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흑마법사 노란커피
1. 선택받은 아이 (1)
마법 그리고 산업의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숲을 개간해 철도를 깔았으며, 하늘에는 비행선이, 거리에는 자동차가 돌아다녔다.
어디 그뿐이랴? 경제는 발전했으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수많은 식민지가 세워졌다. 혹자는 말했다. 바로 지금이 인류의 황금기라고.
그럼에도 소외되는 곳은 있기 마련.
바로 여기 있는 광산마을이 그러했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이 마을은 그럭저럭 광물이 나오는 별 볼 일 없는 곳으로 여러 사연을 가진 사회의 밑바닥들이 모여들었는데, 그중 가장 밑바닥은 당연히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은 고아였으며, 배경 역시 비슷했다.
아비와 어미가 누군지 몰랐고, 고아원에 맡겨지며, 정부 보조금을 타기 위해 14살까지 키워지다 취직 및 독립이라는 명목 아래 이곳 광산마을에 팔려왔다.
일일이 따지자면 불법이었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일은 너무나도 흔했기에.
그 탓인지 아이들의 모습은 비슷하기 그지없었다.
광산 일로 검댕이가 된 얼굴, 생기 없는 눈, 비쩍 마른 몸뚱이. 너무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 형태를 한 톱니바퀴나 나사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한계까지 쥐어 짜이다 망가지면 교체되는····. 하지만 어디에나 모난 돌이 있듯이 이곳에도 기이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올리버.
아마, 겉모습만 본다면 고개를 갸웃댈지도 몰랐다. 기이하다고 하기에는 딱히 특이한 점이 없었으니.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삐쩍 마른 올리버는 피부까지 창백해 살아있는 시체를 연상케 했는데,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볼품없는 아이였다.
허나, 그러한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올리버가 기이하다는 반증이었다.
올리버가 처음 이 광산에 팔려왔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3년하고도 4개월 전인데, 당시 원장에게 밉보였는지 제대로 먹지 못해 지금보다 훨씬 비루했다.
비쩍 곯은 그 아이를 보고 광산의 감독관, 노동자, 아이들까지 모두 석 달도 가지 않아 죽을 거라고 숙덕였는데, 심지어 언제 죽을지 내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실제로 올리버는 처음 오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앓아누웠다. 어찌나 심각했는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몸은 주전자처럼 펄펄 끓었는데, 놀랍게도 묻을 곳을 파는 순간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오히려 엊그제까지만 해도 괜찮던 다른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더니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올리버는 그 외에도 여러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아둔한 주제에 이상하리만치 눈치가 빨라 화가 난 감독관을 피하는데 도가 텄는가 하면, 짓궂은 아이들의 괴롭힘의 표적이 되어도 얼마 가지 않아 가해 아이가 병으로 죽는 등 행운 아닌 행운이 겹쳐졌다.
또, 아이들을 감시하는 사나운 경비견은 유독 올리버 앞에선 겁을 집어먹었는가 하면, 올리버가 일하는 곳이나 자는 곳에는 쥐들이 하나둘 그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겹치고 겹쳐 어느새 올리버는 모두에게 불길한 물건처럼 취급받으며 배척됐다.
하지만 당사자인 올리버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관심은 누군가와 친구가 되거나, 사랑을 받는 게 아니었으니.
현재 올리버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 광산에서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이었다.
무언가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삶에 대한 집착일뿐. 개미나 진드기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고아원에서 길러져, 광산에서 자란 올리버에겐 생존밖에 없었으니. 허나,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한 손님에 의해 변화를 맞이했다.
***
뿌우―――――――!!!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각. 울리지 말아야 할 증기음이 들렸다.
햇볕 하나 들지 않는 답답하고 탄광에서 일하던 아이들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는데, 구석에서 괭이질하던 올리버만 개의치 않고 일할 뿐이었다.
잠시 후, 투캉쿠캉 녹슨 사다리를 타고 한 뚱뚱한 남자가 내려왔다. 아이들을 감독하는 감독관이었다.
“주목. 모두 주목! 당장 밖으로 집합해라!”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한 아이가 겁을 먹으며 물었다.
“어, 감독관님? 무슨 일인지······?”
“무슨 일?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 성실한 일꾼을 구한다고 하니 어서 나와서 인사드려라! 빨리빨리 움직여! 어서!”
그 한마디에 죽은 표정을 짓던 아이들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선택만 받으면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비정기 행사였다. 이 희망 없는 광산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희망 말이다.
시체 같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녹슨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투캉투캉 사다리가 울렸는데, 저마다 먼저 올라가기 위해 서로를 밀치고 드잡이질을 하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올리버만이 그러한 소동에서 떨어져 구경할 뿐.
딱히 이유는 없었다. 감정이 죽은 것이지, 영혼이 망가진 것인지 올리버는 태어난 이후로 기쁨이나 기대, 희망 같은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토록 차분한 것인데, 어쩌면 이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일지 몰랐다. 헛된 희망은 독이었으니.
힘이 센 아이들 위주로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이후 나머지 자잘한 아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가장 나중에 올라간 것은 당연히 올리버로, 덕분에 가장 뒤쪽 안 좋은 자리는 그의 몫이 되었다.
“으으, 눈부셔·····.”
“이제 좀 살 거 같다.”
“콜록. 콜록.”
