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연리지(連理枝) (2)
대장간은 많다.
관영, 병영, 수영, 군, 현, 읍에 딸린 대장간들은 물론 시골 장터마다 길목 길목에 자리한 대장간, 혹은 위세 있는 가문들의 장원에 딸린 대장간 등등…….
손강과 손화가 살고 있는 대장간 역시도 그런 수많은 대장간들 중의 하나였다.
다만, 손강이 이 산 일대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솜씨를 지닌 명장이라는 점이 추이에게는 다행이었다.
손강은 농기구 하나를 만들어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사내였고 그 까닭에 창고에는 항상 질 좋은 철이, 대장간에는 질 좋은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추이는 손화가 차려 준 밥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제련을 할 도구들은 있나?”
“다 준비해 놨습니다.”
손강이 대장간 구석에 있는 커다란 화덕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작도 충분하고 석탄도 많다.
천장 위로 연기를 빼낼 굴뚝도 회반죽을 새로 발라 튼튼했다.
멧돼지 가죽으로 된 풀무들이 화덕 옆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원통형으로 된 모루와 길고 튼튼한 망치들이 보인다.
그 외에도 우물에서 길어 온 찬물이 열 동이나 되었다.
허리 부근이 우묵하게 닳은 숫돌 강판도 대기하고 있었다.
손강이 말했다.
“제가 직접 메를 잡겠습니다. 화야, 너는 불 세기를 잘 맞추니 옆에서 풀무질을 하거라.”
“예, 맡겨 주세요. 아버지.”
손화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째 대답을 들어야 할 아비가 아니라 앞에 있는 추이만을 홀린 듯 바라보는 것이…….
달그락-
그러거나 말거나, 추이는 밥을 먹었다.
질그릇에 담긴 조밥과 고추장, 이름 모를 잡어를 구운 것, 그리고 나물 무침 몇 가지.
손강과 손화의 밥상 역시도 똑같았다.
다만 추이의 밥상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밥을 헤쳐 보니 밥알 밑에 큼지막한 닭알이 하나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손강이 딸을 향해 씩 웃었다.
“우리 손화, 다 컸구나. 애비 말고 다른 남자부터 챙기는 걸 보니…….”
“아휴, 아버지는 참. 그, 그게 아니라…… 손님이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얼른 기력 회복하시라구…….”
화덕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양 얼굴이 새빨갛게 익은 손화가 손사래를 친다.
그때. 장지문 너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삐걱-
해백정.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 돌아온 그녀가 파리한 안색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력을 회복해야 하는 사람은 난데?”
해백정은 추이의 밥그릇 위에 올려진 달걀을 집어 들더니 그것을 씹지도 않고 삼켜 버렸다.
손화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간땡이에 손기척도 안 가네. 도구들은 준비됐어?”
“다 해 놨다. 착수해라.”
“급하기는.”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입에서 핏물과 이빨 몇 개를 퉤 뱉어 냈다.
“따라와. 메, 풀무.”
해백정에게 지목당한 손강과 손화가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 * *
대장간의 벽에는 칼이나 화살 같은 병장기보다 호미, 낫, 작두, 망치, 괭이, 쇠스랑, 꺾쇠, 문고리, 돌쩌귀 같은 것들이 더 많이 걸려 있었다.
잔뜩 쌓여 있던 장작들이 화덕 속으로 절반가량 타들어갔을 무렵에야 해백정은 비로소 망치를 잡았다.
“내 아버님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주검(鑄劍)의 명수셨지.”
해백정은 땀을 흘리며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절절 끓는 쇠판떼기 위에서 쇳물이 우릉우릉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어느 날, 세력가 하나가 아버님의 소문을 듣고 의뢰를 했어. 천금을 내릴 테니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하명검(天下名劍)을 만들어 달라고 말이야.”
곤귀 구강룡의 곤 묵죽이 용광로 속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아버님은 세력가의 부탁을 몇 번이나 거절하셨어.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세력가는 협박했지. 칼을 만들지 않으면 아버님을 비롯한 우리 일가족을 몰살하겠다고 말이야. 칼의 수준이 자신의 안목에 못 미칠 경우에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사망매화 오자운의 매화검 역시도 점차 매화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버님은 몇 날 며칠을 고민하셨어. 천하에서 제일가는 칼을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고 해도 검에 미쳐 있는 세력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해백정은 땀방울을 떨어트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어머님이 말씀하셨어. 사람을 녹인 쇳물에는 영성(靈性)이 깃든다고…….”
뜨겁게 달아오른 쇠와 쇠가 맞붙는다.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님은 솥 안으로 뛰어드셨어. 아버님은 너무 놀라서 어머님을 붙잡지도 못하셨지.”
그것은 연거푸 떨어져 내리는 망치에 맞아 조금씩 조금씩 외형을 바꿔 가고 있었다.
“아버님은 결국 망치를 잡으셨어. 그리고 어머님이 녹아든 쇳물을 써서 칼 한 자루를 만들어 냈고. 그 칼이야말로 분명 천하제일의 명검이었어.”
해백정은 여러 가지 철을 녹인 뒤 그것을 부어 가면서 묵죽의 끝과 매화검의 끝을 접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력가는 아버님에게 포상을 내리기는커녕, 되레 아버님을 살해했지. 아버님이 또다시 그런 명검을 만들까 두려웠던 거야.”
대장간 안은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와 장작이 불타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그 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하나뿐인 오빠마저 집을 나갔어. 반드시 세력가를 죽여 원수를 갚겠다면서.”
