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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51화 (51/110)

51화 참척(慘慽) (2)

추이와 도막생은 누각들의 중심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 있던 시비들은 눈치껏 중앙에 있는 누각으로 들어갔다.

현재 멀쩡한 누각은 그것 하나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기도 했다.

츠츠츠츠츠츠츠……

추이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남궁팽생을 잡아먹고 도달한 이올(彛兀) 제이 층계.

아직 혈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기에 이것이 마공임을 아는 사람은 없다.

도막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이한 무공을 쓰는구나. 사술이냐, 마공이냐?”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봐라.”

추이는 짧게 대답했다.

익히는 방법이 부정하고, 익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창귀칭은 마공이 맞다.

하지만 추이는 후자의 단점을 완전히 극복한 상태.

그리고 전자의 경우는 이미 각오하고 있는 바다.

일모도원 도행역시.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순리를 거슬러 가다.

추이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부족원들의 면면.

그들에게 전수받았던 고유의 호흡.

여섯 시진(時辰) 동안 자연을 들이쉬고, 여섯 시진 동안 자연을 내쉬는 기이한 운기토납법.

후우우우욱……

추이는 들이마셨던 숨을 내뿜었다.

그럴 때마다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들끓던 창귀들의 광기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뜨거움은 그대로이되 터지고 폭발하는 것이 잠잠해지니 두개골 속에 있는 미세한 혈맥들이 상처입지 않고 그대로 보존될 수 있다.

그러니 미치거나 산송장이 되지 않고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추이의 호흡법을 본 도막생이 말했다.

“묘족의 호흡인가. 동두철액(銅頭鐵額)을 만드는 심법이겠군.”

“묘족을 아나?”

“알지. 남쪽의 더러운 오랑캐들 아닌가.”

도막생은 히죽 웃었다.

“내 부친께서는 군인이셨다. 남쪽의 전장에서 전사하시기 전까지 더러운 오랑캐들을 쓸어버리셨지. 네 부모형제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추이는 조금 놀랐다.

도막생은 의외로 세외의 무공에 대해서 박식했던 것이다.

물론 적이 똑똑해서 추이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너는 꼭 죽여서 창귀로 만들어야겠구나.”

“……?”

도막생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순간, 추이가 앞으로 쇄도했다.

떠-엉!

곤과 대도가 한데 만나 마치 거대한 종소리와도 같은 울림을 빚어냈다.

“……!”

추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곤귀의 곤은 추이의 손에 들어온 이래 자신만큼이나 무거운 병기를 처음 만나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징징징 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

“……!”

도막생 역시도 놀라고 있었다.

그의 별호는 무려 거력패도(巨力覇刀).

팔 척에 육박하는 키, 소 한 마리를 하루 만에 먹어 치울 정도로 장대한 몸집, 그리고 산도 쪼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큰 칼을 들고 다녀서 붙여진 별호.

이처럼 도막생은 가히 호북성의 패자를 자처할 만한 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고수의 일합을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당당하게 되받아치다니.

그것도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그것은 증오심이나 복수심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놀랄 만한 것이었다.

까앙! 깡! 쩌-엉!

중병기와 중병기가 만나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주변에 있던 수석들이 퍽퍽 깨져서 모래처럼 흘러내렸고 나무들은 껍질들이 세로로 쩍쩍 갈라져 나목(裸木)이 되어 버렸다.

키리릭-

도막생은 엄청난 무게의 칼을 깃털처럼 다루었다.

물론 추이 역시도 그랬다.

찌르고, 막고, 휘두르고, 되치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다.

추이와 도막생은 무공을 모르는 보통 사람이 눈 한 번 깜빡이는 동안에도 십수 합을 주고받고 있었다.

콰-쾅! 쩌저저저저적!

충격파를 버티지 못한 지면이 몇 단계에 걸쳐 주저앉았다.

이제 추이와 도막생은 마치 원형의 계단으로 둘러싸인 구덩이 속에서 싸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쿨럭-

내력의 과부하를 이기지 못한 도막생이 피를 토했다.

추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사납게 대치했다.

“뒈져라!”

