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49화 (44/110)

49-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3)

49-

하(河)는 황하를 뜻하고, 강(江)은 장강을 뜻하며, 호(湖)는 동정호를 뜻한다.

패도회의 장원 중앙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호북성의 명물 동정호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풍경의 이 작은 호수는 뱃속에 하나의 커다란 인공 섬을 품고 있었다.

그 섬과 연결되어 있는 다리는 총 두 개.

하나는 서쪽으로 통하는 다리였고 다른 하나는 동쪽으로 통하는 다리였다.

“서쪽.”

“그럼 나는 동쪽으로 가지.”

추이는 서쪽으로, 오자운은 동쪽으로 향했다.

병법 삼십육계 중 승전계의 제 6계,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였다.

“이놈들! 어림없다!”

패도회의 무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덤볐다.

하나하나가 황춘과 같은 이급위사들이었다.

···빠각!

추이의 손에서 뻗어나간 곤이 한 놈의 목을 포(勹)자 모양으로 꺾어놓았다.

목이 꺾인 놈의 뒤로 세 놈이 뛰어오른다.

우렁찬 기합과 함께 칼을 찔러넣는 셋.

합이 척척 맞는 것을 보니 이런 싸움을 하루 이틀 해본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칼이 최대 간격으로 뻗어나오기 전에, 추이의 곤이 그 싹을 잘라놓았다.

우드드드드득!

추이가 곤을 가로로 길게 휘두르자 세 명의 허리가 동시에 부러져나갔다.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칼을 휘두르는 놈이 있었다.

추이는 곧바로 몸을 뒤로 뺀 뒤 곤의 반대쪽 끝으로 그의 얼굴을 찔러 두개골을 박살 냈다.

뻐-적!

피와 뇌수가 뒤섞여 튄다.

그것들은 추이의 몸을 적시고 있었던 똥물을 새로운 색깔로 물들여 씻어내고 있었다.

“고수다! 합공해라!”

살아남은 이들이 칼날을 서로 교차했다.

그것은 마치 날로 이루어진 그물처럼 추이의 몸을 옥죄여왔다.

하지만.

부-웅!

추이는 그저 곤을 가로로 휘두르는 투박한 동작 하나만으로 칼날의 그물을 죄다 찢어발겼다.

뻐걱- 우지직!

위사 하나의 머리통이 또 깨져나갔다.

동시에 술상이 반으로 쪼개지며 자리는 완전한 난장(亂場)으로 변했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쏟아지는 피의 소나기.

그것을 맞는 위사들은 눈앞에 있는 존재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그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

“뭐해? 안 오고.”

“······.”

“내가 갈까?”

공포.

압도적인 재앙.

단지 똥물이 좀 튀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추이가 곤을 들어올리자 위사들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었다.

저것에 맞으면 머리통은 달걀처럼 부수어지고, 허리뼈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분질러진다.

심지어 바람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점이 몇 움큼씩 떨어져 나갈 정도로 빠르고 무거웠다.

···쾅!

곤이 흑색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나간다.

비록 창날이 없어 창대만이 있는 꼴이지만 이쯤 되면 날붙이가 달려있든 달려있지 않든 상관없는 일.

한 위사가 칼을 들어 추이의 곤을 막았으나.

까앙- 퍽!

곤은 칼을 부수고 들어가 그대로 위사의 가슴팍을 움푹 함몰시켜 놓았다.

부러진 갈비뼈들이 살을 찢고 나온다.

추이의 곤에 가슴을 때려맞은 위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우당탕탕!

또 하나의 시체가 술상 위를 뒹군다.

머리가 깨지고, 가슴이 함몰되고, 목이 꺾이고, 허리가 부러져 죽은 시체의 수가 벌써 열 다섯 구.

일다경(一茶頃)은커녕 찻물 한두 모금 들이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웬 소란이냐!”

“저쪽! 다리 너머에 침입자가 있다!”

“다리를 건너라! 침입자를 잡아 죽여라!”

서쪽 다리의 건너편으로 패도회의 무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으쓱-

추이는 어깨를 한번 움직였다.

그러고는 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타다다다다다닥!

