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결 (1)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소시지 공장의 뒤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곳곳에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는데, 드문드문 쥐들이 돌아다녔다.
지금 그곳에 두 남자가 있었다. 하나는 뒷골목 대장처럼 험상궂었으며, 다른 하나는 금발에 잘생긴 외모를 자랑했다.
바로, 임시제자 감독관인 톰과 조셉의 수제자 앤드루였다.
“진정해.”
앤드류가 톰을 진정시킬 요량으로 말했다. 허나, 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몹시도 흥분했다.
“어떻게 진정합니까?!····. 시합이라뇨? 정식 제자가 되기 위한 시험? 애당초 제가 왜 그런 걸 합니까? 원래 제자리인데!!”
우악스러운 생김새와 달리 톰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만큼 억울한 것이리라. 하긴,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 놈과 내정돼 있던 정식 제자 자리를 두고 싸워야 한다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앤드루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만·····! 약한 소리 그만해. 애당초, 이미 결정 난 일이니. 무엇보다 주인님이 결정한 것인데, 네가 억울해한들 뭐 어쩌겠어?”
“하, 하지만, 앤드루 님께서 한마디 해주실 수 있었잖습니까?”
“내가 아무 말도 안 했을 거 같아? 말했어! 심지어 다른 상급 제자들하고 같이.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놈에게 그런 특혜를 베푸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소용없었어. 놈이 저번에 보여준 실력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앤드루는 말끝을 흐렸고, 톰은 한 층 더 절망했다.
그 자리엔 톰도 있었다. 원래는 차기 정식 제자인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자리였는데, 웃기게도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놈의 무대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의심스러웠다. 어찌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만큼 엄청난 감정을 추출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모양을 만들다니·····.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주 끔찍한 꿈.
톰이 울먹이며 말했다.
“억울해요····. 억울하다고요. 제가 정식 제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잖아요.”
그 순간 앤드루는 톰을 밀치며 벽 쪽으로 몰아세웠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말했지만, 이미 판은 벌어졌어! 그리고 이 시합은 오히려 네게 행운이야. 애당초 그만한 재능을 가진 놈이 나왔으면 밀려나는 건 너였다고!”
톰의 표정은 한층 더 억울해졌다. 앤드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데, 공장의 소시지를 빼돌려 뒷골목에 팔고, 그 돈을 몽땅 가져다 바쳤는데, 그랬는데 도움은커녕 이런 말이나 들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것이 흑마법사의 세계였으니. 힘과 서열이 전부인 세계. 앤드루가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애당초 밀려나는 건 너였어. 그나마 내가 다른 상급제자들과 함께 주인님을 설득해 이 시합을 잡은 거야. 그러니 넌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해.”
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당장 아쉬운 것은 톰이었으니····. 얼추 기가 꺾이자 앤드루가 만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네가 아쉬운 건 이해가 되지만, 오히려 기회라 생각해.”
“기회요?”
“그래, 기회. 너도 봤지? 그 올리버인가 뭔가 하는 놈 실력. 재능이 어느 정도인 거 같아?”
톰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 대단한 것 같기는 해요.”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흑마법도 재능. 차라리 밟을 거면 지금 밟아두는 게 오히려 나아.”
“밟는 다고요?”
“그래. 그 정도 재능을 가진 녀석이 본격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면 나는 몰라도 너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은 전부 밀려날 거야. 엊그제 막 들어온 놈에게···. 그런 상황 견딜 수 있어?”
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길바닥 출신이라고 자존심이나 서열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길바닥 출신이라 그런 것에 더욱 집착했다.
“지금 주인님께서 주시하고 있어서 대놓고 해코지하긴 힘들어. 그럼, 정식으로 당당하게 짓밟아야지.”
톰은 말뜻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당하게 짓밟으라 함은····?”
앤드루가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 두 개를 건넸다. 특수한 유리병으로 겉에는 기묘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으며, 안에는 검은빛이 위험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놈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장 배울 수 있는 거라고는 기본기인 해잇 블릿과 블랙 쉴더 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넌 여차하다 틈을 봐 이걸 사용하도록 해. 뚜껑만 열면 네가 사용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이건 뭐죠?”
“초보자가 만든 블랙 쉴더를 간단하게 파괴할 내 특제 라스 붐. 생각 같아선 더 센 흑마법을 넣고 싶었지만, 그럼 의심받을 테니 최대한 타협해 넣었어.”
생각지도 못한 비밀무기에 톰의 병을 꽉 쥐었다.
“올리버란 놈은 광산에서 잡혀 살던 놈이라고 했고, 실제로 둔한 구석이 있으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지 못할 거야. 그때, 네가 실수를 가장해 놈을 죽여. 아니면 최소한 불구라도.”