도막생의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기가 허공으로 촤악 흩뿌려진다.

추이는 곤 뒤에 숨은 채로 앞을 향해 찌르기를 날렸다.

콰-삭!

시커먼 곤이 길게 뻗어 나가 도막생의 수염 끝을 찢어 버렸다.

도막생은 고개를 뒤로 젖혀 곤을 피했고 곧장 칼을 회수하여 추이의 팔을 자르려 들었다.

그 순간.

퉷-

추이가 뱉은 침이 도막생의 왼쪽 눈에 맞았다.

“큭!?”

처음엔 그저 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도막생은 눈이 타들어가는 듯한 매운맛과 동시에 몸속의 내공이 천천히 말라붙는 것을 느꼈다.

“뭐냐!? 무슨 독이냐! 이 오랑캐 놈아!”

도막생의 눈이 멀자 큰 칼도 눈이 멀었다.

눈먼 칼이 미친 듯이 주변을 쪼개 부순다.

하지만 추이는 칼이 지나가고 남은 빈 공간에 유령처럼 스며들어 왔다.

“네 아들도 이것에 당했지.”

“……!”

추이의 한마디에 도막생의 기혈이 벌컥 역류했다.

“개 같은 놈이 감히……!”

도막생의 칼에서 주홍빛 도루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큰 것이 온다.

추이는 반쯤은 이성, 나머지 반쯤은 본능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번-쩍!

추이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빛의 궤적이 있었다.

그것은 드넓은 호수 쪽으로 날아가 서쪽에 있던 다리를 대각선으로 쪼개어 부숴 버렸다.

콰콰콰콰콰쾅! 철-썩!

파괴된 다리가 호숫물 속으로 가라앉으며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냈다.

“아주 다 때려 부수는군.”

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곤을 잡고 도막생을 향해 휘둘렀다.

뻐-억!

곤이 도막생의 어깨를 때렸다.

큰 동작으로 휘두른 터라 빈틈이 많았다.

도막생은 황급히 칼을 회수했지만 이미 추이의 곤에 의해 어깨와 허벅지를 얻어맞은 상태였다.

‘보통 놈이었으면 팔다리가 잘렸겠지만…….’

추이는 곤에 얻어맞은 도막생의 상태를 관찰했다.

어깨와 허벅지에 까진 상처만이 조금 남았을 뿐, 도막생은 여전히 꼬리에 불 붙은 황소처럼 드세다.

‘과연 온 힘을 다할 수밖에.’

추이는 모든 창귀들을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흑색의 곤 끝에서 곤의 원래 주인이 피눈물을 흘린다.

곤귀 구강룡.

그의 얼굴이 곤 끝에 어른거리자 도막생이 흠칫 놀랐다.

‘뭐지? 방금 사람 얼굴이 보였는데…….’

심지어 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언젠가 사도련에 갔을 때 만났던 적이 있는 인물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퍼퍼퍼펑!

추이가 곤을 휘둘러 바닥을 때렸고 모래알과 자갈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놈! 아까부터 계속 잔재주만 부리는구나!”

도막생은 칼을 옆으로 세워 자신에게도 날아드는 산탄들을 막아 냈다.

물론 다 막을 수는 없었고 일부가 그의 몸에서 핏방울을 뽑아내고야 말았다.

그것을 보며, 추이는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뭐지?’

방금 전의 일격은 함정이었다.

흙모래를 쏘아 보내 몸을 피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 예상 이동 경로에 반 박자 먼저 곤을 찔러 넣는, 그저 얕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막생은 그 얕은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아니, 걸려들다 못해 피를 보기까지 했다.

수담(手談)으로 치면 반집을 이득 보기 위해 던진 끝내기 수에서 돌 하나를 거저 잡아 버린 꼴.

즉 두 집을 이득 보았다는 말이다.

‘따로 뭔가 노리는 게 있나?’

추이는 곤을 휘둘렀다.

따-앙!

예상대로 도막생은 칼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추이는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그리고 아까처럼 곤으로 바닥을 쓸어 자갈들을 쏘아 냈다.

“이놈!”

도막생은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다.

다만 칼을 들어 산탄들을 막아 냈을 뿐.

