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택받은 아이 (3)
몇 시간 전.
푸짐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조셉은 눈을 마주봤다.
“이 음식을 먹는 게 좋을 것 같나?”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어째서?”
“그게····. 조금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그럼 어렵게 설명해봐라.”
“어····, 음····, 빛이 이상했어요.”
“빛?”
“예, 그러니까. 감정요. 화가 날 때 번쩍번쩍 요동치고, 슬플 때 옅어지며 울렁거려요. 두려울 때 바들바들 떨어요.”
“그런데?”
“저 아저씨-”
“-여관 주인?””
“예, 여관 주인의 빛. 희미하게 비틀렸어요.”
“비틀거리는 건 뭐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몇 번 본적만 있어요. 원장님이 광산에 절 데려가기 전이랑 위험한 작업에 투입 시킬 때 감독관이 저런 빛을 보였어요.”
“거짓말을 할 때 그런 빛을 띤다는 거구나?”
“어···. 예, 그런 것 같아요.”
올리버의 대답에 조셉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친절한 여관 주인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잘 모르겠는데요.”
“이유야 뻔하지. 바로 속셈이 있기 때문이야. 가령, 이 맛있는 음식에 수면제가 섞여 있다든가. 그런 다음, 음식을 먹고 잠든 우리를 죽여 물건을 갈취한다 거나.”
결코,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조셉은 약간 흥이 난 듯했다. 꼭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듯 말이다.
“자,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어····. 음식을 안 먹나요?”
“그건 아니지. 그럼, 여관 주인이 우리가 눈치챈 걸 눈치챌 테니. 오히려 속아 넘어가 준 척 방심시켜야지. 기억해라. 흑마법사에게 있어 꾀도 중요하다는 것을.”
올리버는 평소와 같이 동태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문이었지만, 조셉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신, 품 안에서 한 시험관을 꺼냈다.
그 시험관을 보자 올리버의 눈이 살짝 빛났다.
검은색 마개로 밀봉된 시험관 안에는 검은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타르처럼 시커멨으며 걸쭉했는데,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는 게 보였다.
“그거···. 검은빛···. 감정 맞죠?”
올리버가 물었다.
“·····. 그래. 맞다. 추출한 감정을 응축시킨 거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올리버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며 물었다. 조셉은 그런 올리버를 보고 경고하듯 말했다.
“····. 너무 서두르지 마라. 아직 네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 대신, 더 재밌는 것을 보여주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그 말과 함께 조셉은 시험관의 마개를 뽑았다. 마개가 열리자 액체는 더욱 요동쳤고, 그 위로 조셉이 손을 올렸다.
손이 올려지자 액체는 잠잠해지며 이윽고 한 가닥 실이 뽑혀 나왔다. 그 모습은 흡사 방적기를 연상케 했는데, 다 뽑힌 실은 조셉의 손 주위를 맴돌더니 이내 빛으로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액체에서 실 그리고 다시 빛.
올리버는 놀랍고 신기한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아니, 지켜보는 것 이상이었다.
조셉이 마개를 여는 순간부터 슬로비디오처럼 모든 게 느리게 보이더니, 본능적으로 그것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원리과 메커니즘 심지어 요령까지 전부 다 말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상상으로 쌓았던 이론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검은빛, 감정은 용도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었고, 새로운 무언가로 가공할 수 있었다.
“나와라. 이터.”
조셉이 검은빛에 대고 속삭였다.
그와 함께 검은빛은 요동치며 똬리를 틀더니 하나로 뭉쳤고, 이윽고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건·····?”
올리버가 허공에 뜬 구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 머리통만 했는데, 올리버는 호기심이 앞서 저도 모르게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불을 처음 본 아이가 손을 가져다 대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올리버의 손이 구체에 닿기 직전 구체의 한 면이 쫘악 벌려졌다. 그리고 그 틈새 사이로 거대하고 시뻘건 혀, 새하얀 이빨이 나타났다.
그렇게 거대한 입이 허공에 생겨난 것이다.
“이터. 내가 창조한 청소부지. 원래는 이런 용도가 아니지만, 이렇게 쓰게 되는구나····. 음식을 전부 먹어 치워라.”
조셉의 그 말과 함께 이터가 식탁에 놓인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혀로 핥아 깨끗하게 먹어 치웠는데, 올리버는 그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다.
흑마법······. 정말 재밌었다.
