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55화 (55/110)

55화 참척(慘慽) (6)

까-앙! 땅!

쇠와 쇠가 맞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잘게 산화(散花)하는 소리.

오자운과 해백정, 검과 도끼가 맹렬하게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추이는 먼발치에서 그것을 소리로 듣고 있는 중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오자운이다.

내력이 꽤 많이 고갈되었다고는 하나 이 시점의 그가 누군가에게 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전생에서도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뚫고 마교까지 갔던 사람이니 이런 곳에서 쓰러질 리가 없다.’

남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제 자신의 일만 신경 쓰면 된다.

이 얼마나 속 편한 일인가.

“…….”

추이는 천천히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곳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피풍의 자락이 보였다.

패도회주 도막생.

이 일대 칼 찬 자들의 정점.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위사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레 같은 놈들. 아니, 벌레는 상대를 물어뜯기라도 하지.”

도막생은 자기 발치로 굴러온 머리통 하나를 응시했다.

“뒈져도 싸다. 명색이 특급위사라는 놈들이 동료들 틈에 외부인이 섞여 있었던 것도 눈치 못 챘으니.”

그러고는 그것을 발로 지그시 밟았다.

…으직!

사람 머리통이 마치 계란처럼 터져 으깨질 정도로 도막생의 발은 크고 무거웠다.

추이는 문득 부차루에서 죽은 패도육호들을 생각했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죽은 엽견(獵犬)들.

그리고 아래의 다섯 엽견을 이끌던 수장 사냥개.

‘……그 녀석도 저런 취급을 당했을까.’

추이는 도막생의 발아래 으깨진 머리통을 보며 물었다.

“일도(一刀)의 시체는 어떻게 했나?”

“일도? 그게 누구냐?”

“네 아들을 호위하던 이들의 수장 말이다.”

“……?”

도막생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한참이나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을 내놓았다.

“아. 그런 녀석이 있었지 참.”

별것 아니라는 말투.

어디 너절한 가게에서 대충 산 하찮은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우연히 되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 아들을 끝까지 호위하지 못한 죄를 물었다.”

“…….”

“시체는 능지처참해서 들개 먹이로 주었고 그 가족들은 싹 다 죽여 버렸지. 아, 딸년 둘은 수적들에게 팔아넘겼던가?”

“…….”

추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만 도막생의 두 눈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윽고, 추이가 움직였다.

“너는 오늘 죽는다.”

“하하하- 지금껏 수도 없이 들어 봤던 말이야.”

“죽어서 개 먹이가 될 것이다.”

“…….”

도막생 역시도 칼을 들어 올렸다.

곤과 대도. 둘 다 성인 장정 서넛이 들러붙어도 들기 힘든 중병기.

그것들이 또다시 팽팽하게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콰-앙!

쇳덩이와 쇳덩이가 맞부딪쳤는데 화약이 폭발한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불똥이 튀며 추이와 도막생이 또다시 수십 합을 겨루었다.

…퍽!

추이의 곤 끝이 도막생의 어깨를 스쳐 찔렀다.

의복이 찢어지며 약간의 살점과 핏물이 둥그렇게 휘어져 튀었다.

핏-

거대한 도의 칼끝이 추이의 뺨을 얇게 저미고 지나간다.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추이의 볼에 혈선이 생기며 새빨간 혈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막생이 추이를 밀어붙이며 말했다.

“힘은 내 쪽이 한 수 위로군. 당연한 말이지만.”

이윽고, 그는 칼을 아래에서 위로 거세게 올려쳤다.

떠-엉!

추이는 곤을 놓쳤다.

곤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위로 튕겨 올라갔다.

“핫하! 끝이다! 뒈져……!?”

도막생은 위로 쳐들었던 칼을 그대로 내리찍으려 했다.

추이가 곤을 잃었으니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추이에게는 무기가 여럿 더 있었다.

푸푸푸푸푸푸푹!

추이는 양손에 말아쥔 송곳으로 도막생의 가슴팍을 연거푸 난도질했다.

“크학!?”

도막생은 재빨리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지만 이미 가슴팍에는 새빨간 점들이 콕콕 찍혀 있는 상태였다.

‘얕았군. 몸이 두꺼웠어.’

추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송곳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때, 도막생이 자세를 낮추고 칼을 옆으로 틀었다.

큰 것 한 방이 온다.

추이는 직감했다.

“이번에야말로 토막을 내 주마.”

“…….”

추이는 망설였다.

도막생이 힘과 무게를 실어 전력으로 공격해 온다면 곤이 있어도 막아 내기가 힘들다.

하물며 이 얄팍한 송곳 두 정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스윽-

추이가 옆으로 이동했지만.

…탁!

도막생이 그 진로를 가로막았다.

“어딜 내빼려고.”

“…….”

무기가 없는 추이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스윽-

퇴로를 찾던 추이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움찔!

도막생의 반응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이다.

스윽- 스윽-

추이는 발끝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여 보았다.

도막생은 궁지에 몰린 쥐를 보는 고양이처럼 느긋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나 추이가 특정 방향으로 향하려 하는 순간마다 순간적으로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추이는 도막생이 경계하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폈다.

“……!”

그쪽에는 중앙 누각.

이 난전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은 채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막생이 종종 이상한 반응을 보였던 순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추이와 중앙 누각의 실내에서 싸울 때.

그때 도막생은 굳이 건물에서 나가자는 말을 했다.

두 번째는 추이가 중앙 누각을 등지고 싸웠을 때.

그때 도막생은 추이를 더 몰아붙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중단했었다.

