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장강의 수적들 (1)
오자운을 보낸 뒤, 추이는 산을 내려왔다.
어느 물 맑고 공기 좋은 계곡,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추이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탁!
바위 위에 두 개의 무기가 놓였다.
검은 곤 묵죽(墨竹).
그리고 일곱 개의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화산매화검(華山梅花劍).
묵죽은 긴 몽둥이이니만큼 끝 부분이 뭉툭하다.
화산매화검은 화산파 전체를 통틀어 단 일곱 자루뿐인 절세명검이니만큼 예기가 범상치 않았다.
좋은 무구에는 영성이 깃든다던가?
지이이이잉…… 츠츠츠츠츠츠……
그 둘은 스스로 기를 내뿜으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추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무겁고 단단하지만 날을 세울 수 없는 곤.
날카롭고 예리하지만 자루가 없는 검.
이 둘은 한때 천하일절 고수들의 손에 쥐여 강호를 호령하던 무기들이다.
“곤 끝에 검날을 붙이면 창이 되겠군.”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운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네는 역시 곤보다는 창이 어울려!’
잘 봤다.
추이가 회귀하기 직전, 세상은 그를 창귀(槍鬼)라고 불렀다.
추이는 검날을 들어 올려 곤에 가져다 대 보았다.
따앙……
쇠붙이와 쇠붙이가 맞닿으며 소리를 낸다.
맑지 않은 소리.
어딘가 귀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음이었다.
‘묘하게 서로 밀어내는 것 같군.’
추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묵죽과 매화검은 서로 맞지 않았다.
둘 다 천하의 기병이건만, 전혀 뒤섞이지 않은 채 서로를 밀어낸다.
하다못해 서로 다른 농기구를 하나로 접붙이는 것도 힘든 일이거늘, 이처럼 뛰어난 병기들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설프게 이어 붙였다가는 둘 다 못 쓰게 된다.’
아무 대장간이나 들어가 불에 쇠를 녹인 뒤 이어 붙여 땅땅 두드린다면 오히려 두 병기 모두를 망치게 될 수도 있었다.
‘……안휘의 노야(老冶)를 찾아가야 하나.’
과거, 추이는 흑도방에 쳐들어가기 전 한 늙은 대장장이에게 무구를 주문한 적이 있다.
그때 꽤 괜찮은 흑창 하나를 얻었었지만 곤귀 구강룡과의 싸움에서 잃어버리고 대신 묵죽을 얻었었다.
‘그라면 능히 이 무기들을 접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추이는 노야가 만들었던 흑창과 송곳, 망치, 마름쇠들의 완성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대장간이 있는 안휘는 아주 먼 곳이었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을 들여 갔다고 해도, 노야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흑도방이 사라지고 원한이 해소된 이상 그가 굳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이승에 미련이 없다며 더 먼 곳으로 떠나 버렸을 수도 있는 일.
‘이 무기들을 개조할 다른 이를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그쪽으로 가야 하나.’
추이는 곰곰이 생각했다.
굳이 안휘까지 가지 않더라도 무기를 개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지를 말이다.
전생의 기억 속, 안휘의 노야를 비롯해 자주 찾아갔던 몇몇 대장장이가 있지만 다들 먼 곳에 있거나 현시점에서는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추이가 막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꺄-아아아아아악!”
산기슭 저 아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추이는 고개를 들었다.
바위 아래, 굴곡진 이끼밭 너머로 한 사람이 보인다.
눈 아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 펑퍼짐한 경장 너머로도 드러나는 몸의 굴곡.
이름 모를 여인 한 명이 경장 자락을 나풀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털복숭이 사내 세 명이 뒤쫓는다.
“크하하하하! 여기서 우리를 피해 달아나겠다고?”
“앙큼하구나! 잡아서 귀여워해 주마!”
“자꾸 도망가면 다리 한 짝을 잘라 놓을 게야!”
