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98화 (98/110)

98화 견마지로(犬馬之勞) (2)

백 하고도 여덟 명이나 되는 죄수들이 개와 말이 되어서 수레를 끈다.

이 진귀한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거리는 언제나 북적북적거렸다.

한편, 견술과 남궁율은 죄수들이 끄는 수레 위에 앉아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와, 소문이 그새 퍼졌나 보네. 사람들 모여든 것 좀 봐.”

“추 소협이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을 개심시켜서 힘없고 굶주린 이들을 구원했다는 소문 때문이죠. 오죽했으면 새로운 별호가 ‘급시우(及時雨)’겠어요.”

추이의 행보는 소문에 소문을 거치며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포장되어 있었다.

배곯던 빈민들을 보다 못한 의협(義俠) 추이가 장강수로채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폭정을 일삼던 인백정을 때려죽이고 그곳에 쌓인 양곡들을 모두 불출했다는 것이 소문의 주 골자였다.

그래서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추이의 별호를 삼칭황천에서 급시우, ‘가뭄에 때맞추어 내리는 비’라고 고쳐 불렀다.

……하지만.

‘급시우인지 급시발인지 진짜 개 같아서 원.’

서세치를 비롯, 수레의 앞에서 죽어라고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있는 개와 말들의 입장에서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소리였다.

죄수들은 추이의 채찍을 맞아 가며 죽어라고 수레를 끌었다.

사슬을 잡아당기는 손가죽이 다 찢어져 피가 흘렀고 황무지를 밟는 맨발 가죽은 죄다 터지고 부르텄다.

하지만.

“점점 느릿해지는구나. 더 빨리 끌어라.”

추이의 채찍질은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다.

굵은 채찍이 등짝을 때릴 때마다 죄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수레를 끌었다.

……그러나 고역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내 딸을 겁간하고도 여태 살아 있었느냐!?”

“쌀을 뺏었으면 곱게 뺏어서 갈 일이지 왜 집에 불까지 질렀느냐! 우리 어머니께서는 다리가 편찮으셔서 도망도 못 가고 돌아가셨다!”

“말을 몰아서 우리 애를 치어 죽이고도 재밌다며 낄낄 웃어 댔었지? 이 악귀 같은 새끼들아! 뒈져 버렷-!”

지금껏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백성들이 모여들어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

“…….”

“…….”

죄수들은 지금껏 행했던 악행들을 떠올리며 후회했으나 이미 사죄할 방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휘익- 퍽! 퍼퍽! 빠각!

자갈들이 날아와 죄수들의 이마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돌에 맞아 바닥에 넘어지면 어김없이 추이의 채찍이 날아들었다.

“꾀부리지 말고 끌어라.”

추이가 휘두르는 채찍은 성인 남자의 손목만큼이나 굵다.

저것에 한 번 맞느니 차라리 자갈 열 개를 맞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웠다.

죄수들은 지금껏 자신들이 괴롭혀 온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둘러 수레를 끌었다.

지금까지는 백성들이 도적들의 눈을 피해 도망쳤다면, 이제는 도적들이 백성들의 눈을 피해 도망칠 차례였다.

“…….”

그 모습을 보며 남궁율은 생각에 잠겼다.

옆에 있던 견술이 또 슬쩍 그녀의 속을 긁었다.

“아니, 공명정대한 정파의 협객이 왜 가만히 있어? 저러는 꼴을 그냥 두고 볼 거야?”

“수적들에게 채찍을 때리는 거요? 그게 뭐 잘못됐나요?”

“잘못됐지. 사적 제재잖아. 법에 따라 심판해야지 저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계약서도 막 강제로 쓰게 하고 말이야. 응?”

“흠…….”

견술의 말에 남궁율은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정말로 그 목적이 죄인들을 벌주려는 것에만 있다면 말렸을지도 몰라요.”

“뭐? 그럼 아니라는 거야?”

“제 생각에는 그래요. 추 소협의 행보는 어쩌면 대단히 정치적인 목적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치적? 추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니까. 그동안의 모든 업보와 죄의 표상(表象)을 이 죄수들에게 몰아주었으니, 남은 장강수로채는 의인들만 남은 집단인 것으로 생각되게끔 하는…… 어찌 보면 채주가 된 적향 님을 위한 수인 것이죠.”