톰은 계산했다. 올리버 놈과 싸울 때 앤드루가 준 흑마법을 이용해 기습을 가한다면 놈은 분명 엄청난 화력에 당황할 테고, 그때 다시 공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럼, 넌 정식 제자가 되는 거고, 괜한 말썽꾼은 그냥 사라지는 거지. 우리의 평화가 지켜지는 거야. 만약, 그렇게만 되면 넌 내가 앞으로 책임져준다. 중급제자···. 아니, 상급제자까지.”
톰의 눈이 커졌다. 상급 제자라 하면 하인들의 시중을 받는 귀족과 같은 자리. 심지어 높은 임금까지 받았으며, 패밀리 사업도 배울 수 있었다. 그건, 톰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밑바닥 생활과 작별하는····! 톰은 급격하게 용기와 의욕이 샘솟았다.
그런 톰의 감정을 엿보며 앤드루가 피식 웃었다. 역시, 사람이란 다루기 쉬웠다. 그게 멍청할수록.
앤드루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 넌 반드시 올리버 그놈을 쓰러뜨려라. 그럼 내가 확실히 네 뒤를 봐준다. 오케이?”
톰은 앤드루가 건네준 병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마지막 날.
원래 이날은 새로운 정식 제자를 임명하는 날이었다.
내정자는 톰이었고, 톰을 제외한 모두는 울상을 지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작은 이변이 생겼고, 그로 인해 정식 제자를 임명하는 날은 갑자기 시합 날로 변하고 말았다.
톰과 올리버의 시합 말이다.
시합의 상품은 정식 제자 자리.
기존에 있던 하급제자 하나가 식중독으로 죽은 덕분에 간신히 생긴 자리였는데, 또 언제 자리가 생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톰의 표정은 긴장이 역력했다. 상품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알기에. 그에 반해 상대역인 올리버는 평소와 같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지 모르는 듯이!
시합장 위로 올라와 주변을 둘러봤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임시제자들과 스무 명 정도 되는 하급제자, 열 명 남짓인 중급제자, 다섯 명인 상급 제자가 보였다.
상급제자와 중급제자는 톰의 운명이 걸린 이 시합을 그저 여흥거리로 취급하며 실실 웃을 뿐이었는데, 그보다 더욱 짜증 나는 것은 같은 임시제자들의 눈이었다.
그들의 눈은 음험한 기대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톰의 몰락 말이다.
톰은 속으로 분노했다. 몰락하긴 누가 몰락하냐고 말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그저 남의 불행을 비웃는 것밖에 없는 버러지들이!
톰은 그리 생각하며 주머니 속의 유리병 두 개를 만지작거렸다. 앤드루가 준 비장의 무기를.
제대로만 쓴다면 들어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올리버쯤은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오히려 주인님의 눈에 들어 그분의 가르침을 더 받을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급제자뿐 아니라 중급, 더 나아가 상급제자까지······. 진정한 흑마법사가 되어 밑바닥 인생과 영영 작별할 수 있었다.
그렇다. 길거리 골목대장인 톰이 진정한 흑마법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톰은 용기와 의욕을 가지며 시합장으로 올라왔다. 뒤이어 올리버도 올라왔다.
“자, 그럼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필요 없겠지? 힘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라. 시합 시작!”
조셉의 말과 함께 톰은 지급받은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해 곧바로 해잇 블릿을 쐈다.
기본기는 배운 건지 올리버는 작은 블랙 쉴더를 만들어 간신히 공격을 막았다.
‘역시! 제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이 짧은 시간 안에 흑마법까지 배우는 건 힘들지!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톰은 속으로 외치며 다시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해 해잇 블릿을 쐈다.
기본 중의 기본이긴 하지만, 그만큼 효율이 좋고 위력적인 공격. 올리버는 그런 공격을 제대로 견디기 힘든지 반격은커녕 막기도 급급해 보였다.
톰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 해잇 블릿을 쐈다. 증오의 탄환이 거침없이 쇄도했고, 올리버는 그때마다 작은 블랙 쉴더를 펼쳐 막았다.
허공을 가르는 검은색 탄환, 그 탄환을 막는 검은 장막. 그러한 공세가 이어지는 도중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 감정을 이미 많이 썼어 자중해!’
그 순간 톰은 멈췄다. 머릿속에서 들린 것은 앤드루의 목소리. 정확히는 일종의 텔레파시였는데,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거였다.
톰은 앤드루의 조언대로 공격을 잠시 멈추고 시험관에 남은 감정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앤드루의 말처럼 시험관 안의 감정은 1/3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긴, 그렇게 공격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라 올리버의 상태였다.
