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감조유적(減竈誘敵) (1)
타닥-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오른다.
세로로 쪼갠 대나무 살에 쥐 한 마리가 꿰였다.
오자운은 벗겨낸 쥐 가죽을 불가에 던져 넣었다.
지글지글지글지글……
쥐 고기가 불길에 노릇노릇 익어 가며 기름방울을 떨군다.
어두운 산중에 누린내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것만 먹고 얼른 움직이지. 해 뜨기 전에 다음 봉우리를 넘어야 하니.”
옆에 있던 추이가 말했다.
그는 불구덩이 속에서 큼지막한 지네 한 마리를 빼내 태연한 표정으로 씹어 먹고 있었다.
오자운이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쥐는 그렇다 쳐도 지네는 못 먹겠어. 비위가 상해.”
“다 똑같은 고기일 뿐이다.”
“똑같다니. 지네는 좀…… 너무 바삭거리잖나. 육즙도 안 나오고.”
“의외로 나와.”
“으…….”
추이는 툴툴거리는 오자운의 말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렸다.
야음에 젖은 산세가 보인다.
이곳은 청해로 곧장 통하는 산속의 비로(秘路).
인간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는 숨겨진 길이다.
최대 난관인 초장현의 성벽을 넘어왔으니 이제 천산산맥으로 직통하는 잔도가 코앞이었다.
이 산길은 그 잔도가 있는 단장애(斷腸崖)로 곧장 이어지는 길이기에 오자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 산맥만 넘어가면 마교의 총본산까지 직통이다. 거리는 멀지만 장애물이 없으니 사실상 긴 여행길만이 남아 있을 뿐. 거기서부터는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추이의 말에 오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데, 자네는 어떻게 이 길을 아는가?”
“전에 한번 와 봤거든.”
“전에? 언제?”
“…….”
오자운의 말에 추이는 입을 다물었다.
회귀하기 전의 지난 삶에, 당신과 함께 왔었다고 말해 봤자 믿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오자운은 이 산맥을 따라 가다가 추격대에게 뒤를 잡혔다.
그리고 마교의 총본산으로 통하는 천산산맥의 비도(秘道)를 눈앞에 둔 채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추이는 삭정이와 낙엽을 모아 만든 움막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구덩이 속의 모닥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와르르-
구덩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화광과 연기가 하늘 높이까지 치솟고 있었다.
그때. 오자운이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놓고 흔적을 남기면서 가는 건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도망자는 도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불은 연기나 빛, 냄새, 재 등의 부산물을 많이 남기기에 가능한 사용하지 않으며 발자국을 지우거나 나뭇가지를 꺾으며 지나가지 않도록 움직임을 조심한다.
하지만 추이는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껏 머문 장소마다 모닥불을 피웠고 그 잔해들을 여기저기 남겨 놓았다.
발자국을 지우지 않았고 나뭇가지는 그냥 뚝뚝 꺾으면서 지나갔다.
심지어 어떨 때에는 모닥불에 젖은 낙엽들을 던져넣어 일부러 연기를 피우기도 했다.
마치 추격대에게 움직인 경로를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이는 죽통에 길어 놓았던 물을 그대로 놓고 가거나 도마뱀 등을 잡아 구워 놓은 뒤 남겨 놓고 가기도 했다.
기껏 구해 놓은 식량과 식수를 내버리고 가는 것이다.
오자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허, 참. 이건 추격자들에게 나 여기 있소! 라고 소리치며 다니는 꼴이나 다름없군.”
더군다나 그 간격은 더욱 짧아지고 있었다.
처음 추이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했는데, 점차 한 개의 산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야영지를 만들었고, 이제는 산봉우리 하나를 넘을 때마다 두 개의 야영지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온 추이는 곧바로 잘 곳을 만들었고 근처에 또 다른 모닥불을 지폈다.
이번이 한 봉우리를 넘으면서 만든 세 번째 야영지였다.
오자운은 그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쫓기는 처지에 이렇게 잘 쉬는 것도 이상하군. 체력이 너무 남아돌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된 고기만 좀 먹을 수 있으면 딱이겠는데. 쥐나 도마뱀 말고 말이야.”
바로 그때, 오자운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수풀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꿰엑- 꿱!]
낙엽과 덤불 너머에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이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이제야 왔군.”
창귀들이 멧돼지의 옆을 맴돌며 낄낄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추이의 눈에만 보이는 광경이었다.
[꿰에에에에에에엑!]
이 거대한 멧돼지는 근방의 산봉우리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터줏대감.
산군이라 하는 커다란 범에게 잡혀서도 몇 번이나 살아 돌아온 전력이 있는 맹수였다.
그 증거로 놈의 얼굴과 옆구리에는 거대한 앞발에 당한 손톱자국이 훈장처럼 패여 있었다.
……하지만.
추이의 눈빛을 마주한 멧돼지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불길을 등지고 이글거리는 눈.
그 시뻘건 기운.
그것은 범. 아니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괴물의 것이었다.
[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멧돼지는 오줌을 지리며 뒷걸음질 쳤다.
본디 신체 구조상 뒷걸음질을 칠 수 없는 멧돼지이건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하지만.
콰악!
멧돼지는 도망칠 수 없었다.
꾸-우우욱……
추이의 발이 멧돼지의 엄니를 단단히 찍어 눌렀다.
아무리 힘을 주어 비틀어도 저 발에 밟힌 엄니를 빼낼 수가 없다.
엄청난 무게와 위압감.
산군에게 목덜미를 물렸을 때조차도 느껴 본 적 없었던 공포.
멧돼지는 감히 몸부림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달달 떨고 있었다.
