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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69화 (69/110)

69화 장강의 수적들 (3)

…첨벙!

해백정이 물에 빠졌다.

추이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단합이 잘 안 되나 보군.’

정파에 비해 사파의 조직들은 같은 패거리끼리도 유대감이 그리 깊지 않다.

심지어 저들은 장강에서 노략질을 일삼고 다니는 수적패 아닌가.

저희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칼부림을 벌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놈은 뭐야? 저놈도 죽여라!”

“저 암퇘지 년과 상관있어 보이는 놈은 다 죽여!”

“화근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지. 내 활과 화살을 가져와라.”

“나머지는 그물을 내려라! 강의 바닥부터 싹 훑을 것이다!”

수적들은 추이에게도 그물과 화살을 날려 보냈다.

아마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일 심산 같았다.

어차피 강에서 수적들을 만난 이상 일전은 불가피하다.

추이는 그렇게 판단했다.

“안 되지.”

추이는 강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곳에는 맨들맨들한 흑자갈들이 두껍게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쿵!

추이는 곤을 내리찍어 자갈들을 진동시켰다.

빠가가가가가각! 짜각짜각짜각짜각짜각짜각짜각!

커다란 충격파가 자갈들을 모조리 깨트려 버렸고 그 밑에 가라앉아 있던 미세한 진흙 분진들이 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맑았던 물이 순식간에 혼탁해졌다.

…쿵! …쿵! …쿵!

추이는 계속해서 발을 굴러 진흙구름을 일으켰다.

위에서 쏘아져 오던 화살들이 점차 정확성을 잃기 시작했다.

핑-

눈먼 화살 한 대가 추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공이 실려 있군.’

배 위에 활깨나 쓰는 고수들이 타고 있는 모양.

아마 장강수로채 내의 계급으로 따지자면 백두 계급쯤 되리라.

‘……어쩐지 아까부터 화살이 강바닥까지 퍽퍽 꽂힌다 했다만.’

추이는 화살을 피해 강의 바닥 깊숙한 곳까지 물러섰다.

하지만, 마냥 바닥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패도회 때와 달리, 수적들은 물속에 숨은 적을 괴롭히는 방책을 갖고 있었다.

…촤악!

배에서 내려진 그물이 넓게 펼쳐지더니 바닥을 쓸어 오기 시작했다.

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왈그락!

저층끌이 그물망 끝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납덩이들이 자갈들 사이를 파 긁으며 맹렬한 속도로 쇄도해 온다.

물의 상층, 중층, 하층을 오가던 물고기들이 죄다 그물망에 걸려 온다.

추이 역시도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쓸어 가는 그물에 걸려 버렸다.

“…….”

그물은 아주 질기고 또 억셌다.

나무껍질과 넝쿨, 짐승의 힘줄을 섞어 몇 겹으로 꼬은 뒤 소금을 먹여 놓은 것이라 그런가 단번에 찢어 낼 수가 없었다.

또한 물살까지 세니 더더욱 방법이 없다.

물속에 있다가 이런 그물에 걸리게 되면 그물을 끌어올려 주는 이에게 목숨줄을 내맡겨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물이 끌어올려지지 않으면 꼼짝없이 물속에서 꽁꽁 옥죄인 채 익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하지만, 추이는 자신의 목숨을 남의 자비에 맡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썩뚝!

추이는 허리춤에 매달아 놓았던 매화검을 들어 그물망을 잘라 냈다.

질긴 그물코에 구멍이 나며, 추이가 그곳으로 빠져나왔다.

수적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배는 이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

고개를 들자 저 위로 그물을 끌고 가는 배의 밑바닥이 보인다.

추이는 배의 뒤쪽을 향해 곤을 크게 휘둘렀다.

부아앙!

거대한 물살이 일며 무수한 양의 자갈과 진흙을 끌어올린다.

꿀-렁!

그것은 거대한 용처럼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면 위를 향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시커먼 파랑이 일어났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몸 안쪽에 엄청난 무게의 자갈과 진흙들을 품고 있는 파도였다.

당연하게도, 수면 위에 있던 수적들은 난리가 났다.

“뭐, 뭐야 저게!?”

“파도가 몰려온다! 전향타를 돌려!”

“키잡이! 키잡이 어디 갔어 이 새끼!?”

“으아아아아!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뒤에서 덮쳐오는 파도를 본 배가 황급히 뱃머리를 좌현 쪽으로 돌린다.

촤아아아아악!

배가 몸체를 대각선으로 기울이자 파도에 닿는 충격이 많이 줄어들었다.

우당탕탕탕! 뿌득! 뿌드득!

수적 몇몇이 갑판 뒤를 뒹굴어 다니다가 돛대나 난간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하지만. 파도를 견뎌 냈다고 해도 그 안에서 빗발치는 자갈과 진흙 세례는 피할 수 없었다.

철썩- 빠지지지지직!

배를 구성하고 있는 널빤지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부서진다.

배 위의 수적들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놈이 바닥에 있다!”

“괴물이야! 해일을 일으키고 있잖아!”

“그물! 그물을 가져와! 죄다 싹 갖고 오라고!”

“활은 필요 없다! 그물을 던져라!”

온통 진흙뻘이 된 물속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수적들은 더 이상 활을 쏠 수가 없었다.

촤악- 촤악- 촤아아악-

이윽고, 몇 겹이나 되는 그물들이 연달아 던져졌다.

그것도 모자라 수적들은 이미 쳐 뒀던 그물, 그리고 버렸던 폐그물들이 있는 곳으로 배를 몰아가고 있었다.

‘……흠.’

추이 역시도 이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파도가 한번 일렁거릴 때마다 물속을 떠도는 폐그물들이 검은 유령처럼 엉겨붙어 왔기 때문이다.