우아하게 휘어진 교각 위로 발자국 소리들이 요란하다.

추이는 적들의 머릿수와 수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다리 건너편의 위사들은 모두 흑색 피풍의에 붉은 도를 역수로 꼬나쥐고 있다.

가슴팍에는 금실로 수놓아진 ‘일급위사(一級衛士)’라는 글귀가 보였다.

추이는 혀를 찼다.

'이번 놈들은 다소 귀찮겠군.'

적들의 면면이 하나같이들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면 최정예 중의 최정예들이 분명했다.

이윽고, 다리 양쪽에서 건너오기 시작한 이들이 중앙에서 서로 맞닥뜨렸다.

까-앙!

추이의 곤과 맨 앞에 있던 위사의 도가 부딪쳤다.

“······!”

추이는 자신의 곤이 중간에 막힌 것을 보며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곤을 받아낸 위사는 칼을 놓친 채 손목을 부여잡고 물러났으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싸웠던 이급위사들처럼 일격에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여러 명의 위사들이 칼을 휘둘렀다.

부웅- 쩌엉!

추이는 곤을 한바퀴 돌려 칼끝들을 쳐냈다.

그리고는 다리의 난간을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뛰었다! 허공이야!”

“놈이 떨어질 때 죽여라!”

“곧바로 칼침을 먹여주지!”

패도회의 일급위사들이 추이의 숨통을 끊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풍덩!

추이는 다리의 난간을 밟고 그대로 호수로 뛰어들었다.

위사들은 표정을 찡그렸다.

“헤엄을 쳐서 도망칠 셈인가?”

“어림없는 소리. 아까 그놈이 든 곤이 얼마나 무거운데.”

“맞아. 난 한번 칼을 맞댔던 것만으로도 손목뼈에 금이 갔어.”

추이가 무슨 생각으로 호수에 뛰어들었는지 위사들은 알지 못했다.

이 호수는 보기에는 얕아 보이지만 깊이가 무려 이 장이나 되기 때문에 추이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불룩-

위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던 강물의 수면 위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잉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대가리를 내밀고 입을 뻐끔거린다.

그것도 잠시.

부우우우욱!

강물 위가 마치 거대한 종기처럼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콰-콰콰콰콰쾅!

마치 긴 창처럼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콰직! 퍼퍼퍼퍼펑!

다리 위에 있던 위사 하나가 갑자기 터져나온 물기둥에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주변의 난간은 마치 무언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에 물어뜯긴 것처럼 푹 패여 너덜너덜해졌다.

위사들은 그제야 추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게?”

“조심해! 물 밑에서 뭔가 온다!”

“노, 놈이 찌르기를 날리고 있어!”

그들의 말대로였다.

‘······.’

추이는 곤에 무게에 의지해 강 밑바닥으로 내려섰고, 그 자리에서 수면 위의 다리를 향해 곤을 세게 내뻗었다.

···쿵!

추이가 한 발자국을 밟은 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거품과 함께 진흙 구름이 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일직선으로 내뻗어진 곤이 그 면적만큼의 물을 정면으로 밀어냈다.

그 뒤를 따라 막대한 양의 물이 함께 떠밀려 올라온다.

콰콰콰콰쾅!

곤의 모양을 따라 육각으로 각진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추이의 찌르기에 따밀려 온 주변의 물이 격렬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물기둥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뻐-억!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다른 위사 하나가 물기둥에 얼굴을 맞았다.

물에 맞았을 뿐인데 마치 거대한 쇠망치에 강타당한 것처럼 안면이 시뻘겋게 으깨져 버렸다.

펑! 퍼펑! 퍼퍼퍼퍼펑!

호수의 바닥에서부터 밀려 올라온 물기둥이 계속해서 위사들을 때린다.

···퍼억! 뚝!

물기둥에 맞은 무사의 머리통이 팩 돌아가며 목뼈가 꺾였다.

그 옆에 있던 자는 물기둥에 팔이 휩쓸려 들어갔고 그대로 뼈가 부러져 버렸다.

“으아아아악!”

다리 위에 끔찍한 혼란이 벌어졌다.