오랜만에 태양을 본 아이들이 신이나 조잘거렸다. 탄광에서는 햇볕조차 사치였으니. 그러던 중 아이들 앞에 한 근육질 사내가 나타났다. 이 광산의 폭군 현장책임자였다.
그는 자신이 기르는 사나운 경비견을 대동한 채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아아. 모두 조용. 창피하게 손님 앞에서 소란스럽게 굴지 마라.”
현장책임자의 경비견이 화음을 넣듯 컹! 컹! 사납게 짖어댔다. 아이들은 겁을 먹으며 저들끼리 뭉쳤는데, 올리버만이 차분히 서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조용히 나타났다.
“모두 주목! 이분이 바로 오늘 찾아오신 손님이시다. 성실하고 착한 일꾼이 필요하시다니 모두 예의 바르게 굴어라.”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눈알을 굴려 손님이란 남자를 살펴봤다.
남자는 중년으로, 인자한 표정과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이 눈에 띄었는데, 깔끔한 코트와 중절모 옷차림을 보아 꽤나 부유한 사람인 거 같았다.
이는 좋은 징조라 할 수 있었다. 착해 보이고 부유한 남자라···. 어디든 여기보다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사람일 게 분명했다. 올리버의 눈에는 약간 다르게 보였지만.
현장책임자가 손님에게 말했다.
“아이들을 추천해 드릴까?”
평소 감독관에게 잘 보인 일꾼들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손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왕이면 제가 뽑고 싶소.”
손님은 그러더니 외투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놀랍게도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말이다!
평생 초콜릿 포장지만 구경하던 아이들은 흥분했다.
“이게 뭐로 보이나?”
손님이 대뜸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댔다. 저게 뭐라니? 혹시, 광산에서 일하는 아이들이라 초콜릿이 뭔지도 모르는 줄 아는가? 도대체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 의아했다.
그러던 중 한 발 빠른 소년이 먼저 손을 들었다.
“초콜릿입니다!”
대답과 동시에 아이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이는 가장 먼저 행동하는 진취적인 아이를 찾기 위한 시험이라고.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다른 의견 없나?”
매몰찬 손님의 대답에 첫 번째로 대답한 아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누구 하나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귀처럼 손을 들 뿐이었다.
“저요!”
“제가 압니다!”
“저요! 저!”
“제가 대답할게요! 어르신!”
“제발 저한테·····!”
빵부스러기 주변으로 모이는 비둘기 떼처럼 아이들이 소리치며 손을 들었다. 올리버만을 제외하고.
올리버는 손을 드는 대신 의문에 빠졌다. 초콜릿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올리버는 초콜릿을 든 손님의 손을 보았다. 분명 그의 손에는 초콜릿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검은빛이었다. 손가락 끝에 맺힌 동그란 검은빛.
손님은 몸속에 있던 검은빛을 손끝으로 끌어모아 동그라미를 만들고 있었다.
이는 올리버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람의 몸속에 저마다 검은빛을 품고 있었지만, 저걸 저렇게 다루는 것은 처음 보았으니.
그렇게 올리버가 새로운 사실에 충격을 받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손님의 지목을 받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좋아, 네가 대답해 보아라.”
“예! 그건 기회입니다.”
땡! 손님이 다른 아이를 가리켰다.
“미래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미래!”
땡! 손님이 다시 다른 아이를 가리켰다.
“희망입니다. 어르신께서 저희에게 주는-”
땡! 손님이 다시 다른 아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다시 다시 다른 아이를 가리켰다.
지목받은 아이들은 저마다 참신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무엇하나 손님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어느새 그 많던 손은 다 내려가고, 희망이 짓밟힌 아이들은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어찌나 억울한지 눈물까지 흘렸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은 실망한 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음·····. 여기에도 없는 건가?”
그때,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응? 어, 그래····. 넌 이게 뭐로 보이나?”
일말의 기대도 없는 질문. 가장 뒤 눈에 띄지 않는 올리버가 대답했다.
“동그라미요.”
“·····. 응? 뭐라고?”
“동그라미요. 어르신.”
“····. 동그라미? 네모가 아니고?”
“예, 어르신. 도대체 그거 어떻게 하신 거죠?”
손님이란 남자는 말 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거래는 신속히 이뤄졌다.
손님은 척 봐도 묵직해 보이는 돈뭉치를 현장책임자에게 건네줬고, 현장책임자는 보호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질문조차 생략한 채 올리버를 손님에게 넘겨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탄광으로 돌아갔는데, 올리버는 손님, 아니·····. 새 주인님을 따라 광산을 떠났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때 잘 보이기 위해 최대한 예의 바르고, 비굴하게 인사를 올렸는데,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당돌하게 질문했다.
“저기····. 주인님? 그거 어떻게 하신 거죠?”
“뭘?”
“이것요. 이렇게 하는 것 맞나요····?”
그 말과 함께 올리버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님의 눈에는 보였다. 손가락 끝에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검은색 빛 덩어리가!
그렇다. 올리버는 그저 본 것만으로 손님이 부린 재주를 흉내 낸 것이다. 그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손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아주 오싹하게 말이다.
“언제부터 그럴 수 있었지?”
“·····. 방금요. 보는 건 그냥 어렸을 때부터 봤어요.”
올리버의 대답에 손님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올리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조셉. 위대한 흑마법사이자, 이제부터 너의 스승이다. 이제부터 날 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