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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99화 (99/110)

99화 견마지로(犬馬之勞) (3)

바람에 실려 오는 싸라기눈이 피부를 때린다.

동상으로 빨개진 코끝이 떨어져 나갈 듯 아픈 것을 보니 분명 현실이었다.

“…….”

서세치는 물 위로 숨을 쉬러 나온 잉어처럼 입을 몇 번 뻐끔거렸다.

방금 들은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그래설라무네…… 저희가 그 참게 구이를…… 사 먹어야 한다 이 말씀이십니까? 돈을 주고?”

“꼭 그런 것은 아니야. 돈 말고 다른 것도 받는다.”

추이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전당포나 엿장수 좌판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대답이었다.

죄수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맨발 맨손에 맨몸으로 이 무거운 수레들을 끌고 왔건만, 잘했다고 특식을 주지는 못할망정 먹을 것까지 돈을 주고 사 먹으라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심지어 지하 감옥에 갇혀 쫄쫄 굶고만 있을 때도 이것보다는 처지가 훨씬 좋았다.

거기서는 배고프고 목마르긴 했어도 최소한 강제노역은 안 하지 않았던가.

서세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참게 구이를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 거군요?”

“그렇지. 이제야 대화가 좀 통하는군.”

아니다.

대화는 아까부터 전혀 통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서세치는 그것을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울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머리를 숙일 뿐이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참게 구이를 얼마에 파실 계획이신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추이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일 패리가(貝利價) 정도면 되겠군.”

이내 뚱딴지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

“……?”

“……?”

서세치를 비롯한 모든 죄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패리가라는 화폐 단위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견문이 넓은 서세치마저도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안심이다. 앞에 붙은 숫자가 일이야. 그렇게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서세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린 끝에 다시 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혹시 패리가라는 것이 무슨 단위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견문이 짧고 무식하여 들어 본 적이…… 아휴, 이거 참 송구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방금 만든 단위니까.”

“…….”

서세치는 심호흡을 했다.

만약 자신이 출산을 앞둔 임산부였다면 이 방법으로 산통을 크게 덜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천천히, 후- 하- 후- 하-

‘참자. 참게 먹어야지. 여기서 터지면 말짱 꽝이잖아.’

지금껏 수많은 협상을 진행해 봤지만 이렇게 사람을 열 받게 만드는 놈은 처음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은 법보다 가깝다.

대가리를 숙여야 하는 쪽은 약하고 배고픈 쪽인 것이다.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참자. 참게…….’

서세치는 속으로 참게를 떠올리며 염불을 외웠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물어보았다.

“혹시 그 일 패리가라는 액수가 저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냥의 단위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쯤 될는지요?”

모든 죄수들이 다 같은 의문을 품은 채로 군침만 꼴딱꼴딱 삼키고 있다.

추이는 그 앞에서 참게 구이를 들어 올리고 입김을 후후 불어 뜸을 들였다.

“보자. 일 패리가면…….”

그러고는 짧게 대답했다.

“대충 은자 일백 냥 정도 되겠군.”

“개미친놈이!”

서세치가 발작하듯 외쳤다.

그러고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고작 게딱지 하나에 은자 백 냥이라니.

은자 백 냥이면 커다란 어시장 안에 유통되는 참게를 몽땅 사들이고도 남는 액수였다.

무슨 게딱지 모아서 대궐 하나 지을 일 있는가?

하지만 지금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이 문제가 아니다.

“뭐라고? 개미친놈?”

추이가 급정색을 한다.

그 옆에 있는 견술과 남궁율의 눈빛도 날카롭게 변했다.

“얘 봐라? 죄수 주제에 감히 누구한테 쌍욕을 박아?”

“자기 입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놈이군요. 엄벌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견술의 개작두와 남궁율의 어장검(魚腸劍)이 시퍼런 예기를 흩뿌린다.

‘히익!?’

서세치는 황급히 대가리를 흙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 잽싸게 주먹을 들어 올려 바닥을 퍽퍽 치기 시작했다.

“개미친놈! 개미 친 놈! 개미를 친 놈! 개미를 주먹으로 친 놈! 그 개미 친 놈이 바로 접니다! 아, 아따 천두 나으리께서도 참 어찌 들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어휴! 왜 이렇게 개미가 많아 이거!?”

“한겨울에 웬 개미 타령이니?”

“그러게 말입니다. 개미들은 한겨울이면 동면을 하는데 보통. 근데 이렇게 막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있네요. 하하 참.”

“그래? 그럼 계속해라.”

“예?”

“계속 잡으라고. 개미.”

“…….”

견술이 이쪽을 계속해서 빤히 들여다본다.

그래서 서세치는 주먹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바닥을 두들겨야 했다.

그의 표정이 완전히 울상으로 변했을 때쯤, 추이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게딱지 가격에 불만이 있다면 말해 봐라.”

그 말에 죄수들이 눈치를 보며 서세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젠장, 또 나냐.’

졸지에 죄수들의 대장 격이 되었다.

