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6화 (6/633)

6. 수업 (1)

다음 날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감독관이 프라이팬을 두들겨 깨우지 않아도, 다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와····. 이런 적 처음인 거 같아. 이렇게 수업을 잡아 주시다니.”

“그러게, 무슨 일이지?”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주인님이 오는 길에 엄청난 장물을 챙겨 한몫 잡으셨다는데. 야, 너 혹시 뭐 아는 것 없어?”

저들끼리 신나 떠들던 아이들이 가장 안 좋은 자리 구석에서 일어난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이번에 주인님이 주워온 녀석으로, 어딘가 모자라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특유의 멍한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한 아이가 말했다.

“신경 꺼. 신경. 저 녀석 보고 있으면 답답하니까. 톰에게도 찍혔으니 괜히 휘말리지 않도록 해.”

“아, 그게 좋겠네····. 진짜 부럽다. 나랑 같이 들어왔는데, 벌써 정식 제자가 된다니.”

“그거 진짜야? 정식 제자. 소문 아니었어?”

“거의 진짜야. 그···. 앤드루 님 쪽 애들 사이에서는 거의 공공연하게 이야기해. 하긴, 벌써 흑마법 몇 개도 쓸 줄 알잖아?”

“하긴, 녀석 무조건 정식 제자가 돼. 진짜 흑마법사가 된다고 했으니.”

“그러니까 몸 사려. 성격도 고약해서 한번 찍히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니까. 거기다 진짜 정식 제자가 되면·····. 으으.”

“걱정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마리지. 6년째 임시제자. 아마, 다음 달부터 죽을 맛일 거야. 저 멍청이 돕겠다고 괜히 나서는 바람에 찍혔으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 시발 뭐야?”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다들 화들짝 놀랐는데, 아마 올리버의 생기 없는 얼굴이 한몫했을 터였다.

“뭐 하나 물어볼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존댓말로 말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고아원 원장님과 감독관에게 늘 예의 바른 말투를 강요받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버릇. 그렇기 때문인지, 올리버의 존댓말은 예의나 배려보다는 불쾌함이 느껴졌다.

“뭐, 뭐야···?”

“톰 감독관님. 무슨 무슨 흑마법을 쓰죠?”

“하···? 그건 알아서 뭐 하게?”

“혹시, 뭐? 알면 내게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서라, 주제 파악해야지.”

“그냥 궁금해서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의 빛이 넓게 퍼지며 우월감에 젖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한다면, 특별히 딱 한 번만 알려 줄 테니 잘 들어라. 뭐, 너 딱히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흑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가 필수야. 바로 ‘개안(開眼’과 ‘핸들’이야. 흑마법의 주원료인 감정을 보고, 잡아서 다루는 거지.”

그와 함께 손을 들어 검은빛을 모았다. 놀라울 정도로 조잡한 동그라미가 만들어졌다.

“하아····, 바로 이거. 이걸 하는 데만 몇 개월은 걸렸지. 너희들은 어때?”

같이 떠들던 다른 아이 둘이 똑같이 손끝에 검은빛을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찌그러진 볼품 없는 동그라미였지만 말이다.

“오오, 실력 좀 나아졌는데?”

“그렇지? 틈틈이 연습했거든!”

“오올, 대단한데? 바로, 이게 개안과 핸들이야. 이걸 해야만 흑마법을 시작할 수 있지.”

말은 이해했으나, 너무 수준이 낮아 올리버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아니 애당초 저거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연습이니, 시간이라니?

하지만 다행히 올리버도 최소한의 눈치라는 것은 있어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흐흐흐, 쫄았네···. 이런 것도 못 하는 놈들이 부지기수니 뭐···. 개안과 핸들을 한 다음에 그제야 ‘가공’을 할 수 있어.”

“가공이 뭐죠?”

“아는 게 하나도 없네. 가공은 감정을 이용해 흑마법을 시전하는 거야. 총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무적의 방패, 혹은 끔찍한 괴물도 만들 수도 있지.”

“그 외에도 약품이나 화장품, 향수, 필거랫을 만들어 큰돈을 만질 수도 있지.”

돈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은 모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오오 감탄사를 내며 자기들끼리 신나 떠들기 시작했다.

관심이 없는 올리버로서는 정식 제자가 되기 위해 뭘 해야 하냐고 다시 물으려 했는데, 그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이 머저리들아! 일어났으면 빨리 청소하고 밥 먹어야지! 특별히 주인님께서 일도 빼주고, 가르침을 하사해 주려 하는데 다들 뭐하는 거야! 다 때려치울까?!”

