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101화 (101/110)

101화 음마투전(飮馬投錢) (2)

“……!”

추이의 말에 죄수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번 출혈 할인 기회를 놓치게 되면 정말로 출혈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비, 비켜!”

서세치가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그는 수레에 실린 장창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대로 가져갔다. 아니, 가져가려 했다.

“에헤이-”

견술이 서세치의 뒷덜미를 붙잡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손님. 돈은 내고 가져가셔야죠.”

“예에? 도, 돈을요? 지금 이 와중에요?”

서세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다른 죄수들의 표정 역시도 검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돈을 쓰지 않고 버티고 있던 독종들 역시도 눈이 흔들렸다.

결국, 죄수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낼게요! 낼 테니까 외상 달아 놔요! 아, 틀림없이 낼 테니까!”

“외상은 안 받아. 일단 먼저 선불로 냈던 놈들 돈에서 깔 테니 나중에 그놈에게 갚든지.”

“저, 저는 저번에 돈 냈던 거 아직 남았죠? 그거에서 까십쇼!”

“에헤이- 이 장검은 그 정도 돈으로는 못 사. 어따- 요 단검 정도는 살 수 있겠군.”

“젠장! 그거라도 줘 빨리!”

“싫어. 안 팔아.”

“뭐!? 왜!?”

“나는 반말하는 사람한테는 물건 안 팔기로 했어.”

“으아아아! 주십쇼! 줘요! 살수들 저기 앞까지 왔잖아! 빨리요! 제발!”

견술은 신바람이 나서 무기 장사를 한다.

그는 물건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것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었다.

“장사꾼들이 장사가 잘될 때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한편, 사도련에서 온 살수들은 황당한 기색이었다.

딱 봐도 내공 한 줌 없는 폐인들이 칼과 창으로 무장한 채 대응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용병들을 고용했나?”

“아니, 몰골을 보니 노예에 가까운 것 같군.”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한다.”

자객들의 눈이 사나워졌다.

그들은 곤귀 구강룡에게 배운 창법과 곤법으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죄수들 역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내공을 폐쇄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한때 흉악한 수적 무리였다.

적어도 무술을 익힌 가닥만은 남아 있는 것이다.

“쪽수는 우리가 훨씬 많다!”

“창을 뻗어서 못 다가오게 해!”

“씨팔! 지금 뒈지나 내일 뒈지나 어차피 똑같어!”

죄수들의 수는 백팔 명, 습격자들의 수는 이십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똘똘 뭉쳐서 창으로만 대항하면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

“…….”

죄수들과 살수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죄수들 사이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다.

‘언젠가는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공손앙. 한때 장강수로채 유채에 몸담고 있었던 백두 계급의 수적.

참고로 그의 형은 맨 처음 파시에서 추이를 만나 죽었던 해채의 백두 공손합이었다.

‘삼칭황천. 형님의 원수…… 네놈만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지.’

공손앙은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다른 죄수들에게 은밀히 눈짓했다.

“준비했던 대로 간다.”

“예, 백두님.”

공손앙은 머리가 좋다.

그는 맨 처음 추이가 수레에 병장기들을 실을 때부터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추이가 수레에 실린 것들을 죄수들에게 하나하나 팔아치울 때부터 언젠가는 병장기를 구매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병장기를 살 수 있게 되었다.

‘미리 언질을 해 놨던 놈들의 수가 서른. 이놈들은 내가 신호만 내리면 곧바로 창칼을 거꾸로 돌릴 놈들이다.’

공손앙은 무기를 손에 넣는 즉시 반란을 일으켜 추이를 역습할 생각이었다.

다만 추이가 워낙 빈틈이 없어서 서른이라는 인원수로도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단전이 부서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던 차에…… 기회가 온 것 같군.’

공손앙은 눈앞에 있는 살수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놈들과 대치하고 있는 진열을 일부러 무너트린다면, 그렇다면 저들은 이쪽 구멍을 통해 곧바로 추이를 죽이러 갈 것이다.

“…….”

