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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71화 (71/110)

71화 장강의 수적들 (5)

추이는 어느 비 오는 날 밤, 홍공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너는 운이 좋다. 너 이전에 다른 놈을 가르쳤을 때에는 이 무공이 불완전한 상태였거든. 그래. 이름이 가정맹이었던가? 그 가엾은 수적 놈이 지금은 뭘 하고 살고 있으려나?’

인백정 가정맹(苛政猛).

추이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 먼지 쌓인 그 이름을 끄집어냈다.

‘그래. 그런 놈이 있었지.’

수적들이 나누는 대화를 흘려듣고 있을 때 문득 귀에 들어온 그 이름을 추이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때쯤이겠군. 그놈이 장강수로채에 몸담고 있었을 때가.’

엄밀히 말하자면 추이는 인백정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인백정은 추이가 강호로 나왔을 때 이미 죽고 없어진 과거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점의 추이가 인백정이라는 과거 인물의 행보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인백정. 홍공의 제자.’

말 그대로다.

인백정은 창귀칭을 익힌 인물이었다.

그것도 추이보다도 훨씬 앞서서 말이다.

즉, 창귀칭을 가르친 홍공이 추이의 스승이라면 그런 홍공에게 창귀칭을 앞서 배운 인백정은 추이의 사형이 되는 셈이다.

‘홍공은 나와 만나기 전에 장강수로채에 있던 수적 하나에게 심심풀이 삼아 창귀칭을 전수했다고 했었다. 그놈의 이름이 분명 가정맹…… 인백정이라는 별호를 쓰는 놈이었더랬지.’

말이 심심풀이지 실상은 창귀칭의 완성을 위해 만든 실험체였을 것이다.

즉, 혈마(血魔) 홍공이 인백정에게 전수한 창귀칭은 불완전한 상태였던 셈.

‘아마 이 시점에서는 홍공조차도 창귀칭이라는 무공을 완전히 정립하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당연하게도, 홍공이 키운 제자인 인백정은 창귀칭의 마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 버렸고 그 이후 수많은 혈겁을 일으키게 된다.

그 이후에는 천라지망에 갇혀 날뛰던 끝에 정도의 고수들에게 잡혀 죽는다.

이런 과거사를 추이는 강호에 나오고 나서, 한참이나 나중에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는 살아 있다는 말이지?’

추이는 궁금했다.

자신의 사형이 어떤 인간인지, 현재 창귀칭을 익히고 있는지 아닌지, 혹시 익혔다면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는지, 아직 익히지 아니하였다면 언젠가는 그의 앞에 혈마 홍공이 나타날지.

…꽈악!

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추이가 세운 회귀 이후의 목표들 중 최상위권에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혈마 홍공을 죽이는 일이다.

‘어차피 벌레같이 살다 갈 목숨이다. 이리 내려와서 도박 한번 해 보지 않으련?’

자신을 이용했고, 그 끝에 죽이려 들었고, 가장 친했던 벗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

인백정의 옆에서 대기하다 보면 언젠가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추이는 눈앞에 있는 해백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인백정의 막내 사매인 그를 잡아 심문하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았을 때 내뱉은 정보와 죽었을 때 내뱉은 정보들을 취합하면 단순한 사실 외에도 무엇을 숨기려 했는지, 그 의도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스승님은 안 돌아가셨어!”

해백정은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퍼-엉!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발길질을 날렸다.

해백정의 발등이 또다시 찢어지며, 수없이 많은 자갈들이 추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따따따따따따따따따따딱!

자갈들이 뒤쪽의 바위와 나무들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추이는 이미 그것들을 피해 허공으로 뛰어오른 뒤였다.

쐐애애애액-

추이의 곤이 독사처럼 날아들어 해백정의 복부를 찔렀다.

해백정은 바닥을 구르며 그것을 피했고 이내 부하의 시체 위에 널브러져 있던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덥썩!

