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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103화 (103/110)

103화 나락곡 (2)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이 벌레처럼 발버둥 친다.

딱히 삶을 갈구하기 위한 몸부림도 아니었기에 그것은 더더욱 기괴하게 보였다.

“강시와 싸울 때는 이처럼 천령개(天靈蓋)를 찌르면 된다.”

추이는 두 구의 강시를 내려다보며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죽일 수는 없어도 더 싸우지 못하게는 만들 수 있거든.”

“…….”

“이해했나?”

“…….”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태연한 표정과 느른한 목소리는 오히려 더욱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남궁율과 죄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새삼 추이의 강함과 노련함이 피부로 한껏 와닿고 있었다.

하지만 견술은 그런 추이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는 듯 한껏 상기된 얼굴이었다.

“나는 우리 예쁜이처럼 그렇게 섬세하게 찌르진 못하겠는데? 그 대신 팔다리만 잘라 놓을게! 그러면 되지 뭐.”

개작두가 거칠게 휘둘러진다.

“제까짓 게 안 죽으면 어쩔거야? 팔다리가 없는데!”

견술은 상대의 손목과 발목, 모가지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청야차 하나가 채찍을 자신의 몸 관절에 휘감고는 견술의 개작두를 막아 냈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작두날이 청야차의 몸을 때릴 때마다 도끼가 나무를 패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각! 우드드드득!

견술의 마지막 초식에 맞은 청야차가 일순간 몸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작두날에 맞은 왼쪽 무릎이 반쯤 찢겨 나간 것이다.

…쿵! 버둥버둥버둥!

청야차는 땅바닥에 엎어진 와중에도 두 팔을 놀려 채찍을 휘둘렀다.

견술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우와, 이 자식들 진짜 겁대가리가 없네! 강시라서 그런가? 예쁜아- 나는 하나가 고작일 것 같은데?”

추이가 청야차 둘을 없앴지만 아직 넷이 더 남았다.

그중 견술이 잡아 놓고 있는 청야차가 하나, 그러니 남은 것은 셋이다.

추이는 지금 그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까가가가가각!

매화귀창에 얽힌 칼 네 자루와 창 한 자루에서 불똥이 튄다.

쌍검을 든 청야차가 둘, 기형창을 든 청야차가 하나.

그것들은 삼각의 방진을 짜서 추이를 철저하게 압박해 오고 있었다.

“…….”

추이는 세 청야차들의 사이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보통 삼각형의 사이로 들어오게 되면 끊임없는 연환공격의 대상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기 마련.

……하지만 그것은 방어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추이는 수비를 도외시한 채 창을 내질렀다.

콰직!

추이의 창은 맞은편에 있던 청야차의 가슴팍에 꽂혔다.

청야차의 몸뚱이는 그 힘에 떠밀려 저 뒤로 나가떨어진다.

그동안 두 구의 강시가 각각 양손의 쌍검을 내질렀다.

…퍼퍽! 뿍!

네 개의 칼들 중 두 개가 각각 어깨와 배에 박혔지만 추이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철커덕! 차라라라라라락!

세 개의 마디로 꺾인 매화귀창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퍼퍽!

가장 끝마디의 창날이 뱀처럼 휘어지며 두 청야차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팍삭!

단단하게 얼어붙은 두 머리통이 바위에 부딪쳐 깨진다.

살얼음 형태의 피와 뇌수들이 흰 눈 위로 걸쭉하게 흩뿌려졌다.

하지만 목을 잃은 청야차들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마치 대가리가 떨어져 나간 생선이나 벌레가 계속 펄떡거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뿌드득! …꾸드득!

청야차들은 추이의 몸에 박힌 칼을 더더욱 힘주어 박아 넣었다.

하지만.

“더 꽉 밀어넣어라. 그래야 깊게 박힌다.”

추이는 청야차들의 칼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칼날이 몸속으로 더욱 깊숙이 박히게끔 길을 터 주기까지 했다.