그렇게 맹공을 부었는데도 놈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다치긴커녕 표정에는 그 어떠한 동요도 없었고, 시험관에 남은 감정 역시 처음과 비슷했다.
그 순간 톰은 깨달았다. 놈은 막기 급급한 게 아니라, 그저 적당히 막아 준 것뿐이라는 걸. 놈은 자신을 상대로 적당히 연습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약한 아이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건달처럼.
그 순간 톰은 속이 뒤틀리는 분노를 느꼈다. 자신이 이토록 업신여기다니.
톰은 잘 보이지 않게 주머니에 숨겨둔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외쳤다.
“어디 이걸 막고도 무사할 수 있는지 보자! 라스 붐!”
그와 함께 주먹만 한 검은 구슬을 올리버에게 던졌다. 올리버는 놀란 듯 다급하게 블랙 쉴더를 펼쳤지만, 의미 없었다.
블랙 쉴더에 분노의 폭탄이 닿는 순간 사람 하나를 뒤덮을 폭발이 일었고, 지하실이 요동쳤다.
올리버 근처에 앉아 있던 이들은 폭발에 말려 뒤로 넘어졌는데, 여기저기서 비명소리와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방금 봤어?! 어떻게 일꾼 놈이 라스 붐을····!”
“그러게 어떻게 배운 거야?”
“중급쯤 가야지만 배울 수 있는 건데?”
톰은 입꼬리를 올렸다.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분명, 주인님도 자신을 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하! 꼴좋다. 재능 좀 있다고 나대더니, 결국 이렇게·····응?
기뻐하던 톰은 멈칫했다. 연기가 점차 걷히자 그곳에 느긋이 서 있는 올리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오·····.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놈이 지껄였다. 두려워하기는커녕, 놀란 기색도 없이.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분명 이건 앤드루가 직접 만든 주문인데, 그럴 진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쿵-! 쿵-! 쿵-! 심장이 뛰며 톰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절대 보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감정을 말이다.
‘맞아,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어떻게, 어떻게 막 들어온 애송이가 앤드루의 공격을····.’
톰은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급히 마지막 남은 라스붐을 꺼내 들었다. 유리병을 열고 다시 한번 올리버에게 던졌는데, 올리버는 그걸 보더니 순식간에 해잇 블릿을 쏴 허공에서 라스 붐을 터트려버렸다.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지며 주변을 휩쓸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톰도 휩쓸렸다는 건데,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어? 어어?”
자신과 달리 블랙 쉴더를 전개해 멀쩡히 서 있는 올리버를 보며 톰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도대체 저게 뭐지? 도대체 자신이 뭐랑 싸우고 있는 거지? 머릿속에서 숱한 의문과 함께 두려움이 올라왔다.
분명, 자신은 오늘 정식 제자로 승급돼 사료 같은 빵과 수프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공장일이 아닌 흑마법을 배워야 했을 터인데····. 도대체 이게 뭐지?
“괜찮아요?”
올리버가 다가오며 말했다. 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히익-!’ 비명을 지르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뿐이었다. 제발 좀 도와달라고.
하지만 바람과 달리 도와줄 사람은 없었고, 보이는 거라고는 비웃는 시선과 경멸과 같은 차가운 눈동자였을 뿐이다. 평생 길거리에서 떠돌며 지내며 받은 시선 말이다.
분노가 일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갑자기 나타난 방해물에 대한 분노가.
톰은 이 분노를 원료 삼아 다시 싸우려 했는데, 그 순간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다행이다. 괜찮으시구나.”
악마는 그리 말하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톰의 분노를 추출해 갔다.
“·····.”
톰은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올리버는 곧바로 톰에게 관심을 끄고 추출한 분노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이게, 라스 붐·····.”
톰의 본능이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허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게 도대체 뭐냔 말이다?!
올리버가 다시 한번 라스 붐을 가공했다. 주먹만 한 폭탄을 압축시키더니, 그 위에 해잇 블릿을 덧씌웠다. 그 상태로 톰을 겨눴다.
“····. 방어 안 하세요?”
그 말과 함께 톰이 모순적이게도 신에게 기도하며 블랙 쉴더를 전개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자신을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악마가 말했다.
“라스 블릿.”
영창과 함께 날아간 분노의 탄환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가 블랙 쉴더를 관통했다. 관통한 탄환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톰을 꿰뚫었으며, 그와 함께 톰의 몸 안에서 터졌다.
꽝――――!
톰의 라스붐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폭발음과 함께 지하실에는 내릴 리 없는 붉은 소나기가 내려졌다.
모두가 얼이 빠진 그때, 누군가 나직이 말했다.
“승자. 올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