옆에 창이나 칼도 있는데 굳이 도끼를 집어 든 것을 보면 그런 형태의 무기를 가장 선호하는 듯싶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투박한 손도끼를 들고 곧장 추이에게로 덤벼들었다.

까-앙!

상처 입었어도 맹수는 맹수다.

해백정은 손도끼를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며 추이를 몰아세웠다.

스르르르르……

도끼 표면에 해백정이 뿜어낸 내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것들은 도끼날을 타고 흐르다가 뾰족한 끝에 이슬처럼 맺혔다.

파파파팡!

내력의 방울들이 이슬처럼 흩뿌려진다.

그것들은 바위고 나무고를 가리지 않고 퍽퍽 구멍을 뚫어 놓았다.

휘리리리리릭-

추이는 곤을 빙글빙글 돌려 그것들을 걷어 냈다.

동시에 회마창(回馬槍)의 한 수를 이용해 해백정의 가슴팍을 세게 찔렀다.

“뒈져라.”

차가운 목소리, 무감정한 눈빛이 해백정을 향했다.

까-앙!

곤이 도끼날을 위로 튕겨 내고는 해백정의 어깨를 때렸다.

“끄윽!”

그녀는 비명을 참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곳에는 벼락에 맞아 죽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해백정이 나가떨어진 곳은 하필 뾰족한 나뭇가지의 끝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방향이었다.

…푸욱!

나뭇가지가 해백정의 왼쪽 종아리를 꿰뚫었다.

하류까지 떠내려오다가 한 번, 지금 한 번 해서 총 두 번이나 나뭇가지에 관통상을 입은 것이다.

“젠장, 나뭇가지가 왜 이렇게 풍년이야!?”

그녀는 이를 한번 뿌득 갈고는.

우지끈!

자신의 왼발을 관통한 나뭇가지를 오른발로 걷어차 부쉈다.

실로 놀라운 투지.

처절하기까지 한 독기.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나이에도 무공이 고강한 이유가 있군.’

불과 이립(而立)도 되지 않아 보이는 나이에 절정고수가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한두 번의 기연을 만났던 것이 아님을 뜻한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해백정.”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대에게 어떤 사정이 있든, 어떤 과거가 있든 그것은 알 바가 아니다.

“해백정.”

강한 적은 좋은 영약과도 같아서, 추이는 그저 묵묵히 상대의 이름을 세 번 부를 뿐이었다.

부웅-

곤이 휘둘러진다.

까-앙!

해백정은 도끼를 들어 그것을 막았으나 반탄력 때문에 도끼자루를 쥔 손을 놓치고 말았다.

바로 그 틈을 추이는 놓치지 않았다

“퉤-”

혀끝을 깨물어 낸 피가 침에 섞여 날아간다.

그것은 정확히 해백정의 입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엣퉤퉤! 뭣……?”

단지 더러운 수법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

순간, 해백정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끄으으으으으윽!?”

지독한 매운맛.

동시에 입안을 넘어 목구멍 안쪽, 위장 아래, 배 속의 단전 깊숙한 곳까지 엄청난 뜨거움이 작렬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불붙은 숯덩이를 삼키기라도 한 듯, 폐장(肺腸) 모두가 뜨겁게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다가 아니다.

비명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해백정의 내공이 말라붙었다.

도끼날에 흐르고 있던 내력이 끊기자 그것은 그저 평범한 쇳덩이로 전락해 버렸다.

…빠각!

일직선으로 쏘아져 온 곤 끝이 해백정의 도끼자루를 부수고 도끼날을 날려 버렸다.

그다음 순서는 당연히.

퍼-억!

추이의 곤이 해백정의 복부로 깊게 틀어박힐 차례였다.

“꺼헉……!?”

해백정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추이가 곧장 곤을 들어 올린 뒤 해백정의 몸을 강물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퍼-엉!