쩍- 하고 장작이 쪼개졌고 그 사이로 새로운 불길이 타올라 솥을 한층 더 뜨겁게 달구었다.
“오빠의 소식은 지금도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지. 애초에, 원수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부모님과 오빠, 셋뿐이었으니 수소문도 할 수가 없어.”
해백정은 긴 한숨을 토해 내어 쇠를 식혔다.
“나는 그때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어. 이 사실도 나를 키워 준 스승님이 알려 주신 거야.”
이윽고, 그녀는 옆에 앉아 있던 추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스승님은 알고 계셨겠지. 본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를 산채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 아닐까? 채주 쟁탈전에서 개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해백정이 추이를 뒤쫓았던 것에는 이런 뒷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추이의 목소리는 불길마저 수그러들 정도로 차가웠다.
“수적들 따위의 정치 싸움에는 관심 없다.”
“그래 맞아. 무고한 이들의 피나 빨아먹는 것들이 웬 감성팔이냐 싶겠지.”
해백정은 추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장강수로채는 원래 지금과 같이 흉악한 집단이 아니었어.”
“…….”
“적어도 내 스승님께서 채주 자리에 계실 적에는 그랬지. 탐관오리 놈들의 표물을 털어서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리고 가난한 어부들의 뒷배가 되어 주는…… 말하자면 의적 같은 무리였달까.”
“…….”
“하지만 스승님이 병석에 눕고 난 뒤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어. 내 위의 자 사형과 축 사형은 스승님의 뜻을 잇고자 했으나…… 그 밑의 사형들이 문제였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옆에 있던 손강과 손화 부녀를 돌아보았다.
“당신들에게도 미안하게 됐어. 장강수로채에 투신하려는 도당들이 피해를 끼쳐서.”
“웬걸요. 이렇게 무사히 살았으니 되었습니다.”
손강은 망치질을 하며 씩 웃었다.
손화 역시도 풀무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백정의 시선이 다시 화덕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용서 못 해. 스승님의 부재를 노려 채주 자리를 노리는 인 사형을. 장강수로채의 존재 의의를 변질시켜 버린 죗값을 치르게 해 줄 생각이야. 반드시.”
그녀가 인백정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아직 내게 원수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셨어. 내가 더 수련하여 몸도 마음도 강해진 뒤에 말씀해 주겠다고 하셨지. 인 사형, 아니 인백정 그놈이 만약 정말로 스승님을 시해했다면…… 나는 영원토록 원수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될 거야.”
해백정의 목소리는 부글부글 끓는 쇳물처럼 뜨겁게 일렁거린다.
그러나.
“주절주절 말이 많구나. 작업이나 똑바로 해라.”
추이는 해백정의 말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만 이런저런 지적이나 할 뿐이다.
해백정도 자꾸 자신을 무시하는 추이의 행동에 뿔이 났다.
“야. 자꾸 이래라저래라 할래? 대장간에서는 대장장이가 상감이야.”
“제대로 못 하면 죽는다. 너를 살려 둔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야.”
“눈치 주지 마. 녹이는 건 그나마 쉬워도 굳히는 건 훨씬 더 어렵다고. 부담되면 손끝이 떨려서 결과물이 안 좋게 나올 수도 있어.”
해백정의 말에 추이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피력하려는 듯,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연리지를 본 적 있어?”
연리지(連理枝).
서로 다른 곳에서 싹튼 두 개의 나무가 서로 맞닿아 하나의 나무처럼 붙어 버린 것을 뜻한다.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인가 본 것도 같군.”
“네가 본 그 연리지들 주변에 평범한 나무들이 모두 몇 그루나 있든?”
“…….”
“내가 지금 만들려는 게 바로 그런 거야. 알겠어?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추이가 입을 다물자 해백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녀는 뿌연 증기가 치솟고 있는 솥 앞으로 다가갔다.
싹둑-
가뜩이나 짧았던 해백정의 머리카락이 더욱 짧아졌다.
사라라락……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내어 솥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깨물어 낸 핏방울을 함께 떨어트린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솥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더욱 거세어졌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검은 증기가 대장간 전체를 꽉 채웠고 그 중간에서 매화꽃처럼 붉은 화광이 천천히 번져 가기 시작했다.
이후 해백정은 손강, 손화 부녀를 대장간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추이마저도 내쫓았다.
손강은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대장간을 돌아보며 말했다.
“야장(冶匠)의 솜씨가 가히 신기라고 부를 만합니다. 하나같이들 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술이었습니다.”
“…….”
손강의 말을 들은 추이는 해백정을 조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세 사람은 그 뒤로도 며칠을 더 기다렸다.
대장간 안에서는 망치질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동안 추이는 산을 올라가 노루며 멧돼지 등을 잡아 왔고, 손강이 그것들을 손질했으며, 손화는 발라낸 고기로 국을 끓였다.
대장간 안의 해백정은 문 앞으로 가져다 놓은 식사를 가져갈 때에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외에는 어떤 사람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렇게 딱 세이레 정도가 지났을 무렵.
끼기기긱……
대장간의 문이 열렸다.
해백정의 안색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도 더 나빠 보였다.
“들어와.”
그녀는 창백한 낯빛으로 손짓했다.
마치 유령이 저승으로 갈 길동무를 부르는 것 같은 몰골이었다.
“네가 주문한 대로 만들었어. 확인해 봐.”
해백정의 말을 들은 추이가 툇마루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새로운 모습으로 융합된 곤과 칼이 눈에 들어온다.
“……!”
전생의 추이를 창귀(槍鬼)라 불리게 만들었던 그때와 꼭 같은 모습이었다.
창귀무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