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참척(慘慽) (4)
패도회의 특급위사들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우선 패도회에서 자체적으로 길러낸 무사들, 그중에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이들을 가리고 가려 뽑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키가 육 척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손으로 쌀 열 말 정도는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또한 탁주 한 동이를 중간에 끊지 않고 비운 직후, 자기 키 정도 되는 높이의 담장을 손을 쓰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내공 없이 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서 내공의 양과 깊이는 또 다른 조건이다.
이것이 패도회의 이급위사가 되기 위한 조건.
이 과정을 통과한 이들은 일급위사가 되기 위한 시험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우선 선임자 두 명과 맨손 격투를 벌여 반 시진을 버텨야 한다.
그리고 칼로 자신의 얼굴에 자해를 하여 한 뼘 이상의 칼자국을 내는 것으로 근성을 증명하는 마지막 절차를 거친다.
여기까지가 패도회의 일급위사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게 된 일급위사는 특급위사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특급위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년간의 낭인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들은 낭인 생활 중에 일정 금액 이상을 모아 오거나 아니면 회에서 지목하는 몇몇 인물들의 머리를 잘라 와 바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몸에 세 뼘 이상의 칼자국이 새로이 생겨나 있어야 비로소 모든 검증이 끝난다.
이 시점부터 비로소 패도회의 특급위사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것이다.
* * *
“…….”
추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서른두 명의 특급위사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망치에 머리를 맞고도 투지가 꺾이지 않은 두 명.
그들은 망치가 두개골을 부수기 전 절묘하게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래서 머릿가죽만 북 찢겨 나가는 선에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추이의 손에 멱살을 잡힌 이는 눈알에 송곳이 박힌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놔, 놔! 이 새끼!”
그는 긴 칼을 버리고 추이의 목을 물어뜯으려 들었다.
“……근성은 인정한다.”
추이는 위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아래턱이 부서진 위사가 바닥에 드러눕기 전, 추이는 무릎으로 그의 목을 찍어눌렀다.
…우득!
추이의 무릎에 깔린 위사는 목이 부러져 죽어버렸다.
“이제 서른하나.”
여전히 무감정한 추이의 목소리.
하지만 추이를 포위하고 있는 위사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차앙- 휘익!
시뻘건 칼날들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추이는 곤을 길게 뻗어내 크게 한 바퀴 휘둘렀다.
사나운 바람이 일어 위사들을 멀찍이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사납고 용맹했다.
그리고 저희들끼리의 손발도 잘 맞아서 합격술을 펼치는데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부웅-
수많은 칼들이 가로, 세로, 위, 아래, 종횡무진으로 휘둘러진다.
마치 칼날을 실낱 삼아 촘촘하게 짠 그물을 보는 것 같았다.
기나긴 낭인 생활을 거쳐 온 이들이니만큼 난전에 익숙했고 변수에 초연하다.
하나하나가 일당백의 거친 사나이들.
그들은 피라미처럼 죽어 나자빠지지 않았고 하나하나가 질기게 살아남았다.
……다만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들어와.”
상대가 추이라는 사실이었다.
뻐-억!
추이가 집어던진 곤이 맨 앞에 있던 위사의 몸을 때렸다.
위사는 황급히 왼쪽 팔꿈치를 들어 올려 곤을 막아 냈으나 왼팔의 뼈가 산산조각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무기를 버렸겠다!?”
뒤에 있던 위사가 칼을 들고 추이의 등팍을 노렸다.
하지만.
…쭈우욱!
추이는 곤 끝에 묶어 두었던 잠사를 확 끌어당겼다.
곤이 날아갔던 궤도 그대로 되돌아와 다시 뒤로 쏘아져 나간다.
앞에 있던 위사의 팔뼈를 부숴 버렸던 곤은 뒤에 있던 위사의 가슴팍을 함몰시켰다.
“크학!?”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위사.
최후의 순간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기에 즉사는 면한 것 같았지만…… 저대로라면 반 각을 넘기기 전에 황천행이다.
바로 그 순간.
추이가 왼팔이 부러진 위사에게 달려들었다.
푹-
송곳이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눈알 하나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며, 위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이제 스물아홉.”
“…….”
“안 들어오나?”
추이의 말에 위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제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어 온 검호들이라지만 지금 추이의 기세는 도저히 인간이 감당해 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칼로 이루어진 그물을 찢고 나오는 거대한 바다괴물.
오래된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남해대해(南海大蟹)의 모습이 이러할까?
“으아아아! 이 괴물!”
한 용맹한 위사가 있어 추이를 향해 돌격했다.
추이는 또다시 곤을 뻗었다.
작살처럼 내질러진 곤이 위사의 팔을 노렸다.
휘리릭-
위사는 몸을 회전시켜 추이의 곤을 피하려 했으나.
꽈아악……
추이의 곤은 위사의 옷소매를 찢고 들어가 반대편 옷소매로 튀어나왔다.
마치 빨랫감이 옷걸이에 걸리게 된 모양새.
위사는 자신의 두 팔을 길게 옥죄고 있는 곤과 피풍의 자락 때문에 마치 게와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당황한 위사가 옷을 찢고 탈출하려 하였으나.
짜-각!
뒤이어지는 망치에 맞아 골통이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스물여덟. 안 들어올 거면 내가 간다.”
추이가 앞으로 나섰다.
온몸에서 흩뿌려지는 핏방울이 붉은 수증기와 섞여서 더더욱 기괴해 보였다.
“제기랄! 이 마귀 놈아!”
가까이에 있던 위사가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도(刀)가 아닌 조도(爪刀)를 사용했다.
네 손가락 위로 뻗어 나간 칼날이 추이의 얼굴을 노린다.
하지만 추이는 태연하게 손을 뻗었다.
