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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109화 (109/110)

109화 나락곡 (8)

송곳과 송곳이 교차한다.

뾰족한 한 끝이 서로의 미간, 관자놀이, 눈, 목, 심장, 폐, 간, 사타구니를 노리고 쉼 없이 얽혀 들었다.

퍼퍼퍼퍼퍼퍼펑!

추이와 북궁설의 사이에 있던 고사목 한 그루가 순식간에 벌집처럼 변해 버린다.

산산조각으로 나부끼는 나무 조각들 사이로 두 살수(殺手)의 시선이 교차했다.

송곳을 역수로 쥔 추이가 뒤로 반 보 물러났다.

송곳을 정수로 잡은 북궁설은 앞으로 반 보 전진했다.

…파캉!

한 보의 거리를 두고 또다시 날과 날이 수없이 뒤엉켰다.

핏-

북궁설의 송곳이 역수로 바뀌었다.

그것은 그녀의 팔꿈치 뒤로 숨어 궤적을 감춰 버린다.

팟!

추이는 송곳을 정수로 잡았다.

더 긴 거리를 찔러 들어가기 위함이다.

까-앙!

또다시 추이와 북궁설의 공수가 뒤바뀌었다.

“…….”

추이는 북궁설을 밀어내며 생각했다.

‘예상보다는 버틸 만하군.’

시귀 북궁설. 그녀는 추이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연륜이 깊은 고수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한평생 사람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아 온 살수.

일반적인 무림고수와는 궤를 달리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살수라는 점이 오히려 약점이 될 때도 있지.’

사실 살수의 무서운 점은 살수가 가지고 있는 무공의 수위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기습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누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살수의 진정코 무서운 점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북궁설은 살수가 가지는 두 가지 이점을 모조리 반납한 상태다.

이미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기습의 이점이 없고, 또한 그녀의 신원을 알고 있으니 불안감 또한 없다.

더군다나, 전생의 북궁설이 일약 위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수백 구나 되는 혈강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그 혈강시들은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땅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지금 겨우겨우 눈밭으로 기어 나온 개체들은 힘도 충분치 않고 내구력도 떨어지는 미완성품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너질 실패작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북궁설은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무공 그 자체만 조심하면 된다.

물론.

콰-콰콰콰콰콰쾅!

초절정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는 그녀의 무공은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긴 했다.

오죽 자신이 있었으면 단신으로 뛰쳐나왔을까.

‘살인술에 접목된 소수마공(素手魔工). 귀찮은 무공이다.’

추이는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송곳을 보며 생각했다.

북궁설의 손에 들린 송곳의 끝에서는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냉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것에 닿으면 체온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내 하얗게 얼어붙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장(掌)을 써서 펼치는 무공이지만, 그것이 날붙이를 쓰는 데 적용되니 한층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퍽!

북궁설이 던진 송곳이 추이의 어깨를 사납게 파고들었다.

아쉽지만 송곳 쓰는 기술에 한해서는 저쪽이 한 수, 아니 몇 수는 위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추이가 재빨리 바닥에 꽂힌 창을 빼 들었다.

그때쯤 해서 북궁설 역시도 두 자루의 긴 비수를 뽑아 든 상태였다.

이윽고, 그녀는 부글부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의 젖줄이 끊어졌으니 그것을 다시 잇는 시간, 얕은 곳에 묻은 강시들을 도로 파내는 시간…… 도합 얼마의 세월이 더 필요하게 될지 감도 안 잡히는구나. 깊은 곳에 묻어 숙성시킨 강시들을 포기한다고 해도 십수 년은 더 걸릴 것이야.”

추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북궁설의 말이 이어진다.

“홍공. 그자가 왜 너를 죽이려 들었는지 알겠다. 그는 별점을 봤고, 너를 천적으로 인식했던 것이었구나.”

북궁설의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추이를 죽일 생각인 것 같았다.

이윽고. 눈밭에서 솟구쳐 오른 강시들이 추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북궁설은 뒤로 빠졌고 그 자리를 검붉은 주검들이 메꾼다.

…철커덕!

추이는 송곳을 품속에 집어넣고 창을 잡았다.

퍼퍼퍼퍼퍼퍼퍼퍽!

매화귀창이 핏빛의 호를 그릴 때마다 다짐육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추이는 거침없이 주검들의 육벽(肉壁)을 뚫고 북궁설에게로 향했다.

저 멀리서 남궁율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강시들, 만들어지다 만 것들이라 그런가 별로 힘이 없어요!”

그녀는 눈앞에 있는 청야차를 상대하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인다.

견술 역시도 주변에 있는 강시들보다는 늙은 적야차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때.

…핏!

추이는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가는 비수를 피해 고개를 외로 틀었다.

붉은 주검들이 만들어 내는 파도의 너머로 북궁설이 비수를 던지고 있었다.

추이는 창을 뻗어 눈앞에 있는 강시들의 목을 연달아 날려 버렸다.

…썩둑! …썩둑! …썩둑! …썩둑!

미완성 개체들이라 그런가 머리나 목을 자르는 것만으로도 강시들은 쉽게 주저앉았다.

몇 구의 강시를 더 쳐내자 비로소 눈앞에 북궁설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강시들의 뒤로 숨으며 또다시 양손에 비수를 장전했다.

그때.

퉤-

추이가 침을 뱉었다.

피 섞인 침이 강시들의 사이를 날아가 정확히 북궁설의 왼쪽 눈에 떨어졌다.

“큭!?”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추이의 침 몇 방울이 가면 속 구멍을 통해 그녀의 눈알로 들어간 뒤였다.

