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5화 (5/633)

5. 임시 제자 (2)

남자 감독관이 말했다.

“넌 무슨 상관이야?”

여자 감독관이 대답했다.

“너랑 같은 감독관이니까 상관하는 거야. 멋대로 굴면 안 되지.”

“하―! 같은 감독관? 같은 감독관!!”

“그래. 같은 감독관.”

여자는 지지 않고 말했지만, 분위기는 영 아니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여자 감독관이 잘못한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쪽 사정을 알지 못하는 올리버로서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모양인데, 너 내가 곧 정식 제자가 된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그냥 소문이지.”

“그냥 소문? 수제자님에게 직접 들은 거야. 아니, 소문도 필요 없어 내 실력만 보면 알 수 있는 거지.”

그 말과 함께 남자 감독관이 양손에 검은빛을 모았다. 조셉에 비하면 처량할 정도로 작고 불안정한 빛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두려운 듯 뒤로 물러섰는데, 유일하게 여자 감독관만이 당당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정식 제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주인님께서 결정하실 일. 그런데 네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걸 아시면 주인님께서 어찌하실까?”

조셉이 나오자 뜨거웠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았다. 불독처럼 사납게 생긴 남자 감독관도 찝찝한 듯 인상을 찌푸렸는데, 그럼에도 여자 감독관에 대한 적개심은 거두지 않았다.

“그래·····. 스승님께서 정하실 테지. 이번 달 말에. 만약, 내가 정식 제자가 되면 그땐 네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네····. 야, 뭐해? 뒷정리 시작하지 않고.”

남자 감독관이 자기 소속 일꾼들에게 뒷정리를 명했다. 그러자 일꾼들이 꼬리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바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평소대로 존재감을 숨겨 난리통 속을 빠져나왔는데, 평소라면 그렇게 사라져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복도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까 도와준 여자 감독관이 지나길 기다렸다.

그녀는 같은 소속인 휘하 일꾼들과 대화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왜 그랬어요. 마리 언니····. 분명, 그 녀석 속에 담아두고 있을 텐데.”

“맞아. 우리 일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지····.”

“소문으로 들었는데, 톰 그 녀석이 이번 정식 제자가 될 거래요. 거의 확실해요. 뒤끝이 장난 아닌 녀석인데.”

“그만 됐어. 모두 조용.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다 소문뿐이지. 내가 여기서 몇 년이나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어봤을 거 같아? 그러니 그만둬. 그냥, 쉬고····· 응?”

여자 감독관 마리가 걷다 말고 멈춰 섰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을 기다리는 올리버를 봤기 때문이었다.

마리는 귀찮을 것을 본 듯 ‘하―’ 하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올리버에게 차갑게 말했다.

“그냥 톰 녀석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도와준 거니까.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네가 딱히 이뻐서 도와준 것도 아니니.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만 가봐. 귀찮으니까.”

올리버는 특유의 멍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마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뭐야?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식 제자라는 게 뭐죠?”

***

“무슨 일이 있었다고?”

소시지 공장 지하에 마련된 서재.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던 조셉이 말했다. 조셉의 맞은편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꽤 잘생긴 금발 청년이 서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앤드루. 조셉의 수제자이자, 조셉 패밀리의 2인자였다.

“공장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답니다. 얼마 전 데려오신 놈 있잖습니까? 그놈이 톰에게 밉보였는지 얻어맞았다 합니다.”

“허허···. 그 고약한 놈에게 밉보였으면 몸이 성하지 않았을 텐데, 괜찮나?”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얻어맞은 아이. 얼마 전 내가 데려온 아이 말이야.”

“아····. 예, 걱정하실 수준은 아닙니다. 심하게 당하려고 할 때 마리 녀석이 도와줘서.”

“마리? 의외군. 자기 일도 아닌데 나서다니.”

“의외로 불합리한 건 못 참는 성격이잖습니까? 더욱이 톰 녀석이 나대는 게 보기 싫었겠죠. 아시다시피 톰 녀석은 2년 만에 정식 제자가 되는 데 반해, 그 녀석은 6년째 임시제자이니····. 초조한 거겠죠.”

“아아····. 그렇군. 기억났다. 만년 임시 마리. 흐음, 흑마법은 재능만큼이나 열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군. 조금만 더 두고 보다 아니다 싶으면 하인으로 격하시켜라.”

수제자 앤드루는 굳이 뭐라 말하지 않았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하인이나, 부엌데기로 만드는 게 이곳의 규칙이었으니.

“그만 나가보거라. 앞으로 또 무슨 일 있으면 보고하고.”

앤드루는 나가지 않았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보며 조셉이 물었다.

“뭐냐? 안 나가고?”

“·····. 주인님. 질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 말해봐라.”

“왜 데려온 그 아이를 계속 지켜보라는 겁니까? 재능이 그다지 없어서 임시제자로 넣으신 것 아닙니까?”

조셉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런 것에 왜 관심을 가지나?”

“어, 여태까지 이런 적은 없으셨지 않습니까? 임시제자는 그저 데려만 놓고 한두 번 가르친 후 관심을 끄셨는데···. 저는 주인님이 이러시는 연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수제자이니···. 예.”

‘수제자이니 물어볼 자격이 있다.’ 앤드루는 그리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조셉과 눈을 보자 이내 기가 꺾여 말끝을 흐렸지만.

그런 앤드루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본 조셉은 자비로운 스승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이유? 별거 없다. 꽤 재밌는 아이라 그런 거지.”

