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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90화 (90/110)

90화 장강혈사(長江血事) (6)

추이의 창이 날아든다.

그것은 일직선으로 쏘아지던 끝에 갑작스럽게 궤도를 바꾸어 인백정의 얼굴을 노렸다.

평소대로였다면 쉽게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백정은 지금 사지가 말을 듣지 않고 있는 상태인지라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결국.

…뿌드드득!

고개를 옆으로 젖힌 인백정의 왼쪽 안면이 뜯겨 나갔다.

퍼-엉!

살가죽이 몽땅 찢어지며 머리카락, 귀, 볼의 살점, 코의 절반, 가장 왼쪽의 어금니 네 개, 두개골의 겉표면 일부가 긁혀 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인백정은 손을 들어 상처를 감싸려 했으나.

꽈기기기긱!

이번에도 팔의 관절들은 머리의 명령을 거부한 채 제멋대로 꺾이고 있었다.

“으극! 이, 이럴 수는 없어! 왜! 왜 이 노예 새끼들이……!?”

이쯤 되면 인백정도 슬슬 상황의 원인을 인지할 때가 되었다.

창귀(倀鬼).

지금 인백정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것들은 지금껏 그가 흡수해 왔던 창귀들이었다.

추이가 창을 회수하며 말했다.

“너의 창귀칭은 불완전하다.”

“……?”

“창귀에게서 뽑아내는 내력의 양은 폭발적이나, 그만큼 창귀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지.”

“……!”

그 말대로다.

인백정이 익힌 창귀칭은 창귀 하나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내력이 많다.

……하지만.

창귀들을 가차 없이 쥐어짜 더더욱 많은 힘을 내게 만듦에도 불구하고 홍공이 이때의 창귀칭을 실패작으로 분류한 이유는 명확했다.

창귀칭을 익힌 자의 정신력이 약해졌을 때 창귀들이 몸의 지배권을 일부 획득할 수 있다는 위험.

단지 그뿐이었다.

노예의 수가 아무리 많고, 그들의 고혈을 철저히 쥐어짜 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도,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버리면 결국에는 손해다.

노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진 곳은 쑥대밭이 되고, 진압하는 데 쓰이는 힘이 낭비되며, 그로 인하여 손실된 노예들의 노동력은 당연하고, 그것을 복구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창귀칭 역시도 마찬가지다.

홍공은 인백정에게 창귀칭을 전수할 당시만 해도 그것을 완성 단계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백정을 포함한 많은 실험체들이 결국 창귀에게 잡아먹혀서 폭주하는 것을 본 뒤로는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무의식에 따라 폭주하는 것이야 부작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창귀에게 역으로 잡아먹혀서 조종당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추이가 익힌 창귀칭은 여러모로 인백정의 창귀칭에 비해 약하다.

창귀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내력의 수율이 적기 때문에 같은 머릿수의 창귀를 흡수하였을 경우 인백정 쪽의 훨씬 더 내력의 증가폭이 큰 것이다.

하지만, 추이에게는 절대적인 이점이 있었다.

“‘불완전하다’라는 개념이 있다면 ‘완전하다’라는 개념도 있겠지?”

“……?”

“그게 바로 나의 경우야.”

“……!”

안정성.

추이가 한번 흡수한 창귀는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다.

비록 뽑아낼 수 있는 내력의 양은 떨어지나, 추이의 몸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든 철저히 복종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인백정의 노예는 힘이 좋으나 언제든 주인의 등에 칼을 꽂을 위험이 있는 존재들이고, 추이의 노예는 힘이 약하나 주인의 상태가 어떻든 충심으로 모시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쿠-오오오오오오!

추이가 기세를 일으켰다.

밤하늘에 떠 있던 붉은 별 두 개가 섬뜩한 빛을 뿌린다.

그중 원래 있던 별이 아닌, 나중에 나타난 신성이 무서운 기세로 빛의 크기를 불려 나간다.

기존에 있던 별을 삼키려 드는 것이다.

“…! ……! ……!”

인백정은 추이를 피해 몸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잘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곳곳에 난 잔상처들을 통해서 피분수가 계속 뿜어져 나올 뿐이다.

