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105화 (105/110)

105화 나락곡 (4)

폐광 속은 토법고로(土法高爐) 그 자체를 방불케 했다

곡괭이가 돌벽을 때리는 소리, 용암에서 길어 온 불길을 삭정이에 옮겨 붙이는 소리, 화로가 뜨겁게 달궈지는 소리, 풀무가 바람을 내뿜는 소리, 철광석이 부글거리며 녹아내리는 소리…….

죄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철광석을 캐고 그것을 녹였다.

“이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불순물이 그렇게 섞이면 제 형태를 유지하지도 못한다고! 어이! 쇳물을 그렇게 빨리 붓지 말랬지!? 거푸집 밖으로 넘치잖아! 엇!? 야! 야! 야! 불! 불 꺼진다! 어어어어어! 장작 더 넣어 빨리! 풀무 뭐 해!?”

서세치는 다섯 개 조로 나뉜 죄수들을 닦달하며 작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폐광에서 캐낸 철광석들을 화로 속에 녹여서 쇳물로 만든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죄수들은 쇳물을 퍼다가 그것을 커다란 거푸집에 부어 넣었다.

그리고 설원에서 퍼 온 눈과 얼음을 덮어 그것을 차게 식혔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이윽고, 쇠말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거푸집에서 꺼내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동강으로 깨져 버렸다.

서세치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이래서는 안 돼. 천두님께서는 굳이 잘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최소한 어디 땅에 때려 박을 수는 있어야지. 박기도 전에 깨져 버리는 건 너무했잖아.”

지금은 남이 된 전처가 떠오른다.

서세치는 젊었던 시절, 처가살이를 할 적에 장인어른의 대장간에서 잠시 일을 도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분명 쇳물을 끓여서…… 거푸집에 넣고…… 차게 식혀서…… 망치로 두들기고…….

‘잠깐? 망치로 두들겨?’

서세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담금질! 선철을 망치로 두들겨서 불순물을 빼내야 해. 달궈서 두들기고, 접어서 두들기고, 이 과정을 적어도 몇 번은 더 해야…….”

바로 그때.

…따앙! …땅! …땅!

옆에서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세치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 남자가 망치로 주철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남자는 거푸집에 눈을 몇 바가지 퍼서 끼얹었다.

푸쉬이이이이이이이익……

물이 수증기로 변해 사라지고 나자 이내 거대한 쇠말뚝 하나가 완성되어 있었다.

서세치의 눈이 흔들렸다.

“공손호…… 너 이 자식. 쇠를 다룰 줄 알고 있었냐?”

“흥, 어설픈 놈의 지시는 필요없다. 나는 진짜 대장장이 출신이라 이거야.”

공손호라고 불린 텁석부리 사내가 몸을 돌렸다.

그는 일전에 추이에게 덤볐다가 죽은 공손합의 동생이자,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은 공손앙의 형이었다.

공손호는 서세치를 향해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깨너머로 대충 배운 걸로 대장간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얼간이 놈.”

“뭐, 뭐가 어째? 추이 천두님께서는 나를 책임자로 임명하셨다! 어디서 감히 불손하게!”

“까불지 마라. 뭣도 모르는 놈의 지시를 들을 생각은 없어.”

공손호와 서세치의 대립에 죄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공손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추이, 그놈이 시키는 일은 할 것이다. 당장 목이 달아날 판이니 그것은 어쩔 수 없지.”

“…….”

“하지만 그놈에게 내 형과 동생이 죽었어. 우리 삼형제 중 살아남은 이는 나 하나뿐이란 말이다. 어찌 복수심을 품지 않을 수 있겠나? 으응?”

성큼성큼 다가와 망치를 들이미는 공손호 앞에 서세치는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릴 뿐이다.

이윽고, 공손호가 씩 웃었다.

“지금까지는 그놈의 손아귀에 꽉 잡혀 있어서 감히 딴마음을 품기가 어려웠지만…… 이곳에서라면 다르다. 이제는 그놈 역시도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냐?”