감독관의 호령에 이야기를 나누던 일꾼들이 모두 기겁하며 대화를 멈추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올리버는 아쉬울 따름이지만, 감독관의 시선에 이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독관이 올리버를 붙잡으며 말했다.

“야, 너····. 오자마자 수업을 듣는다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모양인데, 헛된 생각 품지 마라. 들어오지 1년은커녕 한 달도 안 된 녀석이 정식 제자가 된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 뻘짓거리 하지 마.”

올리버는 자기 담당의 감독관을 봤다. 정확히는 감정을 봤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경계심으로 빛이 났다. 익숙한 빛. 올리버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

평소처럼 올리버는 다른 일꾼들과 함께 공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받아 기쁜지 다들 열심히 하였는데,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청소가 끝난 다음은 여느 때처럼 식사.

수업을 들어 그런지 오늘은 빵과 수프 외에도 노릇노릇 통통한 소시지가 하나가 더 나왔다.

다들 소시지를 게걸스럽게 먹었는데, 올리버도 먹었다. 짜고, 기름졌다.

20분 후, 식사와 뒷정리를 마쳤을 때쯤,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났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잘 먹고 잘 관리 받은 사람으로, 모두가 그를 보자 고개를 숙였다.

“아, 앤드루 님···!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감독관 톰을 필두로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올리버도 따라 고개를 숙였는데, 앤드루란 남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

“됐어. 됐어. 너무 뻣뻣하게 굴지마. 다들 식사는 끝냈지?”

“““““예!”””””

모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앤드루는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부터 날 따라오도록. 주인님이 친히 너희를 가르쳐줄 테니.”

아이들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띠었다. 일 년에 수업을 다섯 번 정도밖에 듣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맞췄고, 올리버는 대충 눈치를 보고 가장 뒤에 섰다.

“그럼, 따라와라.”

앤드루가 공장 창고 쪽으로 들어갔다. 창고에는 포장된 소시지 상자와 정체불명의 천막으로 덥힌 물건들이 보였는데, 그러한 짐 사이에 한 자그마한 문이 있었다.

사실 문이라기보다는 비밀통로에 가까워 집중해서 보지 않는 알아차리기 힘들어 보였는데, 앤드루가 손에 검은빛을 모아 문에 손을 가져대자 복잡한 문양이 퍼지더니 이내 기기긱-!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앤드루가 문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이 다시 뒤를 따랐다. 문 안에는 놀랍게도 제법 잘 포장된 지하실이 펼쳐졌는데, 일정 거리로 전구가 켜져 있어 쾌적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흥이 난 듯 저들끼리 작게 재잘거렸다. 언젠가 여기서 생활하는 흑마법사가 될 상상을 하며.

“어, 진짜 수업하는 거야?”

지나가는 길에 만난 한 남자가 앤드루에게 말했다. 분위기를 보아 앤드루와 같은 급인 듯했다.

“어.”

“의외시내. 여행을 다녀오시면 몇 주간은 푹 쉬시고, 책만 읽으시는데?”

그때, 앤드루가 맨 뒤쪽에 선 올리버를 바라봤다.

“아닐 때도 있으시나 보지. 신경 꺼.”

“알았어.”

짧은 대화를 끝내고 앤드루는 다시 움직였다. 여러 개의 방과 복도를 지나고 마침내 교실로 추정되는 방에 들어섰다.

다른 곳과 달리 제대로 포장이 안 되어 있어 벽은 반은 흙이었고, 천장 역시 마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골조가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준비가 아주 안 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사람 수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벽에 있는 선반에는 감정을 추출해 보관한 시험관들과 흑마술 서적이 있었다.

올리버는 최근 일주일 동안 조용하던 심장이 다시 뛰는 걸 느꼈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시키는 건 아닌 듯했다.

“어서 와라.”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조셉이 교단에 서며 말했다. 그의 등장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주인님!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안녕하십니까!”””””

조셉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고는 착석할 것을 명했다. 책상은 열댓 개로 서른이 넘는 임시제자들이 앉기 터무니없이 적었는데, 그럼에도 아무 문제는 없었다.

감독관 세 명이 먼저 앉자 나머지 자리를 두고 일꾼들끼리 싸워가며 앉기 시작한 것이다.

발이 느리거나, 힘이 약해 자리를 빼앗긴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뒤에서 불편하게 서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이게 흑마법사에게 일상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한 자가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수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조셉이 앤드루에게 물었다.

“넌 안 나가느냐?”

