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임시 제자 (1)
올리버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여관을 떠난 이후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보냈는데, 장기간 이동으로 피곤이 쌓여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몸에 문제가 있거나,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지.
고아원 때와 광산 때는 하루하루가 그저 똑같고, 생존 외에는 관심이 없어 언제든 푹 잠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기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 아니 수십, 수백 번을 떠올렸다.
달려드는 종업원의 감정을 추출해 ‘해잇 블릿’을 쐈던 그때를 말이다. 그 신비롭고도 익숙한 감각은 흡사 날개가 생겨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올리버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당시 느꼈던 그 감각과 여운을 되짚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쉽기도 했다. 만약, 그때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감정을 더 빨리, 더 많이 추출할 수 있었을 텐데.
기쁨을 억제하고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하나가 아닌 여러 발을 동시에 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 이전에 단순한 흉내가 아닌 한층 더 발전된 흑마법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올리버는 그렇게 아쉬웠던 부분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은 감정을 추출하며, 더 많은 해잇 블릿을 쏘고, 속도와 정확성, 위력을 높였다. 이윽고 단순히 해잇 블릿이라고 부르기 힘든 독특한 변화도 줬다.
비록, 머릿속의 상상에 불과했지만, 상관없었다. 올리버는 이를 바로 현실로 적용할 자신감이 있었으니.
만약, 주인이자, 스승인 조셉의 말만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의 감정을 추출해 실험해 봤을 터였다.
‘이제부터 내 허락이 있을 때까지 흑마법 연습을 하지 마라.’
‘왜····. 그러시죠?’
‘감정을 이용해 모양을 만드는 정도는 다른 이들에게 안 보여 괜찮지만, 제대로 된 흑마법은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 행여 우연으로라도 사람들이 흑마법을 쓰는 걸 보면 조금 골치 아프다····. 뭣보다 자기감정을 이용해 흑마법을 쓰는 건 하수 중의 하수만 하는 짓이다.’
‘어째서지요?’
‘진정한 흑마법사란, 자신이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이용해야 하거든. 감정이란 한정된 자원. 마구잡이로 썼다간 영혼이 텅텅 빌 테니 정말 어쩔 수 없는상황이 아니면 자기감정은 아껴야 한다.’
‘그럼,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감정을 추출해서 연습해도 되나요.’
‘음·····. 아니, 감정을 추출하는 것도, 흑마법을 연습하는 것도 오로지 내 허락을 받아라. 여관에서 네가 말했지. 내게 복종하겠다고? 그럼, 따지지 말고 복종해라. 그렇다면 가르침을 줄 테니.’
그 탓에 올리버는 자신의 머릿속으로밖에 흑마법을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셉은 복종을 요구했으니,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최대한 복종해야 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말이다.
어느새 어둡던 하늘은 회색으로 바뀌며 점차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태양이 다시 일어선 것인데, 조셉 역시 이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으으으응····! 노숙은 언제나 별로군. 응? 벌써 일어난 거냐? 아니군, 잠을 안 잔 거군.”
창백한 안색과 눈그늘이 늘어난 올리버를 보며 조셉이 말했다. 그는 평소대로 근처 개울로 가 세수를 하곤, 구강청결제로 입을 헹궜다.
가르르르르, 퉤!
걸쭉한 가래침 같은 세정제를 뱉은 후 조셉이 말했다.
“원래 잠이 없는 거냐? 일부러 잠을 안 자는 거냐? 만약, 중간에 지친다고 해도 업어줄 생각은 없는데.”
올리버가 조셉을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하니 너무 기대돼서 잠을 못 잤습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올리버는 어서 자신이 흑마법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생에 거의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기에 좀처럼 주체가 안 됐다.
그런 의욕에 찬 모습이 썩 싫지 않은지 조셉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른 아이들도 전부 그랬으니.”
“다른 아이요?”
“왜? 내가 여태까지 살며 재능 있는 아이를 너밖에 못 만나 봤을 것 같더냐? 너 외에도 여럿 재능있는 아이들이 있다.”