죄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순해졌던 눈빛들이 대번에 뒤바뀌며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손호는 그런 죄수들을 향해 웃었다.

“나만 믿어라. 내 반드시 그놈에게 한 방 먹일 터이니.”

죄수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손목과 발목에 묶인 사슬을 흔들며 고함치는 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이, 이러다 무슨 일 나지…….’

서세치는 슬그머니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턱!

공손호가 서세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봐 염소수염.”

“…….”

“너도 추이, 그놈 때문에 모든 걸 잃지 않았냐? 돈도, 가족도 말이야.”

“…….”

“우리와 손을 잡자.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그놈을 죽여 버릴 수 있어. 이곳 설산에서 말이야.”

서세치의 눈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공손호는 부드러운 어조로 그런 서세치를 꼬시기 시작했다.

“너는 추이에게 아무 문제 없다고만 해. 그냥 그 말만 반복하면 돼.”

“…….”

“아, 걱정 말라고. 쇠말뚝은 예정대로 만들 거야. 품질에 아무 이상 없게, 그놈이 주문한 규격대로. 다만…… 그걸 다 만들었을 때 놈의 목숨도 끝나겠지. 다 계획이 있다니까.”

서세치의 주위로 다른 죄수들이 몰려든다.

어느새 서세치를 제외한 모든 죄수들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손호가 말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돕겠다’라고 한마디만 하라고.”

“…….”

폐광 안이 용광로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서세치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윽고.

“나는…….”

서세치가 결단을 내렸다.

*       *       *

눈보라 몰아치는 설산.

추이는 현재 높은 봉우리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평야를 걷고 있었다.

“별 이상하게 생긴 지형을 다 보겠네. 어이- 예쁜아! 여기는 왜 온 거야?”

견술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높은 봉우리와 낮은 봉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평야 형태의 봉우리는 확실히 이 일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형이었다.

“…….”

추이는 말없이 평야를 가로질렀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기색이었다.

한편, 뒤따라오는 남궁율은 계속 불안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결국 참다못해 추이를 불렀다.

“저기, 추 소협. 신경 쓰이는 점 하나가 있어요.”

“뭐냐?”

추이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견술이 왜 자기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해 주냐고 화를 냈지만 그것은 눈보라 소리에 금방 묻혀 버렸다.

남궁율이 말했다.

“폐광 말이에요. 죄수들에게 그냥 맡겨 놔도 될까요? 혹시 반란이라도 다시 일어나면 어쩌나 해서요.”

그러자 추이 대신 견술이 대답했다.

“얼렐레? 얘, 너 저번에는 뭐 죄수 분들이 안됐네 뭐네 하더니만, 이제 와서는 또 왜 그래?”

“그게 아니라…… 폐광을 나오기 전에 뭔가 낌새가 이상했거든요. 저도 눈치는 꽤 빠르다고요.”

남궁율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견술은 그런 남궁율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던 철부지가 그새 많이 컸네. 뭐, 나도 같은 생각이기는 해.”

“역시 그렇겠죠?”

“당연하지. 저것들끼리 놔두면 분명 작당모의를 할 거야. 한 놈이 물을 흐리면 다른 놈들도 동조하기 마련이지. 아까 보니까 몇몇 놈들 눈이 돌아가 있던데, 아마 이대로 가다간 곧 전원이 다 반란을 일으킬걸?”

“네!? 전원이요? 아니, 그걸 예상하셨으면서 왜 말을 안 해 주셨어요!?”

“그 편이 재밌잖아. 호호호-”

“이게 재미로 넘어갈 일이에요!?”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는 예쁜이의 편이 아니란다. 재밌는 쪽의 편이지. 우후후-”

견술은 웃고 남궁율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추이가 둘의 대화를 잘랐다.

“일어나도 상관없다.”

“네? 뭐가요?”

“반란 말이다.”

“……!”

추이의 말을 들은 남궁율이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견술 역시도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예쁜이도 예상하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 일어나나.”

“뭐야~ 재미없게~ 또 뭔가 꿍꿍이가 있었구만? 죄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조차도 이용해 먹을라고?”

