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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7화 (7/633)

7. 수업 (2)

경악. 모두가 경악했다.

플라스크에 보관 중인 감정을 뽑는 것이 사람에게서 직접 뽑기보다 훨씬 쉽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도 저만한 양을 한 번에 뽑아내다니······.

최소한 하급, 아니, 중급 제자들도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 올리버는 아무리 봐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감정의 질이 높고, 양이 많을수록 술사는 부담을 느껴야 마땅했는데, 올리버는 그러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장난감을 만지는 아이처럼 즐거워 보일 뿐이었다.

“······.”

“······.”

“······.”

“······.”

“······.”

모두가 놀라며 침묵하는 와중 올리버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며 특유의 어눌한 태도로 물었다.

“····. 혹시 제가 뭘 잘못했나요?”

“····. 아니 훌륭하다. 그렇지?”

맨 뒤에서 구경하던 앤드루에게 조셉이 물었고, 앤드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제법이네요. 정말로요.”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다시 질서를 되찾고, 조셉은 수업을 이어갔다.

“자, 방금 너희가 한 게 추출이다. 흑마법을 시작하는 첫 번째 단계이지. 감정을 추출하는 법은 총 두 가지가 있다. 이야기해 볼 사람.”

마리가 또 손을 들었다. 그녀는 매우 동요한 눈치였다.

“····. 어, 첫 번째는 시험관에 보관한 감정을 뽑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사람에게서 직접 뽑는 방법입니다.”

“두 개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뭐냐?”

“공통점은 둘 다 실제 사람에게서 감정을 추출한다는 겁니다. 차이점은 하나는 미리 뽑아서 보관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바로 뽑는 거죠,”

“뭐가 더 어렵나?”

“두 번째가 더 어렵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감정을 추출하면 차이는 있지만 저항을 해 미리 뽑은 감정을 추출할 때보다 훨씬 힘듭니다. 만약, 전투 중일 경우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조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리를 칭찬했다.

하지만 올리버로서는 약간 의아했다. 비록 한번 밖에 경험이 없긴 했지만, 사람에게서 직접 감정을 추출한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재밌기까지 했다···. 최소한 개인적으로는 말이다.

조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리 말대로, 사람에게서 감정을 추출하는 게 더 어렵다. 일반인조차 본능적으로 저항하니까. 자칫 잘못하면 추출에 실패할 수도 있고,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흑마법은 늘 일정량에 감정을 보관하고 다니지. 하지만, 진정한 흑마법사라면 미리 뽑은 감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사람에게서 바로 뽑아낸 감정이 더 질이 좋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예. 주인님.””””

“그러니, 지금 감정을 뽑아냈다고 만족하지 말고 더 능숙해지도록 정진하거라, 그리고 그마저도 뽑아내지 못한 녀석들은 창피한 줄 알고 더욱 수련하고. 시간은 결코 너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자 감정을 뽑지 못한 아이들이 푹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몸 안에서는 초조함과 두려움, 질투, 원망의 빛이 요동쳤다.

“그럼, 다시 수업을 시작한다. 감정을 추출한 아이들은 모두 날 따라 해라.”

조셉은 검은빛을 손끝으로 모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신기하지는 않았는데 다들 조셉의 말처럼 추출한 검은빛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으으으···.”

“끄응·····.”

“우아아···.”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며 하나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동그라미라기보다는 찌그러진 무언가였지만, 제대로 동그라미를 만든 것은 톰과 마리와 같은 감독관뿐이었다. 아, 하나 더. 올리버도.

올리버는 뽑아낸 검은빛을 압축시켜 조셉과 똑같은 크기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조금의 흔들림과 찌그러짐도 없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조셉은 다시 검은빛을 조작해 동그라미를 네모로 바꿨다. 톰과 마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바꿨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쉬이 바꾸지 못하고 중간에 형태가 무너져버렸다.