위사들은 오도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물기둥에 맞아 죽거나 불구가 된 채 호수로 떨어졌다.

“안 되겠다! 다리에서 벗어나자!”

“물이 없는 곳으로! 물이 없는 곳으로 가라!”

“다리에서 나가! 이,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위사들은 다리의 좌우 양쪽으로 뛰어갔다.

일단 어떻게든 물에서 벗어날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상황은 위사들에게 더더욱 안 좋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추이가 공격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촤-아아아아아악!

찌르기에서 베기로. 곤의 궤적이 바뀌었다.

수면이 울룩불룩 차례로 불거져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파도가 횡대를 이루어 일어난다.

콰콰콰콰쾅!

그것은 다리 전체를 집어삼키듯 덮쳤고 그 위에서 뽈뽈뽈 흩어지던 위사들을 개미떼처럼 쓸어가 버렸다.

“푸하!”

“크하악!”

“퉤! 푸우!”

살아남은 위사들은 호수 중앙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들은 죽을둥 살둥 헤엄쳐서 뭍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추이가 아니었다.

···푹!

허우적대던 위사가 껙 소리를 내며 고꾸라진다.

수면에 처박은 얼굴 아래에서 시뻘건 핏물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푹! ···찍! ···푹! ···찍!

곳곳에서 송곳 소리와 함께 위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쩍-

능숙하게 헤엄쳐 가던 위사 하나의 머리통이 깨졌다.

호수 바닥에서 뻗어나온 곤기(棍氣)에 직격당해서 그렇다.

추이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은 송곳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이들은 곤을 뻗어 죽이고 있었다.

꼬르르륵······

그 와중에 헤엄을 못 치는 위사들은 그대로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아무도 발버둥치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       *       *

“뭐야! 무슨 일이냐!?”

소란을 들은 증원군들이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뒤였다.

호수의 물이 붉게 물들었다.

들개가 물어뜯은 개뼈다귀마냥 너덜너덜해진 다리 아래에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둥둥 떠 있었다.

하나같이 머리가 깨지고, 목이 꺾이고, 허리가 부러지고, 가슴이 함몰된 시체들이었다.

그 끔찍한 참상 앞에 증원 온 무사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북쪽!”

다리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은 위사 한 명이 물에 둥둥 뜬 널빤지를 붙잡은 채 외치고 있었다.

“침입자가 부상을 입은 채 북쪽 담벼락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무위는 약 일류 정도입니다!”

생존자의 증언을 들은 위사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부상을 입었답니다!”

“쫓아라! 북쪽! 북쪽이다!”

“이놈을 살려뒀다간 패도회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

“일류고수 정도라면 우리들 선에서 충분히 정리 가능해! 기필코 잡아 죽이리라!”

그들은 생존자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키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때쯤 해서.

“······.”

살아남은 위사가 조용히 널빤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수면 위를 몇 번 박찬 뒤 허공을 날아 다리 위의 난간에 착지했다.

탁-

추이.

어느새 패도회의 흑색 피풍의로 옷을 갈아입은.

추이는 몸에서 시뻘건 내력을 끌어올렸다.

치이이이이익······

내력이 혈관 속을 빠르게 돌자 몸이 뜨거워지며 수증기가 일어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창귀들이 추이의 몸을 맴돌며 물을 털고 말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추이의 피풍의는 땡볕에 말린 것처럼 바싹 마르게 되었다.

퍼-엉!

추이는 옷을 한번 털었다.

그러자 옷에 말라붙어있던 피들이 주변으로 나부끼며 자욱한 홍진을 만들어냈다.

패도회의 일류들이 입는 흑색 피풍의가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듯 빳빳하게 늘어졌다.

추이는 소매자락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냄새는 안 나는군.”

다행스럽게도 똥냄새도, 피냄새도 나지 않는다.

이윽고, 추이는 다리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삐걱- 삐걱- 삐걱-

목표는 호수 중앙의 인공섬.

동정호의 악양루를 본따 만든 거대한 누각.

패도회주 도막생이 있는 곳의 문을 두드릴 시간이다.

견자(犬子)를 잃어버린 견부(犬父)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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