추이의 손가락이 조도의 날 사이로 들어가 위사의 손가락과 깍지를 낀다.
…뿌드득! 우지직!
추이의 손가락 사이에 잡힌 위사의 손가락들이 거꾸로 꺾여 부러졌다.
날이 거꾸로 향하게 된 조도를 추이는 힘을 주어 밀어붙였다.
꾸우우우우우욱- 푸욱!
조도가 결국 제 주인의 목을 관통했다.
추이는 시체들로 자신의 몸을 가린 채 짧게 말했다.
“스물일곱.”
“…….”
그 무시무시한 기세를 마주한 위사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몇몇 이들은 저도 모르게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퍼-억!
포위망 뒤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도막생이 뒷걸음질 치던 위사 셋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린 것이다.
그는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어찌 패도회의 무사들이 도망갈 생각을 한단 말이냐! 내 아들을 위한 성전을 욕보이는 놈은 내 손으로 직접 죽이겠다!”
주인의 핏발 선 눈이 사냥개들을 향했다.
“내가 무서우냐, 저놈이 무서우냐? 저놈은 너희들의 목숨줄만을 끊으려 들지만 나는 너희 가족들의 목숨줄까지 쥐고 있다!”
본디 사냥개들은 눈앞의 범보다 주인의 회초리를 더 두려워하는 법이다.
하물며 가족들까지 죄다 목줄을 잡혀 있는 바에야 더더욱.
“…….”
“…….”
“…….”
도막생의 으름장을 들은 위사들이 다시 한번 칼을 고쳐 쥐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살벌하게 벼려진다.
한편, 그것을 본 해백정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부하를 좀 더 소중히 해야 하지 않아? 아까운 실력자들을 너무 쉽게 죽이네.”
“졸(卒)을 신경 쓰다가는 왕(王)이 잡히는 법이야. 그리고 소모품은 결국 소모품. 아껴 봤자 언젠가는 똥이 된다.”
도막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그 말을 들은 해백정은 구역질이 난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추이의 표정은 태연했다.
“이제 스물넷.”
모가지 세 개가 제 발로 달아나 버렸으니 추이로서는 이득이다.
포위망의 넓이가 아까보다 더 좁아졌다.
그러나 독전관(督戰官)을 자청한 도막생의 칼질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까-앙!
추이에게 날아드는 그물망은 넓이가 줄어든 대신 그물코와 그물코의 사이가 훨씬 더 촘촘하고 빡빡해졌다.
위사들의 칼질에 한층 더 독이 올랐다.
곤이 휘둘러질 때마다 수거되는 핏방울의 양도 현저히 적어졌다.
추이는 오십 합을 전개하는 동안 다섯 개의 모가지를 날렸으나 그 이후 일백 합을 전개하는 동안 하나의 모가지도 날리지 못했다.
위사들은 팔다리가 부러질지언정 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들러붙어 추이의 몸에 잔상처를 내고 체력을 깎아 놓았다.
추후 참전한 도막생이 그의 목을 날리기 수월하게끔 말이다.
싸움이 점점 처절해진다.
그러는 동안 도막생은 여유롭게 포위망 밖에 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여기가 네놈의 묫자리다. 삼칭황천. 네놈의 살점은 제사상의 편육으로, 내장은 젓갈로, 뼈는 잔가시 하나까지 죄다 발라내서 내 아들의 묘 밑 장식으로 만들어 주마.”
저주에 가까운 독백(毒白)이 이어졌다.
확실히 그 말대로 추이는 점점 사지를 향해 밀려나고 있었다.
어찌어찌 남은 위사들을 모두 죽인다 해도 그 뒤에 이어질 도막생과 해백정의 합공에는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
여전히 추이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해백정은 그것이 못내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노림수가 있나?’
그녀가 속으로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이만하지.”
추이의 입이 열렸다.
“더는 시간이 아까워.”
그 말에 위사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뒤에 있던 도막생이 피로 물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미친 새끼. 누구 맘대로 이만해, 이만하길? 네놈이 뒈질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추이의 말은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대답은 도막생도, 해백정도, 패도회의 위사들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알겠다.”
동시에, 포위망의 가장 후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도막생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았던 포위망의 최외곽.
칼로 이루어진 그물의 맨 끄트머리.
…틱!
그곳의 실밥 하나가 뜯어져 나왔다.
제아무리 촘촘하게 짜인 그물코라고 해도 가장자리의 마감이 허술하다면 실오라기는 결국 풀어질 수밖에 없다.
칼침의 포위망 말석, 가장 바깥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팔랑-
바람에 흩날리는 한 닢의 꽃잎.
옅은 혈향과 함께 흩날리는 그것은 분명 붉은 매화꽃이었다.
“……?”
위사들은 자신의 코끝을 스치는 매화꽃잎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꽃의 비가 내린다.
수많은 꽃잎들이 포위망 가장 말석에 서 있던 위사의 칼끝에서 흩뿌려졌다.
그리고 이내, 꽃잎은 검루의 방울이 되어 수많은 이의 목에서 새로운 매화꽃들을 피어나게 만든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정확히 스물세 번의 소리.
그리고 하늘 높이 떠오르는 스물세 개의 목.
월광 아래 새빨갛게 피어난 매화들은 분명 일시적이었고, 휘발적이었으나, 그만큼 더 아름다웠다.
패도회의 특급위사 스물세 명이 단 한순간에 몰살당해 버렸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서 있던 특급위사 하나가 칼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칼침의 그물을 와해시킨 한 올. 가장 후미의 배신자.
그는 비로소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복면을 벗어 던졌다.
“꽃이 만개하는 데는 원래 시간이 좀 걸린다네.”
사망매화(死亡梅花) 오자운이었다.
창귀무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