침에 섞여 있던 추이의 피가 북궁설의 눈을 통해 체내로 퍼졌다.

화악-

눈알이 타들어가는 듯한 매운 기운, 그것이 일순간이지만 그녀의 내공을 바싹 말려 버린다.

와르르르르!

북궁설이 동요하는 순간 주변의 강시들이 실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육벽들이 느슨해진 그 틈을 타 추이가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북궁설 또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노강호이다.

그녀는 금방 자세를 추슬렀고 곧바로 잠사에 묶은 비수를 집어 던졌다.

창끝과 비수 끝이 허공에서 정확히 맞부딪쳤다.

따-앙!

불똥과 함께 두 날붙이가 각기 다른 궤도로 튕겨 나간다.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는 내공의 파편들이 희고 붉게 산화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푸확!

추이가 북궁설의 얼굴을 향해 피분수를 뿜었다.

혀끝을 씹어서 낸 피가 대량으로 튄다.

“……!”

북궁설은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추이의 망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뻐-억!

추이가 집어 던진 망치가 북궁설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우드득! 뿌직!

피분수와 함께 가면이 부서진다.

흑야차의 가면이 쪼개지고 나자 북궁설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도려내진 눈꺼풀과 코, 입술, 그 외에는 모두 화상 자국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 추이의 침을 맞은 왼쪽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다른 쪽 눈은 이미 멀어 버린 듯 회색빛 일색이었다.

“이 새끼!”

북궁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움푹 들어간 한쪽 머리통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무섭게 달려들었다.

…콱!

쌍차(雙叉).

뾰족한 송곳 위에 휘어져 있는 칼날 하나가 더 붙어 있는 기형적인 형태의 비수.

그것이 북궁설의 두 손에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공력을 모조리 실어 그것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번-쩍!

하늘에서 내리치는 낙뢰처럼, 북궁설의 쌍차가 추이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추이는 창대를 짧게 잡고 그것을 막아 냈지만.

까-앙! 콰콰쾅!

북궁설의 힘은 추이를 그대로 얼음바닥에 짓눌러 버렸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드드드드득!

북궁설은 추이를 힘으로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추이가 창대를 쌍차의 두 번째 날에 걸어 막아 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곳의 첫 번째 끝은 점점 추이의 목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빙판에 못 박아 주마.”

북궁설은 내공을 더 끌어올렸다.

그녀의 가냘픈 손목은 마치 투전승불(鬪戰勝佛)의 여의봉이라도 되는 듯 무게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우직! …우직! …우지직!

추이의 몸은 점점 더 빙판 깊숙이 박혀 들고 있었다.

북궁설의 외눈이 불덩이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놈의 시체를 가공해서 강시를 만들 것이다. 이 고강한 육신을 재료로 쓴다면 한낱 철강시(綴僵尸)를 넘어 혈강시(血僵尸), 아니 마라강시(魔羅僵尸)까지도 노려 볼 수 있겠지.”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주검들을 조종하여 무림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는 그날이 온다. 네놈은 막지도, 바꾸지도 못해. 그 무엇도 말이야!”

이윽고, 북궁설의 송곳 끝이 추이의 목에 가 닿았다.

빨간 선혈 한 줄기가 추이의 목젖 끝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추이의 입이 열렸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 말이야.”

“?”

북궁설의 외눈이 가늘어진다.

추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대의를 위해 너를 죽여서 무림의 혈사를 막으려고? 아니면 단지 홍공의 계획에 어깃장을 놓기 위해?”

아니다.

추이의 행보는 그러한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꾸우우우우욱……

북궁설의 송곳이 추이의 목 가죽을 뚫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깊이로 박혔다.

부글거리는 피거품 속에서 추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니야. 나는 네 것을 훔치러 왔다.”

그 말을 들은 북궁설이 웃었다.

“후후후- 훔쳐? 나의 무엇을?”

그녀의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간다.

태산의 무게와도 같은 거력이 송곳 끝에 담겨 추이의 목을 관통하려 들고 있었다.

그 순간.

…번쩍!

추이의 눈에서 시뻘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검붉은 주검들이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기 시작했다.

“……!”

북궁설의 외눈이 부릅뜨였다.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설원 위에 널브러진 모든 강시들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쑤욱-

이내 엄청난 속도로 뽑혀 나와 추이에게로 흡수되는 광경이.

꾸륵- 꾸륵- 꾸르르르르르륵!

심지어 지면 아래에 파묻혀 있던 강시들 역시도 검붉은 기운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땅속에서 번데기가 된 곤충이 동충하초에게 잡아먹힌 채, 지면 위로 싹을 틔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츠츠츠츠츠츠츠츠……

하얀 설원 전체로 검붉은 기운이 번져 나간다.

흰 눈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끈적하고 붉은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의 정기(正氣)가 정체모를 혈기(血氣)로 변해 가고 있었다.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혈기들은 수십, 수백 가닥의 줄기를 이루어 추이를 향해 뻗어온다.

마치 혈액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이윽고, 추이의 내공이 급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죽어 나자빠진 혈강시들에게 붙어 있던 것들은 바로 창귀(倀鬼).

나락곡의 살수들로 만든 창귀들이 추이의 부름을 받아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우드드드득!

수많은 강시들에게서 뽑아낸 창귀들은 그대로 추이의 창에 깃들었다.

그것은 북궁설의 쌍차를 점차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송곳 끝을 앞두고.

“……무엇을 훔칠 것이냐고?”

추이가 북궁설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전부 다.”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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