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여장 (1)
사천성 외곽 태애읍.
네 개의 강이 겹치는 구역에 있는 작은 고을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새벽 서리가 정오의 햇살에 녹아내릴 무렵.
삼패 기녀들이 모여 있는 모정루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가 갈 거야?”
“나는 안 가.”
“어휴, 거기는 한번 갔다 오면 무조건 밑이 다 부어.”
“그러면 최소 두 달은 요양해야 될 테지. 그동안 손님도 못 받구…….”
“나는 저번 달에 갔다 왔으니까 이번에는 안 가도 되지?”
“다들 안 간다고만 하면 어떡해.”
“그럼 니가 가든가!”
기녀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서로 옥신각신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아침에 온 서신 한 통 때문이었다.
<0월 0일, 기녀 이십 명 모집>
<조건: 외모가 아름답거나 음주가무에 능한 자>
<우대 조건: 도박을 잘하는 자>
-장강수로채 술채(戌砦)-
수적들의 산채에서 연회가 벌어진다.
감히 수적들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으니, 작은 모정루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갈 기녀들을 선발해야 했다.
다만, 장강수로채가 있는 곳은 너무 멀어서 가고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거기에 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데다가, 무엇보다 수적들의 진상이 심했기에 이 업무를 반기는 기녀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언니가 가시우.”
“얘! 나는 지지난 달에 갔어!”
“저번에 애향이가 거기 갔다가 술병 걸려서 아직도 골골대잖니.”
“어휴, 거긴 변태 새끼들만 득시글대서 싫은데…….”
“변태기만 하면 다행이게? 술만 취하면 칼 뽑아 들고 죽이네 살리네~ 어휴,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지.”
“그래도 거기는 부하들만 문제지, 백두급 이상 되는 사람들은 참 괜찮은데. 특히나 천두님이…….”
아무튼, 가기 싫은 것은 가기 싫은 것이다.
까딱하면 술 취한 수적 왈패의 칼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자리이니 당연한 일.
그래도 어찌어찌 갈 사람들이 추려지기는 했다.
“어쩌지…… 몇 명 모자라는데.”
“아이 씨! 이기적인 년들아! 지원 좀 해라!”
“이러면 거기 갔던 빈도수 낮은 사람부터 차출할 수밖에 없어 진짜!”
“호호호- 그딴 식으로 차출할 거면 차라리 아랫도리 튼튼한 순으로 하는 게 어때?”
장강수로채에 가기로 한 기녀들이 끝까지 버티는 기녀들을 향해 힐난했다.
바로 그때.
“언니들!”
저 앞에서 한 기녀가 뛰어왔다.
“밖에 하루벌이 애들이 왔는데, 자기들이 장강수로채에 가면 안 되겠냐고 하네요!”
“하루벌이 애들? 어디에서 온 애들이래?”
“다른 성에서 넘어온 것 같아요. 여비가 부족해서 장강수로채에 가서 벌려는 게 아닐까 싶은데.”
“흐음…….”
제일 나이가 많은 기녀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종종 있다.
한 기루에 쭉 있지 않고 여러 기루를 떠돌아다니면서 그날그날 일당을 받아 가는 기녀들이.
“몇 명이나 돼?”
“두 명이던걸요. 지금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걔네 얼굴은 어때?”
“그, 그게…….”
“왜? 못 봐줄 정도야? 하긴, 얼마나 박색이면 하루벌이를 다니겠어.”
“그게 아니고. 그 반대예요.”
“반대?”
“네. 엄청 예쁘고 어려요. 둘 다.”
“웃기시네. 그런 애들이 왜 하루벌이를 뛰겠어? 어디 큰 기루의 간판으로 눌러앉아 있겠지.”
“글쎄요? 아무튼 진짜예요!”
“나도 글쎄네. 일단 데리고 와 보든가 그럼.”
대장 격인 기녀가 말했다.
이윽고, 모정루를 찾아온 하루벌이 기녀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대장 기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명은 이제 막 방년(芳年)에 이른 듯한 외모였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과년(瓜年)해 보일락 말락 한 소녀다.