썩둑- 써걱!

추이는 매화검의 날을 휘둘러 몇 겹으로 휘감겨 드는 그물들을 베어 냈다.

만약 매화검과 같이 날카롭고 예리한 날붙이가 없었다면 송곳과 망치, 곤으로 그물을 베어 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추이는 잔도를 건너간 오자운에게 감사하며 짧게 중얼거렸다.

‘받았으니 돌려주마.’

추이는 곤을 옆으로 뉘이고는 횡으로 한번 크게 휘저었다.

쿠르르르르르르륵!

파도가 휘몰아치며 소용돌이의 형상을 만든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수면 위로 불룩 솟아오른 물덩이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꾸깃꾸깃 비틀리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 모양의 물기둥을 만들어 냈다.

“저, 저게 뭐냐?”

배 위의 수적들은 타륜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아까의 큰 파도는 조타 실력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저것은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장강의 닳고 닳은 수적들조차도 처음 보는 자연재해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빠-지지지지직!

추이가 만들어 낸 수류가 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널빤지들이 물에 젖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안에 든 수적들이 홍수를 만난 개미 떼처럼 휩쓸려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다가 아니다.

진흙, 나무토막, 자갈, 암초 파편, 밧줄, 찢어진 그물 조각, 납으로 된 그물추, 물고기 등등이 물살에 섞여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퍼퍼퍼퍼퍼퍽!

그것들은 배를 붙잡고 버티고 있던 수적들의 몸에 일제히 때려 박혔다.

어떤 수적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진흙덩이에 얼굴을 맞아 눈알 두 개가 터져 버렸고 코뼈와 앞니가 부러졌다.

어떤 수적은 자갈들이 몸통을 뚫고 지나갔다.

어떤 수적은 그물코에 휘감긴 손가락이 모두 뜯겨 나갔다.

어떤 수적은 날아든 물고기가 얼굴에 박혀 즉사해 버렸다.

죽어 나간다.

모조리 죽어 나간다.

백두 계급이고 십두 계급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으아아아아! 저런 거랑 어떻게 싸워!?”

수적 하나가 공포에 질려 배를 버렸다.

그는 갑판을 박차고 뛰어올라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었으나.

“……!”

참으로 운 나쁘게도, 그곳에는 추이가 있었다.

“?”

추이는 자신을 향해 맹렬히 헤엄쳐 오는 수적을 향해 송곳을 뻗었다.

…뿍!

가죽에 구멍이 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뿜어져 나온다.

“으아아아아!”

곳곳에서 수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자맥질하는 모양이다.

추이는 알아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수적들을 하나하나 송곳으로 찔러 죽였다.

그물과 화살에 대한 답례였다.

“끅!”

“커흑!”

부글부글부글…….

물속으로 잠수했던 수적들의 시체가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추이의 송곳에 의해 죽은 이들보다는 수류에 떠밀려 날아오는 부유물에 맞아 죽거나 폐그물에 휘감겨 익사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

추이는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토록 맑던 물이 진흙과 피로 인해 검붉어졌다.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으니 기감(氣感)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없나.’

딱히 살아 있는 것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창귀들까지 풀어 주변을 훑었으나 목숨을 건진 수적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푹-

추이는 비교적 얕은 강바닥을 찾아 그곳에 곤을 세로로 꽂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다리와 허리를 곧게 폈다.

촤악-

추이는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후우-”

일렁거리는 모든 것들이 온통 시커멓고 시뻘겋다.

물비린내와 흙비린내, 그리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추이는 저 멀리 천천히 가라앉아 가는 배에게서 시선을 떼고 뭍을 바라보았다.

“추가 병력이 없다고?”

이상한 일이다.

강 위에서 꽤나 요란하게 날뛰었는데 지원하러 오는 수적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도적들이라 함은 서캐와도 같아서 하나를 죽이면 열이 오고, 열을 죽이면 백이 오는 법이거늘.

“묘하군.”

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곤을 수거하여 강바닥으로 내려가 뭍으로 걸어 올라왔다.

퍼-엉!

내력을 주입하여 옷을 털자 물기가 금방 사라진다.

마르는 것이 아니라 충격파에 의해 털려 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추이는 옷을 말린 뒤에도 한동안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혹시나 수적들이 추가로 더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딱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추이는 검붉은 강물에서 검은 것들이 다 가라앉고 붉은 것들이 다 쓸려 갈 때까지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별일일세.”

추이는 곤과 매화검날이 잘 있나 확인해 본 뒤 마지막으로 송곳과 망치, 잠사 뭉치까지 모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물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독 항아리와 얼마 남지 않은 마름쇠들을 유실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추이는 강의 하류로 걸어갔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자 또다시 검은 자갈들이 깔린 물줄기가 보인다.

“……!”

그곳에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해백정

그녀는 하류까지 떠내려오며 천신만고를 겪은 끝에 겨우 뭍으로 올라온 것처럼 보인다.

물에 홀딱 젖은 채 지친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해백정의 주위에는 수십 명의 수적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몇몇 수적들이 벌써부터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들 머리가 두 조각으로 쪼개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해백정의 도끼날이 만들어 낸 작품일 것이리라.

“왜 없나 했더니, 다들 저기 모여 있었군.”

추이가 예상했었던 나머지 병력은 다 저기로 몰려가 있었다.

아마 저들은 애초부터 해백정을 치기 위해 온 수적들인 듯했다.

제 부하들에게 포위당해 죽기 직전에 놓여 있는 해백정.

물론 당연하게도, 추이에게 그녀를 도와야 할 이유는 없다.

…….

몰려들어 있던 수적들 중 하나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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