그제야 인백정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킥킥킥킥킥킥킥……]

지금껏 잡아먹은 창귀들.

그것들이 피부와 피부 사이에 벌어진 상처를 통해 기어 나와 자신의 팔다리를 휘감고 있었다.

마치 중앙에서 집권하고 있는 군주가 먼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에 애를 먹듯, 그렇게 창귀들은 인백정의 의식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손가락 끝, 발가락 끝의 부위들부터 차례차례 점거하고 있었다.

“끄으으으으으…….”

인백정은 팔다리의 통제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가 한번 힘을 줄 때마다 상처에서 빠져나오던 혈액들이 썰물처럼 들어갔다가 도로 눈치를 보며 흘러나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

인백정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 상처에서 유독 검붉은 핏물 한 줄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것은 꿀처럼 끈적하게 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다.

[이놈 가정맹아! 네가 그러고도 정녕 살기를 바랐더냐!?]

그것은 바로 자백정 서우학이었다.

동시에, 인백정의 왼쪽 오금에 난 상처를 비집고 나오는 것이 있었다.

[네 반드시 네놈을 황천행 길동무로 삼으리라!]

축백정 우철우가 인백정의 하체를 단단히 옥죄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이 새끼들…….”

인백정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불러냈던 창귀들을 억지로 단전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좋다! 그렇다면 네놈들을 안 쓰면 그만이야!”

인백정은 창귀칭을 거두었다.

혈맥 곳곳에 흐르고 있던 내력들을 거두어들이자 창귀들은 썰물처럼 끌려가 단전의 감옥에 갇힌다.

그제야 인백정은 비로소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바로 그 순간.

“커헉!?”

인백정은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인백정에게 추이는 창을 한번 흔들어 보였다.

“네 사제의 독. 효과가 좋더군.”

“……!”

추이는 인백정과의 결전에 임하기 전, 미리 창에다가 사백정의 묘독을 발라 놓았던 것이다.

인백정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창귀칭의 내력을 끌어내어 몸속에 퍼진 맹독을 억누르자니 창귀들의 반란이 두렵다.

그렇다고 창귀들을 쓰지 않자니 평범한 심법과 내력으로는 독기를 억누를 길이 없다.

인백정은 외통수에 걸려 버린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추이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창귀를 안 쓰면 독을 누르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뭐 하나?”

“…….”

인백정은 식은땀을 흘렸다.

추이는 지금 창귀를 써서 당장 급한 불을 끄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그 말대로 창귀를 꺼내 썼다가는 또다시 몸의 통제권을 잃어버릴 것이다.

“크윽……!”

결국 인백정은 창귀를 다시 이끌어 낼 수밖에 없었다.

“옳지. 그래야지.”

추이가 창을 드는 순간, 인백정의 목에서 시뻘건 팔이 돋아났다.

[이놈! 배신자야!]

[너 같은 놈은 죽는 편이 낫다!]

자백정 서우학의 팔과 축백정 우철우의 팔이 인백정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숨이 막히자 눈에 핏발이 곤두선다.

실핏줄이 터진 눈알이 붉게 물들며 혈루(血淚)가 절로 흘러내렸다.

“크헉- 컥…… 카학!”

인백정은 목을 움켜쥔 채 비틀거린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적향과 견술에게는 인백정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추이가 인백정의 앞으로 다가왔다.

“홍공. 어딨나.”

그 말에 인백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피가 섞인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웃었다.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동시에, 인백정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목을 긁고 있던 두 손을 떼고는 만곡도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흡수했던 모든 창귀들을 죄다 꺼내 들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수없이 많은 창귀들이 목을 조르고 팔다리를 비틀어 꺾는 와중에도 인백정은 만곡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조심해! 최후의 발악이다!”

적향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큭큭큭큭! 죽어도 혼자는 못 죽지. 최소한 너 정도는 데려가련다!”

인백정의 만곡도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어둠을 가르는 붉은 벼락처럼 추이를 향해 날아갔다.

“…….”

추이 역시도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철커덕!

하나의 장창으로 조립된 매화귀창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붉게 타오르는 칼과 창이 허공에서 아주 잠시 마주했다.