“재미요?”

“그래, 다른 아이들과 달리 힘이나 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흑마법을 배우고 싶어하거든. 꽤 재밌는 아이라 그런 거야.”

“그럼, 재능은 좀 있다는 말입니까?”

“재능····. 음, 꽤 있는 편이지.”

그 말에 앤드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하하하. 겁먹은 거냐?”

“아, 아뇨. 아닙니다!”

“너무 겁먹지 말거라. 그 녀석은 막 입문····. 아니지 입문도 하지 않은 애송이인데, 반해, 넌 내 밑에서 몇 년간 수제자를 지내지 않았느냐?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말고, 수련이나 해라.”

“아···, 예.”

스승이 달래주자 앤드루는 그제야 안도했다. 뒤늦게 창피함이 찾아왔는지 서둘러 서재를 나가려고 했는데, 그때, 조셉이 앤드루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톰이 정식 제자로 승급한다고 그랬지?”

“예,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이번 달 말에 공식으로 발표···. 왜 그러십니까?”

“흐음····.”

조셉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재밌는 생각이 났다는 듯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좋아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자비를 한번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앤드루. 임시제자들에게 공지하도록 해라. 이틀 후 수업을 열겠다고.”

“수업요?”

앤드루가 놀라며 말했다. 재능이 없는 임시제자들 역시 조셉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지만, 두, 세 달의 한 번꼴이었다. 조셉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6개월 동안 받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여행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수업이라니 이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앤드루가 충격을 참으며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말고. 이번 달 말에 정식 제자가 하나 승급한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실력 체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셉은 그리 말하고는 음흉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듯이 말이다.

***

“·····. 그러니까. 우린 말만 제자고 진짜 제자가 아니야. 진짜 제자가 되려면 하급이라도 좋으니, 정식 제자가 돼야 하지. 알아듣겠어?”

마리의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마리의 자세한 설명으로 임시제자가 뭔지, 정식 제자가 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임시제자는 말만 제자일 뿐이지, 실상은 제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제자 후보군이며 동시에 일꾼이었다.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으며, 잡일을 도맡아야 했는데, 이 사실은 올리버에게 제법 큰 충격으로 찾아왔다.

일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흑마법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거였지. 그거 하나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꽤나 큰일이었다.

그런 올리버를 보곤 마리가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 삶이란 원래 불공평한 거니까.”

그 말이 위로된 걸까? 올리버는 이내 다시 기운을 차렸다. 시체 같은 생김새 탓에 겉보기에는 실망했을 때와 별 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그럼····. 정식 제자가 되는 법은 뭐죠? 톰이란 분은 정식 제자가 곧 된다고 말했잖아요?”

그 이야기가 나오자 마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색한 보라색 머리와 합쳐지니 더욱 화가나 보였는데, 그녀는 다소 신경질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 몇 달에 한 번씩 받는 수업에서 어떻게든 실력을 쌓아 최소 하급제자 정도는 될 자격은 있다고 인정받는 것····.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 마. 애당초 임시제자가 정식 제자가 되는 게 쉬운 게 아닐뿐더러 티오도 정해져 있어 자리도 한정적이니. 몇 년은 족히 걸릴 거야. 최소한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된 네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하급제자로 인정받으려면 어떡하죠?”

마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말 안 들었어? 생각하지 말라고·····. 후우, 흑마법 기본기는 무난하게 쓸 줄 알아야 해. 해잇 블릿과 블랙 쉴더 정도는 말이야. 뭔지 알아?”

“·····.”

“영혼에서 파생된 에너지인 감정을 총처럼 쏘고, 방패처럼 두르는 거야. 위력은 둘 다 총을 웃돌지. 나는 주인님에게 거둬질 때 우연히 봤는데, 내가 살던 동네를 주름잡던 양아치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지.”

마리의 복잡하게 인상을 썼다. 올리버는 볼 수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감탄하고, 욕심내며, 초조해하는 복합적인 그녀의 감정을.

그녀 역시 흑마법을 탐냈으나, 어째서인지 그러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는지,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근데, 내가 왜 이런 걸 너한테 일일이 설명해주고 있는 거야. 내 쪽 인원도 아니고, 딱히, 뭘 가져다준 것도 아닌데····. 하, 이름이 뭐야?”

“올리버요.”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런 질문을 해준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난 네 궁금증에 일일이 답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충고해주는 건데. 앞으로 뭔가 도움을 받고 싶으면 최소한 무언가는 가지고 와. 세상일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니까. 알겠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늘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리는 더 이상 자기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왜 자신이 질문에 대답해 준 건지···. 어쩌면 저 멍한 표정에 홀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 돌아가 공부하려고 할 때, 마리의 관리하에 있는 일꾼 하나가 다급히 뛰어왔다.

“마리 언니! 마리 언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

그녀는 뭐 때문에 그리 흥분했는지 옆에 있는 올리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뭔데 그래? 진정하고 말해봐.”

“듣고 놀라지 마세요! 주인님이 내일 특별히 일을 쉬고 수업을 해주실 거래요. 믿어져요? 수업이라니! 일단, 여행만 갔다 오면 우리 수업은 기본 4개월이 걸렸잖아요?!”

“그러게····. 무슨 바람이 부신 거지.”

마리가 정말 놀란 듯 말했다. 6년 동안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 눈치 없이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정말 내일 수업이 있나요?”

“····.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넌 운이 좋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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