견술과 추이의 대화를 들은 남궁율이 입을 딱 벌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속으로 눈이 들어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아니, 죄수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내버려 두시려는 거예요? 왜요?”

“다 쓸 데가 있으니까.”

추이는 태연한 기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죄수들이 이 차 반란을 일으키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남궁율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질문을 했으나 추이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진중한 표정으로 전방을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견술과 남궁율은 또다시 둘이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장강수로채에 들어가기 전에 뭘 했어요?”

“뭐어? 아저씨이? 얘 좀 봐. 야! 너랑 나랑 몇 살 차이나 난다고 아저씨래!”

“열 살? 아니다. 적어도 열다섯 살은 넘게 차이 날 것 같은데요.”

“어머머! 이 미친년 좀 봐! 해맑은 표정으로 칼을 쑤시네 아주? 너 개작두 맛 좀 볼래 진짜?”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요…….”

“부르지 마! 재수없어! 어휴 그냥! 해 사매…… 아니 채주 사매보다 재수 없는 년은 처음일세, 증말!”

바로 그때.

“쉿!”

추이가 둘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견술과 남궁율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

“……?”

그들은 추이가 살펴보고 있는 것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

이윽고, 견술과 남궁율 역시도 무언가를 찾아냈다.

드넓은 설원에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폭은 약 삼 장. 길이는 측정 불가.

눈이 녹은 자국이 이어지며 만들어 낸 기묘한 도형이 설원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뭐지? 지열이 이렇게 모양을 그리면서 피어오를 수 있나?”

“여기에만 눈이 녹아 있어요. 그리고 새싹들도 돋아나 있네요. 아니, 이 날씨에……?”

견술과 남궁율은 설원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거대한 길을 보며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들의 말대로, 땅에서 피어올라오는 따스한 열기가 눈을 녹여 흙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곳에 피어나고 있는 새싹이나 꽃 등은 하나같이들 다 계절에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치…… 생명력이라는 것이 뱀의 형태를 이루어서 지나간 듯한 느낌이에요…….”

남궁율의 설명이 딱 맞았다.

추이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설산의 정기가 추출된 흔적이다.”

“정기 추출?”

견술이 고개를 갸웃했다.

추이가 드물게도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산 곳곳에서 뽑아낸 정기를 한쪽으로 끌어모은 거야. 정기가 이동하면서 그 부분의 눈이 녹아내리고 지표면 위로 식물들을 자라게 만든 것이다.”

“산의 정기를 뽑아내서 이동시켰다고? 누가? 왜? 어떻게?”

견술의 질문에 남궁율 역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추이의 입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추이는 대답 대신 설원 아래쪽에 보이는 절벽을 향해 턱짓할 뿐이었다.

“……!”

“……!”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본 견술과 남궁율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사사사삭-

절벽 아래의 눈길을 달려가는 몇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푸른 피풍의를 걸쳤고 손과 발에는 붕대를 감았다.

발을 내디딘 곳에는 아무런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얼굴에는 흉측하게 생긴 푸른 야차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청야차!”

남궁율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나락곡의 청야차들이 설원 위를 달려간다.

그들은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동굴 하나를 향하고 있었다.

추이는 그 모습을 보며 짧게 말했다.

“본진으로 귀환하는 중인가 보군.”

그 말을 들은 견술과 남궁율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얼어붙었다.

사도십오주의 한 축, 강호의 팔 대 신비 중 하나인 나락곡.

무림사의 모든 비사(祕史)들을 알고 있다는 천기자(天機者)조차도 알지 못하던 최후의 불가사의.

그런 나락곡 살수들의 근거지를 발견한 것이다.

이런 중대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남궁율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정보의 무게, 가치, 의무, 위험성을 떠나서…… 남궁율은 제일 먼저 든 순수하고도 원초적인 궁금증을 입 밖으로 냈다.

“추 소협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견술 역시도 동감을 표하듯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리고 이내, 추이는 남궁율의 질문에 선뜻 대답해 주었다.

“한때 나락곡에서 살수로 일했었다.”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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