“…….”

남궁율의 말에 견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추이는 방을 붙인 뒤 그 방의 주인공들인 이 백팔 명의 죄수들을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만 끌고 다니고 있었다.

만약 남궁율이 추측한 것이 맞다면, 추이는 적향에게 또 다른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고 가는 셈이다.

도덕성이라는 커다란 대의명분을 말이다.

‘그렇다면 추 소협은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심계도 무척 깊다는 말이 되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잠룡(潛龍)이 나타난 거지?’

남궁율은 언젠가 그녀의 할아버지인 남궁천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싸우는 방식은 잡배(雜輩). 창술은 삼류(三流). 무공은 절정(絕頂). 경공은 초절정(超絕頂). 심계는 화경(化境). 도무지 알 수 없는 친구더구나.’

동시에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 앞에 있는 추이는 자신이 지금껏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       *       *

어느덧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살얼음들이 부딪치며 출렁거리는 하류(下流).

여기서부터는 동쪽으로 흐르는 장강의 지류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는 인적도 거의 없는 황야나 산길들이 계속된다.

가파른 오르막길 앞에서, 추이는 죄수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크하- 죽겠다.”

“나는 더 이상 못 움직여. 때려죽여도 못 움직여.”

“지랄. 채찍 한 대 맞으면 벌떡 일어나서 네 발로 달려갈 새끼가.”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

죄수들은 찢어진 손가죽과 터져나간 발가죽을 어루만지며 울상 짓고 있었다.

동상에 걸렸느니, 관절이 쑤신다느니 하는 곡소리들이 텅 빈 황무지를 꽉꽉 채워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죄수들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 가지로 귀결되어 가고 있었다.

꼬르르륵……

지독한 배고픔과 목마름.

죄수들은 깨달았다.

휴식 같은 것은 없다.

몸을 움직일 때는 수레의 무게와 싸워야 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는 기갈과 싸워야 했다.

이틀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하고 수레를 끌었던 죄수들은 정말로 죽어 가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받아서 어떻게든 목을 축였다고 해도, 허기만큼은 어떻게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죄수들 몇몇이 추이의 마차를 향해 움직였다.

그중에는 서세치도 끼어 있었다.

“저…… 천두 나으리.”

서세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윽고, 마차의 휘장 안에서 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추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죄수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다.

서세치가 대표 격으로 말했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실례니까 하지 마라.”

“…….”

운을 잘못 띄웠다.

서세치는 추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천두님께서 식사를 언제 하실지, 혹 너무 오래 굶고 계시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 여쭈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 하고요!”

추이의 식사를 걱정하는 듯 말했으나 기실은 자기들 먹을 밥을 달라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휘장 속에서는 뜬금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필요 없다.”

필요가 없다니? 장강수로채를 떠난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왜 밥이 필요 없단 말인가?

서세치는 고개를 더더욱 조아리며 말했다.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지요. 천두님의 몸이 상하실까 그것이 저는 두렵습니다. 부디 끼니를 거르지 않으셨으면…….”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별안간 마차의 휘장이 뒤로 확 걷혔기 때문이다.

마차 안에는 추이와 견술, 남궁율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말린 과일과 육포, 떡, 물이 든 호로병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

서세치를 비롯한 죄수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 앞에서 추이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미 많이 먹었다.”

서세치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욕이 목젖을 걷어차고 입술을 찢어발기려 든다.

서세치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러 삼켰다.

“그, 그, 그거 참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외람되오나…… 저희들 몫은 없는지 감히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서세치의 용감한 질문에 다른 죄수들 역시도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추이의 대답은 이번에도 상당히 의외였다.

“있다.”

“……!”

“…….”

“……?”

하지만 그 뒤로 딱히 별다른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침묵 후, 추이가 말을 이었다.

“있는데 뭐 어쩌라고?”

그러자 서세치가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잇 싯팔!’

있으면 줘야지 왜 안 준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을 곧이곧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바로 살해당할 것이다.

서세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목소리를 나긋나긋하게 눌렀다.

“추, 추 천두님. 그러면 혹시 저희들이 언제쯤이면 그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들 몫이라고 하셨던 그 식량을요.”