평소였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서세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이를 꽉 악문 채 읍소했다.

“예. 솔직히 그 콩알만 한 참게 한 마리가 은자 일백 냥씩이나 한다는 것은…… 무지하고 편협한 저희들의 정서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살짝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 않은지 합니다.”

“은자 일백 냥이 아니라 일 패리가다.”

“아 예…… 그렇군요. 아무튼요. 게딱지 하나를 일 패리가씩이나 받으시는 것은 조금 뭐랄까…… 올바른 시장 경제 질서의 확립을 방해하는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살짝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달까요. 예, 뭐, 그렇게 아뢰옵고 싶기는 한 심경입니다.”

“그거야 파는 사람 마음이지. 모름지기 시장이라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형성되는 법. 그 두 가지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 식으로 가격을 과하게 책정하시면 수요가 없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요.”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요가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니까.”

“추이 천두님. 여기 발가벗은 죄인들을 좀 보십시오. 저희에게 지금 은자 일백 냥이라는 거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은자 일백 냥이 아니라 일 패리가라니까.”

“아무튼! ……요!”

서세치는 움찔했다.

방금 전에는 자기가 말해 놓고도 목소리가 좀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이는 그 점을 관대하게 넘어가 주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생각의 관점을 제시해 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돈이 없기는 왜 없나?”

“……?”

“너희들 있잖아. 돈.”

어리둥절한 표정의 죄수들 앞으로 추이가 참게 구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전장의 차명금고에 숨겨 놓은 금원보, 사촌 육촌 팔촌 당숙의 명의로 구입한 저택과 토지들, 마늘밭 깊숙한 곳에 파묻어 놓은 보석들까지……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대화를 길게 늘이나?”

말인즉슨, 지금껏 장강수로채의 간부로 있으면서 횡령한 돈들을 죄다 토해 내라는 뜻이다.

추이의 의도를 파악한 죄수들이 분노로 인해 몸을 푸르르 떨기 시작했다.

서세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아까부터 개좆빠는 소리를…….”

“뭐라고?”

“헉!?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게 족 빠는’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게는 족이, 다리 족이, 다리가 맛있는 법이지요. 게 다리를 쪽 빨아먹으면 그것이 참 별미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아따 천두 나으리께서도 참 어찌 들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어허허허허-”

“됐고. 그래서 살 거냐, 말 거냐?”

추이는 추궁하기조차 귀찮다는 듯 되물었다.

“…….”

“…….”

“…….”

죄수들 사이에서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결국 서세치가 다시 한번 대표 격으로 말했다.

“천두님. 저는 정말 결백합니다. 이 청백리 서세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는지라 그 참게를 사 먹을 재산도 따로 형성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 사실입니다!”

“그렇군. 나는 딱히 강매할 뜻은 없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찾도록.”

“제 생각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천두님을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은걸요?”

“지금의 네 생각을 존중한다. 그리고 앞으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네 생각까지도 존중해 주지.”

새침한 표정의 서세치를 향해 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짜-아아아악!

별안간 허리춤에 감아두었던 채찍을 들어 돌아서던 서세치의 등짝을 냅다 후려갈겼다.

“으아악!?”

서세치는 시뻘겋게 변한 등짝을 만지며 펄쩍 뛰어올랐다.

팔이 짧아서 등을 다 어루만지지도 못하는 그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치사하게 이러시는 것이 어딨습니까!? 강매 안 하신다면서요! 안 산다고 해서 채찍을 때리시는 건 진짜 아니죠! 상도의 위반 아닙니까 이거!?”

할 말은 한다, 서세치! 장하다, 서세치!

주변 죄수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받으며 서세치는 목숨을 걸고 따졌다.

하지만 추이의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안 산다고 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럼요!?”

그러자 추이는 바닥을 향해 눈짓한다.

“……?”

고개를 돌린 서세치의 눈에 들어온 것은.

“…….”

자신과 수레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무거운 쇠사슬이었다.

“휴식 시간 끝났어. 이제 다시 끌어라.”

추이의 명령이 재차 내려졌다.

“…….”

“…….”

“…….”

죄수들은 귀를 의심하며 멍하니 서 있었다.

설마 이 모양 이 꼬라지의 자신들에게 또 노역을 시키겠다고?

하지만.

“끌라고.”

추이의 채찍은 일말의 가차도 없이 휘둘러졌다.

짜-악! 짜아악! 쩍!

멍하니 서 있던 죄수들 몇 명이 뒤이어지는 채찍 세례를 맞고 비명을 지르자, 그들은 비로소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끼기긱…… 끼기기긱…… 드르륵- 드르륵-

육중한 수레들이 또다시 오르막길 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길고 험난한 노역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반 시진 뒤, 서세치의 울먹임 섞인 외침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천두님! 아까 참게 구이 얼마랬죠!?”

그러자 휘장 너머에서 추이의 대답이 들려온다.

“십 패리가.”

죄수들은 생각했다.

수레가 산길을 올라가는 속도보다 물가가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고.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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