그러고는 이내 서로를 지나쳐, 각자의 궤도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정반대의 길. 정반대의 목표.

인백정의 만곡도는 원을 그리며 회전했고 그대로 추이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추이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만곡도는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추이의 가슴팍과 옆구리를 베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혔다.

만약, 만약 인백정이 자백정과 축백정의 합공에 의해 한쪽 눈을 잃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가 최후의 순간 집어 던진 칼은 추이의 머리에 맞았을까?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한 일이다.

키리리리릭-

반면 추이의 창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인백정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

…퍼펑!

인백정은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했다.

창에 꿰인 채 뒤로 날아가 소나무에 깊이 못박히는 것이 그의 최후였다.

적향이 도끼를 든 채 인백정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때.

콰-직!

추이가 딛고 있던 지면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인백정이 마지막에 집어 던진 만곡도가 지면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깊은 균열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인백정은 마지막까지 추이에 대한 악의를 불태우며 간 것이다.

콰르르르릉!

요란한 굉음과 함께, 절벽 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어이! 이봐! 예쁜이!”

견술이 재빨리 달려와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었다.

추이는 엄청난 양의 바위들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밑에는 사납게 흐르는 장강의 본류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       *       *

콰콰콰콰콰콰……

추이는 물살에 휩쓸려 갔다.

흐린 시야 너머로 무언가가 보인다.

먼저 떨어졌던 묘백정, 오백정, 미백정의 시체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갇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저 본류의 배꼽 속에 갇힌다면 죽어서도 황천을 건널 수 없다.

살점이 불어 터져 백골만 남을 때까지 그저 계속해서, 영원히 이 소용돌이 감옥 속을 떠돌아야 하는 것이다.

‘…….’

추이는 천만다행으로 바위에 부딪치지 않은 채 물살에만 휩쓸렸다.

손을 뻗어 암초를 붙잡으려 했지만, 마지막에 인백정에게 먹은 칼침이 너무 깊어서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손은 미끄러졌고, 추이는 물살의 기세 그대로 암초에 머리를 부딪쳤다.

…퍽!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여기서 의식을 놓으면 정말 물귀신이 될 것이다.

추이는 발버둥 쳤다.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고 발을 내지른 결과, 그는 소용돌이의 가장 외곽에서 겨우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우 소용돌이를 벗어났을 뿐이다.

거센 물살과 얼음장처럼 찬 수온,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단단한 바위와 뾰족한 유목들은 언제든 물에 빠진 것들을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힘을 소진한 추이는 그렇게 물살에 떠밀려 갔다.

하찮은 낙엽 쪼가리처럼, 이리 부딪치고 저리 접히며.

‘…….’

추이는 생각했다.

인백정에게 입은 검상은 가슴팍에서 옆구리까지를 길게 찢어 놓았고 이로 인한 대량의 출혈은 시시각각 추이의 목을 옥죄어 올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 얼음장 같은 물속에서 나가야 한다.

추이는 주변에 튀어나와 있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유목, 암초, 넝쿨, 뭐라도 좋다.

이 죽어 가는 몸뚱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서일까?

주변에 뭔가 잡을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추이는 암초에 세 번 더 머리를 부딪쳤고 뾰족한 나무 파편에 발바닥과 손바닥을 관통당했다.

‘으음. 이건 조금 곤란한데.’

추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물살이 느려지는 하류까지 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체온이 버텨 줄지가 미지수였다.

이미 추이의 육신은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는 상태.

창귀를 운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풍덩-

옆에서 작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추이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콰긱!

추이의 목에 무언가가 휘감겼다.

그것은 질긴 닥나무 밧줄이었다.

‘컥!?’

별안간 목을 졸라 오는 밧줄 올가미에 추이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목에 걸린 밧줄 올가미를 당기는 손이 보였다.

“뿌그르르르륵!”

입에서 대량의 물거품을 토해 내면서도 계속해서 밧줄을 당기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추이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촤-악!

이윽고. 그는 물속에서 빠져나와 추이를 자갈 가득한 강변으로 건져 놓았다.

그리고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추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검화 남궁율.

그녀가 이곳까지 추이를 쫓아온 것이다.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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