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2)
48-
황춘은 뒷간의 구멍 속으로 떨어지면서 생각했다.
어렸을 적 들었던 변소 귀신 이야기.
어두운 밤, 변소에서 똥을 누고 있으면 똥구덩이 밑에 도사리고 있던 귀신이 하얀 손을 뻗어 궁둥이를 어루만진다는 이야기를.
‘빨간 새끼줄 줄까, 파란 새끼줄 줄까.’
빨간 새끼줄을 달라고 하면 손톱으로 얼굴을 마구 할퀴어 새끼줄을 피로 빨갛게 물들이고, 파란 새끼줄을 달라고 하면 새끼줄로 목을 졸라 얼굴을 파랗게 질리게 한다던 측간 귀신.
하지만 지금 황춘이 만난 측간 귀신은 이야기 속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콰득!
귀신은 황춘의 목을 으스러트릴 듯 조르고 있었다.
그것도 순수한 손아귀 힘만으로 말이다.
‘무, 무슨 놈의 힘이······’
황춘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귀신은 황춘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놔두지 않았다.
풍덩!
측간 귀신은 황춘의 머리통을 똥물에 처박기 시작했다.
“후악! 크학! 컥! 께헉! 우웨에엑! 커헉!”
황춘은 한참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머리채를 잡힌 채 똥물에 고개를 처박고, 발버둥쳐 나오고, 또다시 똥물에 처박히기를 수십 번.
그동안 황춘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똥물이 입에 들어갈까봐 무의식적으로 입을 다무는 바람에 고개가 똥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숨을 쉴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호흡에 대한 욕구는 비위보다 강하다.
황춘은 숨 쉬기를 주저했던 것에 대한 대가로 결국 몇 모금인가의 똥물을 들이켜야 했다.
구꺽- 구꺽- 구꺽-
걸쭉한 똥물이 목구멍을 타넘어 폐까지 들어간다.
그것은 묵직하고, 걸쭉하고, 찝찔하고, 시큼하고, 욕지기 나오는 것이었다.
“구웨에에에에엑!”
황춘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토악질을 했다.
토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숨과 함께 똥물까지 삼키고, 또 토하고, 숨이 막혀 켁켁거리는 것의 무한 반복이었다.
이윽고, 측간 귀신이 황춘의 목을 놓아주었다.
···첨벙! ···첨벙! ···첨벙!
황춘은 똥물의 늪에서 겨우겨우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돌로 된 벽을 짚고 고개를 돌리자 똥물 위에 귀신처럼 서 있는 두 남자가 보인다.
큰 키의 남자, 그리고 작은 키의 소년이 똥물 위로 상반신을 내밀고 있었다.
둘 다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어서 귀신처럼 으스스했다.
추이와 오자운.
둘은 황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누가 할까?”
“내가 하지.”
오자운의 말에 추이가 앞으로 나섰다.
황춘이 더듬더듬 물었다.
“누, 누구시오? 사람이오 귀신이오?”
추이는 황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며 물을 뿐이다.
“너를 스승으로 삼고 싶다.”
“뭐? 그게 무슨······”
“지금부터 모르는 것들을 물어볼 것인데, 잘 가르쳐 주기만 하면 서로 더러운 꼴 그만 볼 수 있겠지.”
추이는 똥물을 휘적휘적 가르며 걸어와 멈춰섰다.
그리고 황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 장례식은 누구의 장례식이지?”
“좆까, 이 미친 새끼야!”
황춘은 바로 주먹을 날렸다.
비록 칼을 두고 왔지만 눈앞의 여리여리한 소년쯤은 한 주먹에 때려죽일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짜-악!
곧바로 뒤이어진 귀싸대기 한 방에 산산조각날 자신감이었지만 말이다.
“크학!?”
추이에게 뺨을 맞은 황춘이 변소의 벽에 부딪쳤다.
볼따구를 한 방 맞는 순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내 상대가 아니야.’