몸이 점점 피투성이로 변하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말이다.

‘숨겨 놓은 노림수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곤을 들고 직접 들어가면 도막생은 최선을 다해 반격해 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거리를 벌려 주변 지형지물을 부수면, 놈은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서 공격을 몸으로 다 받아 내는 것이다.

‘뭘 노리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면 단지 내 안목이 그것뿐인 것이겠지.’

추이는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부우우웅!

곤귀의 곤이 휘둘러져 도막생의 허리를 노렸다.

도막생은 칼을 들어 추이의 곤을 막아 냈다.

힘 대 힘의 싸움.

그 구도에서 승기를 거머쥔 쪽은 바로 도막생이었다.

우드드드득!

곤을 말아쥐고 있는 추이의 손아귀에서 거죽이 벗겨진다.

팔뚝의 실핏줄들이 죄다 터져 나가며 시뻘건 피분수가 일어나고 있었다.

…콰쾅!

도막생은 추이를 밀어붙였다.

도막생의 내력이 폭주하며 추이의 내력을 밀어냈고 그 때문에 추이는 중앙 누각의 벽을 부수고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추이는 곧바로 뒤이어질 추가타에 대비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날아올 것인가. 머리? 목? 허리?

어디가 되었든 간에 한 움큼 정도의 살점을 내줄 각오를 하며, 추이는 반격의 기회를 찾았다.

하지만.

“……?”

뒤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부서진 벽의 잔해를 헤치고 일어난 추이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 여유롭게 서 있는 도막생이었다.

그는 아까보다 더 멀찍이 떨어진 곳,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가 느긋한 태도로 섰다.

다만 눈알에 곤두서 있는 핏발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너무 약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구나. 제대로 덤벼 봐라, 오랑캐야.”

“…….”

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절호의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바로 뒤쫓아 오지 않고 되레 거리를 벌렸을까.

그리고 저 어설픈 도발은 또 뭐고.

함정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하다.

함정은 이기기 위해서 파놓는 추가적인 수단일 뿐, 함정을 파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굳이 그리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쥐를 죽이기 전에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까?

그것도 아니다.

추이와 도막생의 실력은 그 정도까지 일방적으로 차이 나지 않는다.

아까도 비유했듯, 수담으로 따지자면 반집의 차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어냐.’

도막생이 노리고 있는 바를 추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것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호재였다.

…콰쾅!

추이는 바닥을 박차고 누각 안에서 뛰쳐나왔다.

쩌-엉!

곤과 도가 맞부딪치며 무수한 불똥이 튀었다.

쉬릭- 쉬리리릭!

추이의 곤이 뱀처럼 휘어지며 도막생의 몸 이곳저곳을 공격했다.

도막생은 정신없이 계속 뒤를 향해 물러날 뿐이었다.

반격할 생각도 없이 그저 뒤로 피하기에만 급급하는 도막생.

추이는 기회다 싶어 곤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곤끝이 회전하며 쏘아질 때마다 도막생의 커다란 몸 곳곳에서 주먹만 한 살덩이가 뚝뚝 떨어져 나온다.

바로 그 순간.

키-잉!

추이는 목젖 아래를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추이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 주었던 육감이었다.

…팟!

추이는 도막생을 두들기던 곤을 거두고는 다시 누각 쪽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붉고 푸른 참격이 열십자로 그어졌다.

방금 전까지 추이가 서 있던 곳이었다.

“이런, 아깝네.”

이윽고. 새로운 그림자 하나가 중앙 누각의 위로 내려앉았다.

사내처럼 짧은 머리카락, 콧잔등을 가로지르는 칼자국.

장강수로십이채의 해백정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붉고 푸른 쌍검을 꼬나 쥔 채 도막생을 향해 눈짓했다.

“이봐, 패도회주. 협력하기로 한 거 아직 유효하지? 저놈 시체는 반반씩 나누자고.”

“…….”

해백정의 말을 들은 추이는 생각했다.

‘패도회주에 이어 장강의 천두(千頭)라.’

앞으로의 일이 살짝 더 귀찮아지겠다고.

창귀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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