이윽고, 추이는 칼날이 박힌 곳에 힘을 주었다.

우드드드득……

근육이 수축하며 칼날을 단단히 붙잡아 조인다.

청야차들은 황급히 칼을 잡아당겼지만 그것은 이미 추이의 몸에 단단히 박혀 빠지지 않고 있었다.

팩-

그 상태에서 추이는 몸을 한번 세게 비틀어 회전시켰다.

…우드득!

상처가 크게 벌어졌지만 그 대신 두 청야차는 무기를 하나씩 잃어버리게 되었다.

추이는 몸에 칼 두 자루가 박힌 채로 물러났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창을 집어던졌다.

쉐에에에에에에엑!

매화귀창이 허공을 날아 왼쪽에 있던 청야차를 향했다.

시뻘건 창기가 너울거리며 붉은 궤적을 그어 놓는다.

청야차는 쌍검을 교차해서 창을 막으려 했으나, 칼이 하나 모자랐기 때문에 완벽히 방어할 수 없었다.

쩌저저적! …빠캉!

추이가 집어 던진 창은 청야차의 칼을 산산조각 내고 그대로 내리꽂혀 그것의 허리를 끊어 놓았다.

퍼-억!

청야차의 상체와 하체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양쪽의 절단면을 통해서 얼어붙은 뼛조각과 내장 조각들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동시에, 추이는 자신의 몸에 박힌 칼 두 자루를 뽑아냈고 그것들을 다른 청야차의 발목을 향해 집어 던졌다.

두 자루의 칼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갔고 그대로 오른쪽 청야차의 발목을 통과하여 눈밭에 꽂혔다.

썩둑! 썩둑! …쿵!

양쪽 발목을 잘린 청야차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

추이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마지막 청야차를 마주했다.

아까 전에 창에 맞아 나가떨어졌던 개체였다.

쉬익-

긴 장창이 추이의 목을 노리고 쏘아져 온다.

추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

손에 창도 없고 칼도 없다.

심지어 송곳 두 개도 아까 전에 손을 떠났다.

‘이건 완전히 피하기 힘들겠군.’

등 아니면 배. 어쩌면 둘 중 하나는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추이가 어느 쪽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일지 고민하고 있을 바로 그때.

“지금이야! 던져!”

남궁율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려퍼졌다.

동시에 추이와 청야차의 사이로 시커먼 무엇인가가 확 펼쳐졌다.

그것은 서세치를 비롯한 죄수들이 수레에서 가져온 그물이었다.

촤라라라라락!

넓게 펼쳐진 그물이 청야차를 덮쳤다.

청야차가 그물코를 잡아 찢으며 허둥대는 동안, 남궁율이 추이를 향해 자신의 검을 던졌다.

“받아요!”

남궁세가의 보물 어장검.

그것이 다시 한번 추이의 손에 쥐어졌다.

추이는 손을 뻗어 어장감을 낚아챘다.

“삽혈맹세 때가 생각나는군.”

“지, 지금 농담할 때에요!?”

남궁율의 외침에 추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사뿍!

버둥거리던 청야차의 목을 그물째로 잘라 내 버렸다.

[……! ……! ……!]

아무리 강시라고 해도 머리의 존재는 중요한가 보다.

청야차의 몸짓은 아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느려졌다.

“하앗!”

남궁율이 청야차가 떨군 창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내질렀다.

쿡-

청야차는 남궁율이 찌른 창에 맞고는 뒤로 나자빠졌고, 버둥거리기는 했으되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어휴,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저 멀리서 견술이 질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도 방금 막 청야차 하나를 너덜너덜하게나마 반으로 쪼개 놓은 참이다.

“미친 것들. 목이랑 팔다리를 죄 썰어 놨는데도 여태 펄떡대네. 어휴-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

“기름을 뿌리고 태워라. 그 뒤 땅속에 묻어야 한다.”

추이가 짧게 말했다.

이윽고, 죄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버둥거리는 청야차들을 구덩이 속에 던져 놓고 기름을 뿌려 태운다.