두개골이 산산조각 부서질 듯한 힘.
이것은 단지 육체의 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피부로 저릿저릿 전해져 오는 내력을 느낀 황춘은 눈앞의 소년이 최소한 일류 고수는 된다고 판단했다.
고작 이류무인에 불과한 자기와 비교하면 천하장사와 이제 막 씨름을 배운 어린애 정도의 차이가 나리라.
황춘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바, 밖에 누구 없냐! 여기 웬 놈이······!”
하지만 그는 밖에다가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콱-
추이는 황춘의 머리채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변소의 우둘투둘한 돌벽에 대고 짓눌렀다.
빠각!
황춘은 입을 벌린 모양 그대로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느라 앞니 몇 개가 생으로 부러져 나갔다.
꾸구구국······
추이는 황춘의 얼굴을 벽에 꾹 누르고는 그대로 옆으로 밀었다.
뿌지지지지직!
황춘의 얼굴 가죽이 갈려나가며 변소의 벽에 붉은 자국이 길게 묻어난다.
“끄아아아아악!”
황춘이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지른다.
그럴 때마다 추이는 황춘의 입을 똥물에 처박았다.
황춘은 그 뒤로도 몇 모금의 똥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셔야 했다.
“구웨엑- 구웨에에에에엑-”
얼굴이 아파서 화끈거리는 와중에도 토악질은 계속 나온다.
황춘은 이제 자신의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피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토사물인지, 똥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때쯤 해서.
“말하기 싫으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
추이가 작게 속삭였다.
“너 아니어도 똥 싸러 올 놈들 많아."
“마, 말할게요. 말하겠습니다. 제발······ 우웨엑!”
황춘은 연신 구역질을 하며 울먹였다.
이윽고, 그는 추이가 묻는 말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아, 아까 뭘 물어보셨었죠?”
“이거. 누구 장례식이냐고.”
“도, 도 공자 장례식! 이 장례식은 도 공자의 장례식입니다.”
“도 공자? 도좌윤?”
“그렇습니다.”
황춘의 대답을 들은 추이와 오자운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오자운이 물었다.
“죽였었나?”
“흠. 그런 기억은 없는데.”
추이가 턱을 쓸었다.
예전에 부차루를 불태웠을 때, 추이는 패도육호(佩刀六虎)를 전부 때려죽인 뒤 도좌윤을 불구로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사지를 못 쓰게 하고 사타구니를 망치로 으깨 놓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었다.”
그러자 황춘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도, 도 공자님을 그렇게 만드셨던 게······ 두, 두, 두 분인가요?”
“그래. 불에 타 죽지 않게 멀찍이 떨어진 곳에 버려두기까지 했으니 죽었을 리가 없다.”
추이는 도좌윤을 살려줬었다.
그의 심복인 일도의 부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색하게도.
“도 공자님은 그저께 돌아가셨습니다. 스스로 택하신 결정이었지요.”
도좌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구가 된 몸에 내공까지 잃어 폐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삶의 낙이 없었던 모양.
오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지를 못 쓰게 된 데다가 아랫도리까지 으깨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도좌윤이라는 놈은 본디 색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알 바 아니다.”
추이는 다시 한번 황춘을 다그쳤다.
“장강의 해백정은?”
“그, 그분은 귀빈들이 머무는 안채에 계십니다. 듣자하니 다른 성에서 넘어온 삼칭황천이라는 고수가 장강의 수적들과 마찰이 있었다던데······ 조사 결과 그자가 도 공자님을 시해한 흉수와 동일인물이라고······ 그, 그렇다면······ 그쪽이 삼칭황천?”
황춘의 말에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장강수로채의 해백정은 패도회의 도막생과 손을 잡았다.
즉, 둘은 적인 것이다.
“알겠다.”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다.
황춘이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저는 살려주시는 겁니까?”
“아니.”
“아까는 저를 스, 스승으로 모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그랬지.”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스승에 대한 예우다. 혀를 깨물고 자결해라.”