“신기하나?”
“····. 예.”
“그럼, 오늘 밤 자지 말고 깨어있어라. 아마, 더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
“하나.”
문밖으로 나간 조셉이 말했다. 겁먹은 여관 종업원은 얼빠진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익!”
“둘.”
조셉은 개의치 않고 시험관에서 다시 실을 추출했다. 실은 다시 빛으로 변했으며, 빛은 순식간에 응축해 총알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그 모든 것이 단 1, 2초 만에 일어난 일. 조셉이 도망치는 종업원을 겨누며 말했다.
“셋. 해잇 블릿.”
영창과 함께 빛 덩어리가 날아가 종업원의 등을 꿰뚫었다. 위력이 상당해 구슬만 한 구멍이 났는데, 종업원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조셉은 무심히 그 모습을 보더니, 산책하듯 어깨를 한번 털고 아래로 걸어갔다. 올리버는 그런 조셉을 따라 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죽은 듯이 방에 있는 것이 마땅했으나, 호기심과 탐구욕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끝까지 봐야 했다. 그것이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졌다.
“이런, 역시 상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무엇인가를 보고 중얼거리는 조셉.
올리버는 조셉의 어깨너머로 여관 1층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벌거벗은 손님·····. 아니, 손님이었던 시체와 그 시체를 옮기는 중년여성이었다.
뚱뚱한 여관 여주인은 조셉과 올리버를 보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어? 어? 분명 식사를·····?”
“내가 조심성이 좀 많아 아무거나 안 먹거든.”
조셉이 신사답게 여성의 말에 대답한 후 손을 뻗었다.
“해잇 블릿.”
영창과 함께 날아간 증오의 탄환은 단숨에 중년여성의 머리와 가슴을 꿰뚫었다.
“히이익-!”
옆에서 걸레질하며 핏자국을 지우던 종업원 하나가 기겁하며 부엌으로 도망쳤다. 조셉은 여유롭게 걸어 뒤를 쫓았는데 올리버 역시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너무나도 즐거웠다. 흑마법으로 감정을 총알처럼 쏠 수도 있으니·····. 상상하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기분이었다. 정말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조셉을 부엌 쪽으로 가던 중 도망쳤던 종업원이 나왔다. 그는 여관에서 주로 쓰는 산탄총을 가지고 나와 조셉을 겨눴다.
올리버는 그 순간 생각했다. 감정을 넓게 펼쳐 방패처럼 막아야 한다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머릿속에 절로 이미지가 그려졌는데, 놀랍게도 조셉은 손에 두른 검은빛을 이용해 사람보다 큰 장막을 펼쳤다.
“으아아악! 뒤져라!”
“블랙 쉴더.”
탕――! 요란스러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넓게 퍼진 검은 장막에 모두 무력하게 막힐 뿐이었다.
근거리에서 쏜 총알이 이리도 허무하게 막히다니, 종업원은 귀신에라도 홀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해잇 블릿.”
조셉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증오의 탄환을 날렸다. 퍼버벅-! 소리와 함께 가슴과 배에 구멍이 생긴 종업원이 그대로 쓰러졌다.
아름다웠다! 요상한 생물에서 총알, 방패까지·····. 올리버가 생각했던 것,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모두 이뤄졌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 재미로 만든 찰흙 인형이 생명을 얻는 창조적 경이로움이었다.
“쯧쯧쯧. 이 장사를 할 때 손님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게 첫 번째 덕목인데····. 이다지도 어리석기는.”
조셉이 쓰러진 시체에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뒤늦게 기억났다는 듯 중얼댔다.
“그런데 다 합쳐 다섯이라 그러지 않았나·····?”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지하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지하실에서 막 올라온 마지막 종업원과.
무거운 짐을 옮긴 듯 땀에 젖은 그는 여주인의 시체를 발견하곤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핏발이 곤두세우며 달려들었다.
“이 씨이빨 새끼가!”
그는 탄광의 감독관보다 더 무서웠다. 거기다 손에 쥔 정육점 칼은 누구든 베어버릴 듯 날카로웠는데, 무엇보다 몸에서 내뿜고 있는 빛은 그간 올리버가 봐온 그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붙잡히면 죽을 게 확실했다.
그래서 올리버가 두려웠냐고? 아니,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올리버는 손을 뻗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는데,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 다음 분노한 종업원의 감정을 추출해 가져왔다.
