을 하나하나 느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했고, 아름다운 감각.
여러 겹의 거미집이 만들어지자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대충 어떻게 하는지 알겠나요?”
“아····. 예.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럼, 혼자 있을 때 계속 그 감각을 되새기고, 머릿속으로 상상하세요.“
”상상요?“
”예, 그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예요. 다음부터는 이것만 연습할 테니 기억해 두세요.“
올리버는 말을 마치며 시계를 봤다. 아직 시계는 볼 줄 몰랐지만, 작은 바늘과 긴 바늘은 구분할 줄 알았다.
”작은 바늘이··· 1. 긴 바늘이···4. 이만 일어날 볼게요. 방장님이 작은 바늘이 1에 오고, 긴 바늘이 6에 오기 전까지 공장 뒤편으로 오라 했거든요.“
”그래요? 혹시 무슨 일인지?“
”몰라요. 재료를 모으러 간다고 하던데, 해보면 알 거래요.“
”아···. 재료요?“
”뭔지 알아요?“
”아마, 상품에 쓰일 재료를 모으러 간 걸 거예요.“
”소시지 말인가요?“
”아뇨, 진짜 상품요. 아마, 중급제자들과 함께 움직이실 텐데····. 최대한 말 잘 듣고 조심하세요.“
”어, 알았어요. 그럼, 가볼게요.“
올리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자 마리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불러세웠다.
”올리버 님!“
”···. 예?“
”그····. 조심하세요. 그리고···. 열심히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올리버가 마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 예, 마리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