공손앙은 옆을 흘끗 돌아보았다.

파들파들파들……

그의 옆에서는 서세치가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공손앙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봐. 염소수염.”

“으, 으응?”

서세치가 고개를 돌린다.

공손앙은 그런 서세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신호를 주면 너는 옆으로 빠져라.”

“뭐, 뭐? 그럼 진열이 무너지잖아?”

“맞아. 그래야 추이 저놈이 살수들에게 뒈질 거 아니냐.”

“에엑!?”

서세치는 화들짝 놀란다.

이윽고, 그는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지, 지금 반란을 일으키자는 거야?”

“그래. 이때를 대비해서 지금껏 상납금을 계속 바쳐 왔다. 병장기를 한 번에 많이 사려고 말이야.”

“세상에. 그럼 그게 먹을 걸 사 먹으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이 병신 새끼야. 내가 진짜 고기 몇 점 처먹으려고 그 비자금들을 다 게워 낸 줄 알아?”

“하, 하지만…….”

서세치는 우물쭈물거린다.

그러고는 들릴 듯 말듯하게 속삭였다.

“그래도 천두님께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좀…….”

“뭐?”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도 다 천두님께서 물자들을 풀어 주신 덕분인데…….”

서세치의 말을 들은 공손앙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하지만 서세치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의 눈에서는 맑은 광기와 신념이 엿보이고 있었다.

“나, 나는 맹세했어. 추이 천두님께서 구운 참게 꼬치를 내게 팔아 주셨을 때, 나는 그분을 저승 끝까지 따르겠다고…….”

“허…… 노예근성이 골수에 쩔어서 뇌까지 잠식했구만. 꺼져 이 미친 새끼야!”

공손앙은 서세치의 궁둥이를 발로 뻥 차서 날려 버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계획을 실행했다.

“전원! 공격 개시!”

동시에, 공손앙과 미리 내통하고 있던 서른 명의 죄수들이 창끝을 뒤로 돌렸다.

진열이 무너지자 살수들 역시도 대번에 반응했다.

“저쪽에 구멍이 생겼다!”

“한꺼번에 쳐라!”

“스승님의 원수를 갚자!”

전세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유리하다가 불리해진 것도 아니고, 기이하게 뒤섞인다.

죄수들과 살수들의 창칼이 별안간 마차를 덮쳤다.

“어어? 어어어!?”

강호 경험이 적은 남궁율은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노련한 강호인인 견술은 그저 실실 웃을 뿐이다.

“언제쯤 터지나 기다렸네. 내가 할까?”

“아니. 내가 하지.”

추이 역시도 짧은 대답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마차 한구석에서 놀고 있던 매화귀창을 간만에 움켜잡았을 뿐이다.

차라라락!

허공에서 살수들의 곤과 창이 날아든다.

추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허공에 대고 한 바퀴 휘저었다.

…퍼퍼퍼펑!

매화귀창이 회전하며 만들어진 소용돌이가 살수들의 곤과 창을 튕겨 냈다.

동시에 추이의 창끝이 습격자들의 미간, 목, 심장, 사타구니를 한 번씩 긋고 지나간다.

차르르르륵! 철커덕!

창대에서 늘어난 창극이 사슬에 딸려 와 원래 위치로 결합되었다.

퍼퍼퍼퍼펑!

자객들의 몸에서 뒤늦은 피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추이의 창은 그들의 미간, 목, 심장, 사타구니를 각각 삼 촌(寸)씩 파고들어 그 안을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악!”

오직 사타구니를 맞은 이들만이 비명을 질렀고 나머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허공으로 몸을 날릴 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이들이 땅에 떨어졌을 때는 이미 죽거나 불구가 된 뒤였던 것이다.

“뭐, 뭐 이런 괴물이!”

“스승님을 이긴 것이 우연이 아니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리는 게냐 이놈!”

자객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었지만 추이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창을 놀렸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기형적인 모양으로 분절된 매화귀창은 중간에 연결된 사슬들에 의해 끝도 없이 늘어난다.