세 번째는 해백정이 중앙 누각의 지붕 위에 올라가 있을 때.

그때 도막생은 해백정에게 쓸데없는 참견 말라며 화를 냈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

추이가 중앙 누각 쪽으로 도망치려 하는 것을 도막생은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저쪽에 뭔가가 있나 보군.’

그렇다면 더더욱 중앙 누각 쪽으로 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도막생이 눈에 불을 켜고 추이의 발끝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추이는 몸을 슬쩍 기울여 중앙 누각을 등졌다.

그러자.

“…….”

도막생은 방금 전까지 준비하던 큰 일격을 보류했다.

아마 참격의 피해가 추이를 넘어서 그 뒤쪽까지 미칠 것을 경계하는 모양.

스윽-

…탁!

추이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곧바로 반응하는 도막생의 칼끝.

저것을 뚫고 중앙 누각으로 도주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꿈 깨라. 너는 절대로 도망 못 간다.”

도막생이 추이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하지만 추이는 여전히 태연했다.

“나는 간다.”

“개소리.”

“너는 거기 그대로 있어라.”

“……?”

도막생이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

바로 그때.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강하고 빠른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도막생의 머리 위에서, 아주 빠르게 불어오는 소리였다.

“……!”

도막생이 미처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릴 틈도 없었다.

빠-직!

추이의 곤이 떨어져 내렸다.

아까 전에 도막생의 칼에 맞아 허공으로 날아갔던 곤이 시간이 지나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면에 수직이 되게끔 일자(一字)로 떨어져 내린 곤.

오직 추이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도막생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 같은 존재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영문도 모르게 맞아 버린 검은 벼락.

그것은 도막생의 이마 가죽을 찢는 것으로 시작해 그의 코를 완전히 으깨 버렸고, 더 나아가 입술의 가운데 살점을 뭉텅이로 떼어 놓았으며, 가슴팍의 겉옷과 피부들을 일자 모양으로 뜯어낸 뒤 땅속에 깊게 박혀 버렸다.

…푸슉! …푸슉! …푸슉! …푸슉! …푸슉! …푸슉! …푸슉!

고통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피분수가 일어났다.

시야를 완전히 가려 버릴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핏물.

바로 그 틈을 타, 추이는 중앙 누각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안 돼!”

뒤에서 도막생이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역시나, 그는 추이가 중앙 누각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이는 곤을 버린 채 누각으로 뛰었다.

콰쾅!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간 뒤 곧장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 올랐다.

“꺄아아악!”

몇몇 시비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추이는 그녀들을 무시한 채 곧바로 상층으로 향했다.

그때.

“……서라!”

도막생이 추이를 뒤쫓아 왔다.

그는 큰 칼을 휘둘러 계단에 있던 시비들의 허리를 한순간에 양단해 버렸다.

흰 화폭에 피어난 붉은 난처럼, 시비들의 목숨이 벽에 흩뿌려져 튀었다.

이에 대한 도막생의 감상은.

“걸리적거리는 것들!”

이 한마디뿐이었다.

달리는 경로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시비들을 토막 내 버리는 도막생의 무자비한 손속에는 추이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윽고, 추이는 삼 층에 있는 어떤 공간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도막생의 공격이 뚝 끊겼다.

“……?”

추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도막생이 이를 악문 채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공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만 청소를 하지 않은 듯 먼지가 얇게 쌓여 있을 뿐.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먹다 남은 음식과 마시다 만 차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이부자리도 흐트러진 채 그대로다.

순간, 추이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죽은 아들의 방.

이곳은 도좌윤이 기거하던 공간이었나 보다.

도막생은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아들이 머물던 공간을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툭-

추이는 달리는 와중에 탁자 위에 있던 찻잔을 건드렸다.

…쨍그랑!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자.

“안 돼! 안 돼!”

뒤에서 도막생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아들이 죽고 난 뒤 그대로 보존시켜 두었던 아들의 공간이 망가지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물론 그것은 추이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이었다.

와장창! 콰쾅! 우지끈!

추이는 가로막는 기물들을 죄다 부수며 지나갔다.

“안 돼! 그러지 마라!”

그럴 때마다 도막생은 뒤에서 짐승 같은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시비들은 가차 없이 죽이더니 이런 물건 따위에 집착하는가?’

오자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추이는 계속해서 상층을 향해 달렸다.

이윽고.

누각의 최상층으로 온 추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머, 멈춰! 멈춰라! 거기는 안 된다! 진짜로 안 돼!”

뒤에서 도막생이 외쳤다.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다급함과 간절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추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의 중앙에 놓여 있는 관짝으로 손을 뻗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꽃과 금붙이들로 가득한 관 속에 자는 듯 누워 있던 시체.

바로 도좌윤이었다.

이윽고, 추이는 도좌윤의 시체를 끄집어냈고 그 옆에 함께 누워 있던 보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때쯤 해서 도막생이 방문 앞에 서게 되었다.

“무, 무, 무슨 짓이냐!? 뭘 하려는 게야!?”

“바로 이런 짓.”

추이는 칼을 기울여 도좌윤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차갑게 굳은 시체의 목.

관절이 뻣뻣하여 잘 구부려지지도 않는다.

칼날이 피부를 살짝 뚫고 들어갔지만 피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도막생은 어쩔 줄 몰라 어버버 입술만 떨 뿐이다.

그 시점에서 추이가 말했다.

“칼 버려. 아들 두 번 죽이기 싫으면.”

죽은 자를 인질로 삼아 산 자를 협박하는, 실로 기묘한 인질극이었다.

창귀무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