해백정이 수면을 깨트리고 처박힌 곳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꾸르르르르륵…… 부글부글부글부글……

해백정은 또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의 귓가로 환청이 들려온다.

‘엄마…… 엄마…… 엄마…….’

소녀의 울음.

물속에서 미소 짓던 엄마의 얼굴.

무심하게 움직이던 아빠의 망치질.

폭우를 맞으며 땅을 두드리던 오빠의 통곡 소리.

꾸르르르륵……

해백정의 입에서 마지막 숨이 물거품처럼 토해져 나온다.

발버둥 쳐 보았지만 이곳은 수류가 그리 세지 않은 곳이라 그런가 계속해서 가라앉기만 할 뿐이었다.

‘틀렸나.’

그녀의 몸이 점점 둔해진다.

어디선가 그리운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해(亥)야…… 해야…… 가거라…… 멀리 가거라…… 채 밖에서 세상을 배우고 오거라…….’

해백정은 꺼져 가는 시야 너머로 저무는 환영들을 배웅했다.

‘죄송해요. 엄마. 아빠. 오빠. 스승님.’

그리고 이제는 편해질 수 있겠다는 안도감에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퍽-!

갑작스레 옆구리를 파고드는 통증은 해백정의 의식을 다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크학!?”

그녀가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시커먼 곤이 해백정의 몸을 들어 올려 수면 밖으로 건져 냈다.

“아직 한번 남았다.”

추이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두 번밖에 부르지 못했다.

…퍼엉! 왈그르르르륵!

물 밖으로 밀려나온 해백정은 그대로 자갈밭에 패대기쳐졌다.

추이가 그런 해백정을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헤엄을 못 치는 수적은 처음 보는군.”

황당함이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 해백정은 폐까지 꽉 찬 것 같은 강물을 왈칵 토해 냈다.

“웨엑! 웨에에에엑!”

그녀의 입에서 토해져 나온 피라미 몇 마리가 팔딱팔딱 뛰는 것이 보인다.

이윽고, 해백정이 말했다.

“……왜 건졌냐?”

“죽이려고.”

“미친놈.”

추이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하지만 추이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물에서 죽으면 창귀로 만들 수가 없으니 귀찮더라도 건져 낼 수밖에.’

예를 들어, 오자운이 죽였던 비무극은 끝내 창귀로 만들지 못했다.

직접 살수(殺手)를 써 죽인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접 피를 봐 죽인 상대가 아니면 창귀로 만들 수 없었다.

이것이 창귀칭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칙들 중 하나.

그래서 추이는 손수 물속으로 들어가 해백정을 건져낸 것이다.

기껏 다 잡아 놓은 마당에 해백정이 익사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혼백을 흡수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윽고.

스으윽-

추이의 곤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이대로 해백정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기 위함이었다.

“해백…….”

추이의 입에서 막 세 번째 부름이 나오려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스승님이…… 돌아가셨을 리 없어…….”

물론 추이에게는 전혀 알 바가 아닌 독백이었다.

“그러니…… 나는 살아야 해…… 여기서…… 죽…… 을…… 수는…… 없어…….”

목숨 구걸이라면 소용없다.

이미 이름을 세 번 불리기 직전이다.

하지만. 해백정은 추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구걸…… 하자는 게…… 아냐…… 거래…… 야…….”

“……?”

이 시점에 거래할 것이 있을까?

부하, 스승, 사형제,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해백정에게?

추이가 잠시 곤을 멈추자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창…… 만들어 줄게…….”

해백정의 시선은 추이의 곤과 허리춤에 매달린 매화검을 번갈아 향하고 있었다.

추이는 맨 처음 해백정이 가녀린 여인으로 위장했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보답을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거짓을 고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서서히 흐려져 가는 그녀의 두 눈빛에서는 절박한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를 따라오신다면 이 두 무기를 하나로 만들어 드리지요.’

추이가 곤을 내리는 순간, 해백정의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도와줘.”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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