올리버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는 그 검은빛이란 경이롭기 그지없었는데, 어떻게 한 것인지는 본인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걷는 것과 비슷했다. 어느 순간 절로 할 수 있는. 조셉이 말한 재능의 영역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차갑게 식은 심장이 조용히 움직이며, 온 신경을 손에 집중했다. 바로, 몇 발자국 거리에 종업원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초조하거나 두렵진 않았다.
올리버의 관심은 오직 손안에 있는 감정뿐. 올리버는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조셉처럼 요동치는 감정을 응축시켰다. 더 빨리, 더 정교하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올리버의 눈에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불처럼 격정적이던 감정은 올리버의 손안에서 안정을 찾으며, 상상하던 대로 그 형태가 변했다.
올리버는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증오의 탄환이 그 손가락 끝에 모였다. 그 후로는 모든 걸 본능에 맡겼다.
준비. 조준. 격발.
“해잇 블릿.”
영창과 함께 손끝에 맺혀있던 증오의 탄환이 날아가 종업원의 가슴을 꿰뚫었다. 팍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겼으며, 종업원은 눈만 커다랗게 떠진 채 절명했다. 납처럼 무거운 침묵만이 여관을 가득 채웠다.
“·····.”
올리버는 자신의 손을 빤히 바라봤다. 처음 흑마법을 쓴 감각을 떠올리며, 그 여운을 느끼며·····.
누군가 올리버의 머리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바로, 조셉이었다. 그는 매우 감탄한 표정을 지은 채 올리버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바로 그거다.”
***
올리버는 조셉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왔다. 지하실에는 손님들을 살해하고 빼앗은 장물들이 쌓여있었다.
값비싼 코트와 바지, 구두. 그 외에도 각종 시계와 지갑, 벨트, 결혼반지 같은 것들이 상자에 한가득이었다.
“허허····. 참 열심히들 모았군.”
조셉은 품 안에서 주머니를 하나를 꺼냈다. 누르스름한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는 치아 같은 지퍼가 달려있었는데, 작은 생물과 같아 약간 기분 나쁘기도 했다.
“전부 챙겨라.”
조셉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머니에서 어설픈 손과 발이 돋아나더니 장물을 게걸스럽게 삼키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장물을 챙기는 것을 확인한 후 조셉은 올리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엇을 보나?”
“아, 그냥····. 이걸 왜 모으나 싶어서요.”
포장된 시체와 혈액 팩 더미를 보며 올리버가 말했다. 두려움보다는 순수한 궁금증만이 있었다.
“블랙마켓에 팔기 위해서다. 거기는 안 사는 게 없고, 안 파는 게 없거든. 너도 장차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
“제가요?”
“그래, 흑마법사들은 필연적으로 블랙마켓을 이용하거든. 흑마법사가 되기 싫으냐?”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되고 싶었다. 재밌고, 신기하지 않은가?
조셉이 다시 한번 올리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매우 친근한 행동이었다.
“내가 왜 널 샀다고 생각하나?”
올리버가 대답하지 못했다. 감정을 어떻게 쓰는지, 흑마법이 뭔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나 정작 왜 조셉이 자신을 샀는지 몰랐다. 하긴,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난 뛰어난 흑마법사를 기르는 게 목표다. 그래서 재능있는 아이들을 모으고 있지.”
“예?”
“들은 그대로다. 그럼, 왜 뛰어난 흑마법사를 기르는 게 목표인지 아느냐?”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흑마법사로 살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핍박과 위협을 받게 되거든.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 강해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난 강해지기 위해서 인재를 키우는 거다.”
올리버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인재를 키우기란 쉽지 않지. 재능있는 아이를 찾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성직자, 성기사, 마법사 같은 교육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 교육에 필요한 노력과 비용 모두 본인이 다 감당해야 한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느냐?”
올리버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내 눈에 띈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허나, 내가 공짜로 인재를 키우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행운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하지.”
“····. 전 돈이 없는데요?”
“돈은 필요 없다. 그보다 고차원적인 게 필요하지. 바로, 날 스승이자 주인으로 모시며, 복종하고 충성하는 거다.”
올리버는 빛을 봤다. 조셉의 몸에서 요동치는 빛을, 욕망을. 그 빛을 이해한 올리버는 곧바로 머리를 숙였다.
“복종하겠습니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