화르륵! 화륵! 뿌지지지지지직!

불 속에서 청야차들이 꿈지럭거리는 것이 구덩이 밖에서도 보였다.

절단된 머리가 이빨을 따각따각 부딪치고,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가 손가락 발가락을 이용해 거미처럼 기어다니고, 덩그러니 남은 몸통에서는 뱀 같은 힘줄들이 불끈불끈 요동쳤다.

불 속에서도 한동안 움직이던 그것들은 약 반 각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고 이내 평범한 피륙처럼 타들어갔다.

그제야 죄수들은 구덩이를 흙으로 메꿀 수 있었다.

한편, 남궁율은 추이의 몸에 난 상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떡해요 이 상처들…… 금창약도 다 떨어졌는데…….”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추이의 어깨와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남의 상처를 보고 자신이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추이의 몸 위를 쓸었다.

하얀 옥처럼 고운 살결이 온통 터지고 갈라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근육 섬유들이 찢어져 실타래처럼 나부꼈고 그 속으로 누렇고 퍼런 내장과 혈관들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둬라. 그냥 두면 낫는다.”

“두긴 뭘 둬요! 아프지도 않아요?! 이대로 두면 곪는다구요!”

추이의 덤덤한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남궁율.

바로 그때.

“저기…….”

남궁율의 뒤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바로 서세치였다.

“괜찮으시다면 이것을 좀 쓰시겠습니까?”

서세치가 내민 것은 바로 금창약이었다.

얼마 전, 발이 부르터서 안 되겠다며 이십 패리가를 내고 샀던 약이다.

남궁율은 황급히 말했다.

“주세요! 돈은 제가 두 배로 물어드릴게요! 얼른!”

그녀는 추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가진 돈을 다 쓸 기세였다.

하지만, 서세치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소 뜻밖의 것이었다.

“제, 제가 쏘는 겁니다.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마십쇼.”

“…….”

그러자 추이가 서세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왜 굳이?’라고 쓰여 있다.

서세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말입니다. 저번 전서구로 편지 한 통을 받았거든요. 가족들이 저를 완전히 등졌다는 모양입니다.”

“…….”

“뭐, 상관없습니다. 원래 부모는 없었고, 마누라는 제 돈만 보고 결혼했던 거였으니까. 제가 파촉설산으로 상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옆집 기생오래비 놈이랑 눈이 맞았다더군요. 어쩌면 그 전부터 붙어먹었을 수도 있고요.”

“…….”

“자식들도 다 애미 따라간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가족들 호강시켜 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돈 빼돌렸던 거였는데, 이제 다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그려. 허허허-”

서세치는 금창약을 남궁율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니까 이 약은 천두님 쓰십시오. 어차피 다 공금을 빼돌려 모은 돈으로 산 것들인데 이렇게라도 쓰여서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동안 양민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다 간접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쳤겠지요. 그런 돈이니 이제 와서 새삼…… 응?”

순간, 서세치가 말을 멈췄다.

츠츠츠츠츠츠츠……

추이의 몸에 났던 상처들이 저절로 아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남궁율도 서세치도 깜짝 놀라 입을 반쯤 벌렸다.

고-오오오오오……

추이의 상처에서 시뻘건 혈액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싶더니 이내 붉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럴 때마다 상처가 붙고, 피딱지가 영글며, 멍과 붓기가 빠지고, 혈색이 올라왔다.

이윽고. 추이의 몸은 예전처럼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스윽-

추이는 피부 위에 말라붙은 피딱지들을 훅 불어서 털어낸 뒤 다시 피풍의를 걸쳤다.

그러고는 금창약을 든 채 뻘쭘하게 서 있는 서세치를 향해 말했다.

“필요 없고, 수레나 끌어라.”

“…….”

청야차들을 모두 물리치고 난 뒤에도 추이에게는 변한 점이 딱히 없었다.

여전히 날벌레라도 털어 낸 양, 아주 태연한 표정이었다.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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