조셉은 네모를 세모로 바꿨다. 세모 다음에는 원뿔형, 별, 도넛, 뫼비우스 띠로 바꿨는데 이쯤에 이르자 남은 이들은 감독관 셋과 올리버뿐이었다.

“좋아, 잘 따라왔다. 이제 마지막이다. 각자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모형을 만들어 봐라. 크고, 복잡할수록 좋다.”

기본기는 다 갖췄으니, 이제 개인의 역량을 뽐내 보라는 거였다. 여기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기에 다들 이를 꽉 깨물었다.

가장 먼저 실력을 선보이는 것은 톰. 곧 정식 제자가 된다는 그는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모형을 만들었다.

바로, 검은빛을 원통형으로 만든 뒤, 길쭉하게 뽑고 스프링처럼 꼬아 꼬불꼬불 구부러진 기둥으로 만든 것이다. 모두가 그 모습에 감탄했다.

옆에 있던 마리는 그를 의식했는지 똑같은 모양을 흉내 내려 했는데, 그만 중간에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뜨리고 말았다.

“아·····.”

마리의 아쉬워하는 탄성과 톰의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는 안 하느냐?”

조셉이 맨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올리버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윽고 결정을 내린 듯 조셉을 바라보며 물었다.

“····. 크고, 정교하게 마음대로 만들면 됩니까?”

“그래.”

조셉의 짤막한 대답에 올리버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양손으로 검은빛을 감쌌다. 다들 뭐 하는 짓인가 궁금해하면서도 내심 올리버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 실패하길 바랐다.

올리버의 양손에 있는 검은빛이 요동쳤다. 마치, 부화하기 직전의 알과 같았는데, 이윽고 다시 단단하게 안정을 되찾으며 완벽한 구 형태로 변했다.

“헤····. 고작 공 모양?”

그때였다. 안정을 되찾은 검은빛은 순식간에 축소해 구슬만큼 작아지더니 이내 다시 팽창해 교실 안을 뒤덮었다.

다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안이벙벙했는데, 그와 함께 눈앞에 믿기지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검은빛으로 만든 담쟁이덩굴 모형이 온 교실을 뒤덮은 것이다. 정말 실물처럼 정교하기 그지없었는데,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 듯 놀란 눈으로 올리버를 바라볼 뿐.

올리버는 자신의 작품을 둘러보곤 나직이 말했다.

“어, 이게 되는구나.”

***

다음 날 아침. 올리버는 뭔가 변한 것을 느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던 동료 일꾼들은 물론이요, 감독관마저 어딘가 모르게 조심스러웠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으나, 그들의 몸 안에서 뿜어지는 빛이 진실을 이야기해줬다.

그들은 올리버를 두려워했으며, 동시에 질투하고 몇몇 소수는 동경하는 빛을 띠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갔다. 고아원이나 광산에서 어느 순간부터 취급이 달라지곤 했지만, 이리 짧은 시간 안에 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짚이는 구석도 없었다. 그저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

하지만 고민도 잠시일 뿐 올리버는 이내 신경을 끄고 여느 때와 같이 공장을 청소하고, 식사하며 일상을 보냈다.

그에게 있어 친구를 사귀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관심 밖이었으니. 지금 올리버의 관심은 오직 하나 흑마법을 배우는 것밖에 없었다.

수업을 위해 하루 쉰 탓인지, 고기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쌓여 있었다. 올리버는 그 고깃덩어리를 짊어져 분쇄기 근처로 가져다 놓았다.

고기가 크고 무거우며, 대부분 쉰내가 나 작업 중 가장 맡기 힘든 일이었지만, 광산 때에 비하면 쾌적하게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단순노동이라 기계적으로 일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가령, 어제 배웠던 수업 내용을 곱씹는다거나 말이다.

올리버는 일하는 동시에 어제 배운 수업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질문하고, 개선점을 찾았다.

가령, 왜 사람에게서 직접 감정을 뽑아내는 것이 더 어려운 건지? 감정을 보관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뭘지? 불편하게 왜 시험관에 담는 건지? 등등 세 살 아이처럼 끊임없이 왜라고 자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보았다.