“괜찮으시다면 저도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의 가르침은 늘 유익하기에.”

“·····. 마음대로 해라.”

허락이 떨어지자 앤드루가 고개를 숙였다. 조셉은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자, 특별히 내가 잡아 준 수업이니 모두 주의 깊게 듣기 바란다. 우선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기본적인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흑마법이란 무엇이냐?”

마리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감정을 이용한 기적의 학문이지만, 실질적으로 더 파고들면 인간의 근본인 영혼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감정은 영혼에서 나온 일부 에너지에 불과하기에.”

“맞아, 흑마법은 본질적으로 영혼을 다루는 학문이지. 그렇기에 감정 외에도 생명력과 매력 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특성을 추출하고 이용할 수 있다. 영혼이 모든 것의 근본이기에. 즉, 흑마법이란 인간의 진리, 근본을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오오····.”

다들 이해했다는 듯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수첩에 글을 적었다. 올리버는 자신만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나 싶었다.

“자, 그럼 흑마법을 위한 기초가 뭔지 누가 한번 말해봐라.”

또, 마리가 손을 들었다.

“일단, 기본 재료인 감정을 볼 수 있는 ‘개안’, 그리고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핸들’이 필요합니다.”

“그래, 제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정작 감정을 보고 다룰 수 없다면 다 소용없지. 그다음은?”

“감정을 추출하며, 이후 그 감정을 ‘가공’할 수 있어야. 흑마법사라고 불러 줄 수 있습니다.”

“맞아. 그게 기본 중의 기본이며 진정한 첫발자국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감정이란 영혼의 에너지. 추출해 가공하려는 순간 술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슬픔, 분노, 살의, 증오····. 자칫 술사가 방심하거나, 능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감정에 영향을 받아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맞아! 흑마법은 그 파괴력과 효율성이 가장 뛰어나지만, 공짜는 아니지. 술사의 성품이 약하거나, 실력이 부족하면 오히려 감정이 되려 먹히고 만다. 그렇기에 이론상으로는 흑마법이 최강이지만, 그만한 경지에 이른 것은 소수에 불과하지.”

분위기가 일순간 숙연해졌다. 흑마법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에 걱정과 겁을 먹은 눈치였다.

짝――!

조셉이 손뼉을 쳐 모두를 집중시켰다.

“그러니 이리 수업을 가진 거다. 한 명이라도 실력을 쌓을 수 있게. 이론은 여기까지 하고 모두 여기서 감정을 추출해 봐라.”

조셉이 실험용 플라스크를 임시제자들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스멀스멀 움직이는 감정 덩어리가 있었다.

첫 번째로 받은 것은 톰. 그는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짓더니 플라스크 입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잠시 후, 검은 실이 천천히 올라왔다. 모두 ‘와-’ 거리며 감탄했다.

다음으로 건네받은 것은 마리. 그녀는 톰보다 조금 힘들게 감정을 추출해냈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톰이 비웃듯 피식거렸다.

그다음은 올리버를 관리하는 감독관. 그 역시 마리만큼이나 힘들게 감정을 추출했다.

“역시 감독관 지위는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구나.”

누군가 중얼거렸다.

감독관들이 모두 감정을 추출한 후, 일꾼 계급, 임시제자들 차례가 됐다. 다들 각오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제대로 뽑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제대로 뽑아 손에 감정을 두른 자는 한 줌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중간에 끊기거나, 아예 뽑지도 못했다. 거기다 손에 모은 감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보였는데, 왜 이들을 정식 제자로 삼지 않은 건지 알 수 있었다.

“자, 받아.”

마침내 올리버 차례가 됐다. 올리버는 플라스크 용기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는데, 다른 임시제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신경을 꺼버렸다. 올리버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인님····.”

모두 반사적으로 올리버를 바라봤다.

“뭐냐?”

“얼마만큼이나, 감정을 추출하면 됩니까?”

조셉을 제외한 모두 인상을 썼다.

“····. 네가 추출할 수 있는 만큼. 그게 수련 중 하나이다. 최대한 많이 감정을 추출해 다루는 것.”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올리버는 플라스크 입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 다음 그동안 해오던 이미지 트레이닝대로 감정을 추출하기 시작했다.

용기의 1/3쯤 채운 감정 덩어리는 요동치더니, 토악질하듯 플라스크 용기 밖으로 솟구쳤고, 놀랍게도 올리버의 손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이다음에는 뭘 하면 되죠?”

천연덕스러운 올리버의 물음에 모두 침묵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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