세 사내는 손에 칼을 든 채 여인의 뒤를 쫓는다.
그들은 타인의 손가락과 귀, 이빨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주렁주렁 차고 얼굴에는 피와 잿가루로 기괴한 무늬를 그려 놓았다.
아마 산중을 지나가는 행상인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산적 도당이리라.
“흐윽!”
여인은 달려가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산적 셋이 낄낄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운이 좋구나, 계집아.”
“일행들은 다 뒈졌지만 너는 오래 살 테니까 말이야.”
“그것 말고도 또 있지. 너는 이제부터 서방이 셋이니까.”
여인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복면 위로 드러나 있는 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때.
“이봐.”
추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귀찮다는 표정, 대충 휘젓는 손사래.
추이는 세 산적을 향해 말했다.
“그냥 보내 줄 테니까, 가라.”
“…….”
세 산적은 추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예. 그렇게 합죠.”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그냥 돌아서는 산적.
다른 두 명이 그를 따라가며 묻는다.
“아니 형님, 왜 그냥 가우? 우리 색시 될 계집을 그냥 두고?”
“저 꼬맹이가 뭐라도 되나?”
그러자 대장이 코를 감싸 쥐며 말했다.
“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놈들아. 모르겠냐? 딱 맡아도 사람 백정 냄새여.”
“그건 우리도 그렇지 않남?”
“우리 같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배기여. 얽혔다간 무조건 줄초상이다.”
“이잉…… 그랬구먼. 역시 형님이 사람 냄새는 잘 맡어.”
그들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어!?”
그들은 사람 냄새는 잘 맡았으나 사람 볼 줄은 몰랐다.
푸슉- 푸슉- 푸슉-
자신들의 목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그들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느새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추이가 송곳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아까 그냥 보내 주겠다고만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보내 주는 곳이 황천이라서 문제가 될 뿐.
추이는 산적들의 목에 걸려 있는 손가락 목걸이를 벗겨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과객들의 그들의 손에 유명을 달리했을까.
추이는 세 산적의 몸에서 창귀를 뽑아낸 뒤 삼켜 버렸다.
한때 화전민이었던, 그러나 피맛을 본 뒤 인간 백정이 되었던 산적 세 마리.
그들은 추이의 단전 속에 갇혀 피눈물을 흘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는 영원토록 성불하지 못하고 죽어서도 고통받게 될 것이다.
그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아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던 여인이 보인다.
그녀는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린 뒤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이틀 전부터 이 고개를 넘어가려 하였으나, 고개 너머에 범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무서워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길목을 지나는 행상인 무리를 만나 함께 넘으려 하였는데…… 그러다가 저 산적들을 만나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얼굴과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면사로 눈 아래를 죄다 가리고 있었지만 얼굴형 자체가 상당한 미형이다.
더군다나 눈 화장을 짙게 해서 그런가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은 추이에게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이었다.
“가라.”
추이는 여인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러고는 산기슭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여인이 추이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
추이가 고개를 돌리자 여인이 말을 이었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필요 없어.”
“필요한 것을 드리겠습니다.”
“?”
추이가 한쪽 눈썹을 까닥 움직였다.
그러자 여인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아까 산적들을 쓰러트릴 때 쓰셨던 송곳이 많이 낡아 있는 듯 보였습니다.”
“…….”
추이는 손에 쥔 송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끝이 많이 무뎌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망치 역시도 머리가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고 마름쇠는 거의 다 써 버렸다.
애초에 묵죽과 매화검을 이어 붙여야 하니만큼 대장간을 들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여인은 때마침 추이에게 말했다.
“혹시 들고 계신 무기를 보여 주실 수 있는지요?”
“…….”
추이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곤과 칼날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본 여인이 작게 감탄했다.
“명장의 솜씨입니다. 한데 두 병기를 만든 명장이 서로 다르군요. 두 명장의 작품을 하나로 만드시려는 건가요?”
“잘 아는군.”