“뭐야. 배고프냐?”

“…….”

안면근육 전반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입술이 자꾸만 철새의 날개처럼 푸드득 푸득 날갯짓을 하려 해서 이대로 가다가는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서세치는 이번에도 꾹 눌러 참았다.

간수들의 모진 고문과 학대에도 불구하고 토해 내지 않았던 비자금과 꼬불친 재물들.

그것들을 머릿속에 생각하며, 그는 참고 또 참았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암. 그 돈들을 써 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는 없지.’

서세치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럼요, 천두님. 저희도 사람인데 이만큼 수레를 끌고 왔으면 당연히 배가 고픈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래. 너희도 사람이긴 사람이었지. 수레를 잘 끌기에 정말로 개돼지…… 아니 견마인 줄 알았다.”

서세치를 비롯한 죄수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채찍 앞에서는 저절로 분노 조절이 잘될 수밖에 없다.

이윽고, 추이가 무언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게.

작은 화로 위에 올려 빨갛게 익힌 참게였다.

“…….”

“…….”

“…….”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참게 구이 앞에서 죄수들은 개처럼 침을 흘렸다.

사천의 명물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참게 구이 아닌가.

수확이 끝난 논두렁에 숭숭 뚫려 있는 구멍.

그 앞에 대고 갈대로 만든 낚싯대를 흔들면 꼭 한 마리씩 걸려 나오던 것이 바로 이 겨울 참게이다.

그것들을 놋쇠 주전자 속에 바글바글 잡아넣었다가 볏짚으로 피운 모닥불에 한 마리씩 던져 넣고 빨갛게 익어 가는 게를 호호 불어 가며 까먹던 추억.

머릿속에는 새벽녘마다 참게 장수들이 외치던 음성이 절로 떠오른다.

-댁(宅)들에 동난지이 사오.

-저 장사야, 네 파는 물건 무엇이라 외느냐, 사자.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 전행후행(前行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大)아리 이족(二足) 청장(淸醬)에 아스슥 하는 동난지이 사오.

-장사야, 하 거북하게 외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

솔솔 풍겨 오는 고소한 냄새에 죄수들의 눈이 점점 풀려 간다.

…꿀꺽!

꼬치에 꿰여 있는 참게는 너무나도 크고 빨갰다.

저 튼실한 집게발 속에 살이 꽉 차 있다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겠다.

서세치는 저도 모르고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어, 어서! 어서 참게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서 저 게를 껍질째 입에 욱여 처넣고 싶다.

하지만 게를 잡고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추이였다.

함부로 덤벼들었다가는 부서지는 것이 게딱지가 아니라 자신의 골통이 될 수도 있기에 그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질질 흘러나오는 침을 간간이 꿀떡꿀떡 삼키고 있을 뿐.

그때, 추이가 서세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격언(格言)은 마음의 양식이다. 그 격언들 중 하나를 들어 볼 텐가?”

“저는 마음의 양식보다는 육체의 양식을 조금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귀로 말고, 여기 이 손으로 들어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요.”

“육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지. 기회가 있을 때 들어라. 나의 격언은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쉽게 들을 수 있는 게가 아니라 쉽게 들 수 없는 게로군요. 알겠습니다! 뜯겠습, 아니 듣겠습니다! 게이든 격언이든 뭐든! 제발 빨리만!”

어느새 모든 죄수들이 서세치와 같은 표정, 같은 눈빛을 한 채 추이를 바라본다.

심지어 뒤에 있던 견술과 남궁율 역시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이목들이 집중된 상황 속에서, 추이는 격언을 말했다.

“음마투전(飮馬投錢).”

“……?”

죄수들 중에 그 말을 알아듣는 이는 서세치 정도밖에 없었다.

죄수들의 채근을 받은 서세치가 더듬더듬 해석을 내놓았다.

“음마투전…… 마실 음(飮), 말 마(馬), 던질 투(投), 돈 전(錢)…… 옛날 선비들은 말에게 강물을 마시게 한 뒤에도 강물 속에 돈을 던져서 빚을 갚았다는 뜻으로…… 직역하자면…….”

이윽고, 서세치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창귀무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