올리버는 조셉의 빛을 봤다. 빛이 미묘하게 비틀거렸다. 즉, 반은 진실이자, 반은 거짓이었다.
“물론, 전부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너 말고 여러 애들이 있다. 고아원 출신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 얌전히 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넌 막 들어온 막내이니. 막내답게 얌전히 굴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서열이 중요하거든. 우리 패밀리 관례대로 처음 들어오면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한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 광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힘이 약하거나, 처음 들어온 신입은 가장 힘든 일을 하며, 가장 안 좋은 자리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런 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힘이 세거나, 혹은 힘센 아이와 친해지는 것뿐.
여태까지 조용히 지내는 것 외에는 올리버에겐 관심 밖이었지만, 지금은 글쎄·····? 그때 조셉이 경고하듯 말했다.
“내가 저번에 뭐라고 말했지?”
“···· 주인님 말에 복종하고, 패밀리의 규칙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거야. 배우고 싶다면 내 규칙을 따라라. 규칙이 곧 질서이니.”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가볍게 빵으로 식사를 때우고 조셉과 올리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다다르러 가니 점차 나무가 줄고, 도시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가 났는데, 잠시 후, 언덕 아래로 한 작은 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가 와인햄이다.”
스승인 조셉이 말했다. 올리버는 도시의 적잖은 규모에 눈이 커졌다. 정확히는 그 도시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내뿜는 격정적인 감정 때문이지만.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리 작은 도시는 아니지. 어때 보이나?”
“····. 활발해 보여요.”
짜증과 분노, 원망으로 요동치는 빛을 보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음, 그럴지도. 도시를 지탱하고 있던 몇 개의 큰 공장이 ‘란다’로 이전한다고 하니. 다들 감정이 활발할 수밖에. 결코 좋은 쪽은 아니지만.”
올리버는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공장이라는 곳이 떠나는 게 저 요동치는 빛의 원인이라는 것은 이해했다.
다시 조셉은 걷기 시작했다. 올리버는 그 뒤를 쫓아갔고 얼마 가지 않아 도시 외곽에 세워진 한 허름한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장이 한쪽으로 기운 형태의 건물은 웃고 있는 돼지와 소시지가 간판으로 걸려있었다.
“여긴·····?”
“공식적으로는 작고 볼품없는 소시지 공장. 비공식적으로는 우리 패밀리의 근거지지.”
조셉은 그리 말하곤 안으로 들어갔고 올리버 역시 뒤따랐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진 얼마 되지 않아 공장 내부가 보였는데, 약간 상한 듯한 고깃덩어리들과 거대한 분쇄기, 갈린 고기를 옮기는 카트,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어린 일꾼들이 보였다.
어리다 해도 올리버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다들 십 대 중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들은 조셉이 등장하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하나 같이 상한 고기 냄새와 역한 땀 냄새를 풍겼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잘 보이기 위해 아첨을 떨었다. 조셉은 그런 광경에 익숙하다는 듯이 올리버의 등을 한 번 밀치곤 입을 열었다.
“이번에 새로 데려온 아이다. 오늘부터 같이 지낼 식구이니 이것저것 잘 가르쳐 줘라.”
그 말에 아이들의 표정은 밝게 미소 지었다. 새로운 동생이 생긴 듯 기쁜 표정이었다. 최소한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대답을 듣자마자 조셉은 냉정하게 올리버를 두고 떠나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올리버는 순식간에 홀로 남겨지게 됐다····. 아, 정정하겠다. 혼자 남은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사납게 노려보는 일꾼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화가 난 개처럼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 뭐야? 상황 파악 안 돼? 어서 일할 준비 안 하고!”
그렇게 올리버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다.
***
팅! 팅! 팅! 팅! 팅! 팅! 팅! 팅!