“······예?”
황춘이 당황하며 반문하자 추이는 짧게 대답했다.
“객잔에서 죄 없는 사람들 혀를 잘랐잖아. 그러니 네 혀도 잘려야 인지상정이지.”
“······.”
그 말에 황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이 새끼들!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이었구나!”
황춘이 버럭 소리질렀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추이를 향해 피풍의를 확 벗어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는 똥물을 박차며 돌벽을 타올랐다.
이대로 변소 위로 올라가 문을 열고 칼을 집어들어 싸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내, 황춘은 똥구덩이를 탈출해 변소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에 성공했다.
‘좋았어!’
눈앞으로 변소의 문이 보인다.
이제 저것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문 앞에 세워놓은 칼이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그것을 집어들고 자신이 시전할 수 있는 최강의 도법인 패도십삼연격을 마구 시전하며 소란을 피우면 된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교대자들이 달려올 것이다.
‘간다!’
황춘은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변소의 나무문을 열고 밖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만약 그에게 손이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어?’
황춘은 당황했다.
굳게 닫힌 측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밀어서 열 수 있는 손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손이 어디 갔는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머리만 남아서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
목이 잘려 머리만 남은 황춘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타들어가는 그의 시야로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추이.
휘둘렀던 칼을 칼집에 넣고 있는 오자운.
그리고 목에 앞서 먼저 허물어져 내린 자신의 몸뚱이.
···풍덩!
그것을 마지막으로, 황춘의 머리는 황금색 똥물 속으로 천천히, 똥덩이처럼 가라앉았다.
‘황금충’이라는 별명에 썩 어울리는 최후였다.
* * *
패도회의 위사들은 밥을 먹는 중이었다.
“어이, 편육은 있는데 젓갈이 없잖아.”
“뭐 찍어먹을 것 좀 가져와 봐.”
“이런 건 막내가 가야지.”
“황춘이 어딨나?”
그들은 교대 전 조촐한 술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으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위사들은 편육을 집어먹다가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한바탕 왁자하게 웃어젖혔다.
“저거 변소 간 놈 황춘 아니야?”
“낮에 마신 탁주에 탈이 났다고 했었어.”
“병신. 뭔 똥을 저렇게 기합 넣고 싸나?”
“수금을 할 때 저렇게 좀 의욕적으로 할 것이지. 쯧쯧-”
그들은 황춘이 똥을 싸기 위해 힘을 주며 고함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삐그덕-
측간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황춘이 아닌 다른 두 사람이 나왔을 때, 위사들은 표정을 굳혔다.
한 위사가 칼을 빼들며 물었다.
“조문객은 아닐 것이고. 너희는 누구냐?”
그러자 둘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삼칭황천.”
“사망매화.”
추이와 오자운이 본격적으로 곤과 칼을 빼들었다.
추이가 위사들의 술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편육을 찍어먹을 게 없댔나, 이건 어때?”
추이는 곤의 양쪽 끝에 담긴 두레박을 확 흩뿌렸다.
촤아악-
위사들의 술상 위로 거무튀튀하고 누런 똥물이 끼얹어진다.
“으악!?”
그들은 허공으로 뿌려지는 똥물에 기겁을 하며 나동그라졌다.
동시에.
빠-각!
맨 앞에 있던 위사 하나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두레박에서 뿌려지는 똥물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두레박이 걸려있는 곤 끝을 보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다.
···철푸덕!
흰 병풍 위로 똥물과 핏물이 뒤섞여 흩뿌려지며 절묘한 색채의 수묵화가 그려졌다.
정보도 얻었고, 죽여야 할 이들도 전부 특정했으니 이제는 움직일 때다.
추이와 오자운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쪽.”
“그럼 나는 동쪽으로 가지.”
목적지는 패도회의 가장 안쪽, 패도회주 도막생이 기거하고 있는 최심층부의 누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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