그리고 아까 받은 보고는 사실이었다.
아니, 오히려 사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보고였다.
미미(美美). 둘 다 아름답다.
절대 이런 깡촌에 있을 만한 미모가 아니었다.
‘화장이 진하기는 해도 어려 보이는군. 하나는 스물넷, 다른 하나는 열여섯…… 정도려나?’
대장 기녀는 두 하루벌이 기녀의 나이를 빠르게 파악했다.
둘 다 빼어나게 아름다웠지만 특히나 어린 소녀 쪽의 미모가 어마어마하다.
길 가던 남자들의 다리 힘이 풀어 주저앉힐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대장 기녀는 헛기침을 몇 번 함으로써 놀란 기색을 지웠다.
그러고는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우, 우리 모정루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받지 않아.”
이미 목소리에서부터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여유로운 척 말을 이었다.
“얼굴만 곱다고 기녀는 아니지. 뭐 특기 같은 거 있니?”
그러자 두 하루벌이 기녀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윽고, 큰 기녀가 말했다.
“저는 술이 셉니다.”
“호오- 술이 세? 얼마나?”
“안 끊고도 병나발 세네 번 정도는 연거푸 불지요. 화주 기준으로.”
“……말이 돼 그게? 사람이 그런 걸 어떻게 해. 무슨 곰도 아니고.”
“못 믿으시겠다면 보여 드리면 되잖아요.”
큰 기녀의 말에 대장 기녀는 코웃음을 쳤다.
모정루의 화주는 독하기로 소문난 술이다.
아무리 일평생 술을 퍼마셔 온 주정뱅이라 하더라도 한 병만 먹으면 이틀은 골골대는 독주.
하지만.
꼴꼴꼴꼴꼴꼴……
큰 기녀의 말은 정말이었다.
그녀는 기녀들이 날라 온 화주 다섯 병을 그 자리에서 숨도 고르지 않고 다 마셔 버렸다.
“쩝. 여기 화주는 좀 약하네. 물을 많이 타서 그런가, 다섯 병은 더 먹을 수 있겠는데?”
“다, 다섯 병을 더? 사람 맞니 너?”
대장 기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이윽고,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뻗어 작은 기녀를 가리켰다.
“너, 너는 무슨 특기가 있지?”
“…….”
그러자 작은 기녀는 손으로 턱을 짚고 무언가를 고민했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妾本寒門子 荊釵居白屋
-나는 본래 한미한 가문의 딸. 가시나무 비녀 꽂고 초라한 집에 살았지.
美質天所生 兩臉知赬玉
-타고나길 아름다워, 두 볼은 붉은 옥 소반과도 같으니.
自倚傾國艶 乃與世人踈
-나라를 기울어트릴 미모 하나만 믿고,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며 지냈네.
五陵多年少 過者皆停車
-오릉의 많은 젊은이들이 지나가다가 수레를 멈추었지만.
一笑肯輕賣 千金且不收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웃음을 가볍게 팔지 않았네.
以此自愆期 歲月長江流
-때를 놓쳐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西風昨夜至 莎雞鳴露草
-간밤에 가을바람 불어 사라지듯 하더니, 어느새 이슬 맺힌 풀에 귀뚜라미 소리만이 구슬프다.
紅顏恐消歇 時過不再好
-고운 얼굴이 사라질까 두려우니, 때 지나면 다시 좋지 않으리.
어린 기녀가 부르는 노랫소리와 가사는 경계의 눈으로 지켜보던 대장 기녀를 비롯한 다른 기녀들의 혼을 홀딱 빼 놓기에 충분했다.
“사람의 노래가 아니로세…… 이건 귀신의 노래다…… 창귀(唱鬼)의 노래야…….”
대장 기녀는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아름다운 음율과 그 속에 담긴 가사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한 것이다.
대장 기녀는 어린 기녀의 손을 꼭 잡았다.