만족할만한 대답을 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후자일 때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답답함 내지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하는 찜찜함마저 밀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누구든 붙잡고 질문하고 싶었다.

“저기···. 힘 안 들어? 괜찮으면 도와줄까?”

갑작스런 목소리에 올리버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웬 일꾼이 있었다.

“······.”

그는 올리버가 말을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했다.

“혼자서 고기 옮기는 거 힘들 텐데, 좀 도와줄까?”

“왜요····?

올리버가 물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말이다.

”어····. 혼자서 하면 힘드니까? 같이 하면 덜 힘들고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니까. 응! 동료···.“

올리버는 자신이 딱히 똑똑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눈치챘다. 갑자기 동료이니, 도와주겠다느니 수상했다.

무엇보다 빛이 신경 쓰였다. 미소 짓고 있지만, 그들의 몸속에 있는 빛은 뱀처럼 꼬이고, 교활함을 띠고 있었다. 전에 한번 본 적 있었다.

그래, 고아원 원장님과 광산 감독관에게 아첨하며 잘 보이던 이들이 뿜었던 빛이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저 녀석이야?“

”그래, 저 녀석이야. 일주일 들어온 녀석인데, 어제 수업에서···.“

”진짜?“

”앤드루 님이····.“

모기처럼 성가신 소리와 경계, 적대의 빛을 느낀 올리버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이들이 멀찍이 서서 올리버를 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표정부터 빛까지 올리버를 경계하고 있었다. 흡사, 영역을 침범받은 개처럼 말이다.

올리버는 이제 머리가 아파 왔다. 그저 조용히 시키는 일을 하며 흑마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왜 갑자기 귀찮은 이들이 이리저리 붙는 건지.

그때, 올리버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마리였다. 올리버는 혹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그녀는 올리버를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인상뿐만이 아니었다. 분노, 질투, 초조 등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도 같이 내보였는데, 올리버는 그 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랐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앤드루가 올리버를 불렀다.

”올리버?“

”····. 예?“

”주인님 호출이다. 따라와라.“

**

올리버는 앤드루를 따라 스승님의 방을 찾아갔다. 교실과 마찬가지로 공장 지하에 있었는데, 화려함은 감히 교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깔끔하게 마감된 벽과 천장, 거대한 침대, 공기 중에 떠도는 감귤 냄새, 처음 보는 가구 등····. 그래, 우연히 보았던 광산 사무조합장의 호화스러운 사무실과 비슷했다.

다행히 이런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올리버였기에 그렇다 할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관심이라면 조셉이 부른 이유뿐.

”데리고 왔습니다. 주인님.“

올리버는 눈치껏 조셉에게 인사를 올렸다. 조셉은 화려한 크리스탈 잔에 위스키를 따라 마시며 대답했다.

”그래, 어서 와라. 잘 지내느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 지내느냐’라니. 말의 저의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예. 잘 지냅니다.“

”그래? 그렇다고? 진짜?“

”예····. 다만, 수업을 좀 자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던 조셉이 파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조셉을 따라 앤드루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하긴, 그게 너답긴 하겠다. 그 외에는 힘든 점 없고? 주변 사람이라던가 식사라던가 잠자리 같은 거 불편한 거 없나?“

올리버는 떠올렸다. 비아냥과 시비를 걸던 동료 일꾼을, 매일 똑같은 빵과 수프를, 눅눅하고 곰팡이가 핀 매트릭스를.

”예, 없습니다. 주인님의 은혜에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독관들에게 아첨하던 아이들의 말을 흉내 냈다. 이러면 거짓말인 걸 알아도 다들 좋아했는데, 다행히 조셉 역시 그런 눈치였다.

”좋은 태도군. 아니, 좋은 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태도야. 훌륭해····.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지? 너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흑마법을 또 가르쳐주시나요?“

”아니, 대신 기회를 줄까 해. 정식 제자가 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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