추이가 그것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한 명의 살수가 핏물을 뿜었다.

‘확실히, 창은 곤보다 훨씬 편하군.’

곤은 몽둥이이기 때문에 끝까지 힘을 주어 때려 박아야 한다.

그래야만 상대방에게 충격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반면 창은 날붙이이기 때문에 꼭 끝까지 힘주어 밀어 넣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뾰족한 창날이 세 치만 깊게 들어가도 인간은 죽거나 불구가 되기 때문이다.

…푹! …푹! …푹! …푸욱!

추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물네 명의 살수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심지어 그들을 전원 살해하는 동안 피풍의 자락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였다.

추이의 목소리가 찬바람에 실린다.

“묻어 줘라. 스승의 복수를 위해 왔던 자들이니 들개 밥을 만들 수는 없다.”

동시에, 견술의 시선이 공손앙을 비롯한 반역자들을 향해 옮겨졌다.

“그렇지~ 들개 밥이 될 것들은 따로 있으니까.”

“……!”

공손앙의 표정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공손앙을 필두로 서른 명의 죄수들이 창칼을 들었다.

그들은 독기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추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일류고수들의 합공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추이가 삼류무공조차 잃어버린 죄수들을 버거워할 리 없었다.

…뿍!

추이는 품에 있던 송곳을 들어 맨 앞에 있던 죄수의 목젖을 비틀어 따 버렸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드는 죄수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찬 뒤 그 뒤에 있던 죄수까지도 함께 짓밟았다.

떠-걱!

추이가 꺼내 든 망치가 앞에서 달려오던 죄수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견술이 물었다.

“왜 창을 안 쓰고?”

“피랑 기름이 많이 묻으면 손질이 귀찮다.”

“아, 그래서 아까 살수들 잡을 때도 창날을 다 안 박아 넣었구나? 하여튼 은근 결벽증 있다니까?”

추이의 대답을 들은 견술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개작두는 말이야. 따로 손질이 필요 없어요. 날이 무뎌지면 무뎌지는 대로 두고, 이가 빠지면 그냥 빠지는 대로 둬. 왜인 줄 알어?”

이윽고 피비린내 나는 작두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견술은 그것을 들고 반란을 일으킨 죄수들의 어깨와 등, 모가지를 썩둑썩둑 잘라 내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맞아도 존나 아프거든! 안 썰리면 안 썰리는 대로 걸레짝이 돼요! 이렇게! 어!? 이렇게! 어!? 호호호호호-”

광기 어린 눈으로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 어째 추이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죄수들 역시도 자포자기했다.

“으아아아! 틀렸어! 절대 못 이겨!”

“이렇게 된 이상 여자라도 죽여!”

“저년이라도 길동무로 삼겠어……!”

그들은 추이와 견술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남궁율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궁율 역시 정도십오주인 남궁세가의 기재.

나름대로 등천학관 최고의 후기지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써-걱!

남궁율이 칼을 휘두르자 죄수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갔다.

“역시 동정하지 않기를 잘했어요. 이것이 강호의 본모습이로군요.”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전장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견술이 휘파람을 불었다.

“의외네.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커서 피바람이 조금만 불어와도 팔랑팔랑 떨어져 내릴 줄 알았더니.”

“금지옥엽도 금지옥엽 나름이지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은 그 안에 쇳물로 된 수맥이 흐른답니다.”

남궁율은 당차게 대답하는 동시에 옆을 슬쩍 곁눈질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추이는 이쪽으로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뿌각!

단지 송곳을 들어 올려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공손앙의 목을 따 버렸을 뿐이다.

“끄르륵- 케헥!”

가죽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 한 줄기가 하얀 설원 위로 흩뿌려진다.

이로써 죄수들의 반란은 모두 진압되었다.

추이는 송곳에 묻은 피를 헝겊으로 닦으며 살아남은 죄수들이 벌벌 떨고 있는 앞을 지나갔다.

“뭐 해? 수레 안 끌고.”

“…….”

달라붙은 날벌레라도 털어 낸 양,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창귀무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