“네 노래를 들으니 찬란했던 나의 젊은 날이 떠오르는구나. 노래는 어디서 배웠니?”
“그냥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배웠습니다.”
“따로 스승이 없고?”
“예.”
“놀랍다. 실로 놀라운 자질이야. 혹시 우리 기루에 머물 생각은 없니? 대우는 잘 해 줄게.”
“아직 정착을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 장강수로채행이 끝나고 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린 기녀의 말에 대장 기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험난한 장강수로채의 일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이곳 모정루에서 요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눌러앉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물건이 들어왔어. 이 아이야말로 우리 모정루를 이끌어 갈 차세대 총아로다.’
대장 기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두 하루벌이 기녀를 식구로 받아들였다.
바로 장강수로채행이 결정된 것이다.
* * *
기루 안의 방.
하루벌이 기녀 둘은 오늘 밤 여기서 자게 되었다.
내일 아침 일찍이면 장강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윽고, 하인이 두 기녀에게 이부자리를 내주었다.
큰 기녀에게는 평범한 이불이, 작은 기녀에게는 비단금침이 주어졌다.
“젠장. 나는 완전 찬밥 취급이군. 기녀한테는 술 잘 먹는 것도 중요한 덕목 아냐?”
해백정. 그녀는 곱게 단장한 기복을 벗어 던지며 말했다.
그 옆에 깔린 비단금침 위에는 추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해백정은 추이를 향해 말했다.
“야. 너는 노래를 왜 그렇게 잘 부르냐?”
“…….”
추이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것은 특별한 재주는 아니었다.
마공의 부작용.
창귀칭을 익힌 자는 이상하리만치 노래를 잘 부르게 된다.
그것은 창귀칭이 부리는 창귀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추이는 전생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홍공이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었다.
‘창귀는 항상 서럽게 울며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만약 산 사람이 이유 없이 서럽게 울면서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필시 창귀의 짓이다.’
즉, 추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사실 마공의 부작용인 것이다.
특별히 몸에 해로울 일은 없고 오히려 약간 정도는 도움이 되는 능력이기에 추이는 지금껏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때.
드르륵-
방문이 열렸다.
대장 기녀가 머리만 들이밀고는 추이와 해백정을 바라보았다.
툭-
그녀가 바닥에 내려놓은 것은 차와 떡이었다.
“다 알아.”
대장 기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해백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해백정에게, 대장 기녀가 말했다.
“딸이지?”
“…….”
해백정은 순간 대장 기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옆에 있는 추이를 보는 순간.
“캭! 무, 무슨……!”
해백정은 대장 기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대장 기녀는 옆에 있는 추이를 해백정의 딸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추이는 굳이 그 오해를 풀 생각이 없었다.
“엄마.”
추이가 해백정의 옷자락을 잡았다.
해백정이 미처 펄펄 날뛰기도 전에, 대장 기녀는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꾹꾹 눌렀다.
“어쩜…… 내 생각이 맞았어…… 여자 혼자 애기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지? 앞으로는 우리가 지켜 줄게.”
“아니! 그, 그게…… 하?”
해백정은 화를 내지도, 해명을 하지도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 기녀는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해백정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방에서 나갔다.
“……내, 내가 니 엄마라고?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
“뭐라고 말 좀 해 봐!”
하얗게 타 버린 해백정을 뒤로한 채 추이는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자운과 다닐 때는 똥 푸는 일꾼으로 위장했는데, 여자랑 다니니 대우가 훨씬 낫군.’
전생에서는 얼굴에 입은 상처들이 많아서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다.
“야! 말 좀 해 보라고! 내가 니 엄마뻘로 보이냔 말이야! 어!?”
옆에서 시끄럽게 날뛰는 해백정을 무시한 채, 추이는 치마 속에 감춘 매화귀창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장강으로 돌아가게 된다.
질기게 얽힌 수적 패거리들, 그리고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사형.
‘벌써부터 피 냄새가 나는데.’
모르긴 몰라도 쉬운 여정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창귀무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