“제 부모님께서 대장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야금(冶金)에 약간의 조예가 있지요.”
그녀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추이의 고민을 눈치챘다.
“사람도 서로 다른 둘에게 한 몸이 되라고 하면 싫듯이, 서로 다른 성질의 쇠붙이를 하나로 접붙이는 것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자기주장이 강한 병기일수록 더 그렇지요.”
“…….”
추이는 미미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말했다.
“제가 그것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추이는 묵죽과 매화검을 앞으로 뻗었다.
여인은 조심스러운 자세로 다가와 그것들을 살폈다.
“서로 다른 명장의 손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주인을 모시며 살아온 병기들이군요. 이 무구의 주인들은 아마 각자의 길에서 대성했던 고수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목이 제법 정확하다.
추이는 생각했다.
묵죽의 주인은 곤귀 구강룡.
그는 한때 무림쌍귀의 일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악명을 떨쳤던 고수 중의 고수였다.
매화검의 주인은 사망매화 오자운.
화산파 제일의 후기지수였다가 누명을 쓰고 무림공적이 된 이후 마교의 좌신장차사가 되는 걸물이다.
각자 사도의 호걸과 정도의 영웅이었던 그 둘이 일평생을 쓰던 무기가 바로 묵죽과 매화검이다.
이어 붙이려고 한들 서로 잘 맞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여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무릇 서로 다른 병장기를 이어 붙이려면 한쪽이 어느 한쪽보다 기가 세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의 기는 서로 팽팽하여 조금도 눌리지 않고 있으니, 이것을 찍어 눌러 하나로 융합시키려면 대단한 솜씨를 지닌 장인이 필요합니다. 아마 어지간한 대장장이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할 테지요.”
“본론이 뭐냐?”
추이가 물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제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보답을 하겠습니다.”
면사 위로 보이는 그녀의 두 눈이 곧고 맑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를 따라오신다면 이 두 무기를 하나로 만들어 드리지요.”
* * *
산 아래 흐르고 있는 강.
검은 자갈들이 깔려있는 강기슭에 차고 투명한 물결이 일렁인다.
길 가는 사람을 건네주고 삯을 받는 사공이 있어 강기슭에 배를 대어 놓았다.
산에서 내려온 추이와 여인이 배에 올랐다.
출렁-
유독 맑아서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 위로 사공이 배를 띄웠다.
여인과 추이는 각자 배의 양 끝에 앉았다.
과묵한 사공은 배 중간에 서서 노를 젓는다.
한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여인이었다.
“제 부모님은 천하제일의 대장장이셨지요. 두 분 다 말입니다.”
“…….”
“하지만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의 재주를 시기한 위정자(爲政者)의 폭거 때문이었지요.”
“…….”
“하나뿐인 오라비도 복수를 위해 길을 나섰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
“오직 저 혼자만 살아남아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죽으면 가문의 대가 끊어지고 부모님의 기술마저 영영 유실될 테니까요.”
“…….”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슬픔이 배어나고 있었다.
사공은 여전히 묵묵히 노를 저을 뿐이다.
그리고 추이 역시도 말이 없었다.
“…….”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추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인이 의아한 듯한 눈빛을 보내자 추이의 말이 짧게 이어졌다.
“본론은 언제 꺼내나?”
“……?”
추이의 말에 여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자 추이는 한번 더 첨언했다.
“일부러 산적에게 쫓기고, 그럴듯한 사연과 구실로 사람을 꾀고, 강가에 사공까지 미리 대기시켜 놓으면서까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냔 말이야.”
“…….”
그 말에 여인의 눈빛이 변했다.
…풍덩!
노를 젓던 사공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배 위에는 추이와 여인,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이윽고, 여인의 눈매가 면사 위로 부드럽게 휘어진다.
“어떻게 알았지?”
면사의 끈이 풀어졌다.
해(亥) 백정.
여인의 본색(本色)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창귀무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