이윽고, 정체불명의 시뻘건 괴물이 두 개의 송곳니를 드러낸다.
…콰득! 뻐-억!
추이는 두 개의 송곳을 꺼내 들어 그것으로 멧돼지의 두개골 위를 내리찍었다.
두개골에 구멍이 난 멧돼지는 그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고 즉사해 버렸다.
이에 대한 오자운의 반응은 꽤나 간결했다.
“오. 잘됐군. 고기를 먹을 수 있겠어.”
하지만, 추이는 멧돼지의 고기보다는 다른 곳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뿍!
멧돼지의 목에 송곳이 틀어박힌다.
추이는 송곳을 뽑아내고는 빨간 핏물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피를 바닥에 여러 번 뿌렸다.
촤악-
모닥불 가에 핏물이 쏟아진다.
그 옆에는 버리고 갈 육포와 물통들이 놓였다.
순간 오자운이 무릎을 탁 쳤다.
“아하! 그런 악랄한 흉계였군!”
지금까지 추이가 해 왔던 이상한 일들의 의도를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 * *
소쩍- 소쩍-
불여귀(不如歸)가 우는 산중.
어둠을 뚫고 몇 개의 그림자가 수풀을 가른다.
무림맹의 추격대를 이끄는 낭와진인 비무극.
그리고 남궁세가의 자월특작조를 이끄는 검화 남궁율이었다.
그들은 현재 사망매화와 삼칭황천을 뒤쫓고 있는 중이다.
“여기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습니다!”
앞서 달리던 척후가 보고를 해 왔다.
남궁율이 비무극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남하하면 공동파가 있습니다. 들러서 협조를 구할까요?”
“그건 후퇴하는 길이잖나. 불가하다.”
비무극은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초장현의 소관을 넘어가고 나면 특별히 경계가 삼엄한 곳이 없다. 다 험한 산지로 가로막혀 있어서 감시가 드물지. 그렇다는 것은 험한 산세를 극복할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관문들을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야.”
실제로 지금 추격대가 오르고 있는 산길은 어마어마하게 가파르고 험한 모양으로 굽이굽이 휘어져 있었다.
비무극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험지에서는 흔적을 놓치는 순간 영영 끝이다. 비만 한번 쏟아져도 단서들이 죄다 씻겨 내려갈 거야.”
그 말에 남궁율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극은 사망매화를 추격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화산의 오명을 기필코 자신의 손으로 씻어내겠다는 의지일까?
그의 눈빛은 사망매화의 흔적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더더욱 기이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비무극은 야영지의 흔적을 찾아냈다.
불타고 남은 잿가루 주위로 흩어져 있는 발자국.
비무극의 날카로운 시선이 모닥불이 있었던 곳 주위를 살폈다.
타다 남은 삭정이와 낙엽, 잿가루.
그리고 버려져 있는 도마뱀 고기와 대나무 물통.
비무극은 모닥불가에 반쯤 파묻혀 있던 도마뱀 고기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잘 건조되었군. 이 정도면 휴대하기에도 나쁘지 않았을 것인데, 굳이 버리고 가다니…….”
그다음은 대나무 통이었다.
비무극은 대나무 통을 집어 들고 몇 번 흔들었다.
꽤 묵직한 것이 안에 물이 꽉 차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궁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기껏 잡은 고기랑 길어 온 물을 그냥 두고 갔을까요?”
“왜겠나.”
비무극이 대답했다.
“놈은 기나긴 추격 생활, 그리고 패도회의 전쟁으로 인해 약해져 있을 터. 그런 와중에 이런 험한 산길을 도주로로 삼았으니 기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게야. 그쯤 되면 짊어지고 있는 식량과 식수 역시도 짐짝처럼 느껴지겠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식량과 식수를 버릴까요?”
“그것조차도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바로 그 순간. 반대편을 수색하고 있던 무림맹의 무사들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핏자국입니다!”
“……!”
비무극은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핏자국이 넓게 말라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정도 토혈이면 내상이 심각한 듯하군.”
비무극은 풀잎 위에 묻어난 핏덩이를 손가락으로 떠 보았다.
끈적하게 묻어나는 선혈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아직 완전히 굳지도 않았어. 쏟아진 지 얼마 안 됐다.”
그 말을 들은 사냥개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버리고 간 식량, 토혈의 흔적.
사냥감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무극이 외쳤다.
“놈은 식량과 식수를 짊어지고 가지도 못할 만큼 약해졌다! 그리고 산봉우리 하나를 넘는 동안 세 번이나 쉬어야 할 정도로 지친 상태다! 이렇게 피까지 토해 놓은 것을 보면 그냥 놔두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사매를 간살하고 도망친 악적을 이렇게 편히 죽게 놔두어도 되겠는가!?”
“아닙니다! 찾아내 죽여야 합니다!”
무림맹의 추격조들이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비무극은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놈은 약해져 있다! 우리들 중 한 명의 칼을 받아 내기도 버거운 상태일 것이다!”
그는 확신했다.
아직 굳어지지 않은 피, 열기가 남아 있는 잿가루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놈은 분명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부터는 각자 흩어져서 찾는다!”
그 말에 추격자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죽어 가는 사냥감.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숨이 끊어질 듯 약해져 있는 상대.
이런 상대는 먼저 주워 먹는 놈이 임자 아닌가.
“사망매화 오자운의 목을 치는 자가 이번 추격행의 일등공신으로 봉해질 것이야!”
비무극이 쐐기를 박았다.
채앵- 챙! 스르릉……
칼집에서 뽑혀 나온 칼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인다.
사냥개들이 각자 숲속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사사사사사삭-
저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로.
창귀무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