아침이 되면 찌그러진 프라이팬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고통스러운 금속음에 맞춰 눅눅한 매트릭스에 잠을 자던 아이들은 하나둘 힘겹게 일어났다. 그러다 누구 하나 게으름을 피우면 감독관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사납게 소리치며 위협했다.
“뭐해! 게으름 부리지 말고 얼른 일어나지 못해!”
호통 다음에는 주먹질 발길질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부랴부랴 일어났는데, 그중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올리버였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올리버는 이곳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어디든 빠르게 적응하는 게 그의 재주였으니.
아침에는 숙소라고 칭해지는 창고에서 나와 공장 내부를 간단하게 청소하고, 청소를 끝낸 후에는 빵과 수프로 식사를 때웠다.
만든 지 오래된 딱딱한 빵이었지만, 광산에서 먹던 묽은 죽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식사였는데,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에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고 해 봐야 그날그날 들어온 고기를 소시지로 만드는 것뿐이었기에 솔직히 힘들진 않았다.
상한 고기 냄새가 역하긴 했지만, 미각이나 후각 등이 둔한 올리버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으며, 햇볕 하나 들지 않는 광산에서의 중노동에 비하면 쾌적한 놀이에 불과했으니.
업무량도 그날그날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은 편이었고 불만을 가질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힘든 것이라면 몸이 아닌 정신이었지.
분명, 이곳에 오면 흑마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기대와 달리 조셉은 그냥 올리버를 이곳에 버리고 떠날 뿐이었다.
올리버는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고아원과 광산에서의 경험, 복종을 바라는 조셉의 심리 탓에 묻지도 못하고 그냥 버틸 뿐이었다.
일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지만, 언제쯤 흑마법을 배울 수 있는지는 알고 싶었다. 만약, 흑마법을 배우지 못하고 계속 이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거라면 올리버는 그 실망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철썩-!
걱정에 빠져있던 올리버의 얼굴에 화끈한 고통이 밀려들며 뒤로 발랑 넘어졌다. 충격으로 흔들린 시야가 바로 잡히자 한 남자가 보였다.
골격이 두꺼워 보이는 사나운 청년으로, 그는 올리버의 가슴을 지르밟으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고기 다 옮겼냐고 묻잖아?!”
남자의 일꾼들을 관리하는 감독관이었다.
“다····. 옮겼어요.”
올리버가 고통 탓에 어눌해진 발음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감독관은 한 번 더 올리버를 지르밟았다.
“새끼가 답답하게····. 야, 이 새끼 좀 제대로 교육해라! 내가 곧 떠날 몸이긴 해도, 내가 몸담았던 곳에 이렇게 답답한 놈이 있는 건 참을 수 없으니까. 빌어먹을 새끼가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고····.”
감독관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일꾼들은 물론이요 다른 동료 감독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올리버를 때린 감독관의 눈치는 보는 것 같았다.
한층 기세가 등등해진 감독관이 쓰러진 올리버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말했다.
“야, 모지리 새끼. 내가 경고하는데, 여기서 일꾼으로나마 지내고 싶으면 정신 똑바로 잡아라. 바보인 척해도 소용없으니까. 한 번만 내 눈에 띄면 저기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린다. 앙?!”
올리버는 그간 살아왔던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화를 내면 비굴하게 굴복하는 것. 감독관이 얼굴이 경멸감에 한층 더 일그러졌다.
“흥! 병신 새끼····. 벌로 오늘 여기 뒷정리는 전부 네가 다해!”
올리버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멱살을 놓아주었는데, 그때, 한 감독관이 끼어들었다.
창백한 피부에 이질적인 보라색 머리를 짧게 기른 한 여자였다.
“이봐, 얼렁뚱땅 남한테 자기일 넘기면 안 되지. 오늘 작업장 청소 너희잖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올리버를 때린 감독관은 인상을 팍 구겼고, 여자 감독관은 지지 않고 팔짱을 꼈다. 모두 침을 삼키고, 숨을 멈췄는데, 그 와중에 올리버의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도대체 흑마법 언제 가르쳐주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